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가천리 산11
병인박해 때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순교했다고 전해지는 화장 터 바위
상주시 청리면 덕산리에 있는 서산(西山 509m)은 김천에서 상주로 가는 국도변에 위치한 청리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4㎞ 떨어진 들 가운데 삿갓 모양으로 우뚝 솟은 청수하고 아담한 산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큰 전공을 세운 서산대사의 제자들이 그의 영정각을 이곳에 짓고 수호해 오다가
1899년 상주 목사 이한능이 헐어 버렸다고 한다.
이 서산(西山)은 상주 공성면과 외남면 청리면의 접경지역에 있으며 옛날 박해시대 때 이 부근에 신자들이
많이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서산(西山)은 상주 공성면과 외남면 청리면의 접경지역에 있으며 옛날 박해시대 때 이 부근에 신자들이
많이 살았다고전해지고 있다.
특히 청리면의 율리(밤밭)와 이웃의 삼괴리 마을 등에는 많은 신자들이 살았는데 1860년 경신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 때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이곳 서산 화장 터 바위에서 순교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 화장바위는 서산(西山)의 동쪽 산중턱에 있으며 크기가 사방 10㎡ 넓이의 약간 길쭉한 바위다.
이 바위에서 신자들을 처형시켜서 불에 태웠다고 하며 바로위에 있는 공동묘지에도 이름 모를 무명 묘소가
많이 있는데 혹시 순교한 신자들을 이곳에 묻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바위와 약간 밑쪽으로 떨어진 또 하나의 바위에는 천주교 박해 후 이 마을과 부근의 주민들이 돌림병이나
나쁜 병으로 사망하면 이 바위에서 화장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신앙고백비가 서 있는 청리면 관내는 1860년 경신박해 전에 벌써 이웃인 청리면 율리(밤밭) 마을에
많은 신자들이 살다가 1860년 경신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 때 포졸들에게 잡혀서 순교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1.5㎞ 떨어진 청리면 덕산리의 서산(西山) 화장터 바위는 앞에서 말한 1860년 경신박해 때 칠곡군
왜관(달오)의 현 가실 성당 터에 살다가 잡혀간 성순교를 비롯하여 처형을 당한 신자들의 시신을 불태워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그 후 이 바위에 돌림병이나 몹쓸 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신도 태웠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서산은 상주군 공성면, 청리면 외남면에 접한 별로 높지 않은 산이나
그 산 둘레에 탑골 청계 등 많은 옛 신자 촌들이 있다.
영남교회사연구소 마백락 소장은 성순교 후손인 대전교구 성병렬 신부와 성기운, 성병우, 전경애와 광주 이씨
칠곡대문중 종손인 이대식과 상주 서산 화장바위에 대한 증언을 한 이재언, 이석규 기타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볼 때 순교자 성순교는 천주교인으로 상주 서산에서 순교한 것이 확실시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순교자
◆ 성순교(成舜敎, 1792∼?)
성순교(成舜敎)는 창녕성씨(昌寧成氏) 명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인 성섭(成涉)은 일찍부터 성리학과
실학을 연구하다가 천주교를 받아들여서 가문의 후손들이 천주교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종증손자인 성순교(成舜敎)는 1792년 칠골 달오(왜관)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서 여러 나라의 문자와 언어를 쉽게 배웠다.
당시 유명한 실학자이며 천주교인인 다산 정약용을 따라 정치 경제의 학문을 익히고 김정희와 함께 친하게
사귀어서 매년 봄, 가을에 서로 찾아 방문하였다.
그는 당시 권문세가인 풍산 홍씨(豊山洪氏) 집안에 장가를 들어서 23세 때에 상주의 향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서 과거를 포기하였다.
그 후 처남인 홍영모와 좌의정 홍석주가 벼슬할 것을 권고했으나 “우리 집은 대대로 청백리로 내려오는 까닭에
부친께서 모두 권문세가에 의탁하고자 하지 않아 하나의 통덕랑으로 세상을 마쳤으니 내가 비록 보잘것없으나
조상들의 죄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고 사양하였다.
그는 1836년부터 청나라의 사신을 따라가서 중국 선종황제를 알현하고 이어서 공자묘와 인도의 세일론 섬의
석가모니 유적지와 서양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1841년에 러시아를 거쳐 현학로와 함께
일본도 여행하고 돌아왔다.
1859년 경신박해를 만나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가 살고 있던 가실(현재 낙산 성당) 집을
외가에 맡기고, 신자촌인 상주 청리의 율리로 쫒겨 왔다가 후에 다시 서산(청리면 덕산리)에서 순교하였다고
후손들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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