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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김봉두 2
씬 51. 동산.
염소 떼를 보고 스케치를 하고 있는 아이들. 염소가 풀을 뜯기 위해 자꾸 왔다 갔다 하자 그림 그리는데 애를 먹는다. 보다 못한 소석이 벌떡 일어나더니 염소 한 마리를 와락 부둥켜안는다. 잘했다 4번" 하며 박수를 치는 아이들. 아이들의 칭찬에 V 자를 해 보이며 웃는 소석. 그러나 염소가 계속 몸을 뒤척이며 발악을 하자 안 되겠다 싶은지 아이들이 모조리 달라붙는다.
씬 52. 교실.
칠판에 ㄱ,ㄴ,ㄷ,ㄹ,…….…….ㅏ, ㅑ, ㅓ, ㅕ 등을 써 놓고 최 노인을 가리키는 봉두. 열심히 따라 읽는 최 노인. 아라비아 숫자 1 2 3 4……. 등등. 숫자들을 떠듬떠듬 읽어보던 최 노인, 히죽 웃는다. 봉두, 의아해 쳐다보면…….
최 노인: 그럼 난 6번이지?
봉두: …….
씬 53. 동산.
염소 한 마리의 손발을 새끼줄로 꽁꽁 묶어놓고 평화롭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1학년인 성만이 맨 앞에서 알짱거리며 그림을 그리자.
애순: (성질을 내며) 야 넌 저쪽에 가서 그려.
입을 삐죽이며 자리를 옮기는 성만. 막내인 성만이만 애들에게 떠밀려 다른 쪽에서 그림을 그린다.
씬 54. 본교.
최 선생과 마주 앉아 얘길 하고 있는 봉두.
최 선생: 선생님 요즘 좋은 일 하신다면서요?
봉두: 무슨 좋은 일요?
최 선생: 급식도 하고 가정방문도 하고 글 모르시는 할아버지 글도 가르쳐 주시고. 벌써 소문 다 났어요.
봉두: 에이. 그거 뭐. 당연한 일 아닙니까?
최 선생: 그래서 교장 선생님이 김 선생님 추천 하셨어요.
봉두: 뭘 추천해요?
최 선생: 이번에 군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최우수 선생님에 김 선생님을 추천했어요. 아마 좋은 결과 있을 것 같아요.
봉두: 아 예에.
살다 살다 별일이네 하는 표정으로 머릴 긁적이는데 교장이 들어온다.
교장: 어이구. 이거 오셨군요.
일어나 인사를 하는 봉두.
교장: 그나저나 김 선생 좋겠습니다?
봉두: 아 예. 얘기 들었습니다.
교장: (앉으며) 내 지금 군 교육청에 다녀오는 길인데 김 선생님 학교가 올해까지만 운영되고 내년에 폐교될 계획이었는데 당분간 백지화 됐어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봉두.
봉두: 에. 왜요?
교장: 마을 사람들이 탄원서를 냈어요. 워낙 오지라 합병되면 애들 통학도 힘들고 그래서 꾸준히 탄원서를 냈었는데도 정부 방침이 어쩔 수 없다보니 포기했었는데 김선생님 같은 훌륭한 분이 학교에 오셔서 너무 좋은 일만 하신다고…….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투쟁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대단한 일 하신 겁니다 김선생님.
봉두: …….
칭찬해 주는 교장과 존경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최 선생을 보며 눈이 풀리는 봉두. 얼굴에 경련이 일고 호흡이 천천히 가빠지더니 급기야 컥컥대며 실신하기 일보직전이다.
씬 55. 군 교육청.
표창장을 받는 봉두. 겉으론 웃지만 착잡한 심정이다.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 틈에 교장과 최 선생도 보인다.
씬 56. 읍내 단란주점.
조악한 조명과 인테리어로 장식한 단란주점. 교육청 간부들과 지역유지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다. 표창장을 줄 때와는 달리 은근히 봉두를 꼬시는 듯 한 교육청 간부.
간부: (봉두에게 술을 따라주며) 사실은 애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폐교돼야 더 좋은데 시골 사람들이 그걸 몰라요.
봉두: (눈이 풀려 멍하니) 그러게요…….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달리 술만 연거푸 마시는 봉두.
씬 57. 읍내 공중전화박스.
기운이 쭉 빠진 눈으로 전화를 하고 있는 봉두.
봉두: (퉁명스레) 아부지, 몸은 좀 어때요?
소리: (봉두부) 응? 늘. 그저 그렇지 뭐. (하며 기침을 한다.)
봉두: 더 안 좋아요?
소리: (봉두부) 아니다. 내 걱정은 말구. 그나저나, 언제 한번 안 오냐? 바쁘지?
봉두: (짜증스레) 이번 주 내로 한번 올라갈게요.
소리: (봉두부) 아냐. 안 와도 된다. 나보단 학생들이 더 중요하지……. 오지 마라.
봉두: (괜히 신경질을 내며) 뭘 오지 마요? 뭘……. 안가면 뭐 누구 하나 있어요. 남들처럼 엄마가 있어요. 그렇다구 친척이 있어요? 예?
소리: (봉두부) 그래, 알았다 . 어여 들어가라……. 전화비 많이 나온다.
하며 연신 기침을 해대는 소리가 들린다. 착잡한 심정으로 전화를 끊는 봉두.
씬 58. 몽타주.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봉두, 몰골이 많이 초췌해졌다.
푸르던 교정도 어느새 붉게 물들고 있다.
숙소에서 밤에 혼자 고스톱을 치는 봉두. 세 패로 나눠놓고 자리를 옮겨가며 혼자 치고 혼자 싸고 혼자 먹으며 너무 좋아하는 봉두.
봉두: (한 게임 흉내를 내며) 뻑인걸~……. 아~싸~……. 감사합니다~~.
아이들을 가리키는 봉두의 모습들.
최 노인, 이젠 자기 이름을 삐뚤삐뚤 쓴다.
동네 사람들의 천렵에 낀 봉두, 경치 좋은 풍경을 바라보며 나른해지는 봉두.
온 동네 사람들의 잔치로 펼쳐지는 가을 운동회의 모습들.
달력에 빽빽이 그어져 있는 엑스자.
운동장에서 슬쩍 비석치기를 해보는 봉두.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봉두, 몰골이 더더욱 초췌해진 모습이다.
씬 59. 교실 안.
고학년들은 자습이고 저학년(성만, 최 노인)을 상대로 받아쓰기를 시키는 봉두. 처음 분교에 왔을 때와는 다르게 추레한 모습이다. 진땀을 뻘뻘 흘리며 받아쓰기를 하는 최 노인, 슬쩍 성만이 쓰는 것을 훔쳐보기도 한다.
봉두: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 (반복) 하늘에 떠가는 저 흰 구름…….
최 노인: (고개를 삐죽 들며) 선생. 저 짜도 쓰까?
봉두: (무덤덤히) 그러세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봉두. 자신의 처지를 거의 달관한 표정이다. 그런 봉두의 시야로 교문을 들어서는 경운기가 보인다. 멍하니 있다 차츰차츰 동그래지는 봉두의 눈동자. 보면, 단골 룸살롱 파트너인 선영이 아슬아슬한 옷차림으로 춘식의 경운기에 타고 운동장을 들어오는 게 보인다.
봉두: (깜짝 놀라며) 어? 쟤. 선영이 아냐?
하며, 귀신에 홀린 듯 잽싸게 밖으로 나가는 봉두. 아이들, 무슨 일인가 하고 발돋움하며 창밖을 쳐다보는데……. 힘겹게 받아쓰기를 하던 최 노인, 공책에 제 선영이 안야 라고 받아쓴다.
씬 60. 운동장.
밖으로 나와서는……. 믿기지 않는 듯 멍하니 선영을 바라보는 봉두. 선영, 봉두를 발견하곤……. 비명에 가까운 환호를 지르며 팔짝팔짝 뛴다.
선영: 어머, 오빠빠빠~~! 웬일이니, 웬일이니. 정말, 여기 있었네에?
봉두, 화려한 복장의 선영을 보고, 반가움에 눈물까지 글썽인다.
봉두: 선영아…….
봉두의 품에 달려들어 안기는 선영. 얼마만인지 모를 여자 냄새에 정신이 몽롱해지는 봉두. 한심하게 보며 경운기를 돌려 나가는 춘식. 아이들, 그런 둘을 창을 통해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남진: (바보같이 웃으며) 히히. 또 자습이다.
씬 61. 숙소/밤.
불이 꺼지는 숙소가 누군가의 시야로 보이고……. 달빛을 받으며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봉두와 선영. 선영에게 달라붙어 더듬거리기 시작하는 봉두. 슬며시 봉두의 손을 뿌리치는 선영.
선영: 오빠. 이런 얘기해서 미안한데. 사실 나 외상값 받으러 왔어.
봉두: (어이가 없는지) 야. 너 지금 내 꼬라질 보고두 그런 소리가 나오냐?
선영: 좀 그런 건 알겠는데……. 오빠가 안 갚으면 내 월급에서 깐단말야.
봉두: 얼만데?
선영: 오백 좀 넘는데 오백만 줘.
봉두: 알았어. 내일 읍내 나가서 빼줄게.
짜증 섞인 한숨을 쉬며 돌아눕는 봉두. 슬며시 봉두를 보던 선영, 미안한지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손을 봉두의 아랫도리로 가져간다.
선영: 옵빠~~자?
봉두: 됐다. 손 치워라.
선영: 왜 그래~~삐졌어? 옛날엔 세 번두 넘게 했잖아앙~~
봉두: (한숨만 쉰다.)
선영: (놀리듯) 안 서서 그러는 거지? 하도 안 쓰니까 고장 났지?
봉두: 소설 쓰고 자빠졌네…….
선영: 칫, 그럼 왜 아까부터 자꾸 한숨을 쉬냐?
봉두: 고민이 있어서 그래……. 입닥치구 잠이나 자.
선영: (고개를 바짝 쳐들고) 고민? 무슨 고민? 말해봐 말해봐 말해봐.
봉두: 니가 얘기하면 아냐 이년아?
선영: (도로 누우며) 알았어. 혼자 고민 많이 하셔~~.
한참동안 잠이라도 자는 듯, 정적이 흐르는 두 사람.
봉두: 야, 자냐?
선영: (코맹맹이 소리로) 아니~~오빠.
하며 봉두에게 요염한 포즈로 안기는 선영. 뿌리치는 봉두.
봉두: 까불지 말구…….너 말야, 니가 만약에 이 학교에 선생으로 왔다면.
선영: 선생? 내가? 고등학교 중퇸데?
봉두: 아니 예를 들자면……. 선생으로 왔어. 근데 이런저런 엿 같은 사정 때문에 이 학교가 폐교 될 때까진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거야 응? 그럼. 너 같으면 어떡하겠냐?
선영: 어떡하긴……. 그냥 선생 안 하면 되지?
봉두: 아니. 그게 아니라 어떡하면 이 학교가 빨리 없어지겠냐구?
선영: 불을 질러버려.
봉두: 그럴 줄 알았다. 니 대가리가 그럼 그렇지…….
선영: 아니면……. 폭탄을 설치하는 건 어때?
봉두: 자빠져 잠이나 자라.
선영: 칫, 자는 사람 깨운 게 누군데 웃겨 증말?
하더니 휙 돌아눕는 선영. 봉두도 잠이 오는지 돌아눕는다. 또 다시 정적이 흐르는 방안.
선영: (혼잣말로 궁시렁거린다.) 학교를 없애면 폐교가 되나? 애들이 없어야 폐교 되는 거 아닌가?
그 순간, 뜻 없이 중얼거린 선영의 말에 시체가 일어나듯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봉두. 왜 여태 그걸 몰랐을까? 하는 표정이다. 선영을 보더니 서서히 다가간다.
선영: (과장되게 이불을 여미며) 어머~~ 오빠, 이러지마……. 싫어~
봉두: (뚫어지게 바라보다 씨익 쪼개며) 기. 특. 한. 새. 끼.
선영: ?
와락 선영을 껴안는 봉두.
씬 62. 숙소 밖.
창가에 쭈그려 앉아 귀를 기울이는 그림자, 춘식이다. 춘식, 못마땅한 얼굴로 귀를 기울이다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씬 63. 교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에게 엄숙하게 지시하는 봉두.
봉두: 오늘 가정방문을 해서, 부모님들과 면담을 할 계획이다…….각자 뛰어가서, 부모님들에게 알리도록. 이상.
하며 힘차게 교과서를 팡 덮는 봉두. 괜히 긴장하는 최 노인.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표정이 어두워지는 소석.
씬 64. 애순의 집/밤.
호들갑스럽게 봉두를 방으로 맞이하는 애순의 부모. 애순모, 직접 재배한 과일을 쟁반 가득 들고 들어온다.
-시간경과-
봉두의 진지한 얼굴이 화면 가득 잡힌다.
봉두: (비통한 표정) 가리키는 선생으로서 참……. 애순이의 재능이 아까울 뿐입니다.
봉두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꼴깍 삼키는 애순의 부모.
봉두: 전교생이 한 교실에서 수업하다보니. 애순이 실력에 맞춰 진도를 뺄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체계적인 학습이 필요한데 말이죠……. 흠……. 더 늦기 전에 지도만 잘해주면 애순인 천재 끼가 있어서 뭐가 돼도 아주 크게 될 앤데…….
애순부: (걱정스럽게) 그럼……. 무슨 방법이…….
애순부의 물음에 회심의 미소를 짓는 봉두.
봉두: 도시 학교들에선 영재발굴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아주 잘 갖춰져 있습니다. 뭐, 아까운 제자를 잃어 서운한 일이긴 하지만……. 애순이의 미래를 위해서…….
애순부모: ?
봉두: 도시로 보내십시오!
씬 65. 남옥, 남진의 집.
놀란 눈으로 화면을 향해 고개를 갸웃하는 남옥부.
남옥부: 도시요?
봉두: (고개를 끄덕이며) 네. 어차피 남옥인 내년에 졸업 아닙니까? 서울에 삼촌도 계시는데 이 기회에 미리 서울로 전학 보내서……. 도시에 적응도 시키고 서울 중학교 실력에 맞추려면 미리 학원도 보내고 그래야 되잖습니까?
남옥모: 선생님 말씀이 맞는 말씀이긴 한데…….
봉두: (강하게) 어머님! 중학교 3년 동안의 성적은 6학년 여름겨울 방학들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렸어요, (남옥부를 보며) 아버님!
씬 66. 성만의 집.
걱정스런 얼굴로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는 성만의 부모.
성만부: 그런데……. 학원비 그것두 만만치 않을 텐데…….
봉두, 가방에서 성만이 그린 염소 그림을 꺼내 쓱 내민다. 이어서 다른 아이들 그림을 꺼내 비교하며…….
봉두: 이걸 보십시오. 이렇게 공간감각과 창의력이 뛰어난 앤 첨봅니다……. 성만인 제 말만 믿고 미대에 보내십시오.
어쩔 수 없이 쫓겨나 다른 각도에서 홀로 그린 성만의 그림이다.
성만모: (좋지만) 에구. 이제 겨우 1학년 꼬만데요 뭘.
봉두: 그건 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재능은 어렸을 때 90프로 이상 길러집니다. 조기교육이란 말도 바로 예체능 분야에서 젤 먼저 나온 말입니다. (표정이 굳어지며) 지금, 성만이 재능을 썩혀두면…….
성만부모: ?
봉두: 성만인 두고두고 평생 부모님을 원망할지도 모릅니다.
잠시 말없이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성만의 부모.
성만부: 아무래도……. 좀.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봉두: (일어나며)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성만모: (따라 나오며) 어쨌든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봉두: (씨익 웃으며 그림을 다시 가리킨다.) 어후……. 저거. 어후.
하며 과장되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봉두.
씬 67. 소석의 집.
봉두, 집 앞에 들어서는데 쭈빗대는 소석.
봉두: (머릴 쓰다듬으며) 왜 ? 엄마 안 계시냐?
소석: 아뇨.
봉두: 그럼?
소석: 저……. 선생님. 다음에 오시면 안돼요?
봉두: 오우. 무슨 소리야 다음이라니? 우리 소석이 장래에 관한 상의를 하러 온 건데.
소석: 아파요. 엄마.
봉두: 으응? 그래? 그럼 더 잘됐네……. 선생님이 병문안 온 셈이잖아. 들어가자.
소석: (가로막으며) 그게 아니라……. 암튼 안돼요.
봉두: 원. 녀석하곤……. (큰소리로) 어머님! 소석이 어머님!
하는데 문이 열리며 나오는 소석모. 헝클어진 머리에 눈을 치켜뜨고 헛소리를 해댄다.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 고개를 떨구는 소석. 당황하는 봉두에게 달려드는 소석모.
소석모: 아이구. 당신이래요? 왜 이제 왔드래요. (하다 갑자기) 이런 썅노무새끼……. 니가 날 버리구 가면 잘 살줄 알아? 이 개눔의 새끼야……. (하다 또 갑자기 울며)……. 잘못했드래요……. 내가 잘못했드래요…….
하며 횡설수설하는 소석모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봉두. 고개를 떨구고 있던 소석, 창피함인지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인지 눈물을 흘리며 갑자기 집을 뛰쳐나간다. 당황한 봉두, 소석모의 손길을 뿌리치고 소석을 쫒아 뛰어간다.
씬 68. 개울가/밤.
흘러가는 물소리와 풀벌레 소리만이 나는 개울가. 봉두와 소석이 나란히 앉아 있다.
봉두: 음……. (아주 상냥하게 위로하듯) 소석이 선생님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니?
소석: (고개를 끄덕인다.) 네.
봉두: 개울가에서 물수제비 만들 때 말이야.
소석: 네 기억나요.
봉두: 그때 선생님은 다 봤어요. 보고도 못 본 척 한 것뿐이에요.
소석: …….
봉두: 너 혹시 김병현이 아니? 미국 프로야구 선수. 올스타 두 번. 응?
소석: 네.
봉두: 걔 별명이 핵잠수함이잖니. 언더스로우…….
소석: ?
봉두: 사실 이런 얘긴 안하려고 했는데 그 김병현이가 내 아주 친한 친구의 동생이야. 아무도 모르는 거지만 병현이 어릴 때 별명이 뭔 줄 아니?
소석: 아뇨.
봉두: 바로 물수제비였어. 물수제비. 어찌나 물수제비를 잘 던지던지……. 한번은 강가에서 물수제비를 만들었는데 날아가던 새가 진짜 수제빈줄 알고 먹을라구 달려들다 그 돌에 맞아 죽은 일이 있었지. 그렇게 새 잡던 애가 지금은 양키 놈들을 삼진으로 잡을 줄 누가 알았겠니?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너무도 진지하게 해대는 봉두.
봉두: 선생님은 그래서 그 날을 잊을 수 없단다. 소석이가……. 키햐. 언더스로로 돌을 던져서 멋지게 물수제비를 만드는 폼이……. 어릴 때 병현이하고 너무도 똑같앴어요. (진지하게) 소석아?
소석: 네?
봉두: 넌 무조건 야구선수가 돼라.
소석: 야구선수요?
봉두: 그래 야구선수. 훌륭한 선수가 돼서 돈 많이 벌어 갖고 엄마 병원에도 보내 드리고 집 나가신 아빠도 찾아야 되지 않겠니?
하지만 고개를 떨어뜨리는 소석. 봉두, 기묘하게 위하는 척 하며 소석을 꼬신다.
봉두: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소석: …….
봉두: 야구부가 있는 도시로 하루라도 빨리 전학을 가야지. 친척은 있을 거 아냐?
소석: (가로저으며) 없어요.
순간, 표정이 싹 굳어지다 이내 다시 다정스럽게.
봉두: 그럼 이 선생님이 도와줄게……. 어때? 너두 야구 하고 싶지?
소석: 네.
봉두: (일어나며) 우리 물수제비 한번 해보까?
하며 돌을 집어 물수제비를 날리는 봉두. 그러나 잘 될 리가 없다. 지켜보던 소석이 일어나 멋지게 물수제비를 만든다. 과장되게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봉두. 그렇게 선생과 제자가 개울가에서 물수제비를 날리는 모습이 달빛에 반사돼 평화롭게 보인다.
씬 69. 마을 회관/밤.
화면 가득 분노에 찬 춘식의 얼굴이 보이고
춘식: (단호하게) 그건 절대 안 된대요.
보면, 춘식과 몇몇 학부모들이 모여서 술잔을 나누며 얘기들을 하고 있다.
춘식: 애들이 없으면 젊은 사람도 없는 거구. 젊은 사람이 없다는 건 마을이 없어지는 거나 같은 거래요.
남옥부: 그래도 아이들 장래를 위해선 선생님 얘기가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여.
춘식: 뭐가 틀린 말이 아니래요? 진짜루 애들을 위하는 선생이라면 맨날 자습이나 시키고……. 룸살롱 기지배 학교로 불러들이고 애들 전학 보낼 궁리한대요? 생각해 보시래요? 상식적으루 말이 되나…….
애순부: 거……. 자네 말이 좀 심하지 않나? 김 선생님은 그럴 분이 아녀.
다른 학부모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한다.
씬 70. 회관 밖.
후레시를 들고 걸어오다 회관에 불이 켜져 있자 들어가려던 봉두. 안에서 자기 얘기가 나오자 멈칫하더니 벽에 몸을 기대고 귀를 쫑긋댄다.
소리: (춘식의) 참나……. 제가요. 이런 얘긴 정말 안 하려고 했는데요. 김봉두 그 사람……. 서울에서 학부모들한테 돈 받아먹다 걸려서 어쩔 수 없이 여기 왔대요.
소리: (성만부의) 어허……. 이 사람 이거 취했어? 누가 들으면 어떡할라구 그런 막말을 해.
소리: (춘식의) 글쎄 제가 다 들었대니깐요 형님.
소리: (애순부의) 이 사람 이거 안되겠구먼……. 그만 가서 자게.
소리: (춘식의) 두고들 보세요, 두고 보면 알 거 아니래요?
놀라서 얘기를 듣던 봉두,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어떤 결심을 한 듯 숨을 크게 한번 쉬고는 사라진다.
씬 71. 몽타주.
-학교-
까악~~함성을 지르며, 술래잡기를 하는 봉두와 아이들. 술래인 봉두를 놔두고 곳곳에 숨는 아이들. 교실, 어딘가 숨어 있는 애순. 조심조심 다가와 덥석 애순의 뒷덜미를 나꿔채는 봉두. 꼼짝없이 붙들린 애순, 봉두와 나란히 앉아 어려운 수학문제집을 푼다.
-운동장-
비료부대를 접어 만든 글러브로 소석의 공을 받아주는 봉두. 오버스로우로 던지자, 그게 아니라 언더로 던지라고 시늉하는 봉두. 김병현 같이 언더로 공을 던지는 소석. 잘 던질 리가 없다.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공. 멍하니 있던 봉두, 그래도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최고라고 칭찬해준다.
-밭-
배추밭에서 배추 따는 걸 도와주는 봉두.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지만 연신 웃으며 일을 거든다. 배추를 잔뜩 들고 트럭으로 가던 봉두, 기우뚱하더니 와르르 넘어진다. 그런 모습에 좋아라. 웃는 마을 사람들. 무지 아프지만 웃으며 일어나는 봉두.
-동산-
아이들, 그림을 그리고 있고, 성만이 옆에서 지도해주는 봉두. 성만, 나무들을 빨간색, 하얀색, 초록색으로 그리자 꿀밤을 메기는 봉두.
봉두: 빨간 나무가 어디 있어 이놈아……. 단풍이니까 잎만 빨갛게 그려.
성만: (떠듬떠듬) 이 나무는요……. 여름에 너무 더워서 온통 빨갛게 익은 건데…….
봉두: (옆에 하얀 나무를 가리키며) 그럼 이건 왜 하얀 건데?
성만: 음……. 이건요. 음. 겨울나문데……. 더운걸. 눈으로 덮구 식히는 거예요.
봉두: (파란색 나무를 가리키며) 그럼 이건?
성만: 겨울에 너무 추워서……. 파랗게 질린 거요.
봉두: (성만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며) 넌……. 차라리 시를 쓰는 게 낫겠다.
-교실-
남진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주는 봉두. 시키는 대로 안하고 엉뚱한 짓만 하는 남진. 봉두, 서울 학교에서 압수한 게임시디를 남진에게 주는 봉두. 새로운 게임시디를 보고 너무 좋아하는 남진. 그런 모습을 보며 씨익 쪼개는 봉두. 이때 성만이 들어와 소리친다.
성만: 형아야……. 비석치기 할 건데 빨랑 나와.
그 말에 시디를 팽개치고 신나서 뛰쳐나가는 남진. 매우 허탈해 하는 봉두. 6학년인 남옥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는 봉두. 아직 학교에 안 다니는 다영에게 유치원 선생님처럼 춤추고 노래하고 아양을 떠는 봉두. 삐진 듯 한 얼굴로 홀로 교실에 남아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는 최 노인.
- 계곡-
아이들과 어울려 고기를 잡는 봉두. 고기를 잡다 어느새 물장난이 시작되고 집중적으로 물세레를 받는 봉두. 웃으며 대충대충 하다 어느 순간 날라 온 물을 먹고 컥컥대는 봉두. 순간, 신경질이 나는지 눈이 벌게지며 달려들어 아이들을 물속으로 쳐 박는 봉두. 그래도 좋다고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 옆으로 지나가는 래프팅 행렬. 그렇게 봉두와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멀리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춘식.
씬 72. 숙소.
수돗가에서 물에 젖은 옷들을 빨래하는데 다가오는 최 노인. 최 노인 자기만 빼고 놀러간 것에 삐졌는지 퉁명스럽게.
최 노인: 나, 인제……. 가도 되는가?
봉두: 네……. (학생에게 하듯) 숙제 꼭 해오세요. 안 해오면 맨 날 나머지 공분 거 아시죠?
최 노인: 아. 알았어. 근데. 숙제 그거 너무 많은 거 아냐? 난 눈도 침침하고 할 일도 많은데…….
봉두: 할 일 뭐요?
최 노인: (둘러댄다.) 화. 화초에 물두 줘야하구…….
봉두: 어르신! 어르신이 전교에서 국어 꼴등이에요. (완강하게) 요령 피우지 말고 숙제 꼭 해오세요.
입을 삐죽이며 봉두를 흘겨보던 최 노인, 무슨 생각이 났는지.
최 노인: (부끄러운 듯) 저. 근데. 난 가정방문 같은 거 안 오나?
봉두: (어이가 없다.) 어르신은 정식 학생이 아니잖아요.
그 말에 매우 서운해 하는 최 노인. 봉두, 최 노인의 표정을 보더니……. 안됐는지.
봉두: 알았어요. 오늘 저녁에 찾아뵐게요. 마침 담배도 떨어졌고.
최 노인: (금방 희색이 돌며 어린애처럼) 알았어 그럼……. 저녁 먹지 말구 와.
하곤 아이같이 신나서 걸어간다.
씬 73. 최 노인 집/밤.
막 잡은 듯…….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다리를 뜯어, 한입 베어 무는 봉두. 최 노인, 흐뭇한 표정으로 봉두를 바라보고 있다.
봉두: 키햐~~맛있네……. 기가 막힌 데요?
최 노인: 많이 먹어.
봉두: 어르신도 드세요?
최 노인: 난. 이빨이 아파서 됐어.
봉두: 어우. 그래요? 이거 혼자 먹긴 많은데…….
하며 자기 앞으로 냄비를 끌어당기는 봉두. 봉두의 눈치를 보던 최 노인, 장롱에서 쭈글쭈글하고 빛바랜 편지를 잔뜩 꺼낸다. 그 중에 하나를 집어 편지를 꺼내 봉두에게 내미는 최 노인.
봉두: 이게 뭐에요?
최 노인: 응. 미국 사는 손주놈이 편지 보내온 건데. 뭔 말인지 모르겠는 게 있어서.
하며 편지지의 한 구절을 가리킨다. 걸프렌드라고 적혀있는 부분.
최 노인: (부끄러운 듯) 다른 글자들은 다 알겠는데 그게 뭔지 좀…….
봉두: 아~~걸프렌드요? 이거 여자 친구란 뜻이에요.
최 노인: 여자친구?
봉두: 예. 영어에요.
최 노인: 그럼……. 손주며느리 얘길 하는 거였구먼.
봉두: 아이참……. 여자 친구라구 꼭 결혼 하나요?
최 노인: 결혼했어……. 3년 전에.
하며 흐뭇해서 다시 편지를 들고 읽어보는 최 노인. 닭을 뜯다말고 뜨악해서 쳐다보는 봉두
봉두: 그럼 그 편지 3년 전 거예요?
최 노인: 응.
봉두: 그걸 지금 읽어요?
최 노인: 응. 요즘 이거 읽는 재미에 밤새.
멍하니 최 노인을 쳐다보는 봉두.
씬 74. 교실.
칠판에 도시의 생활 이란 글씨를 써놓고 수업을 하던 봉두.
봉두: 니들. 솔직히 말해봐 . 도시에 가고 싶지?
아이들: (합창하듯) 네~ 가고 싶어요.
봉두: (씨익 웃으며) 왜 가고 싶은데?
소석: 놀이동산 있잖아요.
남진: 피씨 방도 있어서 좋아요.
애순: 백화점도 있고……. 에레베타도 있어요.
흐뭇하게 웃던 봉두, 다시 묻는다.
봉두: 그럼…….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들 도시로 전학 가고 싶지?
아이들: (합창하듯) 아니요.
봉두: (표정이 굳으며) 뭐? 방금 도시에 가고 싶대며?
아이들: (또 합창) 전학 가기 싫어요.
봉두: (흥분해서) 왜 가기 싫은데? 왜?
흥분한 봉두의 모습에, 자못 당황하는 아이들.
남옥: 그냥. 도시는 공기도 안좋구……. 개울도 없고…….
봉두: (다른 애들에게) 그리구. 또 뭐?
아무 말도 않고 서로 눈치를 보는 아이들. 그런데 이때, 1학년인 성만이 번쩍 손을 들고 말한다.
성만: 그디구요……. 전학가면……. 턴탱님도 못 보고, 우디 학교에도 못 오자나요.
아이들: (합창하듯) 맞아요.
할 말을 잃은 듯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짓는 봉두. 드디어 말문을 여는 아이들.
소석: 깡패두 많데요. 돈 다 뺏기구. 칼로 찔러 죽인데요.
봉두: (어이없지만) 누가 그래……. 니들이 잘못 아는 거야.
애순: 춘식이 아저씨가 그랬어요. 자기도 죽을뻔 하다 살았대요.
봉두: 춘식이?
아이들: 네. 전학가면 다 죽는데요.
봉두: …….
씬 75. 춘식의 집.
마당에서 경운기를 손질하고 있는 춘식. 씩씩대며 들어오는 봉두.
봉두: 나랑 얘기 좀 합시다.
춘식: (힐끗 보더니) 뭔 얘기요. 난 할 얘기 없더래요.
봉두: (흥분을 참으며) 아니……. 다 큰 어른이 그게. 응. 애들한테 할 소립니까?
하는데 요란스레 경운기 시동을 켜는 춘식. 뭐라고 떠드는 봉두를 놔두고 경운기를 몰고 나가는 춘식. 따라가며 계속 주절거리는 봉두. 알 피엠을 높여 더더욱 소리를 내며 가는 춘식.
봉두: 어이! 야! 야 이 자식아!
들은 체도 않고 속도를 내서 가버리는 춘식.
봉두: (혼잣말로) 개새끼……. 저거.
약이 잔뜩 오른 봉두. 두고 보라는 듯이 이를 악다문다.
씬 76. 교실 안.
아이들과 학부모들까지 모여 있는 교실 안. 칠판에 커다랗게 써 있는 글씨 꿈은 이루어진다. 어디서 본 듯한 문구를 써놓고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연설을 하는 봉두.
봉두: 여러분들이 지금 조바심으로 아이들의 장래에 대해 고민을 할 때 저는 이미 10년 후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코흘리개 산골 아이들이지만 저의 판단을 믿고 재능을 맘껏 겨룰 수 있는 유럽으로……. 아니 도시로 아이들을 전학 보낸다면 아마 10년 후엔 이 애들이 세계를 놀라게 할 것입니다.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연설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학부모들. 그러나 이내 다음 연설에 고개를 끄덕인다.
봉두: 여러분들의 대수롭지 않은 이기심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치명적인지 한번쯤 고민해 보신 적 있습니까? 여러분, 꿈은 꼭 이루어집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란 말이 있듯이 크게 보십시오. 하루빨리 큰물로 내보내라 이겁니다.
목에 핏발을 세우며 열변을 토하는 봉두.
씬 77. 읍내식당/저녁.
석쇠에 구워지는 고기들. 읍내 식당에서 교육청 간부들과 회식을 하는 봉두. 간부, 봉두에게 정중히 술을 따라주며 마주 앉은 사내에게 인사시킨다.
간부: 저……. 인사해요. 이분은 서울에서 레져사업을 하시는 분입니다 김 선생.
봉두: 아 예 그러세요……. (하며 인사를 한다.)
사내: (명함을 건네주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봉두: 예? 뭘요?
간부: (급히 나서며) 학교를 매입해서 서바이벌 게임장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지금으로선 사실 쉽지가 않잖습니까?
봉두: 학교를 서바이벌 게임장으로 만든 다구요?
사내: 예. 지금 강가에서 래프팅 사업을 하는데……. 거기에다 서바이벌 게임까지 곁들인 관광 상품을 추진 중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을에도 부수적인 수입이 생겨 서로 좋은 일이죠.
간부: 사실 내년에 폐교하기로 결정을 했었는데 김 선생님이 오시구 나서 마을사람들이 마음이 바뀌었잖아요. 저. 김 선생…….
하는데 알아들었다는 듯이 말을 가로막는 봉두.
봉두: 올해 안에 다들 전학 갈 겁니다. 걱정 안하셔도 돼요.
사내: 예? 그럼 자연스럽게 폐교 되겠네요?
봉두: (고기를 먹으며 끄덕인다.)
사내: 어이구 이거 잘됐습니다. 김 선생님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자십니다.
간부: 그럼요……. 애들도 통학하기가 좀 힘들어서 그렇지. 교육환경은 나을 겁니다.
사내: 힘들긴……. 어린놈들이 좀 고생하면 어때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하하
간부와 사내가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 호탕하게 웃자 고기를 먹다 물끄러미 두 사람을 바라보는 봉두. 웃던 두 사람, 봉두를 보곤 어색하게 화제를 바꾼다.
씬 78. 식당 밖.
차에 타려는 봉두에게 허겁지겁 다가오는 사내.
사내: 저. 김 선생님. 이거 얼마 안 되지만 담배값 하십시오.
하며 봉투 하나를 건넨다. 봉두, 너무도 오랜만이라 한 동안 봉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감회에 젖는다. 사내, 당황스런 눈빛으로 봉두를 바라보다 또 한 개의 봉투를 꺼내 두 개를 준다.
사내: 그리구 이건. 기름 값이나 하시죠.
잠깐 정신이 나갔던 봉두, 서서히 화색이 돌며 봉투를 넙죽 받아든다.
봉두: 감사합니다. 사업 잘되시길 바라 겠습니다.
하며 정중히 인사를 하곤 차에 올라탄다.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봉두의 차. 혀를 끌끌 차며 바라보던 사내, 뒤돌아서는데 어느새 다가와 킁킁거리며 밤하늘에 별을 세는 간부. 사내, 품에서 또 하나의 봉투를 꺼내 간부에게 찔러준다. 말없이 받아 넣는 간부.
씬 79. 읍내시내.
멀리서 다가와 급하게 서는 봉두의 차. 봉두,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봉투를 꺼내 열어본다. 각자 백만 원짜리 수표 한 장씩 두 장이다. 감격에 겨워 눈물까지 글썽이는 봉두. 다시 출발하는 차. 저만치 가다 다시 서는 봉두의 차.
씬 80. 교실.
아이들에게 잔뜩 선물을 나눠주는 봉두. 6학년인 남옥에겐 영어회화 테이프와 예쁜 카세트플레이어를 5학년인 소석에겐 가죽으로 된 야구 글러와 야구공을 5학년인 애순에겐 예쁜 티셔츠를 3학년인 남진에겐 장난감 로봇을 1학년인 성만에겐 그림물감과 크레파스를 학교 안 다니는 다영에겐 곰 인형을. 선물을 받을 때마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아이들. 최 노인, 킁킁대며 자긴 뭐 없나하며 부러워한다. 그런 최 노인에게 전해지는 그림동화책.
봉두: (웃으며 바라보다.) 어때 좋지?
아이들: (신나서) 네.
봉두: 도시에 가면 이런 거 많이 있고 좋겠지?
아이들: 네.
봉두: (흐뭇하게) 자. 우리 오랜만에 새 공으로 축구할까?
아이들: 네.
떠나갈 듯한 아이들의 함성.
씬 81. 운동장.
봉두, 다영, 최 노인 대 아이들……. 3 대 5 의 축구. 새로 산 축구공으로 축구를 하는 봉두와 아이들. 소석이 공을 잡고 드리블해 오자 달려들어 소석의 옷을 잡아당기며 넘어뜨리고 공을 뺏는 봉두. 봉두가 공을 잡자 방어를 하느라 우르르 달려드는 아이들. 그러나 어른답지 않게 아이들을 손으로 밀치며 신나게 드리블해 슛을 날린다. 골인이 되자 과장된 골세레머니를 펼치며 좋아하는 봉두. 양손을 치켜세우고 괴성을 지르며 아이들에게 달려드는데 봉두에겐 관심 없고 일제히 교문을 바라보는 아이들. 머쓱해진 봉두,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 교문을 보면……. 지프차 한 대가 들어오는 게 보인다. 차에서 내리는 도시풍의 젊은 부부와 아이. 의아하게 쳐다보는 봉두.
봉두: ?
씬 82. 교무실.
놀란 눈을 한 채 화면 가득 보이는 봉두.
봉두: 예? 전학이요?
봉두와 마주 앉아 있는 도시 풍의 학부모.
남자: 예.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봉두: 아니 왜 일루 전학을 와요?
남자: 그게 좀…….
말을 못하고 우물쭈물 하자 여자가 나서서 거든다.
여자: 애기 아빠가 건강도 좀 안좋구……. 여기에 들어와 살면 정착금도 지원해 준다. 그래서요.
봉두: 누가요?
여자: 이 학교 동문인데……. 서울에서 돈 좀 있는 사람인 것 같애요. 학생들이 없어서 학교가 없어지게 생겼다고 누구든 애만 있으면 된다구 그랬거든요.
그 말에 눈이 팍 풀리는 봉두. 아무 말도 못한다. 이때 남자가 여자에게 눈짓을 하자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는 여자.
여자: (돈 봉투를 꺼내 내밀며) 저. 그리고 이거…….
내미는 돈 봉투를 멍하니 바라보는 봉두. 자리에서 일어나는 부부.
여자: 저 그럼 선생님 가 보겠습니다.
하며 인사를 하고 나가는 부부. 아무 말도 없이 일어나 인사를 하고 다시 의자에 풀썩 주저앉는 봉두.
씬 83. 교실.
청소하는 아이들. 교실 이곳저곳을 보며 촌스러운지 연신 콧방귀를 뀌는 전학생(준석). 다른 아이들은 아무 말도 못하는데 보다 못한 애순이 나선다.
애순: 야 넌 청소 안 해?
준석: 쳇…….
애순: 이름 적는다.
준석: 적어라.
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 갖고 온 게임시디를 밀어 넣는다.
씬 84. 교무실.
책상 서랍을 뒤지더니 명함을 찾아 꺼내드는 봉두. 명함을 보고 이를 갈며 전화를 하려는데 걸려오는 전화.
봉두: 여보세요……. 예, 교장선생님. (떨떠름하게) 방금 왔습니다…….
교장의 얘기를 힘없이 듣다가 갑자기 놀라는 봉두.
봉두: 예? 앞으로 더 올거라구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전화를 끊는 봉두. 충격에 한동안 입에 거품을 물며 숨도 쉬지 못하는 봉두. 이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
남옥: 선생님 청소 다했는데요.
다가와 히죽거리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보는 봉두. 똘망똘망하게 봉두를 바라보는 아이들. 전부 꼬질꼬질 하고 헤진 옷을 입고 있다. 갑자기 아이들이 거지같이 보이는 봉두. 그동안 못 느끼고 지냈던 부분들이 새삼 봉두의 눈에 띤다. 봉두, 아이들을 보며 짜증이 슬슬 올라오는데…….
소석: 선생님! 저희 계곡으루 가재 잡으로 갈건데 같이 가실 거죠?
봉두: 내가 니들 친구냐? 같이 가게?
아이들: …….
봉두: 그리구. 무슨 청소가 벌써 다 끝났다는 거야? 다시 해. 오늘 대청소다.
씬 85. 교실.
시무룩하게 청소를 하는 아이들. 준석이만 청소를 안 하고 컴퓨터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다. 못마땅하게 여기던 아이들, 그러나 새로운 게임을 보고 슬금슬금 모여든다. 이때 들어오는 봉두, 아이들을 보고 소리친다.
봉두: 이놈 자식들. 청소 안하고 뭐 하는 거야?
화들짝 놀라 뿔뿔이 흩어져 청소를 하는 아이들. 그러나 준석은 멀뚱히 봉두만 쳐다보고 있다. 그런 준석을 바라보다 아무 말도 안하고 교실을 나가는 봉두. 청소를 하는 시늉을 하던 아이들. 준석을 쳐다보며 신기해한다. 준석,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며 피식거린다.
준석: (게임을 가리키며) 한번 해볼래?
망설이다 우르르 달려드는 아이들.
씬 86. 교무실/밤.
빈 종이에다 구구절절 사연을 쓰고 봉투에 담는 봉두. 긴 숨을 한번 내쉬더니 봉투에 사인펜으로 사직서라고 쓴다. 사직서를 한참 내려다 보다 다시 집어 신경질적으로 찢어버리는 봉두.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씬 87. 운동장/밤.
미친놈처럼 운전을 하는 봉두.
봉두: (운전을 하며 고래고래) 그래 씨발……. 여기서 살자 살아. 좋잖아 공기도 좋고……. 으아아아아~~~~~~아부지~~.
소리소리를 지르며 스트레스를 푸는 봉두의 모습이 안쓰럽다.
씬 88. 교실/다음날.
자습을 시켜 놓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며 한숨만 쉬는 봉두. 눈치를 보던 남옥이 말문을 연다.
남옥: 선생님. 수업 안 해요?
봉두: (짜증스레) 자습하라고 그랬잖아.
애순: 두 시간 지났는데요.
봉두: 더 해.
아이들: (동시에) 수업해요 선생님 네? 선생니이임~~~
수업하자고 찡얼대는 아이들의 성화에 갑자기 성질을 내는 봉두.
봉두: (벌떡 일어나며) 자습하래면 하지 어디서 말대꾸야. 이놈들이 선생님 알기를 우습게 알어?
갑작스런 봉두의 행동에 다들 주눅이 든 아이들.
봉두: 전부 일어나 손 내밀어.
기가 죽어 슬금슬금 일어나는 아이들. 봉두, 매를 들고 다가가서 한 명씩 손바닥을 내려친다.
봉두: (내려치며) 똑바루 내밀어.
인상을 찡그리며 손바닥을 맞는 아이들. 준석, 자기 차례가 오자 자긴 안 때리겠지 하는 표정으로 짐짓 여유롭다. 그런 준석에게 다가와 더욱 세게 때리는 봉두. 고통보다 놀라움에 눈이 동그래지는 준석. 한쪽 구석에서 내심 난감해 하는 최 노인. 봉두, 너무 하다 할 정도로 아이들의 손바닥을 계속 내려친다.
씬 89. 하교 길.
멀리서 아무 말도 않고 시무룩하게 걸어오는 아이들.
남진: (맞은 손바닥을 입으로 불며) 난. 자습하는 게 좋았는데.
애순: 이상해. 갑자기 왜 그러시지?
소석: 니가 말대꾸 했잖아?
애순: 넌 안 했어?
소석: 니가 두 시간 지났는데요 했잖아.
애순: 이게 증말…….
하며 달라붙는 소석과 애순을 떼어놓는 남옥.
남옥: 됐어 그만해……. 다 내가 잘못한 거야.
그제야 떨어지는 소석과 애순.
남옥: 선생님이 무슨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선생님 말씀 더 잘 듣자 알았지?
아이들, 고개를 끄덕이며 걷는데 기다리고 있던 준석이 앞을 가로막는다.
아이들: ?
준석: (씩씩거리며) 이씨……. 니들 땜에 나까지 맞았어!
애순: 기가 막혀. 그게 왜 우리 때문이야? 선생님이 화나서 그런 건데?
준석: (빈정거리며) 촌놈들……. 화난다고 다 때리냐?
소석: 선생님잖아.
준석: (어이가 없는지) 선생님? 하여간……. 니들이나 선생이나 다 무식하긴…….
소석: (발끈해서 달려든다.) 뭐. 이 개새끼…….
순식간에 뒤엉겨 서로 치고 받는 소석과 준석. 남옥이 달려들어 말리지만 역부족이다.
소석: (패며) 이 새끼……. 서울에서 왔다고 재냐?
준석: (맞으며 소리를 지른다.) 우리 엄만 돈 줬단 말야 새꺄…….
그 말에 동작이 멎는 소석과 아이들.
아이들: …….
씬 90. 마을회관/밤.
아이들의 부모들이 모여 얘기를 하고 있다.
남옥부: 뭐? 돈?
애순모: 자긴 줬는데 맞았다구 그러드래요.
성만부: 참나……. 서울하고 같애. 아. 이런 촌구석에 그럴 돈이 어딨어?
잠시 아무 말도 않고 담배들만 뻐끔뻐끔 펴대는 사람들.
남옥부: 아 뭔 고민들이여? 다 안주면 되는 거지.
애순부: (끄덕이며) 그지……. 여태까지도 그냥 잘 댕겼는데……. 더 뭔 일 있겠어.
성만부: 쓸데없는 고민들 하지 말고 일찌감치 가서 주무십시다.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사람들.
씬 91. 교무실/밤.또 사직서를 쓰는 봉두. 그러나 이번엔 진지하다. 사직서를 써서 책상에 올려놓고 바라보던 봉두.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한다.
봉두: (신호가 가고 잠시 후) 605호요……. 저에요 아부지……. 예,……. 먹었어요……. 힘이 없긴요. 졸려서 그래요……. 저. 아부지 . 조만간 올라갈게요. 예. 예,……. 아니에요 가서 말씀드릴께요.……. 네 쉬세요…….
전화를 끊고는 착잡한 심정으로 일어나 교무실을 나간다.
씬 92. 관사/밤.
학교에서 나와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오는 봉두. 잠깐 멈춰 서서 학교를 바라본다.
씬 93. 봉두의 회상.
-초등학교 교실-
한창 수업을 듣고 있는 초등학생 봉두. 문득, 창문 너머로 바라보면……. 소사인 봉두부가 고장 난 의자들을 고치고 있다. 무심결에 봉두와 눈이 마주치는 봉두부. 봉두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는 얼른 공부하라는 시늉을 손짓으로 해 보인다. 짝꿍이 바라보자 얼른 고개를 돌리곤 모른 채 하는 봉두. 이때, 봉두 담임선생의 호통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담임의) 니들 자꾸 헛생각하고 공부 안 하면……. 저~기 햇볕에서 일하는 아저씨 보이지? 니들도 저렇게 돼.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공부해 알았냐?
소리 (아이들): 네.
담임의 호통에 얼굴이 시뻘게지는 봉두.
-다른 날 교실-
빈 교실. 칠판에 손을 대고 선 채 엉덩이에 매를 맞는 봉두. 초등학생인데도 살벌하게 매를 휘두르는 담임.
담임: (패며) 부모님 오시라고 한지가 언젠데 안 오는 거야? 왜 너만 안오냐구 이 자식아.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봉두를 패는 담임. 이를 꾹 다물고 고통을 참는 봉두.
씬 94. 관사.
멍하니 누워 잘 나오지도 않는 TV를 보고 있는 봉두. 코미디 프로가 나오지만 웃지도 않고 무표정이다. 이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봉두: (TV소리를 줄이고) 누구세요?
소리: 접니다. 선생님.
봉두, 일어나 문을 열자 삐죽 고개를 내미는 성만부.
성만부: 아직 안 주무셨드래요?
봉두: (갑작스런 방문에 당황스럽지만) 아 예……. 어쩐 일이세요.
성만부: 뭐……. 성만이 전학문제도 있구……. 또 기냥 뭐…….
봉두: 들어오세요.
우물쭈물 하는 성만부를 방으로 안내하는 봉두. 방으로 들어와 앉아 기웃기웃 대는 성만부.
성만부: 요즘 힘드시죠?
봉두: 힘들긴요 . 다 그렇죠 뭐.
성만부: 선생님 저……. 이거.
하며 슬그머니 비닐에 싼 약초를 꺼내 놓는다.
성만부: 푹 과서 하루 세 번 한고뿌씩 드시면 몸이 확 달라 질 거래요.
봉두: (멍하니) 아 예……. 고맙습니다.
성만부: (일어나며)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봉두: 아니……. 성만이 얘기는요?
성만부: 나중에 하죠 뭐…….나오지 마시래요.
하며 나가려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 선생님 주무신대요?
봉두가 문을 열러 가자 내심 불안해하는 성만부의 얼굴에 들리는 소리.
봉두: (소리) 남옥이 아버님 아니세요?
순간, 눈을 질끈 감는 성만부. 인사를 주고받고는 들어오다 성만부를 보고 화들짝 놀라는 남옥부.
남옥부: 어? 자네 여기 웬일인가?
성만부: (퉁명스레) 흠흠. 그러는 형님은 웬일이래요?
남옥부: (당황하며) 나야 뭐……. 선생님 심심 하실까봐 말동무나 해 드릴려구 왔지.
성만부: 저두 그래요.
봉두: (냉랭한 두 사람을 보다.) 서 있지들 마시고 앉으세요.
뻘쭘히 앉는 두 사람. 서로 천정만 쳐다보며 어색한 정적이 흐른다.
봉두: (남옥부에게) 무슨 일이세요?
아무 말도 못하던 남옥부, 갑자기 일어나며 성만부를 잡아끈다.
남옥부: 자네. 잠깐 나 좀 봐.
하며 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 느닷없이 두 사람이 나가자 황당한 봉두. 잠시 후 두 사람이 티격태격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 자네 선생님한테 돈 주러 왔지?
소리: 아이구 참. 돈이 어딨다구 돈을 줘요. 형님이야말로 돈 주러 온 거 아녜요?
소리: 뭐? 내가 미쳤어……. 너 그럴 돈 있으면 꾼 돈이나 갚어?
소리: 내가 형님한테 꾼 돈이 어딨대요?
소리: 작년 겨울에 화투칠 때 꿨잖아
소리: 하이구……. 그까지 2만원 꾼거?
소리: 2만원은 돈 아냐?
소리: 알았어요. 알았어……. 치사해서 씨발 것 준다.
소리: 뭐 이 새끼가 근데…….
등등 말싸움이 격해지다 싸움을 하는 소리를 듣는 봉두. 말리지도 못하고 착잡하기만 하다.
씬 95. 교무실/아침.
교무실 청소를 하는 아이들. 이곳저곳을 쓸고 닦는 아이들, 소석이만 안 보인다. 특히 봉두의 책상을 열심히 정리하고 닦는 남옥. 문득, 책상에 놓인 사직서를 본다. 망설이다 열어보는 남옥. 사직서를 보고 표정이 굳는 남옥. 다른 아이들도 다가와 뭔가 하고 본다.
씬 96. 교실.
시무룩하게 수업준비를 하는 아이들. 밤새 잠을 못 잤는지 꺼칠한 봉두가 맥없이 들어온다. 아이들을 바라보던 봉두, 소석과 준석이 안보이자
봉두: 소석이 하고 준석인 아직 안 왔냐?
아이들: (힘없이) 네.
남진: (일러바치듯) 둘이 싸웠대요. 히히.
봉두: …….
남옥이 남진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짓을 한다. 금세 시무룩해 하는 남진.
봉두: (바라보다.) 무슨 일인지 남옥이가 말해봐.
남옥: (우물쭈물하며 말을 못한다.)
봉두: 또 말 안 듣는다.
아이들, 남옥의 눈치를 보며 말하라는 시늉을 한다. 남옥, 어쩔 수 없이 어렵게 입을 열려는데 문이 거칠게 열리며 들어오는 준석모와 준석. 어리둥절해서 보는 봉두. 얼굴에 시퍼렇게 멍든 준석을 봉두 앞에 세우며 씩씩대는 준석모.
준석모: 선생님 얘 얼굴 좀 봐요. 이럴 수 있는 거예요?
봉두: ?
준석모: 아니……. 전학 왔다구 이래도 돼요? 이래서 마음 놓고 학교에 보내겠냐구요?
봉두: 애들끼리 치구박구 한건대요 뭐.
준석모: 뭐에요? 기가 막혀서 정말……. 잘 부탁한다고 특별히 부탁도 했는데 응……. 그리구……. 다른 애들이 잘못한 거 가지구 우리애까지 때렸다면서요. 선생이 그래서 애들이 뭘 배우겠어요?
봉두: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수업중이니까 나가주세요.
준석모: 나가라니? 이런 촌구석에 왔다고 무시하는 거예요. 지금?
봉두: 여긴 학굡니다. 학교에선 제가 알아서 합니다.
준석모: 알아서 한다는 게 학생들이 수업하자는데 이유도 없이 패요? 뭘 알아서 해요 뭘?
봉두: (단호하게) 나가세요.
준석모: (아이들에게) 니들 말해봐……. 정말 니들이 잘못해서 맞았어?
봉두: 아주머니.
준석모: 따져볼건 따져봐야지. (다시 아이들에게) 말해봐.
준석모가 강하게 윽박을 지르자 머뭇거리는 아이들. 봉두도 아이들을 바라본다. 이때 고개를 떨구고 있던 남옥이 일어나 말한다.
남옥: 선생님은……. 잘못한 거 없어요. 우리들이 잘못했어요.
당황하는 준석모,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따지려는데 1학년인 성만이 울먹이며 말한다.
성만: (울며) 턴탱님……. 가지 마세요……. 사표 하지 마세요. 턴탱님…….
봉두: …….
느닷없는 성만의 말에 약간 충격을 받는 봉두.
아이들: (일제히) 잘못했어요. 선생님. 가지 마세요.
하며 하나 둘 울기 시작한다. 한순간에 울음바다가 되는 교실. 어쩌지도 못하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봉두.
준석모: (바들바들 떨며)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준석에게) 가자. 여기 있다간 아무 것도 안 되겠다.
준석을 끌고 나가는 준석모. 자기편을 드는 아이들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듯 멍해지는 봉두.
씬 97. 소석의 집.
힘없이 소석의 집에 들어서는 봉두. 마루에 앉아 멍하니 하늘만 응시하는 소석 모가 보이고 마당 한켠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는 이웃집 할머니가 봉두를 보고 일어난다. 인사를 꾸벅하는 봉두.
할머니: 아이구……. 선상님 오셨드래요.
봉두: 예……. 소석이가 학교에 안 나와서요.
할머니: 산에 갔어.
봉두: 산에요?
할머니: 응. 약초 캐다가 판다구 동네 어른들 따라서 아침 일찍 갔는데?
봉두: 애가 약초를 캐러 가요?
할머니: 아. 돈 땜이지……. 제 엄마는 저렇지……. 돈이 어디서 나와. 동네 사람들이 쌀 하구 반찬은 같다주는데 무슨……. 돈이 필요한가봐. 어린 게 안됐지 쯧쯧…….
착잡한 심정으로 집을 둘러보는 봉두. 한쪽에 봉두가 선물해준 글러브가 곱게 보관돼 있는 게 보인다.
씬 98. 학교로 오는 길.
첫 출근 때 소석 이와 걸어오던 길을 혼자 걸어오는 봉두. 그때와는 달리 시골길이 따사롭고 정겹게 보인다. 걷던 봉두, 괜스레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는다. 이때, 털털거리며 마주 오는 춘식의 경운기. 봉두, 춘식을 보더니 옆 밭고랑으로 곱게 물러나 준다. 비켜선 봉두를 보며 지나가는 춘식. 저게 왜 저러지? 하는 표정으로 고갤 돌려 멍하니 봉두를 보는 춘식. 그렇게 봉두를 쳐다보며 운전하다 다시 앞을 보던 춘식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비명소리와 함께 옆 개울가로 푹 처박히는 경운기가 봉두의 뒤로 보인다.
씬 99. 교무실/밤.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학교. 숙제로 내 줬던 아이들의 편지를 책상에서 꺼내 읽어보는 봉두. 흐뭇하게 웃기도 하며 읽는다. 마지막으로 소석의 편지를 보는 봉두.
소리: (소석의) 선생님이 새로 오셔서 너무 좋다. 그런데 며칠 안돼서 살이 마르신 것 같다. 엄마한테 맛있는 감자를 싸달라고 하고 싶지만 난 그러지 못한다. 대신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겠다.
편지를 읽으며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두 가지 감정이 섞이는 봉두.
씬 100. 관사 앞.
우산을 쓰고 터덜터덜 숙소로 걸어오는 봉두. 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틈에 끼워져 있는 봉투를 발견한다. 갸우뚱하며 봉투를 집어보는 봉두, 겉에는 양 소 석 이라고 삐뚤삐뚤하게 이름이 써져 있다. 봉투 안을 보던 봉두,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는다. 천천히 꺼내보면, 흙 때가 묻어 있는……. 꼬깃꼬깃한 것을 정성껏 핀……. 만원짜리 세 장이 들어 있다.
봉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