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합당한 평안
10/30수(水) 마 10:34-39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마 10:36).
동양의 문화는 제사의 문화인 것 같습니다. 조상에 대한 은덕을 기리는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 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신앙인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을 반역하는 행위입니다. 물론 부모님께 효도하고 일가친척들이 모여 평안을 누림도 삶에 큰 활력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제사를 금하고 있습니다. “이방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은 귀신에게 바치는 것이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귀신과 친교를 가지는 사람이 되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습니다”(고전 10:20). 하나님께만 예배드리는 것이 순리이고 합당한 일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 16:33). 진정한 평안은 하나님과의 합당한 관계 속에 있습니다.
진정한 평안, 합당한 평안을 누리는 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절대적 관계를 유지합니다.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마 10:34-37). 부모나 자녀가 귀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관계는 절대적 관계와 상대적 관계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삶은 관계에서 옵니다. 인간의 불행은 관계의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상대적 관계에서 절대적인 것을 요구하니 비극이 시작됩니다. 관계가 중요하지만, 하나님과 절대적 관계를 갖지 못하면 다 속게 됩니다.
▣하나님과 절대적 관계가 있을 때 세상의 관계가 복되고 평안합니다.
“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자기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마 10:34-36). 이 말씀은 마치 예수 믿으면 가족 불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오해하기 쉬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가장 귀중한 가족의 관계에 마음을 빼앗기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절대적 관계가 이루어질 때 가족들과 더 진정한 사랑을 나누고 합당한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내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 합당한 하늘의 평안을 주십니다.
내가 알고 있는 나, 내가 주인으로 있는 나는 거짓 자아입니다. 거짓에 속으니 죄의 종노릇하고 참된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주님이 내 안에 주인으로 오셨다는 것을 믿을 때 참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갈 2:20). 주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내가 그분을 믿는 믿음이 된 상태가 진정한 자아입니다. 진정한 자아의 삶은 남을 용서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평안으로 합당한 평안을 얻게 됩니다. 가정의 화목을 유지하는 길은 주님과 바른 관계, 절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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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온전히 지키는 길은 하나님께 온전히 자녀를 맡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그 예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귀한 아들을 주셨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합니다. 마음이 아프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주신 분도 여호와 취하시는 분도 여호와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이삭을 드렸을 때, 하나님과 절대적 관계를 통해 하나님은 이삭을 보호하십니다. 자녀가 귀하면 귀할수록 주님께 맡기는 것이 지혜로운 부모입니다. 우리에게는 자녀를 지킬 힘이 없습니다.
아들이 군에 입대한 후, GP 총기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새벽마다 주님의 아들을 지켜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새벽, 주님은 제게 “내가 네 아들을 데려가면 어떻겠니?”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주님, 그 아들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는데요?” 주님은 ‘주님의 아들이니 주님께서 지켜달라’고 한 것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로 “주님, 주님의 아들이니 주님의 마음대로 하십시오”하고 온전히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아들로부터 자유합니다.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주님, 주님의 아들이지요? 이런 문제가 있으니 주님이 해결해주세요”. 이렇게 맡겨버립니다. 내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가 사건·사고로부터 가족을 보호할 수 있습니까? 부모와 함께 길을 건너다 음주 운전 차에 치여 자녀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일에 어느 누구도 테클을 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나의 뜻을 맡기는 것이 피조물의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를 가질 때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주님이 가장 최선으로 인도하셨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나의 배우자, 자녀,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주님께 주권을 맡깁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양육하십니다.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자녀의 마음에 소원을 주시고, 기쁨으로 그 일을 행하게 하십니다. 그것을 비전이라고 합니다. 자녀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자녀를 온전히 주님께 맡깁니다. 그런데 이 비전이 세상의 가치관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절대적 관계가 유지될 때, 자녀와의 관계, 배우자와의 관계가 복된 관계가 됩니다. 내 자녀라 생각하니 내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니 자녀와 관계에서 갈등합니다. 이것은 부부관계도 같습니다. 내 기준이 되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갈등합니다. 내 기준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준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려는 모든 행위를 내려놓고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하나님 기준은 갈등이 없고, 가장 완벽한 관계로 만들어줍니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과 나는 하나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우리의 과정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그분이 나를 통해 일하시도록 내 생각, 내 경험, 내 지식, 거짓 자아로 있는 내 자아를 십자가에 넘깁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주님과 온전한 연합이 이루어집니다. 온전한 연합의 상태에 있을 때 내 안에서 주님은 주님의 일을 행하십니다.
주님과 온전한 연합은 부정의 환경을 통해 긍정의 길을 엽니다. 그래서 늘 감사뿐입니다. 마음이 평안합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마음 때문에 늘 풍성한 삶을 삽니다. 마음의 부요는 주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복이 본 복입니다. 본 복을 가지니 분 복은 절로 옵니다.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이 계시니 늘 삶이 간증으로 넘칩니다. 주님을 삶의 가장 우선으로 모셔 합당한 평안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https://youtu.be/zxsOW3BMWYs?si=SiDT-ECJbT-LM5b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