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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한일기본조약(韓日基本條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4조
한일청구권협정 제 2조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 4조
(a) 이 조항의 (b)의 규정에 따라, 제 2조에 열거된 지역의 일본국 및 일본 국민의 재산의 처분과, 현재 그 지역을 통치하는 당국 및 그 주민(법인을 포함)에 대한 일본국 및 일본 국민의 청구권(채무를 포함)과, 일본국에서의 이들 당국 및 그 주민의 재산, 일본과 일본 국민에 대한 당국과 그 주민의 청구권(채무를 포함)의 처분은, 일본국과 이들 당국 간 특별협정의 주제로 한다.
한국 측은 한일청구권협정을 '한일청구권협정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양국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위와 같은 주장은 2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한일청구권협정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범위에 제한되는 조약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범위를 포함하는 조약이다. 한일청구권협정은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한다는 문구가 있다. 즉, 한일청구권협정은 애초에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포함하는 거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나오는것만 다루는게 아니다. 그러니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뭐라 나와있든 한일청구권협정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제약을 받을 일은 없다.
둘째,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는 재정적 채권,채무 관계만을 다루는게 아니다. 위에 4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당국과 주민의 청구권, 즉 한국과 한국인의 청구권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재정적 채권이나 채무은 그 청구권에 포함되는 '일부'일 뿐이다. 결국 일본 측의 주장대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4조만 따져봐도 개인의 청구권은 포함된다.
한편 대한민국 대법원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4조(a)의 범위를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문언에서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첫째,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14조에는 '일본은 전쟁 중에 발생한 손해 및 고통에 대하여 연합국에 배상을 지불하여야 함을 승인한다.'고 되어있는 반면, 한국은 승전국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으므로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도 인정받지 못했다. 한일회담 당시 한국 정부가 발간한 한일회담백서에도 한국은 승전국이 향유하는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했고,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 4조가 한일간 청구권 문제의 기초이며, 제 4조에 의한 대일청구권에 배상청구권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시하였다.
둘째, 한일기본조약 체결 당일 청구권 협정 합의의사록(Ⅰ)에서는 구체적으로 청구권의 범주를 한일회담시 한국의 대일청구요강 8개 항목에 속하는 것으로 하기로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일회담 당시 한국의 대일청구요강 8개 항목은 다음과 같다.
⑴ 조선은행을 통해 반출해간 지금, 지은의 반환청구
⑵ 1945.8.9 현재 일본정부가 조선총독부에 지고 있는 채무 변제 청구
⑶ 1945.8.9 이후 한국으로부터 이체 또는 송금된 금품의 반환 요구
⑷ 1945.8.9 현재 한국에 본사, 본점 또는 주된 사무소가 있던 법인의 재일 재산의 반환청구
⑸ 한국법인 또는 한국자연인의 일본국 또는 일본국민에 대한 일본 국채, 공채, 일본 은행권,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 청구
⑹한국인(자연인, 법인)의 일본정부 또는 일본인에 대한 개별적 권리행사에 관한 항목
⑺ 전기 제재산 또는 청구권에서 발생한 법정 과실의 반환 청구
⑻전기한 제재산과 청구권의 반환 및 결재는 협정성립 후 즉시 개시하여 6개월 이내 종료할 것
보다시피 모든 항목은 민사적, 재정적 청구권을 다루고 있으며, 다만 5항에 '피징용 한국인의 기타 청구권'에 강제동원 등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이 포함될 여지는 있어 보인다.
그러나 대법원은 여기에 불법행위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8개 항목 모두 재산상 관계를 다루고 있고, 어디에도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내용이 없으므로 언급되지 않은 기타 청구권에는 불법행위에 관한 청구권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하였다.
셋째, 한일기본조약 2조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4조(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해결된 것으로 한다고 적혀있으나, 대법원은 이 또한 불법행위에 관한 청구권은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청구권 협정문이나 기타 부속 서류 어디에도 일제의 불법행위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점을 볼 때 특별히 제 4조(a)의 범주를 벗어나는 청구권을 인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4.2.3.2. 독립 축하금이다? 보상만 했다?
이것은 일본이 한국에 지급한 돈의 성격문제이다. 만약에 배상금으로서 지급되었다면, 지급이 완료된것 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청구권이 만족을 얻어서 소멸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돈 받은건 맞는데~ 그건 이 배상금이 아니었잖니~"라는 재항변이다.
우선, 해당 조약은 분명 배상의 성격을 띄고 있으나 일단 일본은 독립축하금을 한국에 외화를 지불하였는데 이에는 사정이 있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배상은 "불법 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의미하며 보상은 "불법이 아닌 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의미한다.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한일합병이 도덕적 과오임은 인정하고는 있으나 법리적으로 1910년 이후 조선인들은 일본 국민으로 분류되었기에 자국 내에서 벌어진 일로 인식하고 있다. 즉 한일합병 이후 발생한 자국민의 피해에 대한 책임만을 가질 뿐 한일합병조약 자체가 불법이었으며 식민지배까지 배상해야 한다는 주장까지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즉 일본 측은 "불법 행위가 없었으니 '배상'할건 없고 '보상'은 하겠다"는 태도였다. 전술한 것처럼 미국의 의향이 강하게 들어간 상황이라 조약을 성립해야 했지만, 배상 규모 확대, 배상금 지급 주체 등 여러 부분에서 양보를 한 일본도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박정희 또한 정권의 기반이 미약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기간산업을 일으킬 자금이 급하게 필요했고, 이미 많은 양보를 받아낸 상황에서 더 밀어붙이다간 조약 체결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으므로 독립축하금 명목으로 지급하는 것에 동의하고 조약을 체결한다.
어쨌거나 한일 양국은 각자 자국 국민들에게 설명하게 좋게끔 입맛대로 이 조약을 해석하였으나 변하지 않는 두가지 사실이 '청구권 문제의 해결'과 '일본의 자금 지원'이다.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에게 일제 시절의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을 받았다고 설명하고, 일본은 독립축하금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지급했다고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2018년 대한민국 대법원은 식민지배 행위를 불법으로 보고 배상을 하라고 판결하였고 이와 관련해서 양국 간에 논란이 재발되었다.
대법원에서 피고 일본기업은 한국이 제1한일회담에서 말한 "보상금"이 배상금을 포함한다는 주장을 했다. 문안상으로는 보상금이지만 한일 외교대표자들은 둘다 뭉뚱그려서 이해했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보상과 배상은 혼동되어 사용되는 단어다. 보상이나 배상이나 한자로 써도 그 의미가 같다. 하지만 법학에서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보상은 가해자의 합법적인 행위를 전제로 하고, 배상은 불법적인 행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법률가들도 일반인들이 두 단어를 혼용한다는 점은 잘 알고 있고, 이를 고려해서 판단을 한다. "그래, 뭐, 모를 수도 있지."하고 눈감아 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일청구권협정의 당사자들은 일반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볼 때 정부는 기본적으로 법률에 대해서 잘 알것으로 기대된다. 즉 "정부 주제에 어떻게 법도 모를 수가 있지?"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정부에서 법률과 무관한 부서도 아니고, 외교성 직원이 보상과 배상을 착각한다? 현실에서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지만, 판사는 객관성을 가져야하기 때문에 무시할 수 밖에 없다.
배상에 불법행위 손해배상은 미포함되었다?
한국 강제징용 피해자측의 주장은, 한국이 제1차 한일회담에서 요구한 금액과 비교하여 일본이 지급한 금액이 턱없이 낮으므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은 한일기본조약에 포함이 안된채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한국이 배상금을 받은건 맞을지 모르지만~ 여기에 불법행위 손해배상은 포함이 안되어 있었어~"라고 말하는 재항변이다.
한국 정부의 대일배상요구조서에서는 금융부문에서 일제의 자금 수탈 규모는 약 174억 3천만 엔이며 물자 수탈 규모는 약 93억 엔으로 추산하였다.
사실 한국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청구권 문제를 해소하였으므로 이 수치는 실질적 배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이 조약으로 한국 정부가 받은 배상이 적합하였는지를 평가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당시 박정희 정부를 비판하는 자료로는 사용할 수 있다. 이 자료를 근거로 한국의 민족주의 우파와 국내 진보 역사 학계에서는 일본의 무상 3억 달러 및 5억 달러 차관 지원이 식민지 수탈에 비해서 터무니 없는 작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통계 자체가 신뢰성을 담보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우선 통계 산정에 한국과 일본 이외의 제3국이 산정에 참여하지 않은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반대로 일제가 조선에 들여왔으며 GHQ 불하한 60억 불에 달하는 자산 규모의 경우, 연합군 각국이 참여한 GHQ에서 직접 산정한 규모임을 고려하였을 때 당연히 신빙성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일본에서도 60억 불은 터무니없이 적게 산정된 규모라 주장하지만, 애초에 이해당사자가 주장하는 주장은 편향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대내외적으로 60억 불로 보는 것인데 한국의 주장에는 이러한 제3자의 보증이 없는 상황. 또한 35년에 걸친 식민지배 피해를 산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를 고려하였을 때 갓 정부를 수립한 시기에 이를 신빙성을 담보할 수 없음을 고려하면 당연히 20세기 후반~21세기 해당 자료를 보강하는 추가 조사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민족문제연구소의 일부 조사를 제외하면 별다른 후속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후속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수탈 규모랑 상관없이 청구권 문제가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일배상요구조서는 신빙성과 별개로 그 자체로서 국민의 기본권이나 주요 통치구조 등에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다. 때문에 어디까지나 참고로 보는 편이 좋다.
4.3. 한국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했다?
한일청구권협정 제 2 조
3.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협정의 효과에 관한 문제이다.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것"의 의미가 과연 청구권의 "소멸"을 의미하는지 여부다. "한국인에게 청구권이 있었던건 맞는데~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그건 소멸했어~"하는 항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멸하지 않는다. 위 협정은 분명히 청구권에 관하여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고 적시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이 말이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것과 별 다를게 없는 것으로 읽히지만 아주 약간의 차이가 있다.
평상시에, 그러니까 일제강제징용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일본과 전범기업이 이것을 씹는 상황에서는 청구권이 "소멸"하는 것과 "주장 할 수 없는 것"은 별 차이가 없다. 어차피 현실적으로 못받는 것은 똑같으니까. 문제는 만약에 일본이나 전범기업이 갑자기 덜컥 손해배상을 해줬다가 갑자기 또 다음날 마음이 바뀌어서 돌려달라고 할 때다. 만약에 청구권이 "소멸"했다면 돈받았던 강제징용 피해자는 고스란히 돈을 다시 뱉어내야만 한다. 왜냐면 청구권의 반대말은 "부당이득"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단순히 청구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보다시피 실질적으로는 아주 쓸데없는 개념차이에 불과하다. 일본이 느닷없이 배상금을 내놓는것도 비현실적인데, 그걸 줬다가 다시 돌려달라고 한다니 차라리 벼락 두번 맞을 확률이 더 높을것이다.
하지만, 이후에 문제가 되는데, 만약에 청구권이 소멸한다고 한다면, 국가가 조약을 통해서 국민의 청구권을 멋대로 소멸시켜버렸다는 것이 된다. 때문에 그로인해서 국민이 받은 피해에 대해서 국가가 보상해야하는 책임이 발생한다. 즉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을 대신해서 한국 정부가 보상금을 줘야한다.
다행히도 쟁점은 현실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지않다. 왜냐면 이것을 주장해야할 일본이 주장 한적이 없으니까. 일본은 처음부터 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이 아닌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만약에 일본정부의 누군가가 청구권이 주장못하는게 아닌 청구권 소멸이라는 주장을 했다면 그건 말한 사람이 법알못이든가 크게 말실수한 거다. 왜냐면 청구권이 소멸된다고 위 조약을 해석해버리면 당장 일본정부가 매우 곤란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이렇게 청구권 소멸 주장을 못하는 이유는 소권관련 쟁점에서 후술한다.
2018년 한국 대법원에서 강제 징용공들이 개인 청구권이 남아있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설명회를 열어 국제법위반이라며 일본 기업들이 보상 혹은 배상을 하지 말 것을 요구했으며, 외무상은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이며 “폭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게다가 강제 노동 자체를 부정하며 징용공이라는 표현 대신 ‘조선반도(한반도) 출신 노동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이들은 강제 노동이 아닌 자원해서 노동하러 왔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말했다. 국내의 국제법 전문가 사이에서도 외교로 개인 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입장과 국제법상 외교적 해결이 개인의 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 갈린다. 당연히 일본에서도 입장이 다르다. 이에 대해 후자의 입장을 가진 일본인 변호사 100명은 일본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문제의 본질을 흔들고 있다고 성명을 냈다. 기사에서 인터뷰한 변호사 한 명에 따르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일본이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일본 정부는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으나 외국인 피해자는 이를 행사할 권리(외교적 보호권)을 잃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 나온 일본인 변호사에 따르면 “최근 국제인권법 흐름은 우선 국내 재판소에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보장 받지 못했을 경우에는 국제인권재판소 등을 통해서 구제받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2018년 11월 14일 고노 다로 외무상은 일본 외무위에서 공식적으로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발언하였다. 하지만 한일기본권협정은 한국정부가 개인에게 보상하기로 약속한 협정이며, 한국정부가 보상하라고 요구했다.
4.4. 한국 개인의 소권은 소멸했다?
그렇다면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문제된다. 이 부분은 의외로 큰 쟁점이 되었는데 가능한 해석은 크게 2가지이다.
첫째는 "소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소권이란 자신의 청구권을 가지고 법원에다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피해자는 자신의 청구권을 가지고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해서 승소하면, 그 판결문을 가지고 강제집행을 통해서 가해자에게서 돈받는다. 즉 소권이 없다는 것은 바로 이 소송을 제기 못한다는 뜻이다. 만약에 소를 제기한다고 신청해도 법원에서 각하해버린다.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니 변론도 없고, 판결도 없으며, 강제집행도 당연히 없고, 돈도 받을 수 없다. 일반인이 가장 먼저 떠올릴 만한 해석이다. 법률가들도 별반 다를바 없어서 강제징용 판결에서 대한민국 대법관 13명중 10명이 택했다.
둘째는 "외교적 보호권 한정 포기"하다는 해석이다. 국제법상 개념으로 좀 복잡한 말인데, 피해자의 나라가 가해자 나라의 정부를 상대로 피해자를 대신해서 소송을 걸거나, 외교적 수단을 동원한다던가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피해자가 혼자 알아서 가해자 나라에다가 소송걸고 하는 것은 막지 않는다. 언뜻 조약의 문언과 맞지 않는 이상한 해석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유력한 해석 방법인 이유는 바로 일본정부가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일본은 왜 "외교적 보호권 한정 포기"라는 국제법이론을 끌어다쓰는 독특한 해석을 고집해 왔던 것일까? 상식적으로 일본에게 불리해 보이는 해석이다. 청구권을 행사 못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당연히 아예 청구권을 없애버리는게 더 확실한 방법이고, 외교적 보호권 한정 주장 못한다는 것보다는 모든 주장을 못한다고 하는것이 가해자로써 잠재적으로 돈 뜯길 입장에서는 유리하다.
이것은 매우 의외인 부분인데, 다름아니라 일본에게 한일기본조약은 한국의 손해배상 요구를 봉쇄하는 요구뿐만아니라 자국민, 그러니까 이와 관련해서 일본인이 일본정부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것을 봉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쟁 동안 일본 밖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연합국에 의해서 그 재산을 빼았겼다. 손해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전후에 일본정부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한일기본조약 등을 체결시켰다. 그러고서는 자국민에게 "일본정부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 그러니까 너희 그 청구권가지고 당사자인 대한민국 정부에다가 요구해봐라. 아 그런데 한일기본조약 때문에 이것도 일본정부가 안타깝게도 도와줄 수는 없을거야 ㅇㅇ" 이라고 해버린것.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해석하는 것도 만약에 청구권이 소멸 된다고 해석해 버린다면, 조약을 통해서 자국민의 권리를 없애버린 일본정부에 인과관계상 당연히 책임이 발생하고, 일본정부가 대신해서 보상해야하기 때문이다. 즉 일본정부는 한국인 일제 피해자 뿐만 아니라 자국민 전쟁피해자도 무시해왔다는 것. 어찌보면 더욱 섬뜩한 부분이다.
4.5. 포괄적 권리처분의 문제
저 위에서와 같이 청구권의 소멸여부는 현실적으로 매우 쓸데없는 쟁점이지만, 이로말미암아 법적으로는 꽤나 중요한 쟁점이 된다. 왜냐면 국가간의 조약 따위가 감히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멋대로 없애버릴 수 있느냐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가능은 한데, 매우 까다롭다.
법적으로 볼 때 국가는 국민이 자신의 생명, 재산등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만든것이다. 그런데 국민을 지키라고 만들어놨더니 국가가 멋대로 국민의 기본권리를 처분한다면 이건 심각한 모순이다. 같은 이유로 법률가들은 대체로 사형제를 반대한다.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게 있을 리가 없는데, 국민이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국가에 바치면서까지 국가를 만든다는것은 논리적으로 좀 이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가 보기에 정말 어쩔 수 없이 국민의 더 큰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국민의 권리를 처분해야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이런것까지 못하게 막으면 결과적으로 국민에 더 큰 피해가 발생하는 문제가 생긴다.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에만 아주 까다로운 조건하에 제한을 두고 가능하다.
그 조건이란 법률의 형태(조약 포함)로써 일반성, 명확성, 구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명확성이란 법률적으로 정확한 용어를 쓰는 것이고, 구체성은 제한하려는 국민의 권리의 범위를 특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한일청구권협정의 그 모호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명확성, 구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앞뒤없이 그냥 "모든 청구권"을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문언은 무슨 권리를 얼마나 제한한다는 것인지 전혀 제약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포괄적인 권리 처분"은 지구상 그 어느나라의 법률체계도 용인하지 않는다. 심지어 히틀러의 나치 독일도 저렇게 법을 만든 적은 없다. 18세기 절대왕권시대에나 있었을 법한 조문이다. 다시 다른 조약을 비교해 보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14조(b)
...연합국은 모든 보상청구, 연합국과 그 국민의 배상청구 및 군의 점령비용에 관한 청구를 모두 포기한다.
독일-이탈리아 평화 조약 제77조
4 ... 이 포기는 전쟁 중에 체결된 협정에 관한 금전 채권, 정부 간의 일체의 청구권 및 전쟁 중에 생긴 손실 또는 손해에 대한 일체의 청구권을 포함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한일청구권협정은 이부분이 분명 매우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법원은 당연히 최대한 엄격하고, 범위를 좁혀서 해석을 할 수 밖에 없다. 법원은 그 누구보다도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법관 13명중 3명도 위와 같은 이유로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청구를 인용했다. 심지어 이 3명은 일본이 주장하는 내용 그대로 조약을 해석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청구를 인용한 것이다.
판시에서 대법관들은 비록 한일청구권 협정이 일괄처리협정(lump sum agreements)으로 보이기는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협정을 통해 국가가 개인의 청구권까지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다고 보려면, 적어도 해당 조약에 이에 관한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고 보아야 한다고 봤다. 권리의 ‘포기’를 인정하려면 그 권리자의 의사를 엄격히 해석하여야 한다는 법률행위 해석의 일반원칙에 의 할 때, 개인의 권리를 국가가 나서서 대신 포기하려는 경우에는 이를 더욱 엄격하게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본 쟁점은 다른 쟁점을 모두 씹어먹을 만큼 법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이 부분이 워낙 치명적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볼때는 한일청구권협정이 일본측 주장대로 받아들여지기는 매우 어렵다.
딱하나 방법이 있기는 한데, 일본이 조선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면 가능성이 있긴하다. 다만 다해봐야 고작 수백억이나 될법한 정신적손해배상이 아까워서 일본 내각이 그런 결정을 할리가 만무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불가능이나 다름없다 할것이다.
4.6. 협정은 무효다?
한일청구권협정이 있었던 것은 맞으나, 치명적인 무효사유가 있기 때문에 무효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비유하자면 사채업자가 빚 깊지 못하면 노예로 팔아버리겠다고 각서쓰게한 경우가 그렇다. 노예제가 현행법상 불법이기 때문에 그런 내용의 각서도 무효가 된다.
이는 두가지 상황이 있는데, 하나는 국제법에 위반하여 무효인 경우이고, 또 하나는 한국 헌법에 위배되어 무효인 경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다 쉽지 않다.
한국 강제징용피해자 측이 예비항변으로 주장했지만, 여기까지 가기도 전에 대법원에서 청구인용을 했기 때문에 다행히 판단이 된적은 없다. 만약에 한국측이 여기까지 밀렸으면 아마 패소했을 공산이 크다.
한일기본조약 관련해서 한국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는 근래에 헌법재판소에 사건이 하나올라온적이 있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장기간 사건을 계류시키다가 그냥 각하시켜버렸다. 한일기본조약의 위헌여부가 당시 올라온 사건과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 였는데, 사실 좀 구차한 핑계였다. 헌재가 엄밀히 말하면 관련성 없는데도 끌구와서 판단내린 전례가 워낙 풍부하기 때문이다.
헌재도 국민의 칭찬받기 좋아하는 기관이다. 게다가 대법원과 영역싸움을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딱 헌재가 맡을 사건이 아니어도 "국민의 권리와 관련있다"는 논리로 별의별 사건을 다 게걸스레 받아서 판단내려왔다. 그런데 뜬금없이 관련성이 없다고 각하했다는건 아마도 판사들이 국민들에게 칭찬 받을 결론을 낼 법리도출에 실패한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즉 한일기본조약은 위헌이 아닐가능성이 높다.
국제법상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가해국을 면책하는 조약은 원칙적으로 무효라는 주장도 있으나 간단하게 논파된다.
• 1. 한일청구권협정 같은 조약은 전 세계에 널리고 널렸다. 아래 독일의 전후 배상 관련해서도 나오지만 독일도 중대한 인권침해 범죄를 국가간 협정으로 해결했다. 오늘날 이렇게 논란이 생긴건 박정희 정권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받은 돈을 피해자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지, 한일청구권협정 자체는 흔한 조약중 하나다. 이걸 무효라고 하는건 세계적으로 굳혀진 2차대전 전후 배상 체제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 2. 한일청구권협정은 가해국을 면책 하는 협정이 아니라 가해국이 책임을 진 협정이라고 봐야한다. 독일의 전후 배상 조약이 독일의 죄를 면죄한게 아니라, 독일이 죄에 대해 책임을 졌다고 평가하는 것처럼 일본 역시도 한일협정을 통해 한일 양국 사이의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진 것이지 한일협정이 죄를 면책하는 협정이라고 하는 건 곤란하다.
• 3. 강행규범의 범위와 강행규범으로 조약이 무효가 되는 경우에 대해선 학계에서도 여러가지로 의견이 갈린다. 애시당초 이런 식의 청구권 협정이 강행규범으로 무효화된 사례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일협정이 강행규범에 위반되고, 따라서 무효라고 하는건 설득력 없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정부 역시 한일청구권협정이 무효라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종합하면 차라리 협정에 대해 다른 해석을 시도하는거라면 모를까, 협정 자체를 무효라고 하는건 무리수다.
5. 한일 양국 정부간의 입장 비교
한국과 일본은 이 문제에 관해서 각기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 왔다.
일본의 경우 태평양 전쟁이후 부담하게 된 의무와 법률적 문제의 대상이 타국의 국가, 기관, 단체, 개인 등 이기 때문에 국제법과 국제분쟁과 관련된 사례와 이론을 적극 활용하는 반면, 한국의 경우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의 내부적 해석과 국내 이슈로 접근하였다.
따라서 이 문단은, 한국과 일본 정부간의 전체 대립구도가 아니라,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에 양국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를 비교해보는 문단이다.
5.1. 일본 정부의 입장
일본은 이 문제에 있어 법적으로 다소 복잡한 입장을 선택해 왔는데, "일제의 합법적인 한반도 지배" 주장과 "개인 청구권 존속" 주장, "외교보호권 포기" 주장이 그것이다.
이는 "한국 개인의 소권은 소멸했다?"에서 살펴봤듯 일본정부가 처한 환경에서 비롯되었다. 즉, 일본 정부를 향해서 한국인 또는 일본인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법적으로 막기 위한 것이다. 일본이 염두에 둔 것은 다음 4가지 상황으로 보인다.
1. 한국인이 일본법원을 통해 일본 정부에 청구: 한일기본조약에 의해 한국정부에 지급된 금액에 포함 되었으므로 채권적 청구권은 소멸했고, 일제의 지배는 합법적이었으므로 불법행위 책임은 없다.
2. 재일 한국인이 일본법원을 통해 일본인에 청구: 한일기본조약 외에 추가적으로 일본법 제144호에 의해서 일본 내 한국인의 모든 채권채무는 소멸했다. 제144호는 그 범위가 한일청구권협정과 중복된다는 점 때문에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측에서 그 목적이 의심된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일본인을 두텁게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볼 수도 있다.
3. 한국인이 한국법원을 통해 일본의 관련 기업에 청구: 한일기본조약 이외에도 법률 제 7호와 40호에 의해 일제시대 기업들은 모두 파산하고 같은 이름의 다른 법인 설립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전 기업과의 동일성을 부정한다.
4. 일본인이 전쟁 중 연합국에게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을 일본정부에 청구: 강화조약은 일본의 외교적 보호권 포기에 불과하므로 일본인의 연합국에 대한 청구권은 존속하고, 일본정부는 가해주체가 아니라서 당사자가 아니므로 책임도 없다.
1번과 2번 상황에 대한 대응(일본법 제144호)을 볼때 보더라도 일본은 한일기본조약 체결당시인 65년에 이미 계획이 완성형으로 있었고, 이를 유지해온것으로 보인다.
다만 마지막 4번 상황은 65년에는 생각을 못했는지 90년대 초에 일본계 캐나다인이 일본정부에게 배상청구를 하면서 부랴부랴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 확인된 것이 있다면 추가바람.
이러한 상황별 접근법은 매우 유효해서 오랜 기간 효과적으로 일본 정부에 대한 배상청구를 차단해왔다.
5.2. 한국 정부의 입장
한국 정부의 입장은 2005년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한일회담문서가 일부 공개되면서, 정부의 입장 발표와 후속대책을 마련하면서 확립되었다.
2005년 이전의 한국 외교부는 외교에 관한 내용이라는 이유로 한일청구권협정에 관한 입장표명을 거부했었다. 따라서 이전의 한국정부의 입장은 공식적으로 없으며, 한국 정부가 입장을 내지 않음에 따라 정치계, 시민단체, 그리고 각 개인들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있었다.
흔히 오해하는 것으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일본 정부와의 대결구도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한국의 정치계나, 사법부, 시민단체, 개인의 의견을 한국 정부의 입장으로 오해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2005년 이후 한국 정부의 입장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하여 일본의 배상문제는 종결되었다는 입장이었고, 정부차원에서 한일청구권협정 이슈는 어디까지나 한국 사회 내부적인 일로, 협정에 따른 일본의 자금이 당시 독재 정권의 의도하에 실제 피해자 개인에게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식민지배에 따른 한국인(조선인)의 피해 회복을 위해 한국 정부나 기업들이 어떻게 보상해 줄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 시기,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간 재정적, 민사적 채권 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와 군대 등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으며, 사할린 동포 문제와 원폭피해자 문제도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라는 취지의 공식의견을 내부적으로 내었지만 일본 정부와의 마찰은 없었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본격적인 대립구도를 가지게 된 시점은 한국의 사법부 판결이 나옴에 따라 일본 기업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이다.
하지만 2018.10.30에 일제 강제징용피해자들의 청구가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서, 한국 사법판결의 물리력이 일본의 기업을 향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정부가 대립 구도를 형성하게 되는데, 오해하지 말아야 할것은 한국 정부는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 하겠다고 표명했으나, 한일기본조약이나 한일청구권협정에 관한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한국 외교부가 일본 정부에 양국 기업이 공동 자금을 마련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보아,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해석이사법부의 해석과 완전히 동일하지 않음은 추정가능하다. 사법부의 표면적인 판결은 국내 기업이 자금을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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