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보니
나는 주말이나 방학이면 산이나 들로 나감이 자연스런 일과다만 예전엔 도서관으로 나가 종일 책에 파묻혀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눈비가 오는 날씨 궂은 날은 어쩔 수 없어 도서관으로 나갔다. 집에서 가까운 시립 의창도서관 자유열람실에 가면 어느 구석 어느 서가엔 무슨 책이 진열되어 있는지 훤했다. 어쩌다 신간 도서가 들어오면 내가 제일 먼저 펼쳐 보는 경우가 많았다.
도서관에서 읽은 책은 다양했다. 책을 대출받아 집으로 한 아름 안고 와 보고 반납하기도 했다. 나와 교류하는 지인의 시집도 읽고 환경과 자연에 관한 잡지도 읽었다. 암을 극복한 명사들의 이야기나 건강에 대한 정보도 접하게 되었다. 산나물이나 약초나 약용버섯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보았다. 지명이나 전설에 관한 자료들도 만났고 풍수에 관한 지식도 곁눈으로 알게 되었다.
도서관으로 나가면 쾌적한 공간에 소음이 없어 좋다. 옷차림에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가기도 했다. 여름이나 겨울엔 적정온도로 냉난방이 되어 전혀 불편하질 않다. 도시락을 싸가지 않아도 구내식당서 간단한 점심이나 저녁을 해결할 수 있다. 책을 읽다가 조금 지루하다 싶으면 전자열람실로 옮겨가 인터넷 서핑이나 워드 작업으로 글을 써 남기기도 했다.
오래도록 도서관을 꾸준히 다니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발길이 뜸해졌다. 요즈음 내가 근무하는 학교 도서관에만 들려보는 정도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면 눈이 쉬 피로하고 기본 운동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생활 방식을 바꾸게 된 게 꾸준한 걷기다. 틈이 나면 산이나 들로 나가 걷게 되었다. 강둑을 걷기도 하고 바닷가를 걷기도 했다. 자연은 나에게 제2 도서관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내가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때도 산과 들로도 나갔더랬다. 나는 탁구나 배드민턴이나 테니스 등 매체를 이용하는 운동을 하지 않는다. 골프 역시 나한테는 형편이 안 될 뿐더러 어울리지도 않고 관심조차 없다. 자전거 타는 사람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집 가까이 수영장이 있어도 나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돈을 들여가며 헬스장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시대 이야기꾼으로 성석제가 있다. 성 작가가 마라톤이 육신의 근육을 튼튼하게 해준다면 걷기는 마음의 근육을 든든하게 해준다는 글에 공감이 되었다. 한 때 마라톤 열풍이 불어 같은 색 유니폼을 입은 동호인들을 쉬 볼 수 있었다. 철마다 지역마다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메뚜기처럼 원정을 다니는 마라톤 마니아를 보았다. 마라톤은 나에게 체력에 부담을 안겨주어 거리를 둔다.
걷기를 통해 마음을 비우면서 얻은 것도 있다. 나는 어디는 반나절이나 한나절을 걷고 나면 길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일기 형식으로 글을 남겨간다. 걷기가 운동이 되어준 것만도 고마운데 내가 남기는 글의 소재까지 절로 얻어지지 얼마나 좋은가. 비록 영양가 없는 글일지라도 생활 속에서 내가 남겨가는 소중한 기록이다. 지인들에게 메일로 보내주고 문학 동인 카페도 올린다.
창원 근교 웬만한 산과 들은 손금 들려다 보듯 한다. 농어촌버스가 다니는 종점까지 내 발자국을 다 남겨 놓았다. 산모롱이 어디쯤 돌아가면 바위가 나오고 노송이 몇 그루 있는지도 알고 있다. 겨울에도 어느 들녘으로 가면 냉이가 자라고 쑥이 움 트는지도 꿰뚫고 있다. 봄날이면 어느 산자락에 무슨 산나물이 돋아나는지 훤하다. 여름이면 참나무등걸에 붙은 영지버섯도 마찬가지다.
무념무상 걷다보니 야생화들이 눈앞에 들어왔다. 철 따라 피고 지는 야생화에 대해서도 절로 알게 되었다. 이른 봄 가랑잎 검불을 비집고 피어난 노루귀를 비롯해 바람꽃 얼레지 군락지가 어딘지, 늦가을 서리를 맞고도 그윽한 향기를 품어내는 산국과 감국은 어디서 지천으로 피는 지도 알고 있다. 주중은 내가 근무하는 학교 교정에서 꽃밭을 가꾸고 있다. 봉숭아가 끝물이고 그 다음… 18.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