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제비영감 - 할지소
* 지금 하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 된 이야기입니다.(45년전)
** 2004.10.21 sfm홈피에 실었던 이야기를 약간 각색한 글입니다.
*** 이글을 울카페에 실음과 동시에 mbc라디오 "싱글벙글쑈" '이제는 말할 수 있다'코너에 보낼 예정입니다.
[ 먼저 '서리'의 사전적 의미부터 알아봅시다.]
1.서리(霜)-하늘이 맑고 바람이 없는 밤에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 때 공기중의 수증기가 땅위의 물건겉에 앉아서 엉긴 흰가루 모양의 얼음.
2.서리-떼를 지어서 주인 모르게 훔쳐 먹는 장난(도둑질)
3.서리(胥吏)-아전
4.써레-갈아 놓은 논밭을 고르는데 쓰는 농기구.
5.서래(西來)-서역에서 건너옴
6.서래(서부경남지역 사투리)-제사용 대꼬챙이(생선,산적,고기를 뀀)
이상에서 각 단어의 뜻을 사전적인 의미를 알아 봤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2.번 '서리' 대한 나의 소중한 추억담입니다.
<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이 사진은 글중의 운제비영감이 아님. 청학동훈장님을 대역으로 모셔옴(몽이 사진)
내고향은 진주시 진양호안의 수몰지구인 귀곡(까꼬실)입니다.
태어나서 자라고,국민학교까지 거기서 6년동안 다녔습니다.
국민학교 저의 동기생은 전학년이 36명 이었고,그중 나는 남자 끝번인 18번이었습니다. 입학도 같은 반,졸업도 같은 반이었죠.
36명은 한골,큰말,샛골,분딧골,아랫말,갓골,새미골,게미등의 8개의 작은 마을에서 국민학교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살았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집은 샛골이었습니다.
45여년 지난 이야기는 이리 시작됩니다.
국민학교 4,5학년 때로 기억됩니다. 나는 학실한 삿군(농사꾼)의 아들인지라 그 어린나이에도 우리집에선 반일꾼이었습니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니고,그 시절의 시골아이들 모두가 다 그랬습니다.
도시나 읍내에 사는 동무들은 아닐지라도...
그때 내가 했던 일을 들어보면...소죽끓이기,소꼴베기,소먹이기,나무(특히,땔깜용 깔비)해오기,장작패기,막걸리심부름,고매심기,
콩심기,모내기(못줄잡기,모이종),나락베기,타작,짚단쌓기,물길러오기(물지게로)...
대충 생각나는 것만 적어도 상당합니다. 여기서 다른 동무는 아기보기가 추가됩니다. 그것도 하나 이상 너덧까지도.
참 대단했습니다. 요즘 아이들과 비교하면 실로 엄청났습니다.거기다가 부모님은 공부까지 잘하라고 닥달이었습니다.
슈퍼-맨 그 자체였습니다.
아까 열거한 일들중에 '소먹이기'가 있었죠!
쇠미기(소먹이기)는 정확하게 얘기하면 '소풀먹이기'입니다. 집에서 소를 몰고 나가 낮은 구릉이나 풀밭에서 소에게 신선한 풀을 듬뿍
먹이고 데려오는 일입니다. 그래야만 소가 살이 찌고,건강하게 잘 자랍니다.그런 소라야만 잘키워 쇠전(소전)에 내다 팔때
좋은 금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소가 살림 밑천이던 때이므로 소먹이기는 우리들의 중요한 일상이었습니다.
그날은 아마 토요일이었을 겝니다.
학교에서 일찍 집에 돌아와 씬밥(식은 밥) 한그릇을 찬물에 말아 먹고,동네 동무들 너덧이 어울려 각자 소를 몰고(등에는 지게를 진채로)
게미(동네와는 상당히 떨어진 산나머 외딴채가 있는 곳)로 갔습니다.지게는 소꼴(풀)을 베어와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일은 부모님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사였습니다.(아마도 기대되는 우리들만의 서리 재미때문이기도...)
게미에 도착해서는 소를 완전히 풀밭에 풀어 놓습니다. 그러면 소는 지가 알아서 먹을만큼 싱싱한 풀을 뜯어 먹습니다.
소가 풀을 뜯어먹는 동안 우리는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소꼴을 한짐 베어서 지게에 갈무리 해놓습니다.
소가 배를 채우는 동안과 소꼴을 베는 시간이 거의 일치합니다.
그러고나서 각자의 소를 찾아서 주위의 버드나무나 아까시나무에 고삐를 묶고나면 그날 우리일은 90%이상 끝이 납니다.
인제부터 우리들 시간입니다. 일은 지금부터 벌어집니다.
우리들은 시기(時期)에 맞춰 먹을거리 서리에 들어갑니다. 그날 우리의 서리 먹거리는 (햇)감자입니다.
서리를 해도 절대 무지막지하게는 하지 않습니다. 이쪽 밭때기에서 조금,저쪽에서 조금...밭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만행은 하지 않았지요.
그리하여 주린배를 채울만큼의 감자를 캤습니다. 서리 일도 그냥하는게 아닙니다. 4-5명이 한조가 되어 각자의 역할분담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진행합니다. 망보기,캐기,캔후 줄기로 위장하기,구울 자갈 준비,나무해오기 등등에 이르기까지 빈틈이 없어야 합니다.
드디어 우리는 모든것이 완벽하게 진행되어 감자가 익기만을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동안 초여름에 드는 때라 바로 옆 경호강에서 물장구를 치고 놀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보다 좋을 순 없죠.
더운 몸을 식히고 물밖에 나가면 맛있는 군감자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시절엔 멱감으면 우리 모두는 할딱 벗었습니다. 서로들 꼬치를 구경해 가면서 말입니다.
한참후(감자가 맛나게 구워졌을 때) 물밖으로 나와 맨몸으로 잘 익은 감자를 지몫만큼 챙겨 먹었습니다.
서로들 지몫이 작아 보이긴 하지만... 이맛에 우리가 소먹이러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소도 배불리 먹이고, 소꼴도 한지게 베었고,배도 부르고. 이젠 각자의 행장을 챙길 때입니다.
그때, 누군가 한녀석이 " 옷이 없다."고 외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에나로(진짜로의 진주말임) 우리모두의 옷이 사라졌습니다.
천사도 아닌데 나무꾼이 가져갔을리도 없고. 큰일 났습니다. 그시절엔 옷이 여러벌 있는 것도 아니고.
더욱 기가 찰 노릇은 그곳에서 집까지는 1km 남짓한 거리인데 우짜모 좋단 말입니꺼!!!
벌건 대낮에 꼬치를 내놓고 할딱 벗고 집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낭패입니다. 어무이한테 욕먹을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합니다.
그리고, 거긴 동네사람들이 가끔씩 지나다니는 곳인지라 빨간 알몸으로 꼬치 내놓고 물밖에 나와 있지도 못합니다.
기억들 하시겠지만 물엔 적당히 들어가 있어야지 너무 오래 있으면 추워집니다. 하지만 우짭니꺼??
물에라도 들어가 있어야지... 하는 수 없이 모두가 아무도 '들어가자'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물속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불안,초조,긴장,그리고 추위까지... 나오지도 못하고 얼마나 물속에 있었을까요???
추워서 입술은 아예 푸른색으로 변한지 오래고,살은 부르틀대로 부르텃습니다.
예서 여러분은 웃을란지 몰라도 그때 우리들의 절박한 심정이란? 표현이 불가합니다.
더디기 더딘 시간도 가기는 가는 모양입디다.
해도 기울고, 우리가 바라고 바라던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서로 아무말도 주고받지 않았습니다. 말이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어둠이 꽉차 왔을 무렵. 드디어 우리는 행동개시를 했습니다. 물에서 나와(아이고 춥어라!) 각자의 소를 찾아 고삐를 쥐고, 알몸으로
지게까지 지고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서로들 말 한마디도 없이 말입니다.
다행스런 것은 집어귀까지 오는데 만나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죠. 참 이상한 몰골로 한참을 걸어 어느듯 동네어귀에 도착하니
남폿불(호롱불)이 이리저리 댕기고 후레쉬의 강한 불빛까지 반짝거리는 것이었지요.
으례껏 와야 할 시간이 넘었는데도 자식들이 돌아오지 않으니 부모님들과 동네사람들이 우릴 찾아 나선 것입니다.
겁도 나고,부끄러워 죽을 지경인데도 부모님들은 안도해서인지 죽겠다고 웃어댔습니다. 쥐구멍은 이럴때 필요한건데...
부모님들은 설마 우리보다 소가 더 걱정되신 건 아니겠죠????
중요한 것은 그때 또래의 가시나(동기생도 포함)들도 나의 할딱 벗은 맨몸을 봤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때 그 서리 사건은 끝이 났습니다.
할딱 벗고,지게 지고,소 몰고...^.^^.^^.^할지소
# 그때 그 소동을 야기시킨 옷을 가져간 사람은 감자밭주인 게미 외딴집에 홀로 사는 운제비영감이었습니다.
뒷날 엄마들이 찾아가 사정사정한 끝에 가져간 옷은 되돌려 받았습니다.
## 외딴집 운제비영감은 우리에게 엄청 신비한 존재였습니다.
몽이의 무실풀숲=http://blog.naver.com/hjm7471
첫댓글 쇠미기,이바구 계속되지요!
촌넘들 추억 많을 낀데.
예
얘기가 시리즈로 올라오네..
언제쯤 완성될라나..??
아예 강석.김혜영의 '싱글벙글 쑈' 에서 확인할까...ㅋㅋ
.
.
그로부터 1시간여 지난 후..
완성된 글을 읽고서 많이 웃었다.
몽아..
그 때 니 할딱 벗은 모습 봤던 가시나(?)는 요즘도 보는감..???
어릴쩍 추억을 생각나게
해주네요. 감자서리 다음에는
밀 서리도 있습니다. 모닥불에
그슬려서 비벼먹으면 이것도
꿀맛입니다.
그 가시나들 완죤 할망구 다 됐더라.
덧사진들이 대낄이다.ㅎㅎ
ㅎㅎㅎ
그 때 놀란 몽이 고추...
상상만 해도 재밌네 ^^
지금도 놀라면
고추가 커진다고나...?
ㅋㅋㅋ
몽아!
사진에 지긋이 눈감고 웃고있는
아가 늘이 아니가 항상 밝고 예쁜
얼굴 언제 국수 먹여 주나
마따.
대학 1학년때..
때가 되모...
깽깽이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