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진작가 겸 카타콤 미술 사학자 폴 쿠두나리스는 11년 동안 반려동물 무덤들을 찾아 다녔다. 맨처음 캘리포니아주 가르데나란 곳에 있는 펫 해븐 공동묘지 겸 화장장을 찾았을 때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며 눈물을 비쳤다. 그는 22일(현지시간) 영국 BBC 인터뷰를 통해 "죽음에 관한 책을 세 권이나 쓴 뒤라 어떤 것에도 영향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조그만 묘지를 5시간 돌아보며 무너지는 느낌이었다"면서 "그곳에서의 감정은 압도적이 돼갔다"고 털어놓았다.
이달 테임즈 & 허드슨 출판사에서 책 'Faithful Unto Death – Pet cemeteries, animal graves and eternal devotion'를 출간해 미국과 영국의 서점들에서 구할 수 있는데 그가 11년을 바쳐 탐사한 인간과 동물의 사랑 정수를 담아냈다. 쿠두나리스는 책을 읽다 보면 "사람은 어떤 종류의 동물과도 끈끈한 유대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참고로 애리조나주 출신인 쿠두나리스는 우리가 흔히 반려동물이 죽었다고 알릴 때 쓰는 표현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를 가장 먼저 쓴 이를 찾아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59년 스코틀랜드 인버네스에서 살던 열아홉 살 소녀 애드나 클레인레키가 레브라도 리트리버 반려견 메이저를 추모하며 쓴 시 제목이었다. 남편이 책으로 내라고 했는데 지인들에게만 복사해 돌려 봐서 상대적으로 출처를 찾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4. 세상에서 가장 충직한 반려견 세프(Shep)의 무덤(220쪽)
때때로 주인이 반려동물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반려동물이 주인을 추모하기도 한다. 세퍼드와 콜리의 믹스견인 세프(Shep)는 몬태나주에 있는 포트 벤트 기차역을 무려 6년 동안 지켰다. 돌아가신 주인의 관을 실은 열차가 동쪽으로 떠난 것이 1936년이었다. 세프는 주인이 하루 뒤면 돌아올 것으로 알았다. 지역 주민들이 데려다 키우려 했지만 한사코 거절하고 그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지역의 명사가 됐다.
불행하게도 귀가 먼 세프는 1942년 철로에 들어섰다가 열차에 치여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안타까이 여긴 주민들은 역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묻고 굵은 노랑 글씨로 묘비를 세우고 영원히 역 구내를 바라보는 모습의 실루엣을 세웠다.
1. 하이드 파크의 반려견 위트(WITT) 묘(33쪽)
인간은 수천년 동물과 반려하며 오마주를 바쳤다. 고대 이집트인들도 동물 묘지도시를 만들어 사후세계에서 함께 할지 모르는 친구들을 미라로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반려동물 묘지의 처음은 잉글랜드에서 시작됐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기였다고 쿠두나리스는 주장한다. "19세기에 처음으로 더 많은 이들이 농촌보다는 도시에서 살면서 동물 소유의 취향이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화장은 교회 반대가 심했고 동물을 인간 묘지에 안장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최초의 반려동물을 위한 도시 묘는 1881년 런던 하이드파크에 들어섰다. 사유지가 드문 지역에서 넘치는 반려동물 개체수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한 것이었다. 1895년 세상을 떠난 위트의 묘비는 지금도 있다.
2. 참전 동물들(226쪽)
프랑스 파리 시민들은 죽은 개들을 센 강에 던져버리곤 했다. 그러다 지쳐 1899년 Cimetière des Chiens에 아르누보 양식 문을 세우자 대륙 전체에 하나의 트렌드로 퍼져나갔다. 20세기의 여명에 그 개념은 지구 전체로 확대됐다. 오늘날 이를 가장 충실히 따르는 곳은 미국인들인데 괌에는 전쟁 영웅견 무덤이 조성돼 있다. 참전 동물들은 가장 존경받고 그들의 무덤은 잘 가꿔진다고 쿠두나리스는 설명한다.
그런 묘지의 대표적인 예가 이스트 런던에 있는 일포드 동물묘지다. 그곳에는 엑시터의 메리 무덤이 있는데 2차 세계대전 때 영국해협을 건너는 전서구였다. 10마리가 전서구로 활약했다. 독일은 특별히 조련된 포식 조류를 파견하고 산탄총 총알로 방해했다. 메리는 이런 희박한 생존 확률을 딛고 일어나 임무를 아주 잘 수행하며 전쟁이 끝난 1945년에야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3. 참척이란 금기(터부) BBC 기사는 쪽수를 빠뜨렸다
태국 방콕에 가면 불교 사찰 Wat Khlong Toei Nai가 있다. 주인들은 세상 떠난 반려동물들을 꽃들로 장식하고 보트에서 그들 유해를 강물에 뿌릴 수 있다. 쿠두나리스는 "서구문화에서 놓치는 것 중 하나가 끝맺음을 제공하는 의식"이라고 말한다. 반려동물 추모 카운셀러로도 일하는 그는 많은 이들이 참척의 슬픔을 너무 짧게 마친다는 점에 죄책감을 갖거나 창피해 한다고 했다. "내세나 혼이 돌고 돈다고 믿는 문화권 사람들은 한결 편하게 느끼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위계 같은 것, 터부 같은 것도 없다. 나비나 고양이, 인간으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층별 개념이 없다."
5. 사자 토니(Tawny)와 고양이 신데렐라(147쪽)
로스앤젤레스 펫 메모리얼 파크가 조성됐던 1928년에는 우리가 반려동물로 여길 수 있는 한계가 분명 존재했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근거지였던 이유로 스타들의 특이한 반려동물도 자리잡게 됐다. 미 웨스트의 원숭이 부기, 호파롱 캐시디의 승마 말, MGM 영화사 하면 떠오르는 포효하는 사자이며 타잔 영화들에도 나왔던 암사자 토니(Tawny, 1918-40) 등이다.
주인 메리 맥밀란이 새끼였을 때 서커스단에서 구출했다. 이웃들은 밤마다 으르렁거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쳐대야 했다. 길 잃은 고양이 신데델라가 함께 해 두 고양잇과 동물은 죽을 때까지 사이좋게 지냈다. 한시도 떨어지지 않자 한 무덤에 나란히 묻혔다.
6. 관까지 맞춘 암탉 블링키(Blinky, 179쪽)
1978년에 LA 펫 메모리얼 파크는 참을성 테스트의 한계에 이르렀다. 기발한 개념 아티스트 제프리 발란스가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냉동 닭을 프라이어로 구운 뒤 머리를 자른 채 묻어달라고 의뢰했던 것이다. 처음에 묘지 직원은 털 달린 수탉 시신을 예상했는데 이런 벌거숭이 통닭이 오자 눈을 치떴다고 한다. 일종의 퍼포먼스인지 그냥 묘지를 놀려먹자는 것인지 헷갈렸는데 일부 동물은 문화적 규범으로 여기고 다른 동물은 그저 먹어 치우는 것으로 여기는 기준을 묻고 싶었다는 것이 발란스의 설명이었단다.
7. 생쥐 에밀리(Emily)와 친구들(228쪽)
1990년대 초 동물권 활동가들이 발란스와 같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2만 4281 평방m 크기의 미국 메릴랜드주 아스핀 힐 메모리얼파크는 의학 실험과 제품 테스트 용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수백만 마리의 쥐를 추모하는 공간이 따로 꾸며져 있다. 묘지 곳곳에 "인간 무지와 허영심의 산물'이란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우리 양심을 주삿바늘로 찔러댄다고 했다.
8. 손으로 꾸민 임시 무덤들(232쪽)
표지판 하나 없다. 남아메리카와 미국 서부처럼 황량하고 외진 곳에 덩그러니 손으로 만든 임시 묘소. 요즘 유행하는 오프 더 그리드(off-the-grid)다. 하지만 감동은 더하다. 이곳에서는 색칠한 돌조각, 나무 십자가, 죽은 것에게 전하는 편지를 담은 우편함 등이 고작이다. 관리 사무실 같은 것도 없다. 쿠두나리스는 "그 무덤들도 스스로도 수명을 갖는다. 그것들이 자라고 스러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페인트칠한 입간판이나 실물 크기의 대리석 조각이 세워지는 것 같은 일은 잉글랜드에서 시작해 지금은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게 됐는데 모두가 같은 것, 살면서 사랑받은 동물은 존중받는 결말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는 발상에 바쳐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