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이 오동통한 우유빛깔 꽃망울을 터트리는 날에 수원에 사는 처제가 집에 왔다. 아내와 처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월출산 자락의 고향에 같이 가보고픈 마음에서 사전에 약속을 했던 모양이다. 둘 다 묘령이전에 고향을 떠났다니 그렇다면 50년이 다 되었다. 처제에게, 갑자기 고향에 가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물으니, 고향보다는 예전 그 인근 어느 마을에 사셨던 고모님을 꼭 뵙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아내도 같은 입장이었다.
그동안 아내에게 들어왔던 처고모의 사정은 조금 복잡하다. 아내와의 나이 차이가 10여 년에 불과하여 마치 언니처럼 여겨졌다는 처고모는, 처조부의 외도로 태어났으니 장인의 배다른 여동생이란다. 그런데 낳자마자 생모가 자취를 감추었고, 처조모께서 시앗(주1)의 딸을 핏덩이 때부터 키웠기에 어려서부터 천덕꾸러기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시집가기 전에 직장에 다니면서 꼬박꼬박 모아 둔 목돈을, 지금은 고인이 된 당신의 배다른 큰오빠(처 백부)가 빌려갔단다. 그러고도 나중에 오리발을 내밀며 갚지 않았고 처고모가 갚으라고 말할 때마다 되레 손찌검까지 일삼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혼수 비용을 마련하려고 수년 동안 꼬박꼬박 모아 둔 목돈을 날린 당신께서 몸부림치며 후회하다가 결국 시집 갈 무렵에는 정신이상 증상을 보일 지경에 이르렀단다. 그런 사정 말고도 처고모는 평소 매우 자상했고 미모였으며 마음씨도 고왔다니 아내와 처제가 더욱 그리워하는 모양이었다.
이튿날에 아내와 처제까지 셋이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거리의 월출산 인근으로 출발했다. 둘이서 어릴 때 함께 여러 번 가봤던 마을이라는데, 기억하고 있는 마을 이름을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입력해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현재로선 오직 50여 년 전의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려 찾아야할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설령 마을을 찾는다 해도 올해로 70대 중반쯤 되었을 것이라는 처고모를 과연 뵐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 까닭은, “지금까지 그 마을에 살고 계실까!” “50여 년 전에 정신이상 증상을 보였다는데 여태껏 괜찮을까!” “혹시 양로원 등에 계시지는 않을까!” 등의 여러 토막생각(주2)들이 뇌리를 스쳐갔기 때문이다.
월출산 자락에 도착하고서도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50여 년 전의 기억을 더듬느라 애쓰는 모습만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할 세월이니, 그동안 새 길이 뚫리고 지형도 많이 바뀌었을 텐데 어디 쉬운 일이었으랴. 면사무소에 문의해도 그런 마을은 없다는 답변뿐이어서 막막할 따름이었다. 한참을 전전긍긍하다가 마침 근처를 지나는 한 노인에게 마을 이름을 대며 물었더니, “저기 보이는 마을인데 예전에는 그렇게 부르기도 했으나 지금은 마을 이름이 바뀌었어요.”라며 1킬로미터쯤 떨어진 마을을 가리켰다.
거기에서 지름길인 비좁은 농로를 따라 노인이 가리킨 제법 큰 마을로 들어섰다. 길가의 예수남은 되어 보이는 아낙에게 처고모의 성함과 친정마을 등을 대며 물으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장서며 따라 오란다. 우선은 그 마을에 산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기에 무척 반가웠다. 안내자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서니 저만치 텃밭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고 호미로 밭을 매고 있는 지긋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직감적으로 처고모임을 느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안내자의 발길도 거기였다. 언뜻 뒷모습만으로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척 건강해 보였다. 물론 몇 발짝 앞서가던 아내와 처제는 벌써 알아보고 달려가더니, 서로 양쪽에서 끌어안은 채 반가운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다.
시집 갈 무렵에 정신이상 증상을 보인데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여태껏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70대 중반에 이르렀을 처고모, 하지만 그동안 품었던 선입견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놀랐다. 우선 우리 일행을 대하는 태도가 나볏한데다 용모도 단정하고 고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50여 년 전에 정신이상 증상을 보였다는 분의 행동거지가 아니었다. 한참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들어가자고 하니 집이 지저분하다며 한사코 마다하셨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헤어질 수 없었기에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대접하고는 많지 않은 용돈을 드리자 고맙다며 빙그레 웃으셨다.
그런데 뜬금없이 큰 올케(처 백모)가 보고 싶단다. 당신의 큰 올케라면 예전에 목돈을 갚지도 않고 되레 손찌검까지 일삼았던 배다른 큰오빠의 미망인을 이른다. 세월이 약이라던가. 우리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숙연한 마음으로 처고모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과거의 상흔이 털끝만치도 남아있지 않은 초연(超然)한 자태였기에 머리가 숙여졌다.
점심을 먹고 나서 네 사람을 태운 애마가 처고모 마을에 이르렀는데 어쩐 일일까? 처음 뵈었을 때는 집이 지저분하다며 한사코 마다하시더니 그때는 들어가서 차 한 잔 하고 가란다. 우리는 처고모 댁에 들러 차를 마시고 작별을 고하고는 가까운 월출산으로 향하여 중턱의 구름다리에 올랐다. 사방을 둘러보니 바위사이의 겅성드뭇한 소나무들이 하나같이 허리를 굽히고 나지막하게 꿇어앉아, 처고모를 대면하고 올라온 우리들을 맞이했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선입견(先入見)은 대게 맞아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만약 오래도록 소식을 몰라 무척 보고 싶은 사람을 직접 대면했을 때, 선입견보다 더 못하면 실망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선입견보다 오히려 더 낫다면 오달지고 뿌듯하지 않으랴. 특히 월출산 자락에서 처고모를 뵈었던 날에 그러했으니, 여태껏 마음속에 틀어박혀있던 용천스런 선입견이 쫓겨난 날이기도 했다.
(주1)시앗 : 남편의 첩.
(주2)토막생각 : 순간순간 떠오르는 짧은 생각.
기사더보기:
https://www.miraenews.co.kr/news_gisa/gisa_view.htm?gisa_category=02060000&gisa_idx=179215
#박철한 #수필가 #쫓겨난선입견 #미래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