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9. 주일 큐티
에스라 7:1 ~ 9
에스라의 등장
관찰 :
1) 아론의 16대 손 에스라의 소개
- 1절 ~ 5절.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살룸의 현손이요 사독의 오대 손이요 아히둡의 육대 손이요 아마랴의 칠대 손이요 아사랴의 팔대 손이요 므라욧의 구대 손이요 스라히야의 십대 손이요 웃시엘의 십일대 손이요 북기의 십이대 손이요 아비수아의 십삼대 손이요 비느하스의 십사대 손이요 엘르아살의 십오대 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이라”
- 에스라는 자신이 아론의 후손으로 이스라엘의 율법을 다루는 학사라는 것을 강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개혁을 일으키는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 족보에 언급된 인물들이 역대상 6:3 ~ 15에도 정리가 되는데, 그곳의 내용과 이곳의 내용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들”, “자손”, “증손” 등의 표현이 히브리어에서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원문에는 “손자”, “증손”, “현손”, “오대손”, 등등이 모두 “아들”이라는 표현을 통해서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 대손이라는 표현으로 인해서 성경의 오류를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 6절.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 “이 에스라”라는 말은 자신이 족보를 통해서 설명한 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칠 자격과 권위를 소유한 자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닥사스다의 조서 내용으로 보아 에스라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서기관의 직무에 능통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직접 파견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보건대 에스라는 페르시아 왕실에서 주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무엇보다 에스라 자신이 자신을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 특별합니다.
2)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예루살렘에 도착하다
- 7절. “아닥사스다 왕 제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 “아닥사스다 왕 제칠년”은 B.C. 458년입니다. 이 때 제2차 포로 귀환이 발생했습니다. 그 때 에스라가 집중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은 제사를 위한 필요 인원들이었습니다. 제사장, 레위 사람들, 노래하는 자들, 문지기, 느디님 사람들입니다. 이들 “몇 사람”은 장정만 1,773명이었습니다(스 8:1 ~ 14).
- 8절.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제칠년 다섯째 달이라” => “이 에스라”는 자신 뿐만이 아니라 모든 무리를 포함합니다. 이들이 대략 800km를 이동한 것인데, 5개월이 걸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실은 많은 것들이 포함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린 이유는 계속해서 설명하게 되는데, 레위인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중간에서 시간을 지체했고(스 8:15, 31), 일행 중에 어린이가 많이 있었고(스 8:21), 사막 지대를 피하기 위해 북부 시리아 지역을 거쳐서 시내를 따라서 이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이 가져온 재물의 수량이 몹시 많았기 때문에 수많은 강도와 도적떼들의 위협 속에서 이동한 것입니다. 에스라는 그러한 상황에서 아닥사스다 왕이 제시한 호위병을 거절하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의지하고 예루살렘까지 도착한 것에 대한 감격을 담고 이 글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 9절.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 이들의 여정에 대해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라고 표현한 것은 정말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스라는 자신의 모든 지혜를 동원하여 사막 지대의 폭염을 피하는 시기를 조정하고, 또 도적떼의 습격을 피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아주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고, 그들이 무사히 예루살렘까지 도착한 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에스라. 이 사람은 하나님이 특별하게 준비한 사람입니다. 마치 로마시민권을 가진 부모로부터 태어나서 디아스포라 상황에서 자라게 하시고, 가말리엘의 교육으로 구약에 대해 정통하게 준비시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준비하신 사도 바울과도 같습니다. 에스라는 아론의 16대 손입니다. 7:10에 보면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운명을 말씀을 통하여 꿰뚫는 통찰력을 성령으로부터 받은 사람이었고, 포로귀환이후의 진정한 종교개혁과 부흥운동을 이끈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등장하기 전의 사건들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B.C. 516 제 2성전 완공 (스 6:13-15) 다리오 제6년에 완공됨
B.C. 486 아하수에로의 페르시아 통치
B.C. 483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 (에 1:3-22) 왕후 와스디의 폐위
B.C. 480 그리스의 페르시아 침공
B.C. 479 왕후로 피택된 에스더 (에 2:1-18)
B.C. 478 아하수에로 암살 음모 (에 2:21-23) 모르드개의 공헌
B.C. 475 스가랴의 사역 종결
B.C. 474 하만의 유대인 말살 음모와 실패 (에 3:1-7:10)
B.C. 473 모르드개에 의한 부림절 제정 (에 9:20-32)
B.C. 464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1세의 등극 41년 통치
B.C. 458 아닥사스다 왕의 포로 귀환 조서 (스 7:11-26)
유대인의 제2차 포로 귀환 (스 7:1-10) 에스라 영도하의 귀환
2) 이렇듯 시간이 흘러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된 후 58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페르시아에서는 다리오 -> 아하수에로 -> 아닥사스다 왕으로 통치권이 이어졌습니다. 아닥사스다가 에스더의 자녀인 것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닥사스다가 왕자로 있을 때 왕후로써 에스더와 함께 한 시간이 있었을 것임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부림절의 사건은 아닥사스다도 에스라도 모두 경험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3) 에스라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는 포로 2세대 혹은 3세대 사람으로서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습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민족적 정체성도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요? 예레미야의 제자였던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으로부터 환상을 받고,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준비했습니다. 곧 바벨론에서 다음 세대에서 말씀에 정통한 다음세대가 세워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입니다. 에스라가 구약의 그 누구보다 족보에 정통한 것을 보면, 에스라가 접할 수 있는 유대 문학의 자료들이 매우 풍성했을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에스라가 모세 오경에 정통했다는 것을 통해서 볼 때, 에스라는 분명 모세 오경의 모든 자료들을 접했을 것으로 봅니다. 이런 준비를 누군가는 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배경에 다니엘과 세 친구의 영향력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통해서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학사 에스라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선한 손. 에스라는 그 이름의 뜻 자체가 “여호와가 도우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한 에스라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손이 여러 번 역사하셨습니다. 에스라는 특별히 하나님의 손이라는 표현을 6:22; 7:9; 8:18; 8:22 에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가 구약 성경에 대한 실력이 있었고, 페르시아 궁정의 유력한 사람으로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모두 받는 사람이었을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로서 살고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날마다 끊임없이 구하는 겸손한 그의 모습을 엿보게 됩니다.
적용 :
1) 하나님은 믿음의 혈통을, 믿음의 계보를 중요시 하시는 분이십니다. 에스라는 그러한 관점을 확증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의 신앙과 믿음과 사역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후손들의 믿음, 나로 말미암는 믿음의 계보가 굳건히 세워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훌륭한 목사님들 중에 그 자녀들이 역시 훌륭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예들에 대해 가끔 듣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 중에 가장 중요한 사역은 가정사역입니다. 특별히 부부사역이 우선이고, 자녀교육이 그에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도외시하고 사역을 잘 감당하는 것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본문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나의 믿음을 자녀에게, 후손에게 이어지게 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고 그것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참 부끄럽기도 하고, 부족함이 많음을 고백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주님의 은혜를 구할 따름입니다.
2) 겸손. 이것이 하나님의 선한 손을 내 머리에 놓여지게 하는 것임을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마른 막대기보다 못한 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언제나 잊지 않겠습니다.
3) 오늘 장모님께 아내의 부고를 전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장모님이 그 소식을 듣고 잘 이겨내실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간구드립니다.
4) 오늘 저녁부터 포이메네스 영성 훈련이 시작됩니다. 주님의 은혜가 임할 것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