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이래
내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는 걸
본래의 얼굴이 있기라도 하나
얼굴 없는 얼굴로 잘 살아왔지
거울에 비친 익숙한 이번 생에 빌린 얼굴
살아가는 일이 고작
술병에 맞는 술맛을 만들 듯
얼굴에 맞는 배역을 받는 일이라니
영혼을 수선하기는 어려운 일
아무래도, 빌려 쓴 이미지로
어설픈 배역만 하다 가려나 보다
-『김포신문/김부회의 시가 있는 아침』2022.09.20. -
내 이름으로 사는 것이 아닌, 누구의 누구로 사는 시간이 더 많다. 가족, 관계, 사회 등등의 나를 필요로 하거나 내가 필요로 하는 것에게 나는 본래의 내가 아닌, 필요에 의한 내가 되며 사는 것이 삶인지도 모른다.
맞추며 산다는 것, 아니 맞추며 살아온 시간을 정리하고 나면 그 가면 뒤에 숨어 있던 내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가끔, 모든 배역에서 한발 물러나 관객이 되고 싶다. 객관의 내가 객관의 나를 보고 싶다. 가을이 성큼 이다. 딱 한발만 뒤로 물러서 보자. 나를 만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