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에서 한방 의학에 관련된 의미있는 판결을 하였기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장비를 사용하여 환자의 복부를 촬영하여 진료를 한 일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의사법 위반인지 관련하여 대법원에서 전원합의체 형태로 판결을 하였습니다.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은 기존 대법원의 입장을 바꾸거나 법률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쟁점에 대하여 판결할 경우
대법관 전원이 심리에 참여하고 합의과정을 진행후 판결하는 형식의 판결로서 일반적인 대법원 판결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기존에 적용된 대법원의 입장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위 사례의 한의사를 의료법위반으로 유죄에 처하여야 하지만, 기존 판례를 폐기하고 새롭게 의료법 적용기준을 마련한 것이어서, 대법관 전원의 합의를 통해 새롭게 판결한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 변경 과정에서 12명의 대법관 중 2명의 대법관은 여전히 기존 대법원의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였기 때문에 이 사건 판결이 얼마나 치열한 고민끝에 나온 결론인지 알수 있기도 합니다.
판결의 내용을 간략히 설명을 드리면,
1. 사건의 개요
(대법원 2022. 12. 22. 선고 2016도21314 판결)
(1) 한의사가 2010년부터 2012년경까지 총 68회에 걸쳐 초음파 진단기기를 이용하여 환자의 신체를 초음파 촬영하였고 초음파 화면에 나타난 모습을 보고 진단후 진료 행위를 하였습니다.
(2) 이에 대하여 의료법 제27조 제1항은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없고, 이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으므로,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를 이용한 진료 행위가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여 의료법을 위반한 것인지의 여부가 이 사건 판결의 핵심적인 쟁점이었습니다.
(3)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한의사가 이 사건 초음파 진단기기를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한 행위는 구 의료법 제27조 제1항 본문의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이와 달리 종전의 판단기준에 따라 피고인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여 다시 재판하도록 하였습니다.
2. 의료법 적용에 대한 대법원의 종전 입장과 이번 판결에 새롭게 적용된 입장의 변화
기존 대법원 판결의 입장은 한의사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의료기기나 의료기술을 사용하는 것 이외에 서양 의료기기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해당 의료기기의 개발, 제작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한 것인지, 사용하는 의료행위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를 응용 또는 적용하는 하기위한 것인지, 서양의학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 등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대한 판단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서양의학의 이론과 원리로부터 개발된 의료장비를 사용하는 것은 한의사에게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의료법 위반으로 볼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내려진 대법원 판결은 의료행위의 가변성과 그 기초가 되는 학문적 원리 및 과학기술의 발전과 영역 확대, 이로 인한 사회적 여건의 변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한의학도 발전하고 현대화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한의사의 한방의료행위와 의사의 의료행위가 전통적 관념이나 문언적 의미만으로 명확히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의료행위의 개념 역시 의료기술의 발전과 시대 상황의 변화,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자의 인식과 필요에 따라 달라질수 있는 가변성이 있으므로 의약품과 의료기술의 변화와 발전에 맞추어 한의사에게도 전통적인 한방의료의 영역을 넘어서 허용되는 의료행위의 영역이 생길수 있다면서 기존 대법원의 입장을 변경하였습니다.
3.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것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이유
대법원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에 대하여 크게 3가지의 사유로 무죄 판단을 하였습니다.
(1)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2) 초음파 진단기기가 발전해온 과학기술문화의 역사적 맥락과 특성 및 그 사용에 필요한 기본적 전문적 지식과 기술수준을 감안하면, 한의사가 한방 의료행위를 하면서 그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이를 사용하는 것이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3) 전체 의료행위의 경위, 목적, 태양에 비추어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적 의료행위 원리에 입각하여 이를 적용 또는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이라고 명백히 증명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예컨대, 한의사의 전통적인 진찰법인 망진, 문진, 절진 등의 방법이 존재하고, 절진은 한의사의 손을 이용하여 환자의 신체를 만져보거나 더듬어보고 필요한 자료를 얻어내는 진찰법이사용되므로, 환자의 복부에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진찰행위의 정확성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부가하여 사용하는 것이라고 볼수 있다)
4. 판결의 한계
대법원의 판결은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치료 방법으로 사용하게 한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진단용 의료 기기 사용을 허락해준 것으로 이해됩니다. 대법원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허용하면서,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한의사가 기존에 환자를 진찰하던 방식으로부터 좀더 명확한 환자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진단기기를 허용해 줌으로써 한의사의 감각에 의지한 치료 방식을 개선하고 안전한 환자의 치료를 위해 진단용 의료기기의 사용을 허락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데 사용되는 치료 기기 분야까지 의료 기기 사용이 허용된다고 볼수 있을지 여부는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대법원의 입장 변화 내용 자체에서 진단용 의료기기만 사용할 수 있다라고 직접적으로 명시한 것은 아니므로 후속판결이나 보완입법 과정을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5. 향후 전망
이 사건 판결은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 것으로, 단기적으로 한방 의료서비스의 질적 개선을 기대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한방 의료의 치료 효과에 대한 검증을 통해 한방의료의 객관적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의료 기술의 융합을 통한 한차원 높은 의료 기술의 개발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의료서비스 수요자들의 한방에 대한 인식 개선을 통해, 한방 의료 수요의 증가 및 한의사는 물론 한방 의료 이론에 기반한 한방 관련 종사자들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도가 높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