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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년 좀 보게나 장녹수건 어우동이건 저만큼이나 곱지는 못했을것이네 아 안그런가?"
"아 그렇지 그렇지 그렇고 말고! 저 한떨기 배꽃같은 자태가 어디 기생년의 그것인가? 권세 있는 가문의 무남독녀라 해도 믿을것이야!"
걸죽한 입담을 늘어놓는 사내들이 줄을 지어 말 한 필과 사내 하나를 둘러싼 채 떠날 생각을 안한다.
이유인 즉슨 그 말위에 올라앉아 있는 이가 조선 최고의 기녀라 소문이 자자하기 떄문.
그 얼굴 한번 보려 지방에서 올라온 선비들이 과거 치러 온 선비들 수보다 많다 하니 그놈의 기녀의 자태는 알만하다.
"아니 근데 저것은 왜 머리를 아직도 올리지 않은게야? 이미 머리올릴 시기는 지났을터인디?"
"아 말도말어, 글쎼 을마나 으리으리한 재물을 바라는지 온갖 폐물 마다하고 버티고 앉았대네 그 심보를 뭐 어찌 알 방도가 없
다만은 내쫓기지 않은 게 어디겄어 그것도 술 한잔 기울이는 손모가지 하나에 행수 입에 들어가는 땅문서며 집문서가 많아서이겠지만서도"
자그마한 덩치때문인지 말이 더 커보이고 그 옆에 종놈 또한 그렇다.
고삐를 쥔 하얀 손가락은 섬섬옥수 그 자체일 것이다.
기다란 속눈썹은 아래로 내리깔고 조는 것인지 살짝 눈을 감은 것인지 발갛게 물든 두 볼이 벚꽃색을 닮았다.
이 조선 최고의 미녀를 품에 안아본 이가 한명도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듯 사내들은 혀를 끌끌 찼다.
"저기 비켜라, 훠이~ 훠이~"
말 옆의 종놈이 사내들을 손으로 밀쳐내며 앞길을 트여냈다.
하지만 이내 멈추어버린다.
종도, 말도.
그 긴 속눈썹을 살짝 올리며 눈을 뜨는 기생의 눈동자는 어찌나 깊은지 또 어찌나 까맣던지.
시장바닥에 모든이들은 이것이 익숙하다.
잠깐 멈춰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뭔가를 찾는 기녀의 모습이,
그리고 이내 살짝 미소지으며 가던길을 가는 것이.
그러나 오늘은 조금 그것이 길어지는 듯 하다.
어찌된일인지 꼼짝을 하지 않는 계집은 그 검은 눈동자를 이리 저리 굴리다가 고집을 부리는 것인지 선홍빛 입술을 살짝 깨문
다.
붉게 물드는 입술이 볼만한지 사내들은 침을 꿀떡꿀떡 삼킨다.
"아씨, 이제 가셔야 합니다."
종놈이 길을 재촉한다.
뭔가를 기다리는 맘을 알기에 호통치지 못하는 것이리라.
계집이 가엽고 또 가여워서 달래기는 하지만
계집은 꼼짝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없지 않느냐. "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계집은 금방이라도 뚝- 눈물을 떨굴 기세이다.
그는 두렵다. 가는 길이 늦어져 혼쭐을 낼 행수보다는 그녀의 눈물이 세상에서 가장 두렵다.
열다섯 나이에 기방에 들어가 고된일에 매질을 견디었던 건 열네살 나이에 기생들 사이에서 가무를 배우던 계집을 담너머 처
음 본 순간 연모하게 되었던 탓이었다.
"행수 어르신 노하실 겝니다. 어서 가셔야 합니다."
사내를 야속하다는 듯이 내려다 보는 계집은 끝내 눈물을 그렁인다.
그 깊고 깊은 눈속에 자신이 비춰질리 없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았던 소년은 지금 자라 계집의 종이 되었다.
"한번도 이리한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지 않느냐. 네가 알아보거라 찾아보거라."
왕도 탐냈다 하더라.
그깟 기생년을 왕이 한번 품자고 발길을 했다 하더라.
허나 목숨이 아깝지 않은겐지 방안에서 꼼짝않고 들이지도 않았다고 하더라.
이년을 품으려면 목을 따내어 품으시라 으름장을 놨다고.
그래서 왕은 그 독기에 질려 발길을 돌렸다고.
품고 싶었던건 단 한 사람.
아버지의 빚에 팔려 기루에 와 춤과 창을 하는 것이 아닌,
사람대접 못받는 가파치(짚신 만드는 사람)의 아내가 되어 쌀밥 한번 못먹게 되어도 그의 품에 안겨 살고 싶어 했던
너무 고운게 한이고 죄였던 계집은 기적에 오른 뒤 그놈의 가파치와 제대로 된 말 한마디 주고받지 못했다.
그저 이 시끄러운 시장터에서 오가던 눈길에 마음 주고 정주고 그 투박한 손길에 고운 얼굴 한번 어루만져 지는 것이 소원이었
다.
가파치는 오죽했으랴.
계집 지나가는 말발굽 소리에 만들던 짚신 내팽개치고 달려나와 잠깐 얼굴 한번 보면 뭐가 그리 좋은지 하루종일 짚신 하나 안
팔려도 히죽히죽 웃던 바보같은 이었다.
[나 기녀가 된다. 아버지 놀음빚에 그리되었다.]
비장하게 말하던 계집의 나이 열넷이었다.
그 어린 것이 뭘 안다고 그리 서럽게 울던지 이제와 생각해도 가파치는 가슴이 저리다.
아직 어리고 실력이 미숙해 꽃신 하나 만들어 주지 못한게 평생 한이다. 동네에서 같이 자라 누이동생 오래비 하며 정 쌓더니
그것이 자라면서 사모하는 맘으로 바뀌더라.
그런 계집을 그리 허무하게 보냈다.
가진 게 없어 서럽지만 그냥 우리 도망가자는 말한마디 못꺼낸 게 더하더라.
[그래 가라 가. 우리같은 쌍것들이 출세하기는 애저녁에 글렀는데 그나마 너는 기적에 올라서 양반 하나 잘 꼬여 내면 굶어죽
지 않을테니 그리 해라. 나는 너 하나 좋으면 됐다. ]
[좋긴 뭘 좋아 이 속없는 놈아 내가 널 두고 어딜 간다고 나를 보내 보내긴 이대로 내가 분칠 하고 양반품에 안겨도 너는 아무
렇지도 않다 이거지? 그렇다 이거지?!]
뽀드득 뽀드득 거리는 눈길을 발시려운지도 모르고 계집은 달음박질을 치며 소리를 쳤다.
울음소리 메아리가 작아지고 어느덪 안들리게 되었지만 소년은 밤새 자질못했다.
첫사랑이 너무 아파서였다.
겨울내 맨발로 다녀 생긴 동상보다 시렸다.
그렇게 한 해 흘러 기녀가 된 계집이 시위라도 하듯 매일같이 시장바닥에 곱게 단장하고 들어설때마다 가파치는 마음이 두근
두근 하다가도 이내 콧등이 시큰해졌다.
저렇게 곱게 단장했는데 왜 그리 가여워 보이는지.
못난 가파치 따위를 첫맘에 품어버려 왜 그리도 힘들어 하는지.
그렇게 몇해였다.
가슴앓이 한 세월은 수년이 넘더라.
그래도 낯짝 하나 볼 수 있는게 어디랴.
그 마음 하나로 위로삼고 살아가는데 어느날 왠 노파가 찾아왔다.
행색을 보니 기생인 듯 하였으나 분위기는 양반댁 마님이었다.
"꽃신 보러 오셨습니까?"
"자네를 보러 왔네."
연고가 아무것도 없던 가파치는 의아해 하며 되물었다.
"쇤네를 아시는지요?"
"내 거두절미 하고 말하겠네. 월이랑 인연을 끊게."
청천벽력이 따로 있겠는가.
멍해진 입 사이로 침이라도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만지면 져버릴까 손끝도 안댄 꽃이 있었지요. 배운게 없고 천한 놈이라 감히 다가가지 않고 욕심내지 않았거늘 어찌 이러십니
까.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도 안된다 하시니 너무하십니다그려."
사내 맘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행수는 매일 시장터를 다녀온 월이가 들떠서 콧노래를 부르며 잔치라도 열린 양 춤을 춰대던것도 알지만
눈오는 밤이면 그 시린 밤이 생각나, 괜히 그날 처럼 발이 시리고 얼얼하여 울어재끼던 것을 잘 알기에 두고볼 수가 없었다.
"떠나주게. 그리하지 않으면 손가락을 잘라버릴 것이야. 손을 쓰지 못하면 짚신은 어떻게 만들어 내겠나 안그런가."
조근조근 말하는 행수가 제법 살벌하다.
그 뒤로도 사내는 한동안 떠나질 않았다.
"이상해, 아무래도 이상해 창이야 그 사람이 없어. 짚신만들다가도 밥먹다가도 한달음에 달려오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없잖아."
계집의 창이라 불린 종놈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가파치 놈이 이곳에 없다는 건 몸이 성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임을 알기 떄문에.
그것이 손가락이든, 모가지든.
주변 남정네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번도 말에서 내리지 않던 계집이 말에서 내려 유유히 가파치 짚신가게로 들어가버렸기 때문이다.
텅빈 가게안은 눈 발자국이 여기저기 나있었다.
짚신자국 수가 여럿이니 이곳 들어왔던 사내 또한 여럿이었으리라.
난장판이 된 가게 안은 싸늘했다.
마치 이 곳에 그 사람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흩어져 있는 핏자국만이 그곳이 주인을 잃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그적 어그적 계집은 가게안을 휘집고 다녔다.
미친 사람처럼 넋나간 표정을 하고는 눈물범벅된 얼굴로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어딘가에 숨겨놓은 짚 덩어리를 찾아내어 그 하얗고 고운 손 해질때까지 벗겨내니 붉은 색 꽃신 하나가 나온다.
[오라버니 나중에 짚신 잘 만들면 내 발에 꼭 맞는 꽃신 만들어 줘야해? ]
열살 남짓할 때 내뱉은 말이거늘 그것을 아직도..
"어찌 ..내게 이런단 말이오.."
꺽꺽 대며 울어대는 계집 손엔 붉은 실 곱게 수놓인 꽃신 한켤레가 고이 들려있다.
원앙새 한 쌍을 한땀한땀 수 놓으며 사내는 설레기도, 전해줄 수 없는 마음에 가슴이 아프기도 했으리라.
"그 뒤 며칠 지나 그 기생을 본 이는 없다합니다."
노인이 나즈막히 말을 했다.
"혹..마지막으로 본 이라도.."
다른 한노인이 묻자 노인이 대답했다.
"내가 봤소."
"어땠소 마지막 모습이"
"꽃신 품고 가더이다. 금은보화라도 되는 양 품에서 뗴어놓지 않고 그떈 이미 정신을 놓은지 오래였소. 나는 차마 잡지도 못했
소 그때 잡지 못해 죽게 놔둔 그 빌어먹을 종놈 창이가 바로 나요."
하며 자책했다.
기생의 행방을 물은 노인은 주름진 눈매를 닦아냈다.
손가락이 잘린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나는 차마.. 죽지도 못했소.."
하며 일어섰다.
첫댓글 진짜 슬퍼요 오랜만에 글 같은 글을 읽어보는 듯 하네요.. ^^
감사합니다 댓글이 있을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ㅠㅠ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무래도 신분의 차이 아닌 차이때문에 극복이 힘들었을 것 같아서요 ㅠ
잘 읽었습니다. 글을 쓰시는 솜씨가 장난 아니네요. 부러워요. 잘 읽고 갑니다.
댓글 감사드려요 이런 댓글 때문에 자꾸 글이 쓰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ㅎㅎ
우와 굉장히 잘 읽고갑니다. 문체가 너무 멋지세요
닉네임이 이뻐요 !! 열심히 쓸테니 제 글 예뻐해주세요~ㅎㅎ
어머어머어머어머 여기에 이리도 글을 잘 쓰시는 분이 있었네요!
과찬이세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