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수) 요한계시록 2:8-11 찬송 495장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개역 개정)
-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편지 -
요한 당시 아시아 주에 있던 일곱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교회들에게 그들이 심판의 주로 오실 재림주를 기다리면서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대처해야 할 지를 보여 주는
본서의 본론 제 1부인 2:1-3:22안에서 두 번째 단락을 형성하고 있는
오늘 말씀은 본서의 형식적 수신자인 아시아 주 내에 있는
일곱 교회 중 두 번째로 언급되고 있는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에베소와 마찬가지로 서머나는 에게 해(海)를 끼고 있는 항구 도시로
에베소, 버가모와 함께 소아시아 지역에서
당대 최고의 도시라고 불리우기를 다투던 중심 도시였다.
그러나 당대 일급 도시라는 호칭은 세상적 관점에서는 좋은 것이었으나
기독교인의 관점에서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시대 당지역에 있어 일급 도시란
그 만큼 우상 숭배가 성행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머나는 예루살렘 멸망(A.D.70년) 이후에
많은 유대인들이 이주해서 정착한 도시였다.
따라서 서머나 교회는 황제 숭배를 강요하는 로마의 세력과
유대주의적 율법주의 기치 아래 기독교를 배척하는 유대인들이라는
커다란 두 세력으로부터 정치적·종교적·사회적·경제적으로 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다.(9절)
그러나 그러한 극심한 어려움과 박해 속에서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은
비록 몸은 가난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신앙만은 변절시키지 않아
영적 부요함을 유지하는 참된 신앙을 지켜 빌라델비아 교회와 함께
주님으로부터 칭찬만을 듣는 교회의 하나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그들은 잠깐 더 계속될 고난을 참으면서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고 둘째 사망의 해를 입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받았다.(10-11절)
결국 서머나 교회는 이 말씀을 간직한 채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켜
폴리갑과 같은 유명한 순교자를 배출하는 신실한 교회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① 결코 좋은 환경이나 좋은 조건에서만
좋은 신앙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인내하면서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 가장 훌륭한 신안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② 그리고 성도는 세상의 부가 아니라 영적 부를 얻는 것이 참된 부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흔들리지 않고 인내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배우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의 재화로 부요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세상 재물로 부요해지기 위해
어떠한 불의도 자행하기를 서슴지 않고 있는 분위기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세상 풍조를 따르지 말고
서머나 교회 교인들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빌3:8)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바라보며 그것을 소유하는 것을
참된 부요라고 여기며 살아 가도록 해야 한다.
참된 부요는 하늘에 쌓아둔 재화로 판단되는 것이다.(마6:19-20)
9절)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상반절에는 서머나 교회에 대한 주님의 평가가 나온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가 바로 그것이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극한 박해 속에서 고통받으며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가정이 파괴되는 위험을 감수하며 살아야 했으며,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었기에 그야말로 궁핍하게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주님은 이처럼 육적으로 핍절한 상태에 있는
서머나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도리어 부유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한편으로 보면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그러나 이는 영적인 측면을 말씀하신 것이다.
즉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육적으로는 환난과 궁핍 가운데 놓여 있지만
영적으로는 부요한 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극심한 핍박과 극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롬8:14, 16)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늘에 가득 쌓아두고 있기 때문이다.(마6:20)
아무튼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상황에 굴하지 않는 튼실한 신앙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닥친 환경을 탓하고 불평하고 원망하지 않는 신앙을 가졌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는 다른 습관을 가졌던 것이다.
즉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상황이 좋으면 자기 만족적 미소를 짓다가도
자신들이 생각하지 못한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모세와 하나님께 불평과 원망을 퍼부었던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차원이 다른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도 다르게 나타난다.
불평과 원망을 달고 산 이스라엘 백성들,
즉 출애굽 일세대는 광야에서 단 두 명을 제외하곤 모두 죽었다.
칭찬도 인정도 받지 못하고 무덤도 없이 죽은 것이다.
그러나 처한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굳건한 믿음을 견지한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단 한마디의 책망도 받지 않고
성경이 있는 한 계속적으로 모범된 신앙의 모델이 되는 영광을 차지하였다.
이 얼마나 큰 차이인가?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의 모범이 되고,
누구에게나 모델이 될 수 있는 신앙을 견지하고 싶다면 어떠한 태도가 필요한가?
환경에 굴하지도, 환경을 탓하지도 않으며 일관된 신앙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목수가 연장을 탓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신앙을 따라 사는 것이야말로
칭찬받고 인정받는 성도의 기본 조건이다.
시인 도종환의 「모과」에서 예찬하였던 바, 봄에 제 모습을 찾아가는
봄 나무들과 같은 자태를 가진 자가 진정으로 튼실한 성도이다.
「말 없는 봄을 만들어가는 나무들이 대견하다.
사람들 같으면 … 완벽하게 아름다운 꽃나무로 자라고 싶었는데
생각만큼 꽃이 아름답지 않았다고, 향기가 멀리가지 않았다고,
열매와 결실이 더 풍성하지 않았다고 괴로워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꽃나무들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며
자신을 무척이나 힘들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자신을 자기 자신 이상으로 과대 포장하거나 확대 해석하지도 않고
나무들은 말없이 또 새 잎을 내고 조용히 꽃을 피운다」
튼실한 믿음을 가진 성도는 상황을 탓하지 않는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여 더 나은 상황을 꿈꾸며 살아가지도 않는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처럼 환난과 궁핍,
곧 악조건 속에서도 인내하는 신앙을 견지하는 것이 최고의 성도이다.
이 모습이 우리의 지향점이다.
혹시 조건이 좀 나쁘다고, 열악한 상황이라고 불평하고 원망하지 않는가?
또 ‘저 사람과 같은 상황이라면 좋겠는데’라고 은연중에 생각한 적은 없는가?
이런 생각을 버리고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훌륭한 성도의 모습을 만들어갈 것을 결단해야 한다.
진정한 성도는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