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컨드 공간 소비 트렌드 확산
산업화와 급격한 도시화를 거친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일자리와 인프라가 도시에 집중되고 이것이 다시 도시화를 가중시키는 악순환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딱딱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여유를 누리고자 하는 본능적인 수요는 여전해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 휴양지로 나가거나 전원주택의 꿈을 실현한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누리기엔 비싼 땅값과 높아진 건축비가 부담스럽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제품이 바로 ‘농막’이었다.
진행 이형우 기자│글 사진 김범진 대표(밸류맵)
농막은 원칙적으로 영농 활동을 함에 있어 농기구 등을 저장하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서 20㎡ 범위 내에서 가설건축물 신고만으로 별도의 건축허가 없이 둘 수 있다. 본래의 취지는 실제 영농 활동을 하는 농업인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제도이나, 실제 까다로운 건축허가 과정 없이 대지가 아닌 농지에 6평 수준의 공간을 비교적 손쉽게 취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별장’의 역할로 전용돼 왔다. 실제로 농막 제품을 제작해서 판매하는 다수의 이동식 주택업체 역시 농막을 농사의 부대시설이 아닌 저가의 ‘소형 주택’으로 홍보해 왔었다.
농막 문화 확산의 부작용
이런 농막 문화가 전국에 확산되면서 부작용 역시 커지게 됐다.
첫째로, 불법 농막시설이 확산된 것이다. 본래 영농을 위한 공간이다 보니 거주 및 숙박에 필요한 설비 및 기반시설에 제한이 있었다. 예컨대 전기 인입, 데크 설치, 화장실(정화조용) 설치 등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전기 인입은 가능해졌지만 정화조나 데크 같은 경우는 지자체마다 허용 기준이 다르고 단속의 강도도 달랐기에 전국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이형 농막이 들쑥날쑥해진 것이다.
둘째로, 기존 주민과의 갈등이다. 전원주택 단지로 조성된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개인 토지 위에 소형 농막을 설치하고 편의에 따라 이용하다 보니 쓰레기, 소음 등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도 불거졌다. 또한, 실제 거주하는 집이 아니다 보니 책임 있게 관리되지 못해 방치되거나 빈집처럼 주변이 황폐화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셋째로, 낮은 품질 문제이다. 저가형 농막은 대부분 내외장재, 단열, 설비 등을 최소한으로 시공해 가격을 낮춘 제품이다. 그러다 보니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다가 실제 ‘별장’처럼 이용하기에는 품질이 크게 떨어져 부정적인 경험만 얻기도 한다. 오히려 귀농귀촌에 있어 실망감을 부추기는 꼴만 되기도 했다.
체류형 쉼터, 농막에 성 차지 않은 잠재수요 흡수 가능
이런 상황에서 새롭게 시행되는 ‘체류형 쉼터’는 이 모순적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체류형 쉼터 역시 영농 활동을 위한 부대시설이라는 점에서 농막과 큰 틀에서는 동일하나, 농막이 ‘임시 휴식공간’이라는 것에 반해 체류형 쉼터는 ‘숙박공간’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에 따라 기존의 저가형 모델에서 탈피해 전원주택과도 경쟁할 수 있는 고품질의 제품 개발이 가능하다. 수도권 인구 집중 및 지방 소멸에 대응하는 관점에서도 실효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외에 세컨드 공간을 마련하고 싶어 하지만 다주택자가 되는 것을 크게 망설인다. 그렇다고 농막을 두고 쓰기엔 품질 문제로 성이 차지 않으니 캠핑이나 펜션을 부지런히 다니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런 잠재 수요를 체류형 쉼터가 일정 부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체류형 쉼터는 ‘숙박공간’이라는 점에서 농막과 차이를 보이며, 농막에 성이 차지 않아 캠핑이나 펜션을 찾는 전원주택 잠재 수요층을 일정 부분 흡수할 것으로 보인다.
도시와 교외를 아우르는 듀얼 라이프 권장해야
일자리 및 교육, 학업, 의료 등을 이유로 상당수의 사람들이 도시 인프라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안 없이 귀농귀촌의 장점을 홍보해 봤자 그저 먼 훗날 은퇴 후의 라이프로 치부해 버리기 십상이다. 그럴 바에야 도시와 교외를 아우르는 듀얼라이프(Duel Life)를 보다 권장해야 한다. 이미 한 달 살기 트렌드, 워케이션, 스테이 등 도시를 거점으로 살아가면서 때때로 도시를 벗어나 교외에 일정 시간 머무르는 라이프스타일이 보다 확산되고 있다.
‘여름휴가’라는 단어가 점차 낯설어지고 있다. 이제는 모두가 특정 시기에 휴가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재택근무의 확산과 더불어 1년 중 언제든지 자기가 원하는 시기에 세컨드 공간을 소비하는 트렌드는 앞으로도 꾸준히 확산돼 나갈 것이다. 이런 트렌드에 따라 기존에 ‘변질된 농막’이 ‘체류형 쉼터’로 대체되면서 농막도 비로소 본래의 자리를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자기가 원하는 시기에 세컨드 공간을 소비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에 따라 ‘변질된 농막’이 ‘체류형 쉼터’로 대체되면서 농막도 비로소 본래의 자리를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체류형 쉼터’ 평면도
밸류맵에서 체류형 쉼터 주택으로 개발한 10평형 규모의 모듈러 주택 모델링 이미지
다만, 체류형 쉼터가 기존의 일반적인 건축 규정 대비 과도한 특혜를 준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상 10평 규모의 단독주택을 허가 없이 짓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일정 규모의 영농 의무를 부과하고 최대 12년으로 기간을 제한함으로써 실수요자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기를 유도하고 있다.
제도 시행 초기의 혼동이 잘 정리돼 우리나라도 유럽 못지않게 다양한 디자인의 소형 주택이 공급되고 도시와 비도시가 서로 극단적 분리가 아닌 공간 콘텐츠로서 함께 어울려지는 라이프스타일로 정착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