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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보물은 어디에 있을까?
빌3:1-9,마13:44
I. 당신의 보물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앞에 5만원권 지폐 한장, 그리고 1만원 지폐 한장이 떨어져 있습니다. 여러분, 어느 지폐를 줍겠습니까? 예, 둘 다 줍지요.
그러나 인생을 살다보면 하나를 얻기 위해 하나를 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더 소중한 것을 위해 하나를 잃고 버려야 할 때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 한 가지만 얻어야 한다면 그 보물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그 보물은 어디에 있을까요?
마태복음 13장은 천국비유의 장입니다. 44절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천국이라는 보물을 사기 위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습니다.
그리고 보화를 곧 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보물이 묻힌 밭을 삽니다. 여기에는 생략이 되었지만 너희도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산다는 것입니다.
한 아이가 태어나면 태어난 즉시 자신의 보물을 찾기 시작합니다.
아기 때는 엄마가 보물입니다. 엄마만 있으면 됩니다.
조금만 크면 엄마가 집안 서열 1위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챕니다.
새움이는 할아버지를 제일 좋아해 줍니다.
게임에서 편을 먹을 때도 언제나 할아버지는 내 편입니다.
오늘 밤은 새움이 할아버지랑 자자! 좋아! 할아버지랑 놀다가 잠이 오면 엄마가 보고 싶어! 통곡이 시작됩니다.
할아버지는 온동네 체면 다무릅쓰고 새움이를 등에 업고 엄마에게 인계합니다. 새움이에게 실상 할아버지도 궁극적인 보화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어린이, 청소년, 청년이 되면 짝을 찾습니다.
애인 한 사람만 있으면 세상을 다 잃어도 행복 할 것만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화라고 생각합니다.
너도나도 “조선의 사냥꾼”이 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요.
이 남자, 이 여자가 내 인생의 전부 즉 보물이 아니란 걸 깨닫는데까지 걸리는 그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닙니다.
이 남자를 내가 안 만났다면 내가 손흥민을 만났을 텐데 싶습니다.
이 남자를 안 만났더라면 임영웅을 만났을 텐데 ? 이게 다 헛된 망상입니다.
소중하지만 내 곁에 있는 그 사람이 역시 궁극적 보화가 아닙니다.
내 곁을 떠납니다. 별세하는 날이 있더라는 겁니다.
40엔 일에 미치고 50, 60엔 명예에 미치기도 합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명예를 얻기 위해 인생을 던집니다.
그 명예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돈을 아낌없이 던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신이 들었을 때는 아차! 싶었어요? 그러나 때는 늦었습니다.
그게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는 정도의 길이 아니라면 이 허무한 것들을 위해 내가 인생을 걸었단 말인가? 후회도 합니다.
우리 친구들은 만나면 건강 얘기가 제일 많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나면 커피를 찾는 것이 아니라 약봉지 하나를 끄집어내 탁자 밑에서 찢어서 한 톨씩 너도나도 먹습니다.
건강이 보화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생명을걸만한 여러분인생의 보물을 발견하셨습니까?
마태복음 본문의 한 소작농은 밭에서 일을 하다가 보물항아리를 발견했습니다.
이 당시엔 은행이 없었습니다. 보물을 자기 혼자 아는 은밀한 곳에 묻어 두고 사용하곤 했습니다. 전쟁과 난리 그리고 사고가 많은 세상 아닙니까? 어쩌다 보물 주인이 이 땅에서 없어져 버렸습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 밭 주인이 여러차례 바뀌었습니다. 어느 날 한 소작인이 땅을 깊이 파는 농사가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제가 경험한 가장 깊은 구덩이를 파는 농사는 호박을 심는 것입니다. 호박을 심으려 했는지 땅을 깊이 파다가 보물 항아리를 발견합니다.(마태복음 13:44)
여기 보물을 발견했다는 말은 헬라어 휴리스코. 아르키메데스가 수학의 원리를 발견하기 위해 연구하다가 목욕탕에 갔습니다. 마침 아무도 없는 목욕탕에서 물이 찰랑찰랑 넘치는데 자신이 풍덩 들어갔더니 물이 출렁 흘러넘쳤습니다.
여기서 발견한 수학의 원리가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입니다.
목욕탕에서 수학의 원리를 발견하고 벗은 몸으로 뛰쳐나와 내가 발견했다.
I found it. 유레카. 내가 발견했다. 내가 찾았다. 외쳤던 바로 그 단어입니다.
마태복음13장44절 “발견했다”는 말과 빌립보 3장 9절 “발견되려 함이니”라는 말은 같은 단어입니다.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얻고 싶은 그것이 보화입니다. 세상 다 버리고, 다 잃어도 꼭 한 가지를 얻고 싶은 그것이 보물입니다.
여러분에겐 그 보물이 무엇입니까?
그 보물을 찾으셨습니까?
마태가 말하는 우리의 보물은 천국입니다. 곧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얻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
너를 구원하고 하나님의 자녀 삼기위해 천국을 버리고 이 땅에 왔다.
너는 나를 얻기 위해 무엇을 버렸느냐?
농부는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보화를 샀습니다.
너는 천국을 얻기 위해 무엇을 팔려느냐?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기 농부는 보화를 발견하고 소유를 다 팔아 보물을 산게 아니라 보물이 있는 밭을 샀습니다.
우리도 예수를 만나고, 천국을 발견하고 교회라는 밭을 삽니다. 교회를 사지 않고 천국을, 예수를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장코뱅. 존 칼빈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자는 교회를 어머니로 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보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역세권을 찾을 때 신앙인은 교세권을 찾습니다.
교회 중심으로 모든 걸 생각하더라는 겁니다.
교회 안에서 보면 참 착한 사람이 있습니다.그러나 교회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똑똑한 척하고 말을 합니다. 교회를 비판하고 불평합니다.
교회에 애정이 없습니다.
결국 이 사람은 신앙을 잃어버리고 교회를 떠나더라는 겁니다.
아예 처음부터 신앙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은혜로운 교회생활을 하기 위해 때로는 달콤한 수면시간을 팔아야 합니다.
사업에 손해를 감당해야 합니다. 때로 취미생활을 버리기도 합니다.
자존심을 팔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풍성한 은혜를 받으려면 밭을 사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시간 사고, 기도시간 사고, 말씀을 사야 합니다.
교회라는 밭을 사야 결국 보물을 얻습니다.
사도 바울이 발견한 보물이 무엇이었을까요?
빌립보서가 말하는 사도바울의 보물은 구원의 기쁨입니다.
♪구원함을 얻은 기쁨 세상에서 제일이라.
그래서 빌립보서에서 “기뻐하라”는 말씀을 후렴구처럼 반복합니다.
문학을 아는 사람은 자기 글에서 되도록 반복해서 글을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기뻐하라는 말을 반복하다가 자기변명을 합니다.
3:1입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반복하고 반복해도 좋다. 너희 귀에 못 박히도록 들어야 보물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반복 반복을 통행서 인생의 진짜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II. 보물 아닌 것을 붙들고
사도 바울은 인생을 살다보니 오랜시간동안 보물 아닌 것들을 보물인 줄 알고 그걸 붙들고 살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으로 태어나 유대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자랑이었습니다.
몸에 유대인의 표식을 가지고 살아가면 저절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고의 유대인이 되기위해 평생 몸부림하며 달려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인생의 보화를 누리며 살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자랑스런 유대인의 표식은 할례였습니다.
할례 자국만 있으면 천국 아랫목은 저절로 간다고 믿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그런 형식은 모두 빈 깡통, 빈 껍데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할례 표식이 없는 이방인은 개 같은 존재로 치부하고 개라고 불렀습니다.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은 “행악하는 자” 즉 지옥 아랫목에 갈 자들 지옥의 불쏘시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나니 이런 껍데기 신앙인인, 자신들이 복음 앞에 지옥 불쏘시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옛 번역에 손 할례당을 조심하라. 산토끼 반대말은 집토끼, 죽은 토끼 반대 말은 산토끼 끝도 없습니다. 손 할례당 반대말은 반 할례당이 아니고 손상한다는 손입니다.
개정개역에서는 자기의 몸을 상해하는 자들을 삼가라. 신체를 손상시킨 것으로 구원받았다고 믿었던 자신이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몸에 살점 한점 떼어 낸 것이 구원과 무슨 상관이있겠느냐고 묻습니다.
“개들을 삼가라” 이방인들을 개라고 불렀던 너희들이 바로 개다.
대단히 격한 어조를 쓰고 있습니다.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빌 3:2)
그동안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라고 다 이스라엘이겠느냐? 나는 베냐민 지파 가문의 사람이라고 뻐기며 살았습니다.
베냐민 지파란 말이 왜 그리 중요할까요?
야곱의 12아들 가운데 다른 11명 형들은 모두 이방 땅에서 태어나 이방 땅에서 할례를 받았습니다. 오직 베냐민만이 약속의 땅에서 태어나 약속의 땅에서 할례를 받았습니다.
베냐민 지파만이 진짜 약속의 백성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왕조로 나뉘어질 때 유대지파와 베냐민 지파만이 남쪽 유대 나라가 됩니다. 즉 말씀이 있고 성전이 있는 곳을 차지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성전이 있는 그 나라에 살았다는 말입니다.
포로시대, 베냐민 지파가 없었으면 유대민족이 살아있을 백성이 누가 있겠느냐?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베냐민 지파 사람입니다.
하만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에서 초대 왕 사울 왕이 나옵니다. 자신도 사울 왕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부모가 자신의 이름을 사울이라 지었습니다.
자신은 고난의 세월 속에서도 모국어 히브리어를 잊고 살지 않았다는 겁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 자신합니다.
헬라말이나 사용하며 히브리어를 잃어버리고 사는 헬라파 유대인과는 질이 다르다고 자부하며 살았습니다. 품성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자신은 바리새파 구별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가말리엘 외국 유학파 지성인이라는 긍지로 살았습니다.
이만하면 자신은 이 땅의 보화를 다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만나고 이것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배설물, 개똥과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을 얻고 천국을 얻는데 이런 모든 조건들은 똥과 같은 것이다. 이것 버려야 진짜 보화를 얻는다는 겁니다.
여기 매여 있는 한 보화가 무엇인지 모르고 보화를 얻는 길도 없다.
버릴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똥은 빨리 버릴수록 시원합니다.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찝찝합니다. 비싼 밥 먹었다고 천천히 버리면 냄새만 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모두 해로운 독소였던 겁니다.
해로 여겼다는 겁니다.
본문 8절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다”
빨리 버려야 보물을 발견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소중히 여겼던 것 그게 내 인생에 최우선순위가 아닌 게야. 보화일 수가 없는 게야. 보물이 뭔지, 어디서 보물을 발견하는지 이걸 알아야 영생을 얻고 천국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게야.
신앙적 뼈대가 있는 집안에 금수저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여러모로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외모도, 신앙도, 교회생활도, 심지어 품성도 군계일학입니다. 공부는 언제나 전교1등, 해외유학파, 대학에서, 대기업에서 서로 모셔갑니다.
윤리, 도덕적으로도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잘 자라더니 어린나이에 교회 안수집사가 되었습니다.
교회 목사가 눈에 차질 않습니다. 모자라 보입니다. 자신과 다른 교인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저 사람이 장로님이라고 불평거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행동은 반듯한데 늘 얼굴이 석고처럼 굳어 있고 기쁨이 없습니다.
바른 말이긴한데 언어가 부정적이고 가시가 있습니다.
이 시대에도 바리새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감사해요”라는 말 대신 자기 자랑이 늘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지요”라는 말 대신 어디 가나 나 없으면 아무것도 되는 세상인양 입만 열면 “내가, 내가”가 늘어납니다.
교인들 비판하고 한국교회 이곳저곳 비판하기 일쑤입니다. 앞장섭니다.
목사, 장로에게 맡길 일이 아니랍니다.
이것들 비판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겠다고 나섭니다. 현대파 바리새인들이 오죽이나 많습니까?
하나님도 자신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여 예수 믿는 사람이 제법 근사한 업적과 성취를 이루어야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세상에 빛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자신이 세운 성공의 목표를 이루어야 행복할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래서 그 갈증을 채우기 위해 눈이 아플 때까지 공부하고 몸이 망가질 때까지 뛰고 또 뛰어봅니다.
바울은 안질로 고생하고 건강이 나빠 고생하는 겁니다.
50이 넘어 늦은 나이까지 장가도 안가고 그 목표를 위하여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세상 경력도, 그 반듯한 신앙과 윤리 도덕 품성도 그 나이
군계일학 성공의 업적, 성취도 도무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학창시절부터 땅바닥에 침 한번 뺕어 본 적이 없습니다.
담배를 입에 댄 적은 커녕 냄새도 맡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친구모임, 사업 어디에가든지 와인 한잔 먹은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아내가 행복하지 않습니다. 입을 열면 비판, 비난, 잔소리, 온 집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자식들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 모자람이 없는데 자식조차 못마땅해서 입만 열면 자식꾸중하는 소리로 온집안에 가득찹니다.
아빠가 집에 오는 시간이면 집안이 싸늘해지기 시작합니다.
행복과 기쁨이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구원의 기쁨이 없습니다. 조울증 환자 같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의인 같기도 하고 때로는 초라한 존재로 느껴집니다.
III. 내 인생의 보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온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잃어버렸다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신앙생활은, 천국은 예수를 얻는 생명의 길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다.
보물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 구원의 기쁨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을 보세요. 출세는 했는데 양심을 잃어버렸습니다.
돈은 벌었는데 거짓으로 꽉 차 버렸습니다.
명예는 얻었는데 불의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업에 성공은 했는데 사랑은 잃어버렸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았는데 존경을 잃어버렸습니다.
자신 행동은 반듯한데 자기 가슴속에는 가시가 가득 차서 입만 열면 비판, 비난, 불평, 원망이 쏟아져나옵니다. 그 심장이 천국이 아니라 지옥인 겁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3:1 “주 안에서 기뻐함” 이것 없으면 실패한 인생입니다. 바울의 몸부림 그 결론은 “주 안에서 기뻐함”이었습니다.
그 안에 자신이 찾고 싶었던 구원이 있고 의가 있고 천국이 있고 영생이 있었던 겁니다.
사도 바울이 발견한 그 행복, 그 기쁨이라는 보물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거짓된 성취에 있지 않았습니다. 성공에 있지 않았습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내가 허물이 많고 세상 사람 앞에 모자라 보이지만 주님의 은혜의 보자기가 커서 세상에서는 모자란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덮고 나니 너는 소중한 내 자녀인 게야.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의는 이사야의 고백처럼 환자의 고름 주머니를 싸고 있는 냄새나는 천조각에 불과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전 15:9)
장년이 된 다음에는 “나는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이다”(엡 3:8) 말년에는 “나는 죄인 중에 괴수이니라”(딤전 1:15)
은혜가 깊을수록 자신에 대한 평가는 점점 혹독해 집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내 부족, 내 죄뿐입니다.
예수의 은혜 외에는, 예수님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만 자랑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은혜가 깊어진 사람의 자세입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3:1은 “끝으로”라는 말로 문을 엽니다.
내가 보화를 찾으려고 몸부림하고 애를 쓰고 또 썼는데 결론적으로 내 인생의 보물이 무엇인가를 결론적으로 알려주마! 이 뜻입니다.
1절 “주 안에서 기뻐하라”
3절 “성령으로 봉사(예배)하라” 우리말 성경은 “봉사”라고 번역했지만 원문이나 영어번역은 “예배”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 타협하지 말아라. 입만 열면 예수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라.
예수만 자랑하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 성령으로 예배하라.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해라! 이게 내 인생이 보물임을 알아야 할지라.
서울에 살던 어느 해인지? 구세군 자선냄비 오픈식에 함께 했습니다.
그날 영하 15도로 예보되어 집에 따뜻한 옷을 찾으니까 따뜻한 옷이 없습니다. 덕이동 로데오 거리로 가서 따뜻해 보이는 흰색 오리털 파카를 한 벌 샀습니다. 그걸 입고 참석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진행하는 분들이 거침없이 그 따뜻한 파카를 벗기더니 붉은색 신통찮은 파카를 입힙니다.
서 있는데 얼마나 추웠던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얼어붙고 떨립니다. 예식이 끝난 다음에 제가 품위 있게 한 시간쯤 종을 흔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5분 동안 흔드는데 온 몸이 얼었습니다. 한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몇 분 흔들고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서 양해를 구하고 몸을 녹여야겠길래 마침 앞 건물에 허름한 커피숍이 있어서 함께 들어가 커피 한잔을 마셨습니다.
그때 먹는 커피 제 혓바닥 생기고 제일 맛있었습니다. 단팥빵 하나 놓고 커피를 마셨던 그때 그 황홀경, 천국에 가면 이런 것 먹겠다. 그 생각이 들더라구요. 허름한 커피숍입니다. 혹한의 겨울 그 커피숍에 들어갔더니 온몸이 따뜻해지더라구요. 이 험한 세상 살면서 얼마나 추우십니까? 얼마나 어려운 일이 많으십니까? 내 약점 때문에 힘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에 해결하고 살아가야 할 일들이 오죽이나 많습니까?
주 안에서, 예수 안에 들어오면 따뜻합니다. 추위가 사라집니다.
온몸이 녹습니다. 평화가 넘칩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행복이 넘칩니다.
구원의 확신이 넘칩니다. 모자람은 덮여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로 자랑하고 예수로 기뻐하는 세계가 있습니다.
40여년전 교회 개척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복음의 볼모지 부산 그것도 동구를 복음의 꽃을 피우겠다는 일념으로 개척지로 선택했습니다. 가진 것이 없으니 처음엔 우리집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20평도 안되는 집에 20여명이 복잡복잡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는데 짬만 나면 새벽예배 드리고는 옥상에 올라가서 부산 앞바다와 함께 보이는 부산 전시내를 바라보고 축복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우리교회도 언젠가는 저 땅이 약속의 땅 인줄 알고 들어가야겠는데 들어가게 해 주세요.
그러던 어느날 여호수아서를 강해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주신다길래 그 말씀 아멘하고 내 말씀으로 먹었습니다. 새벽예배가 끝나면 부산 신도시 붐이 일어나는 해운대 쪽으로 가서 종교부지를 찾아 맨발로 밟고 다녔습니다. 하나님 이 땅 밟았습니다. 이 땅 주세요. 서리가 내린 싸늘한 가을 새벽이었습니다. 어느 곳엔가 자리인지 밟다가 돗자리 깔고 무릎꿇고 이 땅 주세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내 귀로 들은 것 아니지만, 하나님이 내 심장에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저
는 분명히 들었습니다. 땅 달라고 기도하다 보니 우습기도하고 초라하기도하
고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하기도 해서 크게 울었거든요. 그 떼 “땅 달라고 울지말고 예수 달라고 울어라. 성령 달라고 울어라. 능력 달라고 울어라. 복음 달라고 울어라.” 그때부터 하나님 성령주세요. 능력주세요. 사랑주세요.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150평 달라고 울었는데 100배가 더 큰 이 땅을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것만 주셨습니까? 우리 교회에 세상을 섬기는 은혜도 주셨고, 평안도 주셨고 기쁨도 주셨고 영향력도 주셨고 리더십도 주셨고 사람 주셨고 능력 주셨고 성도들 주셨고 은혜를 주셨고 구원의 기쁨을 주셨고 세상을 섬기는 능력을 주셨고 할렐루야!
그 안에 풍성과 충만과 은혜가 있습니다.
구원함을 얻은 기쁨 그게 보물이요 이것 찾는 것은 주의 몸된 교회 안에 가득 담겨져 있음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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