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참 맛은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보는 데 있다. 좋은 풍경을 눈으로만 보고 끝낼 것이 아니라 직접 땅을 밟고, 바람을 느끼고, 향기를 맡으며 온몸으로 체험하는 묘미가 있는 것. 그런 면에서 걷기여행은 자연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걷기여행 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봄을 만끽할 수 있는 대한민국 길을 엄선했다.
봄 향기 가득한 꽃길
최대한 느리게 걷고 싶은 길, 완도 슬로시티 청산도 길
-한국여행작가협회 이시목
청산도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슬로시티’로 인정받은 섬이다. 그만큼 전통문화와 자연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어서, 영화와 드라마 무대로 종종 쓰인다. 그곳에 가면 황톳길, 돌담길이 꿈결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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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산도
전라남도 완도항에서 철부선을 타고 50리 뱃길을 가면 푸른 섬 청산도가 나온다. 이곳은 황톳길과 돌담에 노란 유채꽃과 초록의 보리가 어우러지는 4월이 특히 아름답다. 일부러 천천히 걷고자 하지 않아도 눈길 둘 곳이 많아 자연스레 걸음이 느려질 만한 경치다. 특히 당리마을 언덕길에 있는 영화 <서편제> 촬영 세트장인 초가마을과 TV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인 왈츠하우스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끄는 주요 공간 중 하나. 잠시 동안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볼 수 있다.
걷기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상서마을은 구불구불한 돌담길이 마을 전체에 뻗어 있어 인상 깊은 곳이다. 흙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자연석으로만 층층이 쌓아올린 돌담길이 걷는 재미를 더해준다.
천천히 걷고 난 후에는 섬 동쪽에 있는 신흥해수욕장에서 물놀이도 즐길 수 있다. 이곳은 썰물 때 드러나는 풀 등이 눈길을 끄는 곳이다. 무릎 높이밖에 물이 차지 않아 여름철 가족 물놀이 장소로 제격이다.
추천코스 완도청리선착장→영화 <서편제> 촬영지→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하마비·지석묘→범바위 갈림길(우측 방면 범바위 왕복)→청계농협 간이집하장→양지마을→신흥리사무소→신흥해수욕장→동촌마을→상서마을
위치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도청리선착장~상서리 마을회관
소요시간 4시간
눈부시게 펼쳐진 매화의 향연, 광양 섬진강 꽃길
-한국여행작가협회 구동관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 때문에 유난히 풍경이 좋기로 소문난 섬진강변. 구례에서 화개를 거쳐 하동을 지나는 19번 국도나, 구례에서 광양으로 향하는 861번 지방도로는 그 풍경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낸다. 섬진강의 잔잔한 물길과 강변의 가파른 비탈이 대비되는 경치는 어느 계절에라도 좋지만, 특히 매화꽃이 활짝 피는 봄철에 더욱 좋다.
그 아름다움의 절정은 매화마을이다. 차를 타고 지나치기보다는 천천히 걸으면서 꽃의 날림을 그대로 느껴보는 게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매화의 향긋한 냄새와 아름다운 자태를 따라 걸으면 봄날의 기운을 물씬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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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주변 벚꽃길
매화 향기에 취해 걷다 보면 어느새 청매실 농원에 다다른다. 그곳의 매실나무 숲을 통과하고, 왕대나무 길도 지나면 영화 <천년학> 촬영장이다. 청매실 농원을 빠져나와 소학정마을과 송정공원까지 이어진 길을 계속 따라 가보자. 송정공원에는 섬진강으로 바짝 다가가 걸을 수 있는 강변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다. 청매실농원에서 송정까지의 코스는 지방도로를 따라 걷는 것도 좋지만, 섬진강 쪽으로 다가가 제방을 걷는 일도 즐겁다. 지방도로를 따라 걸으면 매화꽃과 가깝고, 제방을 걸으면 강과 가깝다.
추천 코스 섬진나루터→청매실농원 주차장→왕대나무숲, 영화 <천년학> 세트장→소학정마을→송정공원
위치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고사리
소요시간 2시간 30분
고즈넉한 산사 길
-여행작가 김산환
미당의 시가 남아 있는 고창 선운산 가는 길
선운산에는 수많은 전설이 전해진다. 왕위를 버리고 이 산의 굴에서 도를 닦았다는 신라의 진흥왕 이야기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하면서 뚫고 지나 갔다는 용문굴 전설까지 내용도 다채롭다.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까닭은 아무래도 범상치 않은 이 산의 자태 때문이다. 선운산은 예부터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렸다. ‘금강’이라 붙은 산들은 하나같이 산세가 험하거나 암봉으로 되어 있다. 선운산도 마찬가지. 선운산에서 가장 험악한 천마봉에 올라보면 기묘한 산세를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바위로 깎아지른 천마봉도 용문굴까지만 통과하면, 힘 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선운사 하면 동백꽃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대웅전 뒤편 숲에 자리한 동백나무 군락은 꽃이 만개할 때는 마치 수만 개의 연등을 달아놓은 듯 화려하다. 4월 중순부터 말까지 절정을 이루는데, 이때는 선암사 길이 사람들로 넘쳐난다.
인근에 볼거리도 다양하다. 선운산에서 지척 거리에 있는 미당 서정주 문학관. 이곳은 서정주 시인이 타계한 후 2001년 폐교된 선운사 분교에 세워졌다. 미당의 육필 원고와 시집, 그가 쓰던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또한 영광 방면으로 10km 정도 가면 삼양염전이 있다. 소금창고와 천일염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해질녘 석양에 물든 염전과 소금을 모으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추천 코스 선운사→도솔암→천마봉/선운사~장사송~도솔암
위치 전북 고창군 심원면
소요시간 3~4시간
순천 조계산 굴목이재 선암사에서 송광사까지
매화 가운데 가장 고결하다는 선암매가 있는 전남 순천 선암사. 선암매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피어오른 뒤 다른 곳에 비해 꼭 한 박자씩 늦게 꽃이 핀다. 워낙 깊은 산속인데다가 그늘이 많기 때문. 신록이 깊어지는 오월에도 선암사의 꽃물결은 끝나지 않는다. 철쭉은 녹음 속에 핏빛으로 빛나고 대웅보전 뒤에는 불심처럼 영산홍이 붉다. 수국은 연둣빛 꽃망울을 수북하게 터뜨린다. 선암사에는 진즉에 진 벚꽃도 때늦게 함박눈처럼 쏟아지곤 한다. 선암사는 그야말로 ‘꽃절’이다.
선암사를 왼쪽으로 돌아가면 굴목이재로 가는 길이다. 굴목이재는 한국 불교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고개다. 왕벚꽃나무, 편백나무 등 산속에서 뻗어 있는 나무들을 구경하고 지나다 보면 제법 산길다운 등산로가 펼쳐진다. 이 길을 따라 선암사와 송광사를 오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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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산
선암사에서 송광사까지는 6.8km, 3시간이 좀 넘는다. 어느 쪽부터 시작해도 상관은 없지만 선암사에서 출발하는 것이 산길을 오르면서 볼 것도 많고, 산을 타기가 수월한 편이라 선호하는 방법이다.
송광사에서 20분 거리에 낙안읍성이 있다. 충남 서산 해미읍성과 더불어 평야지대에 만든 읍성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된 곳이다. 조계산을 찾았다면 이곳까지 함께 구경해볼 만하다.
추천 코스 승선교→선암사→편백나무숲→굴목이재→송광사
위치 전남 순천시 승주읍, 송광리
소요시간 왕복 3~4시간
맑고 청량한 숲길
-산림학자 이천용
2천 년 세월을 간직한 고갯길 월악산 하늘재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하늘재’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뚫린 고갯길이다. 청량한 하늘 아래 시원한 바람 길이 열리는 곳이다. 충주 미륵리에서 하늘재까지 가는 길은 3.2km라고 하지만 천천히 가도 한 시간이면 족하다.
하늘재로 향하는 길은 다양한 나무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처음 펼쳐진 소나무 숲이 낙엽송 숲으로 바뀌고 다시 신갈나무 숲이 나온 뒤 낙엽송 숲으로 이어지다가 하늘재에 가까워질수록 소나무로 점차 바뀐다. 숲에 가렸던 하늘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면서 숲을 빠져나오면 드디어 하늘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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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악산
주차장 쪽으로 발걸음을 돌려 관찰로로 들어가보면 겨우 한 사람만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좁다. 쓸데없이 큰 길을 만들어 숲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도다. 소나무 사이, 작은 나무들이 자라나고 새소리, 물소리와 벗하며 걷는 숲길의 운치를 만끽해보자.
위치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58
소요시간 2시간
천년고찰 김룡사를 감싸 안은 숲 문경 운달계곡 숲길
김룡사 주변의 숲은 백 년 이상 된 여러 수종이 함께 모여 사는 희귀한 숲이다. 다른 숲에서는 보기 어려운 활엽수와 그들 사이에 우뚝 솟아 자라는 전나무는 특히 보존해야 할 수종으로 꼽히고 있다. 전나무는 인간의 영향을 받으면 파괴되기 쉬운 나무이기 때문이다.
절의 시작을 알리는 홍하문을 지나 약 200m 가량 오르면 두 갈래길이 나타난다. 전나무 숲이 마치 터널처럼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길을 따라가면 그 끝에 있는 천왕문이 반긴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면 대웅전 뒤편으로 어느새 전나무가 아닌 울창한 소나무가 가득 차 있다.
절 오른쪽으로는 명부전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 있다. 왼쪽 산비탈길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서어나무와 소나무 혼합림을 만날 수 있다. 명부전 뒷산에는 부챗살 모양의 소나무 숲이 자리하고 앞 언덕에도 소나무, 느티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30m 앞쪽 조그만 쉼터에 앉아 대웅전 뒷산의 소나무 숲과 멀리 전나무와 활엽수가 그려내는 봄 숲 풍경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위치 경북 문경시 산북면 김용리
소요시간 1시간
/ 여성조선
취재 박주선 기자 | 사진 각 출판사, 조선일보 DB
참고도서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1>(위즈덤하우스),
<걷는 것이 쉬는 것이다>(실천문학사), <주말이 기다려지는 숲속 걷기여행>(터치아트)
첫댓글 좋은길 안내 감사 합니다
ㅎㅎㅎ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