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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에 펼쳐진 초원. |
“솔롱고스?”
몽골 북쪽 다라하드 지역의 한 주민이 자꾸 물었다. 솔롱고스냐고.
몽골인들은 한국 사람을 코리아라고 하지 않는다. 몽골말로 ‘무지개’라는 꿈과 이상을 뜻하는 솔롱고스라고 부른다. 오방색 한복을 입는 옛 고구려인을 지칭한 말인데 현재도 우리를 솔롱고스라 부르는 것이 신기하고 반가웠다.
지난 달 15일부터 10일간 몽골 여행은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이번 여행은 사실 쉬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작업을 위한 여행이였다. 사진을 찍을 욕심에 고생길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였다.
영하 40도의 냉동고 추위는 지금도 아찔하다.난생 영하 10도 이상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체류 내내 두려움과 긴장으로 설잠을 자야했다.
사실 이번 여행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몽골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성준환(47) PD의 동행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상파 방송의 환경 다큐 몽골편 제작을 위해 사전 답사를 동행한 것이다.
그동안 국내 인문학 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총,균,쇠’(제레드 다이아몬드, 문학과사상사)를 읽으며 인류 문명의 기원과 문명의 상대성의 요인 등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몽골 촬영 권유를 뿌리치기는 쉽지 않았다.
인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유목 문화의 본류를 확인하고 싶었다. 또한 우리 민족의 뿌리를 몽골 코리 부리야트족에서 찾고자 하는 ‘마음을 잡는 자, 세상를 잡는다’(서정록저,학고재)의 책도 휼륭한 길잡이가 되주었다.
▲ 몽골 초원에서 얼음을 싣는 말. |
팍스-몽골리아’ 역사인가 신화인가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7배가 넘는 그 광활한 대륙에서 흩어져 사는 거친 유목민들을 칭기스칸이 어떻게 하나로 뭉쳐 유럽을 정복할 수 있었을까라는 점이였다. 고구려 이후 대륙적 사고를 경험하지 못한 우리에게 ‘팍스-몽골리아’ 건설은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7배가 넘는 그 광활한 대륙에서 흩어져 사는 거친 유목민들을 칭기스칸이 어떻게 하나로 뭉쳐 유럽을 정복할 수 있었을까라는 점이였다. 고구려 이후 대륙적 사고를 경험하지 못한 우리에게 ‘팍스-몽골리아’ 건설은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머른시로 이동해 러시아제 jeep ‘보르곤’ 을 타고 8시간 가량 다라하드(dakhard)지역으로 이동하는 내내 이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아무리 험한 몽골 초원의 길이라도 거침없이 달린다는 차가 보르곤과 현대차 ‘엑셀’이다. 엑셀이 돌밭같은 초원 길과 빙판을 거침없이 달리는 것을 보면 믿기지 않을 것이다.
바다만 보고 자라 온 나에게 하늘과 맞닿은 360도 지평선은 ‘이게 태초의 자연인가’라는 탄식과 함께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밤이면 완전한 정적이 초원을 덮쳤다. 총총한 별들만 소리를 낼 뿐이다.
이토록 넓은 땅에 각 부족별로 흩어져 사는 유목민들을 어떻게 단결하게 했을까. 학자들은 인간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무엇보다 강조한 칭기즈칸의 지도력에 그 해답을 찾지만 믿어지지 않았다.
칭기즈칸이 800여년전 몽골제국을 통일할 당시 적으로 간주한 부족의 부하들이 주인을 배신하고 투항한 경우 가차없이 목을 벳다. 항복한 적이라 할지라도 주인을 배신한 것은 용서하지 않은 것이다. 이게 몽골 제국의 힘이 됐다는 것이다.
몽골 말에는 영원한 친구를 뜻하는 ‘안다’라는 말이 있다. 안다가 된다는 것은 맹약을 맺는 것이다.
칭기즈칸이 몽골 고원을 통일할 당시 숙명의 라이벌 자모카의 부대를 섬멸했지만 자모카를 죽이지 않았고, 자모카 역시 테무진에게 해가 될 수 없다며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아무리 적이라도 한번 ‘안다’를 맺으면 우정과 신뢰는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안다’의 정신이 거친유목민들을 단단한 바위로 만들었다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역사로서 이해가 되는 부분이지 나는 쉽게 믿기지가 않는다. ‘팍스-몽골리아’가 신화라면 모를까.
안타깝게도 오늘날 몽골 젊은 세대들은 칭기즈칸을 그다지 영웅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몽골 비사’외에는 달리 ‘칭기즈칸’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게 이유다. 이동이 잦은 유목문화의 특성상 기록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에 칭기즈칸 공항이 있지만 요즘 세대들은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한국 드라마와 가요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 몽골 석탄 발전소. |
신이 내린 대자연의 재앙
인구 280만의 몽골 인구중 100만 가량이 울란바타르 수도에 살고 있다. 현대식 아파트와 유목민의 전통 가옥 ‘게르’가 공존하고 있다.
기후 온난화 현상으로 유목이 힘들어지면서 유목민들이 도시로 밀려들면서 인구 3분의 1이상이 울란바타르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지금 울란바타르는 환경 재앙에 신음하는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 석탄발전소와 자동차, 가정 집 석탄 난로 등에서 내뿜는 매연은 엄청나다.
일부 주민들은 정부 감시 눈을 피해 ‘페 타이어’를 난로 연료로 사용해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고, 아침 저녁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지만 몽골인들은 익숙해 보였다.
이렇게 신이 내린 대자연이 심각한 재앙을 맞고 있지만 달리 해법이 없어 보여 답답할 뿐이다. 요즘 날마다 보도되는 미세먼지가 여기서 날아가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들 정도다.
이런 울란바타르와 대비되는 곳이 몽골의 대표적인 청정 지역인 다라하드다. 아름다운 호수로 유명한 이 곳은 최근 광산회사가 들어서려고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금도 자본의 거센 파도에 맞선 힘겨운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학생들은 자연보호를 위해 설산의 잔가지를 매일 줍고 있었다.
물이 귀한 이 곳의 식수는 눈과 호수 얼음이다. 설산의 눈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대자연의 품에 천여 명이 채 안되는 주민들은 목축으로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욕망의 이기란 찾을 수 없는 무욕의 마을 그 자체였다. 이런 마을에 과연 신이 개입할 여지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들의 신앙은 자연 그 자체다.
그래서 21세기 현재에도 샤먼이 존재하고 있다. 마을마다 돌과 나무로 만든 오보 즉 우리의 서낭당같은 신전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때 러시아가 지배하면서 라마승을 싹쓸이 했지만 전통 신앙은 없애지 못했다. 이 곳에서는 겨울철이면 늑대 사냥을 주로 한다.
운좋게도 다라하드 최고의 포수로부터 늑대 이빨을 선물로 받았지만 가져 오지 못했다. 늑대 이빨을 남자가 목걸이로 만들어 매면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고 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세계 최고의 개방감을 맛보지 못한 점이다. 전설의 세계 방랑 노트 ‘love & free’ 저자 다카하시 아유무는 세상 최고의 개방감은 별이 총총한 하늘 밑 몽골 초원에서 똥누기라 했는데 너무 추워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막대한 자원을 둘러싼 쟁탈전
몽골은 한반도 7배의 땅, 인구는 고작 300만이 안되지만 엄청난 자원이 매장되어 있다.
1000억 톤의 석탄과 50억 배럴의 석유, 5억4000톤의 구리를 비롯해 우라늄, 은, 반도체 산업의 진주로 불리는 희토류까지(‘마음을 잡는 자, 세상을 잡는다’ 참고)없는 게 없다.
중국, 러시아,미국, 일본 등이 몽골에 목을 매고 총성없는 전쟁을 펼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 외교를 자원 외교라고 정의한다면 몽골은 현재 열강의 자원 외교 중심에 있는 셈이다.
몽골은 옛부터 유라시아 역사의 키워드였다. 따라서 몽골을 누가 지배하는냐에 따라 유라시아의 정세 판도가 달라지게 된다.
우리나라도 개발도상국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공적 원조를 전담하는 코이카가 파견돼 활발히 자원 외교전에 가담하고 있는 추세이다.
일본은 이미 세계 최대 케시미어 생산국인 몽골의 대표 기업을 손에 넣을 정도로 몽골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축이 아시아로 이동하면서 몽골의 지정학적 가치는 수치화하기 어려울 정도다.
몽골은 우리나라를 어머니의 나라로 부를 정도로 가깝다. 특히 바다가 있는 여수같은 도시에는 환상을 갖고 있을 정도다.
최근 몽골 검사들이 여수세계박람회장을 견학하면서 탄성을 자아냈다. 마치 내가 초원의 고속도로를 보고 탄성을 지르듯이 말이다.
여수는 그동안 교회를 중심으로 선교 일환으로 교류를 해왔지만 문화,예술,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활발한 교류가 필요할 듯 싶다. 무엇보다도 해양 도시의 청소년들에게 대륙적 사고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기회가 된다면 아직 한국 방송에서 접근하지 못했다는 고비 사막의 곰과 유목 문화의 전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는 홉트족 마을을 꼭 한번 촬영해 보고 싶다.
<박성태 /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