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에 봄이 온다는 것은 인체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을 말하며 체내 신진대사가 왕성해진다는 뜻이다. 이때 우리가 봄을 맞이하는 자세는 양기를 북돋우고, 긴 겨울 동안 쌓인 몸 안의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하는 음식들은 맛이 맵고 쓴 봄나물이니 이 봄에 나는 나물들을 잘 챙겨 먹음으로써 자칫 나른해지기 쉬운 봄을 건강하게 날 수 있다.
건강하게 달달한 고로쇠물밥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뭇과 활엽 교목으로 달달한 수액이 풍부해 이른 봄 경칩을 전후로 수액을 채취해서 음용한다. 고로쇠물 채취는 누군가 엄청나게 큰 위험을 감수해야 가능한 일이다. 눈이 내리는 겨울부터 길도 없는 산길을 오르내리며 준비해야 채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 나무를 괴롭히는 일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한 번이라도 수액 맛을 본 사람은 그 맛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아 채취와 음용이 계속되고 있다.
고로쇠수액은 채취해서 바로 마시면 맑은 것이 그냥 물맛 좋은 어느 산골의 샘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상온에 두고 하루 이틀 지나면 색이 점차 탁해지면서 그만큼의 단맛이 생긴다. 가끔 침전물이 생기기도 하지만 상한 것은 아니니 이때쯤은 바로 마시지 않고 장을 담그거나 닭을 삶아 먹거나 물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밥물로 쓴다.
고로쇠물로 밥을 하면 '뼈에 좋다'는 골리수(骨利水)로 서의 여러 효능과 무관하게 일단 밥맛이 좋다. 밥의 뜸을 들이다가 밥솥 뚜껑을 열면 흰밥이 내는 구수한 향에 고로쇠수액의 달달함이 더해져 마음이 바빠진다. 이렇듯 잘 지은 밥은 반찬이 필요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부재료를 넣지 않고 흰쌀로만 밥을 지어도 제대로 잘 지으면 정말 김치 하나만 있어도 밥이 꿀꺽하고 잘 넘어간다.
고로쇠물로 지은 밥은 더 그렇다. 이 밥이 더 달달한 이유는,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데 가장 중심이 되는 영양 성분인 당을 고로쇠물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당이 쌀에 있는 탄수화물과 만나 상승 작용을 일으키지만 결코 거슬리는 단맛을 내는 건 아니다. 고로쇠물의 질 좋은 당은 에너지 공급을 넘어서 겨울 동안 인체에 쌓여 있던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도 하므로 이 봄에 더욱 가치 있다. 고로쇠물로 지은 밥이 겨울을 나고 봄을 준비하는 우리 몸에 기운을 보충해 주므로 추천해 본다.
다만 고로쇠수액은 그 자체에 일정한 농도가 있으므로 밥물을 맞출 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쌀 품종에 따라서도 물을 흡수하는 정도가 달라 밥물 조절이 필요하지만 어떤 품종의 쌀이든 전체적으로는 밥물을 조금 더 잡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해도 탄력 넘치는 밥이 된다.
● 고로쇠물밥
재료
쌀 2컵, 고로쇠물 2.5컵
만드는 법
① 쌀을 손으로 가볍게 비비면서 3~4번 씻어 건진다.
② 압력밥솥에 씻어 건진 쌀을 넣는다.
③ 밥물로 고로쇠물을 붓고 30분간 불린다.
④ 솥을 불에 올리고 중불로 끓이다가 추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불을 줄인다.
⑤ 2~3분 뒤 불을 끄고 김이 저절로 빠질 때까지 둔다.
⑥ 뚜껑을 열고 밥을 고루 섞어 푼다.
톡 쏘다가도 은근해지는 맛, 풋마늘김치
가을이 꼬리를 감추고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김장을 담근다. 그리고 벼를 거둔 논이나, 김장 배추나 무를 심었던 밭에 마늘을 심는다. 통마늘의 겉껍질을 한 꺼풀 벗기고 한 알씩 떼어 내서 딱 제 몸만큼의 두께로 흙을 덮어 두면 혼자서 혹독한 겨울 추위를 잘도 견디고 봄이 되면 푸른 잎을 올린다. 마늘이 지상으로 푸른 잎을 보이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온다. 혹독한 추위를 이기느라 애를 쓴 탓인지 다른 뿌리채소와 달리 단단하다. 그리고 톡 쏘는 매운맛이 매력적이다.
이렇게 마늘에서 푸른 잎이 한 뼘쯤 자랐을 때, 따로 남겨 놓은 마늘들은 건조해져 푸석거리고 싹이 나와 마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러나 때맞춰 밭에서 풋마늘이 자라고 있어 좋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풋풋함이 맛에서도 느껴지므로 밥상에 올리면 묵은 마늘의 구태를 한 방에 제압한다.
풋마늘은 손질해 살짝 데치면 매운맛은 줄어들고 향은 살아난다. 더불어 단맛이 같이 오므로 반찬으로 먹기에 손색이 없다. 그러나 곧 꽃이 피기 위해 꽃대인 마늘종이 올라오므로 풋마늘을 밥상에 올릴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 그러니 넉넉히 구입해 김치를 담가 두고 오래 먹으면 좋다. 갓 담가서는 까다로운 시어머니의 잔소리 같은 매운맛이 혀를 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매운맛은 차츰 옅어지고 발효되어 나오는 신맛과 단맛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마치 세월에 녹아든 고부간의 끈적끈적함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 풋마늘김치
재료
풋마늘 1kg, 통깨 3큰술
김치 양념: 멸치액젓 1/2컵, 고춧가루 5큰술, 생강술 1큰술
만드는 법
① 풋마늘은 뿌리째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한다.
② 손질한 풋마늘의 뿌리 부분은 길이로 반을 가르고 4~5cm 길이로 썬다.
③ 김치 양념을 만든다.
④ 손질한 풋마늘에 김치 양념을 넣고 잘 버무린다.
⑤ 통깨로 마무리해 용기에 담아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꼭꼭 눌러 놓는다.
⑥ 상온에서 2~3일 익힌 뒤 냉장고에 넣고 원하는 정도로 숙성시켜 먹는다.
※ 적은 양으로 바로 먹을 것은 풋마늘을 살짝 데쳐서 담가도 좋다.
우리 몸을 정화하는 미나리주꾸미무침
어릴 때 내가 살던 마을엔, 집마다 내보내는 생활 오수들이 모여 흐르는 끝자락쯤에 자연적으로 생긴 미나리꽝이 있었다. 미나리꽝을 지나 내려가는 물은 유입될 때와 다르게 엄청 맑아져 있었다. 어른들은 미나리가 물을 정화하는 작용이 있다고 하셨다. 학교에서는 미나리가 우리 몸에 쌓인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일을 한다고 알려 주었다. 미나리가 오수가 지나가는 습지에 살면서 불필요한 것들을 걸러 내고 푸르게 자라듯이 간도 우리 몸에서 같은 역할을 한다. 외부에서 인체로 들어온 음식물을 대사 후 거르고 해독하는 일을 간이 하는 것이다.
주꾸미는 지금부터 제철이라 맛이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가 머리라고 부르는 둥근 부분에는 밥처럼 하얀 알들이 가득 들어 있다. 제대로 잘 익혀 먹으면 정말로 밥알을 씹는 식감이 느껴진다. 주꾸미는 오징어나 낙지 등과 같이 타우린이 풍부해 봄철에 나른해지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데 좋은 식품이다. 또한 간의 해독 작용을 돕는다.
미나리와 주꾸미를 살짝 데쳐 새콤달콤하게 무쳐 한입 먹으면 앞서 늘어놓은 건강에 대한 많은 정보 따위는 저리 가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무엇보다 맛있기 때문이다. 초록빛을 더욱 빛나게 하는 미나리의 아삭한 식감에 주꾸미의 부드럽게 쫄깃한 식감이 만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맛을 낸다. 그렇게 맛있게 먹은 미나리와 주꾸미로 우리 몸이 맑게 정화되면 봄이 우리에게 보내는 초록 세상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 미나리주꾸미무침
재료
주꾸미 6마리, 미나리 1/2단
초고추장 양념: 간장 1작은술, 고추장 2큰술, 고춧가루 1큰술, 식초 1큰술, 다진 파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볶은 참깨 약간
만드는 법
① 초고추장 양념을 미리 만들어 둔다.
② 미나리는 손질해 깨끗이 씻은 뒤 데쳐 낸다.
③ 주꾸미는 밀가루를 넣고 주물러 깨끗이 씻은 뒤 몸통과 다리를 분리해 몸통 속 내장과 눈 등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한다.
④ 손질한 주꾸미를 끓는 물에 넣고 다시 끓기 시작하는 시점까지만 데쳐 재빨리 건진 뒤 물기를 제거한다.
⑤ 미나리와 데친 주꾸미를 크기를 맞춰 썰고, 준비한 양념에 버무려 담거나 양념과 따로 그릇에 담아낸다.
봄을 맞는 자세
봄은 가을이 겨울에게 남긴 잔해들이 시간과 어우러져 삭아 들고 마침내 새로운 생명으로 잉태되어 우리에게로 오는 계절이다. 어둡고 추운 고난의 시간을 이겨 낸 개선장군처럼 승전보를 들고 봄이 왔다. 그렇게 같이 온 고로쇠수액과 풋마늘, 미나리와 주꾸미를 밥상에 올리면 우리 몸에도 봄이 올 것이다. 이제 우리도 그 시간들을 보내며 안으로 쌓아 둔 묵은내를 맛있는 음식으로 씻어 내고 새롭게 기지개를 켜며 일어서 새로운 한 해를 멋지게 보내야 한다. 봄을 맞이하는 자세는 꽃놀이에 있지 않으니 구하기 쉬운 식재료를 이용해 밥상을 꽃피우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