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美증시 입성… 투기서 ‘투자’ 대상으로
[비트코인, 투기서 ‘투자’ 대상으로]
美증권위, 비트코인 현물ETF 승인… 가상자산, 주식처럼 사고팔수 있어
개인투자자들 자금 몰릴 가능성… 美증권위장 “투자 위험 주의해야”
11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지원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돼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0일(현지 시간)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상장과 거래를 승인하면서 가상자산 시장이 ‘크립토 스프링(Crypto Spring·가상자산 대세 상승장)’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회성 기자
미국 금융당국이 사상 처음으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거래를 승인했다. 그동안 가상자산거래소에서만 가능했던 비트코인 거래가 주식 투자처럼 쉬워지는 등 앞으로 가상자산의 접근성이 상당히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상자산이 이젠 ‘투기’에서 ‘투자’ 수단으로 변모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10일(현지 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11개 자산운용사의 비트코인 현물 ETF 상품 거래 개시를 승인했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이날 성명에서 “오늘 위원회는 다수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상품(ETP)의 상장 및 거래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ETF는 인덱스펀드를 거래소에 상장해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든 상품으로, ETP는 ETF와 ETN(상장지수증권) 등을 모두 포함하는 상위 개념이다. 비트코인 선물을 기반으로 한 ETF는 이미 2021년 미국 등 글로벌 증시에 상장됐고 같은 해 캐나다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도 상장됐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중심지인 미국에서 현물 ETF의 승인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당장 11일부터 블랙록 등이 신청한 11개 펀드가 시장에서 거래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물 ETF 상장이 가능해지면 일반 주식 계좌로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게 돼 많은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이 가상자산에 몰릴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가상화폐에 투자하려면 별도의 코인 거래소를 통해 가상자산 계좌를 열어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비트코인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도 상장된 ETF를 통해 일반 공모펀드처럼 비트코인에 간접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비트코인이 하나의 투자자산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며 “비트코인 ETF가 투자자산으로서 어느 정도 가치가 있고 안전성이 있는지 시험할 시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비트코인 선물·현물 ETF는 현재 국내 증시 상장 및 거래가 금지돼 있다. 국내 증권사를 통해 해외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하는 것도 안 된다.
겐슬러 위원장은 가상자산에 대한 SEC의 엄격한 규제는 계속될 것임을 시사하며 “오늘 위원회의 결정은 증권이 아닌 비트코인을 보유한 ETP에 국한된 것”이라며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 연계 상품에 대한 위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날 비트코인 가격은 SEC 승인 직후 4만7500달러 선으로 올랐다가 떨어진 뒤 현물 ETF 첫 거래가 시작되며 다시 4만7000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지수펀드(ETF)는 인덱스펀드를 거래소에 상장해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상품으로 투자 자산에 따라 주식, 채권, 원자재 ETF 등이 있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자산운용사가 실제 비트코인을 구입해 투자 자산으로 운용하는 ETF를 뜻한다.
신아형 기자, 뉴욕=김현수 특파원
“코인의 봄, 올 131조 유입 예상”… “금융불안 키울 역사적 실수”
[비트코인, 투기서 ‘투자’ 대상으로]
美 비트코인ETF 승인… 제도권 편입
“가상자산 판도 바꿀 게임체인저”… 기관 투자확대 ‘크립토 스프링’ 기대
변동성 커 개인 대규모 손실 위험… “자본시장 성장 위협할 것” 지적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거래를 승인하면서 ‘실체 없는 거품’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비트코인이 사실상 제도권 자산으로 편입됐다. 이에 따라 기관투자가들의 자금이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2022년부터 이어진 이른바 ‘크립토 윈터’(가상자산 침체기)가 끝나고 ‘크립토 스프링’(대세 상승장)을 맞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이번 결정으로 금융 불안정성이 확대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가상자산의 실체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가상자산으로 자금이 쏠릴 경우 자본시장의 성장성은 오히려 약화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 “올해만 1000억 달러 유입될 것”
11일 가상자산 업계와 금융시장 일각에선 비트코인 현물 ETF의 미 증시 입성으로 기관의 대규모 자금이 유입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회계 규정이나 규제 탓에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하지 못했던 헤지펀드, 연기금, 전문투자자문사(RIA) 등 기관들의 제도권 투자가 대폭 확대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영국 투자은행(IB) 스탠다드차타드(SC)는 8일 보고서를 통해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면 올해에만 최대 1000억 달러(약 131조 원)가 유입될 것”이라며 “기관의 비트코인 투자를 일반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에서도 미 증권거래위의 이번 결정이 가상자산 산업의 판도를 뒤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금의 높은 관심이 이어진다는 가정하에 낙관적으로는 첫 6개월에 200억 달러 유입도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그 근거로 자산운용사들이 주로 사용하게 될 미 가상자산거래소 코인베이스가 비트코인 40만 개가량(약 180억 달러 규모)을 보유하고 있고, 전 세계 거래소에 200만 개의 비트코인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미국 내 전문투자자문사의 운용 자금 114조 달러 가운데 0.1%만 비트코인 현물 ETF에 유입된다고 해도 1140억 달러에 달한다.
● “금융 불안정성 높이는 역사적 실수”
다만 일각에서는 비트코인의 제도권 진입으로 금융 불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가격 변동성이 크고 투기 가능성이 높은 가상자산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 글로벌 금융환경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일반 투자자들의 대규모 손실 사태가 빈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 산하 경제 분석업체 무디스 애널리스틱스의 야니스 지오카스 수석이사는 “비트코인의 악명 높은 변동성으로 인해 주류 투자자들이 익숙하지 않은 투자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AP통신에 경고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에 반대표를 던진 캐럴라인 크렌쇼 상원의원도 “투자자 보호를 더욱 희생시킬 수 있는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싱크탱크 베터마켓의 데니스 켈러허 최고경영자(CEO)는 로이터통신에 “이번 승인은 역사적인 실수”라며 “미 증권거래위의 조치는 이 가치 없는 금융 상품에 대해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비트코인과 가상화폐는 여전히 합법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비트코인이 주류인 미 증시에 입성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한국 정부의 속내도 편치 않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내 자금이 비트코인 현물 ETF로 유입된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국민의 여유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이라며 “국내 자본시장을 통해 국내 기업을 성장시키고 경제적 과실로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것들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신아형 기자, 이기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