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신장식 지음/ 한겨레출판
이 책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일인 2022년 3월 10일부터 현재까지 쓴 ‘신장식의 오늘’ 중 커다란 호응과 뜨거운 공감을 얻은 글 215편을 엄선해 다듬고 저자의 발문을 더해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대한민국을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로 변모시킨 그 참담한 나날을 기록한 일종의 ‘난중일기’인 셈이다. 저자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이 난리 통의 끝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책의 1장 ‘검찰 공화국의 탄생’과 5장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정치’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권력 조직이 어떻게 법, 공정, 상식을 무너뜨리는지 짚어 본다. 윤석열 정부는 세간의 비난과 우려를 무시한 채 대통령실부터 내각, 국가정보원, 금융감독원장, 국무총리 비서실까지 검찰 편중 인사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저자는 이를 두고 검사와 수사관이 완전히 장악한 판, ‘검수완판’이라고 꼬집는다.
윤석열 정부와 검찰은 법률로 규정하면 뭐든지 가능하다고 보는 잘못된 법치주의 의식을 지녔다. 그러다 보니 현재 우리 사회에는 법이 권력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법을 가지고 놀며 국민 위에 군림하는 ‘법에 의한 통치’가 활개를 치고 있다. 양손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들고 무소불위의 횡포를 휘두르는 검찰의 행태는 마치 오른손으로 왼손을 수사하고 왼손이 오른손을 기소하지 않는 것과 같다. 자신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롭지만 노조, 시민 단체, 야당 대표와 정치인들에게는 ‘척 보니 딱 사이즈가 나오는’ 엄정한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
검찰 공화국이 자행하는 권력의 횡포, 겁주고 협박하는 통치, 비상식적 언행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검사의 권력에 기생하거나 그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들, ‘검찰 캐비닛’이 두려운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한다. 이는 프랑스의 화가 장 레옹 제롬(Jean-Leon Gerome)의 작품 〈우물에서 나오는 진실〉 속 이야기와 비슷하다. 거짓은 법이라는 옷을 입고 당당하게 세상을 활보하지만, 거짓에게 옷을 빼앗기고 알몸이 되어 버린 진실은 슬픔과 탄식, 수치심을 못 이겨 우물 속으로 숨어 버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송인 최욱은 이 책의 추천사를 쓰면서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저자는 검찰 공화국의 실패를 예견한다. 전형적인 집단 사고 조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시하기 좋아하는 리더를 중심으로 강하게 뭉쳐 있고 외부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기 집단의 완전성과 도덕성에 환상을 가지고 리더의 비합리적인 의견에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그 결과 가장 똑똑하고 합리적이라 자부하는 조직이 가장 비합리적이고 비도덕적인 결정을 하는 집단 사고의 실패에 이르게 된다. 더구나 현재의 여당이 재집권하든, 야당이 정권을 탈환하든 검사들의 칼질을 경험한 정치권이 그냥 놓아둘 리 없다. 그러므로 저자는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충분히 분노하되 그 분노에만 휩쓸리지 않는 것, 그리고 그다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윤석열 정부의 600일은 우리 사회의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린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법과 국가와 시스템이 국민의 일상과 안전을 지켜 줄 것이라는 믿음도 박살냈기 때문이다. 각자의 살길과 방도를 스스로 찾아야 하는 각자도생 시대를 열린 것이다. 2장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3장 ‘대한민국 인권은 역주행 중’, 4장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에서는 노동, 일상, 재난 현장에 펼쳐진 윤석열 정부의 전횡을 고발한다.
파리바게뜨 임종린 노조 위원장 단식 농성, SPC 빵 공장 산재 사고, 화물연대 파업,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 노란봉투법, 윤석열 대통령의 ‘건폭’ 발언과 민주노총 양희동 열사의 분신, 실업 급여 부정 수급 논란 등 안타까운 산재 사고와 잘못된 노동 정책 이슈가 터질 때마다 우리는 참담해졌고 억장이 무너졌다. 이래도 되는 건가.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돌아가신 분들만 억울하고 억울한데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계 인사들을 만나 중대재해처벌법에 “결함이 많다. 기업이 최대한 피해 입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할 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끄는 대한민국에 더 이상 안전지대는 없다. 2022년 여름 반지하 침수 사망 사고부터 10·29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등을 겪으며 우리는 이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국민의 생명, 안전, 민생을 지키는 것은 정부의 기본 임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국민이 안심할 수준의 대비, 대응, 대책 수립,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심지어 대통령, 국무총리, 행정안전부장관, 경찰청장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책임과 의무를 가진 사람 누구 하나 ‘제 책임입니다. 제 잘못입니다. 사죄드립니다’라고 나서지 않는다.
저자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이렇게 평가한다. 국가 시스템과 민주주의 역량이라는 ‘내력’과 윤석열 정권과 그 추종자들이라는 ‘외력’이 충돌하고 있다고. 내력이 외력을 버텨 내지 못하면 우리의 삶과 일상, 나아가 공동체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내력이 외력을 버텨 낸다면 우리는 일상을 회복하고 보다 나은 내일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失政)은 국민의 위기뿐 아니라 국가의 위기도 초래했다. 대한민국은 지정학적 특성상 더 세심하고 계획적인 균형 외교가 필요하다. 진보, 보수를 떠나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고민해야 하고, 미중 패권 전쟁에 휩쓸리기보다 대한민국의 국익과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한다. 멸공이냐 아니냐, 반중이냐 아니냐, 한미일이냐 아니냐, 내 편(친윤)이냐 아니냐. 한미일을 선택하지 않으면 공산 전체주의 세력이라고 을러메는가 하면, 일본의 책임을 묻자는 사람들을 기회주의 세력이라고 낙인찍었다. 핵 오염수를 걱정하는 국민들은 괴담에 속은 어리석은 자, 반일을 선동하는 반국가 세력이라고 몰아붙였다. 이 와중에 실리와 균형이 설 자리는 없었다.
저자는 아프고 화가 날수록 더 든든히 먹고 푹 자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술도 한잔하면서 담담하고 단단하게 일상을 살아 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뚜벅뚜벅 걷다 보면 계절이 바뀔 거라고, 겨울밤이 아무리 길다 한들 오는 아침은 막을 수 없다고 말이다. 이 책에 담긴 윤석열 정부의 600일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분노가 치밀고 가슴이 아프고 서글프다가 헛웃음도 나고 기운이 쭉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두 번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진절머리를 넘어 위대한 국가, 모두의 존엄을 지키는 대한민국”을 만들려면 현재를 직시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야 한다. 그 길에 이 책이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다.
저자 신장식은 변호사, 정치인,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뒤 2013년에 변호사가 되었다. 정의당 사무총장을 지냈고 노회찬재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TBS에서 〈신장식의 신장개업〉을 진행했고, MBC라디오에서 〈신장식의 뉴스 하이킥〉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신장식의 뉴스 하이킥〉은 2023년 청취율 조사에서 2차례 연속 1위에 올랐다. 지은 책으로 《함께, 노회찬》 《지방자치의 법과 과제》(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