|
수행소고修行小考
(글쓴이: 혜우 68세 – heawoo0715@gmail.com)
Ⅰ.
서울대 총불교학생회 60주년을 축하합니다.
저는 전 종정 스님이셨던 서암 스님을 은사로 문경 봉암사에서 출가해서 30년 넘게 줄곧 참선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 3학년 여름방학 때 백봉 김기추 선생을 모시고 부산 보림선원에서 참선을 시작한 걸로 치면 35년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간 실제로 수행을 해오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말씀 드릴까 합니다.
Ⅱ.
사람들은 불교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근본적인 원리는 간단하고 단순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인 삼법인과 4성제만 제대로 이해하면, 교리상으로나 실제 수행에 있어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삼법인이라 하면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을 말합니다.
제행무상, 우주만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상하여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뜻입니다. 나를 포함하여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들도 때가 되면 부서져서 흙먼지가 되고 결국은 공으로 돌아갑니다.
제법무아, 따라서 이 모든 것들은 ‘나’라고 할만한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습니다.
열반적정, 이 우주만물의 실상, 본질인 무상과 무아를 제대로 체득해서 살아가면 마음은 일체 괴로움, 고통에서 벗어나서 항상 편안하고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만물 모든 존재의 실상이자 본질이고 진리 그 자체입니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모든 것은 고정 불변의 실체가 없고 인연가합, 인연에 의하여 잠시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본질은 공이고, 그렇게 공인 줄 알고 살아가면 마음은 항상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모든 번뇌, 고통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고 편안하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오온개공도 일채고액과 똑 같은 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은 결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인연 따라 와서 우리 곁에 잠시 머무를 뿐, 인연이 다하면 내 곁을 떠나 공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모든 존재의 본질이자 우주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나’다, ‘내 것이다’, 할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본질이 공이기 때문에 나라는 생각, 내 것이다라는 마음을 내게 되면, 무지개를 잡으려는 것과 같아서, 점점 갈증, 갈애를 느끼게 되고 결국 고통의 세계, 윤회의 굴레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상을 마음으로 느끼면 느낄수록, 탐착심을 버리게 되고, 그렇게 마음을 비울수록 마음의 업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는 궁극적으로 이고득락離苦得樂, 고통이나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즐거움, 열반락을 얻는 길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가르침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마음속으로 항상 그런 무상한 마음으로 대하면- 본시 나라고 할 것도 없는데 내 것이라고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잠시 인연 따라 내 곁에 왔을 뿐,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연이 다하면 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무상관, 실상관이지요.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면 어떠한 일을 당하더라도 자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즐거움, 행복을 얻지만 또 반대로 그로 인해서 가장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무상을 체득하면서 살아가게 되면 세속에 살든 출가를 하든 똑같이 수행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그대로 다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살아가는 경계 속에서 인간은 무상, 무아로 살아지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돈오돈수頓悟頓修, 깨칠 것도 닦을 것도 없는 완전한 윤회 해탈을 이룬 사람이지요.
아무리 무상하고 무아라고 수천 번, 수만 번 생각하고 다짐해도 실제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잘못되면 가슴이 아프고 괴롭습니다. 괴로움이란 사람의 마음의 업 때문에 생겨나고 바로 그 마음의 업을 다스리는 것이 사성제, 고집멸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苦 이 세상 모든 것은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 고통의 세계입니다.
집集 모든 괴로움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생겨납니다.
멸滅 괴로움의 원인이 욕심인 줄 깨닫고 마음을 비우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도道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운 만큼 괴로움, 고통에서 벗어나서 열반의 편안한 세계로 갈 수 있습니다.
이 사성제 안에 실제로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원리가 다 들어 있습니다. 사성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고苦의 자각입니다. 나에게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구나 하고 자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고(문제)를 자각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회피하려 하고 합리화하면서, 직면해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보다 일시적인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실질적인 불교수행은 이 고苦의 자각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괴롭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그 근본 원인이 바로 자기 자신의 욕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무엇이 자신의 근본 문제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거기에 대한 답,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번뇌 즉 보리입니다. 번뇌(문제) 속에 보리(답)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문제점을 지적해주어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말에 상근기는 스스로 알고, 중근기는 말을 하면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알고, 하근기는 아무리 일러주어도 전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화를 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의 말에 잘 귀를 기울이고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하심下心이 가장 중요합니다. 현명하고 지혜롭게 사는 사람일수록 남의 말을 흘려 듣지 않고 주의 깊게 새겨서 자신을 돌이켜 보고 자신의 문제점을 받아들입니다. 사실 문제를 지적하고 충고해주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문제점을 받아들이고 그 문제의 근원을 자기 마음에서 찾아 마음을 비워나가는 노력을 할수록 조금씩 변화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선 수행, 마음 수행과 요즘 유행하는 명상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선 수행, 마음 수행은 철저하게 자신의 근본 문제점을 마음에서 자각하고 그 원인이 되는 욕심을 비워 고苦의 근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렇게 해야 고통의 원인인 마음의 업을 깨달아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명상은 사람의 의식을 컨트롤해서 조정하는 의식 수준의 수행입니다. 문제의 근원인 마음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좋아지고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아도 그 업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때가 되면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결국 윤회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고집멸도, 이 사성제의 가르침대로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가 자신의 욕심에서 비롯됨을 깨닫고 그 마음을 비워서 그 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이것이 수행의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Ⅲ.
불교는 한마디로 마음공부라고 합니다. 붓다는 이 마음을 깨쳐서 모든 번뇌를 벗어나 해탈한 사람입니다. 참선은 바로 이 마음을 참구參究하여 부처가 되고자 하는 수행입니다.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을까요?
예전에 참선 공부를 한다고 애쓸 때 심하게 아픈 적이 있습니다.
‘이 도道란 것이 찾으려 하면 할수록 더 멀어지는구나!’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자신의 모든 것을 되돌아보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수행이란 것, 깨친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상구보리 하화중생 (上求菩提 下化衆生) 보리(깨달음)를 얻어서 중생을 제도한다.
우리는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되고, 부처란 모든 것을 알고 초능력, 신통력을 가진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는 이것이 막연한 종교적 믿음에서 기인한 허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마음을 내면 업이 됩니다. 깨치려는 마음을 내게 되면 마음의 업을 하나 더하는 것이 되어서 그만큼 더 억지로 무리하게 되고 그 결과 병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지극히 정직해서 계속해서 무리하면 반드시 탈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깨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정말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모든 문제는 이처럼 본래 없었던 것을 스스로 만들어서 고생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깨달은 것도 얻을 것도 얻었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수행은 결국 어떠한 마음을 내지 않는 무념, 무상, 무심의 길인 것입니다.
조고각하照顧脚下 수행이라 함은 특별 난 법(道)을 멀리서 찾는 것보다 눈앞의 자신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것입니다.
깨달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내 자신의 문제 내 마음의 실체와 오롯이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실제로 제대로 된 마음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수행이란 그렇게 특별 난 것, 깨달음을 억지로 찾으려 애쓰기보다 항상 쓰고 있는 현재 이 마음의 문제점을 제대로 보고 비워나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흔히 마음이 편하다, 마음이 편치 않고 왠지 불편하다는 소리를 많이 합니다. 왜 내 마음이 편치 않을까.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불편해졌을까? 마음이란 것은 사소한 것에 걸리기만 해도 불편해서 견디기 힘이 듭니다. 평소에 좋게 생각하던 사람도 어느 순간 이해되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딱 마음에 걸리게 되면 그 사람을 보기만 해도 불편해져서 말도 하기 싫고 피하고 싶은 생각만 들지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 사람을 만나서 직접 그 부분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런 경우 알고 보면 대부분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많지요. 그러나 터놓고 이야기해서 맺힌 마음을 풀었을 때와 풀리지 않고 묻어두었을 경우 결과는 천지 차이입니다. 그것이 사소한 오해였다고 이해하는 순간 맺혔던 마음은 한 순간에 씻은 듯이 사라지고 개운해지지요. 그것을 풀지 않고 그대로 마음 속에 묻어두고 있으면 마음에 벽이 생겨서 그 사람을 볼 때마다 불편해지고 상대방도 처음에는 대수롭잖게 생각하다가 서로 감정이 상해서 사소한 일로도 원수처럼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걸려서 풀리지 않고 그런 것이 하나씩 쌓이게 되면 큰 병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마음이 맺히면 바늘 끝 하나도 용납되지 않고, 통하면 바다보다 넓고 우주보다도 더 넓은 게 마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공부란 이렇게 누구나 느끼고 알 수 있는 작고 소소한 데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모든 행동이나 생각의 근원에는 그렇게 하게끔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무심코 하는 말이나 행동, 생각 하나하나까지도 마음과 동떨어져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것들이 다 마음의 표출입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사람들의 이해되지 않는 생각이나 행동들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마음을 알 수 있게 되고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그로 인한 마음의 갈등은 깨끗하게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 마음을 보게 되면 살아오면서 겪은 좋은 일, 나쁜 일, 힘들고 괴롭고 슬픈 일, 크고 작은 일 하나하나 풀리지 않고 맺힌 것들이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모든 것은 흘러갑니다. 모든 것은 다 생겼다가 사라지지만 사람의 가슴 속에는 흘려 보내지 못한 것들이 남아서, 금생에 풀지 못하면 업으로 남아 또다시 다음 생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경계는 마음 따라 일어납니다.
불사선 불사악 不思善 不思惡 착한 생각도 나쁜 생각도 일으키지 마라.
모든 문제는 내 마음이 일어남으로써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모든 경계는 생겼다가 사라지고 흘러갈 뿐 더 이상 나에게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수행이라 함은 경계를 탓하지 않고, 그 경계 속에서 일어나는 자기 마음만을 보고 다스릴 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대방이나 주위환경을 탓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업은 절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윤회하게 됩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 그 어떠한 경계 속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여여하면, 무슨 일을 당해도 전혀 두렵지가 않고 주인공이 되어서 당당하게 대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Ⅳ.
마음에 대해서 쓴다고 했지만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막상 써놓고 나서도 맘에 들지도 않고 미흡한 부분이 너무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수행에 뜻이 있으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원문: 서울대학교 불교학생회 창립60주년기념 에세이 집(2018.10) “가던 길 멈추고 돌아보니” 중에서
첫댓글 아주 간명하게 부처님의 참뜻을 전해주는 좋은 글이군요.
이런 글을 발굴해서 저희에게 전해주시는 能田 선사께 감사드립니다.
잠시 생각을 멈춰본다. 단지 생각을 멈출 뿐이다.
한 생각을 멈추면 다른 생각이 남아 있음을 알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또 멈춘다.
이런 식으로 의식 속의 생각을 하나씩 멈춰 나가 본다.
충분히 멈췄다고 생각되면,
그 상태 그대로 있는다.
그냥 그대로 머물러 있는다.
마음을 멈추어 본다.
현시적으로 수많은 감정들이 서로 얽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선 느껴지는 감정을 멈추어 본다.
억지를 부리면 안된다.
감정은 강압적인 의지로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평화로운 의지로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https://blog.naver.com/ssdh33/140154494213
[출처] 수행소고2|작성자 대형
원문과 직접적으로는 상관없는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