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짓기한 뒤 수컷 잡아먹어… 강한 독도 쏘아요
검은과부 거미
▲ 거미줄에 매달린 검은과부거미. 이름에서 '과부(寡婦)'는 '배우자가 사망한 여성'을 뜻해요. /플리커
영국의 한 유명 가수가 독거미에게 물려서 엄청나게 고생했다는 경험담을 소셜미디어에 쓰면서 그 거미와 같은 종류의 사진도 함께 올렸어요. 온몸이 새까만데 배 부분 일부만 빨간 모래시계 모양 무늬가 있는 거미였어요. 이 거미는 검은과부거미랍니다. 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오세아니아 등에 널리 분포해있고 총 35종이 알려져 있어요. 그루터기나 돌 밑 틈, 주택 지하실이나 차고처럼 빛이 잘 들지 않고 습한 곳을 좋아한대요.
검은과부거미라는 이름은 영어 이름 'black widow spider'에서 딴 건데요. 이렇게 살벌한 이름이 붙은 건 짝짓기를 끝낸 뒤 암컷이 종종 수컷을 잡아먹는 습성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이에요. 검은과부거미의 수컷은 암컷보다 몸집이 훨씬 작아요.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아무리 커도 암컷의 절반, 어떤 종류는 암컷 몸집의 20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암컷이 손쉽게 잡을 수 있는 먹잇감인 셈이죠.
암컷이 왜 짝짓기 상대방을 먹어치우는지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어요. 다만 덩치가 작아 천적에게 잡아먹힐 가능성이 큰 수컷이 다음 짝짓기 철까지 온전히 살아남기 쉽지 않기 때문에 암컷이 건강하게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영양분으로 희생되는 게 종족 번성에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과학자들은 이야기하죠. 또 암컷에게 손쉽게 잡힐 정도로 약한 수컷이 없어야 튼튼하고 강한 수컷 유전자가 전파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도 해요. 다른 거미 중에서도 암컷이 짝짓기 때 덩치가 작은 수컷을 잡아먹는 일이 있대요.
짝짓기를 마친 검은과부거미의 암컷은 알을 낳는데, 알이 200~300개 들어 있는 알 주머니를 만들어요. 부화한 새끼는 덩치가 매우 작고 몸 색깔이 엷은 것만 빼곤 성체 거미와 거의 똑같아요. 부화한 새끼들은 한 달 정도는 알 주머니에서 머물다 각자 길을 떠나요. 이후 6~8번 허물을 벗으면서 성체로 성장해 간답니다.
검은과부거미는 독거미로도 유명해요. 독은 먹잇감을 꼼짝하지 못하게 할 때나 천적의 위협이 있을 때 방어하느라 쓰죠. 미국에 사는 검은과부거미가 뿜어낸 독이 독사로 유명한 방울뱀보다 독성이 열다섯 배나 강했다는 기록도 있대요. 다만 사람이 검은과부거미에게 물려서 실제로 목숨까지 잃는 일은 아주 드물대요. 설령 물리더라도 세 시간 안에 치료를 받으면 큰 문제 없이 회복할 수 있대요.
그래도 산이나 길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오싹하죠? 다행히도 우리나라에는 검은과부거미를 포함해 독거미가 살지 않는답니다. 2018년에 외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과부거미가 대구에서 발견된 기록이 유일해요.
거미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거미줄이죠? 하지만 전 세계 거미 중 절반 정도만 거미줄을 친대요. 검은과부거미도 그 절반에 속하죠. 몸통 끝에 있는 '실젖'이라는 구멍에서 배 속에 액체 상태로 있던 단백질 성분 실을 뽑아내요. 이 실로 거미줄을 치고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다가 파리나 모기, 또는 애벌레 등이 걸려들면 거미줄로 칭칭 감아서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어요. 그다음 몸속으로 이빨을 꽂아 독과 소화액을 순서대로 주입해 흐물흐물하게 만들고 빨아 먹죠.
정지섭 기자 도움말=국립생물자원관 유정선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