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때 군사도로로 역사의 현장 마래터널
여수에는 조선총독부의 황무지개발이나 갯벌매립 장려정책에 따라 여수거주 일본인들에 의해 1914년에 공사를 시작해 1916년 10월 12일 바다를 매립 조성을 완성한 진남상가와 서시장, 교동, 충무동, 서교동 일대, 광무동 일부도 매립공사를 통해 조성 된 곳이다. 필자가 사역한 종포에는 1930년, 아이치현 어업이민단이 활동한 곳으로 당시 평화동으로 75필지 7,440평을 매립하는 등 여수를 식민지 지배와 수탈을 목적으로 바다를 매웠다고 분석하고 있는 걸 본다.
뿐만아니다. 여수에는 이색적인 마래터널이 있다. 83m의 마래 1터널은 1926년 일제 강점기 때 군량미 창고로 쓰기 위해 조선인과 중국인을 노역으로 쓰며 만든 터널로 강제 동원된 노역자들이 쇠망치와 곡괭이로 일일이 파낸 터널로 작업 도중에 다치고 죽는 사고가 다반사였던 비극의 현장이었다.
그 옆에 군사도로로 사용하기 위해 설계된 마래2터널로 길이 630m, 높이 4.3m, 폭 4.5m의 자연암반으로 형성된 터널이다. 14연대 반란 당시에는 민간인 학살현장으로 죽음의 터널이라고 알려져 있다. 만성리쪽에는 희생자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마래터널은 양옆이 바위로 산속 바위를 그대로 뚫어놓았다.
마래터널은 1차선 외길로 일방통행으로 통과하며 전면 신호에 초록불이 들어오면 통과한다. 터널 통과 시 시속 30km 이상과 50km 이하로 통과하면 된다. 터널 통과 높이는 4.3m 이하 차량만 가능하다. 중간에 여러개 갓길 정비 쉼터가 있다. 중앙에 조명이 들어오며 색상 조명이다. 2004년 12월 31일 등록문화재 제116호로 지정되었다.
1982년 3월 5일 여수시와 일본 가라츠시는 자매도시로 체결하였으며, 공무원 교환 근무, 로터리틀럽, 청년회의소 등 민간단체 40년 교류역사와 여수와 일본을 오가고 있고 일본관광객들이 여수를 다녀가고 있다. 필자부부의 경우 일본을 다녀온 바 있으며, 지금도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 따라서 대일 관계에 대한 재조명운동이 일부 교계에서 일고 있는 걸 본다. /여수=정우평 목사, 010-2279-8728【교계소식/25데스크】문서선교후원계좌 우체국 500314-02-264196 정우평 yjjw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