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中庸)’에 대하여
주자(朱子)는 ‘중용(中庸)’을 해석하기를 “중(中)은 치우치지도 않고(不偏), 어디에 의지하지도 않고(不倚)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無過不及)이며 용(庸)은 ’언제나‘라는 평상(平常)이다.’(中者는 不偏不倚無過不及之名이오 庸은 平常也라)”라고 하였다.
‘중용(中庸)’의 요지는 요순임금의 천하 통치의 정신이 도통(道統)인데, 이 도통의 요체는 중용에 있으므로 이를 터득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간적 욕심과 도덕적 본성이 함께 내재되어 있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인간적 욕심이 없을 수 없으며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도덕적 본성이 없을 수 없는데, 두 마음을 다스리는 이치가 중용이다. 도덕적 본성이 항상 자기 자신의 주체가 되도록 하고 인간적 욕심이 매번 도덕적 본성의 명을 듣게 하는 것이 중용의 도를 실천하는 길이다. 이를 위하여 성(性), 도(道), 교(敎)라는 개념으로 천도와 인도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성(性)은 하늘이 준 사람 속에 있는 하늘의 속성이다. 도(道)는 하늘이 부여한 본연의 성을 따르는 것이다. 효도와 자식 사랑, 형제간의 우애, 가정의 화목, 이웃 사랑이 도이다. <중용장구> 13장에 공자는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나니, 사람이 도를 행하면서 사람을 멀리하면 도라고 할 수 없다.[道不遠人 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고 하였다. 고원(高遠)하여 행하기 힘든 일에서 도를 찾으려는 경향을 경계한 말이다. 교(敎)는 도를 마름질하는 것인데, 도를 구체화한 교훈, 예절, 법칙, 제도 등으로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중용(中庸)’의 주요 내용은 성(誠), 중용, 중화(中和)이다. 성(誠)은 진실무망이고, 중용은 치우치거나 기대지 않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평상의 이치다. 중화(中和)는 실천적 측면에서 중(中)을 설명한 것이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중이라고 하며, 일어나고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고 한다. 한마디로 하면 ‘중용(中庸)’은 ‘천인일관(天人一貫)’의 이치를 설명하고 성(誠)의 도(道)를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나의 성(性)은 우주의 본체인 성(誠)의 표현이요, 이것은 바로 또 하나의 소우주라고 생각한 것이다.
‘중용(中庸)’이란 융통성이 살아있는 원칙이다. 평범한 사람이 지켜야할 도덕이자, 처세예술이다. 중용이란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고, 괜히 말만 하지 않는 것이다. 괜히 말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큰 소리로 말만 외치는 것은 필연적으로 극단으로 향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이중텐(易中天), ‘사람을 말하다’에서>.
‘중용(中庸)’은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의 위치가 아니다. 때로는 나아가고 때로는 물러설 줄 아는 진퇴(進退)를 아는 것이 중용을 실천하는 것이다. 조직 내에 옳지 못한 결정이 내려질 때 중용을 지킨다고 가만히 침묵한다거나, 조직의 생존을 위협할 만한 불의(不義)에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적당히 타협하는 것 역시 중용은 아니다.
중용의 중요한 의미 중에 하나가 시중(時中)사상이다. 일명 상황(時)의 중(中)이다. 세상은 무한히 변화하는데, 그 변화를 인정하고 그 변화에 맞춰 정확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중(時中)이다. ‘수시이처중야(隨時以處中也)라’ 즉 ‘그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정확한 중을 찾아 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용(中庸)’은 세상을 살아가는 삶이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으며, 변화하는 상황을 정확히 읽어내고 처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역동적인 변화에 정확한 판단과 지속적인 실행을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이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성경에서는 중용의 사상과 사실상 같은 의미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중심을 잡고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道)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신명기 5장 32-33절).
한편 서양철학에서의 ‘중용(中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덕론(德論)의 중심 개념이기도 하다. 서양 철학에서의 ‘중용(中庸)’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이성(理性)으로 욕망을 통제하고, 지견(智見)에 의하여 과대와 과소가 아닌 올바른 중간을 정하는 것을 이른다고 본다.
2023.12. 7.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