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運命)인가, 숙명(宿命)인가?
2017.7.30
송남석
이상한 문자가 왔다,
다섯줄에 간단한 전달 문자는 나와는 상관없는 잘 못 전달된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누군가 실수로 내 전화번호를 잘 못 입력했나보다 하고 넘겨버렸다. 다음날 다시 메시지를 열어보니 그 문자가 아직 남아있었다. 누굴까? 혹시 나와 인연이라도 있었던 사람은 아닐까? 라고 반문해 봐도 전혀 모르는 이름들이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다 그런 일도 있으리라 하고 넘겨버렸다.
한 3년 전 늦여름인가?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아직도 혼자 인 것이 확실한가 묻는 전화였다. 아주 좋은 혼처가 났는데 양쪽을 다 잘 아니까 적임자 일 것 같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이쪽은 이제 재혼 같은 희망은 다 접고 완전 포기하고 영원한 싱글로 살아간다고 다짐했는데, 내 졸저(拙著)라도 책을 보내드리면 필히 다 읽으시고 논평까지 해주시는 내가 존경하는 문단 선배여서 눈 딱 감고 한 번만 더 보기로 작정했다.
친구의 동생인데 55년생으로 슬하에 남매를 두었고, 아들은 해사(海士)를 나와 초급 해군장교 소위로 인천에서 첫 근무 중이고, 딸은 D항공직원이며, 본인은 얼마 전까지 한약방 약재조수로 근무하다 그만두었다고 한다. 얘가 아직 나이도 있고 컴퓨터도 잘하는 신세대 못지않아 그냥 두기 아깝다고 적당한 혼처가 없을까? 그의 언니가 언니의 절친한 친구이신 문단선배 여류 작가 K회장님에게 청을 넣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와 네 사람이 잠실 롯데월드에서 만나기로 약속 날짜와 시간을 잡았다.
양쪽에 보호자 한 사람씩 입회하여 점심을 겸한 상견례를 시키면서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남겨두고 소개자들은 빠지겠다는 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소개 방법이었다. 그렇게 미팅하기로 한 하루전날 K작가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여자 쪽에서 단둘이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화번호를 알려주겠으니 나 더러 먼저 전화를 걸어 약속장소를 잡으라한다. 내 스타일이네, 싶어 내심 반갑기도 했다.
이번만은 어떤 자존심도 버리고 반드시 성사시켜보고 싶다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약속한 장소 제2롯데월드에서 만나 아직은 식사시간이 빠르다고 어디로 갈까요? 물었으나 서울에 온지 얼마 안 되어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럼 6,3빌딩 가봤나요? 물으니 안 갔다고 하여 거기를 가자고 하였다.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한강을 조망하고 사진도 서너 컷 찍었다. 즉석에서 사진도 휴대폰 메시지로 보내주었다.
6,3빌딩은 내부수리중이라고 대부분 식당이나 점포들이 문을 닫았고 전망대만 겨우 개방중이라 한 바퀴 돌아 그냥 내려와 유람선이 있는 선착장으로 갔다. 유람선에서 한강의 경치를 조망하며 식사를 마치고 다시 한강둔치로 나와 비치파라솔 의자에 앉아 자리 값으로 약간의 후식과 커피를 시켜놓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가족관계서 부터 취미활동 현재 하는 일 등 말 그대로 탐색전이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제 그만 집에 갈까요? 하고 일어서서 가까운 지하철 여의나루역으로 갔다. 열차가 2역을 지나 공덕역에 도착했을 때 가는 방향이 달라 환승하겠다고 나가더니 '아! 내 휴대폰이?'하고 울상을 짓는다. 나는 얼른 같이 내려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았으나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았다. 걱정하는 표정에 위로하는 말로 못 찾으면 내가 사드릴 께 걱정 마세요, 하고 달래면서 일단 거기를 다시 가보자고 하였다. 전화는 계속 받지 않았다. 헛고생 되더라도 가서 확인을 해보자는 쪽으로 되돌아가는데 마음이 조급해서인지 꾀 멀게 느껴졌다. 여의나루역에 내려 둔치까지 가는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현장에 도착했다. 우리가 앉았었던 그 비치파라솔 밑에는 젊은 남자 손님 두 사람이 앉아서 간단한 안주와 캔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저, 미안하지만 여기 아까 우리가 앉았다가 가면서 휴대폰을 놓고 갔는데 혹 못 보셨나요?” 하고 물었으나 대답이 신통치 않았다. 한 놈은 모른다 하고 한사람은 어정쩡하다가, 야 ! 하면서 힐끔 눈치를 주니까 예, 이겁니까? 하고 내어놓는다. 순돌 님은 너무나 반가워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보상을 좀 하고 싶다고 하니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하는데 아까 모른다고 한 놈이 야 받아받아 한다, 그래서 만 원짜리 하나를 생각했는데 그냥 5천 원짜리를 주면서 약소하지만 이거라도 드립니다. 하고 돌아 나왔다.
재작년 늦여름의 일 같아서 2015년 일기를 어딘가에서 찾아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토막글 “세 고개를 넘지 못하고” 라는 제목의 글이 발견되었다.
겨우 한 고개 넘었는데, 열정은 철저히 계산으로 바뀌고만 있다. 네 번을 만나서도 두 번째 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다면 희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한 고개는 탐색전인데 너무 많이 알아도 병이다. 안다는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이 과하게 나타나고 있음은 그 쪽의 자존감과 자만심이 너무 강하게 나옴인 것 같다.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절박한 자기의 처지에 대한 일종의 방어력에서 무의식속에 빚어지는 현상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상대를 리드하고 가르치려고 하는 경솔함이다. 남자가 제일 꺼리는 여자는 남자를 이겨먹으려 하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다.
자기생각과 다르더라도 나보다 인생경륜이 많으니 뭔가 들어볼만 한 것도 있을 거다, 한 가지라도 들어보겠다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여유를 조금만 가져줘도 좋겠는데...
두 고개란 실습이다. 궁합이 어느 정도 맞나(?) 성에대한 지식과 상식 그 실천의지가 순수한 정감을 얼마나 품고 있냐에 결과는 찬반으로 갈린다. 여기서 만족해도 한 고개가 더 남는다. 두 고개를 넘었던 사람들도 몇 번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어디 있을까? 갑을 관계의 혼돈이다. 이쪽이 갑이어야 하는데 쫄랑거리며 앞서가려는 경솔한 주인의식이 다 된 잔치를 망치고 결과는 상처를 남기고 떠나고 만다. 60~75세가 인생의 황금기라고 한다.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주어진 황금시절인데 다만 내 능력 한 가지가 모자라 그 한 가지를 누리지 못하고 이런저런 변명을 내놓고 있는 자신이 안타깝다.
그런데 이번은 아직 두 고개도 넘기지 않고 철저히 타산 속으로 끌려 들어가려는 느낌이다. 자존감과 자만심이 너무 강한 것 같은데, 내가 더욱 편하게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자신을 삼십대 정도로 착각하고 상대를 노인으로 폄하 하는 듯한 실언을 서슴없이 토한다. 아마도 미리 철저한 보장을 받아두겠다는 계산인 것 같다. 지금까지 지나간 여인들의 나이가 52년~64년생들이었으나 나는 나이나 학벌 재산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다. 그러니 먼저 말하기도 싫었다. 출생연도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얼마나 건강하냐(?), 학벌이 아니라 학식이고, 재산액수가 아니라 지혜로운 씀씀이가 더 중요하다. 남자에게 가장 좋은 여자는 몸매 좋고 얼굴 예쁜 여자가 아니라 말을 예쁘게 하는 여자라 하는데, 그런 시각으로 보면 두 고개 넘기 전에 기절하지 않음 다행이지 싶다.
나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러는 동안 이성에 대한 거부감의 내성이 쌓여 싱글로 살아가는데 상당히 길 들여졌다는 점이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여기서 끝나더라도 나는 십만 여원이 넘는 물질적 경비와 시간 낭비와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고 자책해야할 지점에 왔는데, 이번만은 손해라는 생각이 안 든다. 나의 서투른 방법과 내게는 아직도 부족한 면이 있었구나 하는 느낌으로 반성이 되기 때문이다. 아! 내가 아직도 얼마나 더 내공을 쌓아야 할까? 아무리 섭섭해도 절대로 상대방에 맞대응 하는 말로 서운케 해서는 안 된다는 법칙을 잠시 잊었었나? 잊지 말고 실천해야 할 터인데...
그러나 내가 나를 두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부심은 물질적 정신적으로 그 어떤 도움 없이도 내 주변에게 전혀 부담 주지 않고 인생을 마감하겠다는 안정감이다. 고정 월수 O백만 원 이상이면 아끼며 검소하게 살고 쓰면서 취미생활도 할 수 있겠다는 안정된 삶이다. 나는 지금 기준에 따라서는 넉넉하지는 못한 수입일지 몰라도 일터에 나가서 생활비를 벌어오지 않아도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고, 비록 미약하나마 항상 누군가를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음에 스스로에게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3년 전부터 가계부 쓰는 일을 그만뒀다. 공과금 식비가 5~6십 만원에 품위유지비 합쳐 월150만원이 고정 지출이라는 확정에 어느 부분에 얼마나 들어가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날 그분이 꼬치꼬치 묻는 바람에 부끄럽게도 나는 내 고정수입과 부동산 소유현황까지 털어놓고 말았다. 그런대 그게 많다고 생각 하냐고 비웃는 듯한 언질로 상대의 기를 제압하려 한다. 자기는 작은 집 한 칸이라도 있기는 있는 것인가? 이런 분을 내 능력으로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겠는가 겁이 나기도 하면서 한편 내가 말을 서툴게 하여 혹 그쪽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오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이담부터는 절대로 조심해야겠다는 반성도 된다. 아파트관리비 십만원 내외 인터넷 휴대폰 위성TV 등 통신비25만 원정도만 짐작하고 카드결재 4~50만 원정도 그럼 끝이다. 승용차가 없고 철저히 검소한 생활에서 해마다 자동적으로 재투자가 이뤄진다.
내 삶의 방식에 궁금증은 없이 짠돌이 짓 하지 말고 팍팍 써주기만을 바라는 그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말,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 것이 아깝고 소중하면 남의 것도 아까워할 줄 알아야 한다. 라는 신념으로 생각을 바꿔 겸허하고 정직하게 서민적으로 살아가시라고, 나는 남들이 말 한 것처럼 내가 너무 까다로운 게 아니라 아직 적임자를 못 만났을 뿐이라고 답하고 싶다. 문단의 존경하는 선배님 한분의 소개로 미팅에 돌입한 얘기다. 너무 많이 알아도 병이란 뜻은 아는 것이 해석에 따라 득도되고 독도 된다는 양면성 때문이다. 나이가 더 젊다는 것을 본인이 자랑으로 표시하면 해가될 뿐이다. 상대방과 유리한 거래를 하겠다는 숨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많은 쪽에서 스스로 고맙게 느껴야 아름답다.
이성간의 교제는 물질의 거래가 아니라 정과정으로 맺어져야 아름답고 오래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 적다는 것만으로 유리한 거래를 기대 한다면 좋은 방법이 아니다. 과연 젊은 값을 하는지 검증되기 전이기 때문이다. 그 상황도 상대방에서 인정할 때 비로소 가능한일이다. 갑을 관계란 중요하다. 재력을 부담하는 쪽에서 갑이어야 하는데 양보하여 을이 대신한다면 아름다울 수도 있으나 이것저것 다 무시하고 을이 갑 역할까지 독점하려한다면 충돌이 생길 수 있다. 충돌이 심하면 치사하게 파탄이나 소송까지 가기도 한다. 내가 이성과의 교재를 1순위에 놓고 살아가지 않음도 열성이 약해진 탓이다. ①재테크 ②취미활동 ③여행 그리고 나서 이성교재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런대로 살고 정도다. 그러나 만약 적임자가 나타나 준다면 1순위로 바꾸고 최선을 다하여 모든 걸 바친다는 각오로 지상최고의 수준급으로 장식해보고 싶은 꿈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2015,10,8
위와 같은 쪽지 글이 발견되었다.
그 3일전 10월5일에 K작가 회장님으로부터 받은 이메일 글도 남아 있었다.
어제 OO이 만났습니다.
제 조카 결혼식장이라서 깊은 말은 나눌 시간이 없었습니다.
예쁘던데요?
잘 되어가고 있습니까?
라는 글이었다.
점점 좁혀오는 듯 의문이 풀리기 시작할 것도 같다. 2년이 지난 지금에서 왜 그런 문자를 보냈을까? 긍정과 부정? 그냥 실수로? 필히 알려야 하겠기에? 그동안 계속 지우지 않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여러 가지로 예상은 가능하지만 그 어느 경우도 딱히 맞다는 확신에서 결론지어지지는 않는다. 계속 의문이 쌓일 뿐이다. 예쁘고 똑똑하고 나이도 그런대로 아직 건강하고, 다 좋은데 가시 돋친 듯한 그 말에 문제가 있었다. 초기단계라서 농담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참지 못하는 경솔함이 툭툭 내뱉는 말투에서 “아! 아직은 많은 대인관계가 없었기로 본인의 정서가 순수하기 때문에 저러겠지?”, 그렇다면 오히려 “깨끗해서 좋아 잘 길만 들인다면,” 하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수용하기에는 내 가슴이 너무 좁았다.
(부고)
상주:박시운
망자:석순돌
빈소: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장례식장 2호
발인:7월31일
위와 같은 문자를 받고 계속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었다. 이날 하루 예약된 관광을 갔었는데 종일 우울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일단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고 답신문자는 보냈지만 멀어서 쉽게 가 볼 수 도 없고, 가봐야 할 자리가 되는지도 문제고, 가장 큰 의문은 “왜 죽었을까?” 아직 나이도 갓 60을 넘은 한창인데? 사망이유가 매우 궁금하고 이틀 사흘이 지나도 풀리지 않고 잊혀 지지도 않는다. 설마 나로 인한 서거는 아니겠지 하면서도 그 일이 발단이 되어 다소간의 스트레스가 시작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되었다. 네 번쯤 만나고도 결국 포기하고 말았으니 나 자신 상처는 받았지만, 어디까지나 내 소관의 실수로 결론은 못난 내 탓이라고 치부했었다.
내가 이렇게 며칠간을 잊지 못하고 계속 그의 좋았던 인상이 의문으로 남는 이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우가 똑 같지는 않았지만 이런 일이 세 번 정도는 있었다는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의문이 커진다. 잠시나마 스쳤던 인연들이지만 그들이 모두가 다 잘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내 마음에 더 큰 상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왜들 불행한 일이 닥쳤을까? 만약 내가 자존심을 버리고 끝까지 도전해서 그들을 맞아들여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다면 그런 일이 없이 행복한 삶이 연장되었을 것을? 내가 너무 인색했을까? 하는 미안함과 함께, “아니야, 그들의 잘못된 삶의 방식이 고쳐지지 않았기에 결국 일찍 간 거야”라는 운명론을 대입시켜보게도 된다.
문자로 직접 전해진 소식은 이번에 온 것이 처음이지만 용케도 말로 전해들은 불행도 몇 번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기준으로 삼는 나이는 평균연령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자 나이라면 아직 25년 정도 더 살아야 평균인데 왜 그랬을까? 흔한 병, 암은 아니었을까? 세상에 나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있다. 세상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오는 저세상으로 가는 일, 죽음에서 벗어나거나 영원히 살 수는 없는 인생, 그러나 사는 동안 건강하게 그리고 내 크고 작은 인연들 모두에게 영원히 사랑한다는 일념으로 그들에게 다시는 불행한 일이 없도록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가며 신께 만사형통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