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 중학생인 나와 내 친구 현주랑은 아주 가끔 찐빵을 먹으러 갔다. 찐빵집엔 간판이 없었다. 잘 다져진 흙바닥인 실내는 반질반질 빛이났다. 흙이 다져져 이렇게 빛이 날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실내엔 늙은 나무탁자 몇개가 놓여있고, 메뉴는 딱 세가지 였다. 찐빵, 꿀빵, 그리고 여름엔 팥빙수.
우리는 이 빵집을 이름없는 만복당이라 불렀다. 이 빵집 이름이 왜 이름없는 만복당으로 불리워 지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알 필요도 없었고. 그냥 나보다 먼저 그곳을 다니던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고 그 이후에 오가는 모든사람들도 그냥 그렇게 불렀을 뿐이니까.
우리가 단발머리 중학생 이었을 땐, 빵집을 드나드는것도 적발되면 근신이나 정학이 징계로 내려지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말도 안되는 일을 당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학교와는 거리가 좀 되고, 우리동네에서 가까운 곳이라 맛있는 찐빵을 먹기위해 가끔 숨어서 들르던 곳이었다. 지금 그 찐빵집 주인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 찐빵집에서 일을하던 우리보다 몇살 위인 빵집총각 오빠만 기억한다. 어떤 손님한테도 눈길한번 주지않고 열심히 자기일만 하던 빵집총각. 그총각을 우리 또래의, 혹은 우리보다 나이가 있는 진주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후배들도 기억하고 있을게다. 항상 변함없이 찐빵에서 나는 이스트 냄새. 지금 그 냄새는 고향의 냄새, 단발머리 나를 만나게 해 주는 냄새다.
세월이 흐르고 이름없는 만복당이 있던 자리엔 최신식 건물이 들어서고, 이름없는 만복당의 말없던 그 총각은 아저씨가 되면서 빵집을 열었다. [수복빵집] 그 간판은 내가 아이 엄마가 된 후에 그집에 걸렸었다. 간판이 달린지 40년은 훨씬 지났을 법 한데 아직도 처음걸린 간판 그대로다. 역시 메뉴는 찐빵, 꿀빵, 팥빙수........빵집앞을 지날땐 언제나 팥 삶는 냄새가 풍겨져 나온다. 나무 테이블이 너댓개 놓인 넓지않은 공간. 그곳엔 언제나 큰 곰솥에 팥이 고여지고 작은 창 너머에는 빵 만드는 공간이 그대로 보였다. 이름없는 만복당에서 처럼 종업원이 없었다. 그 총각이 아저씨가 되면서 아내와 둘이서 빵을 만들고 있었다.
외지로 떠나살던 진주사람들이 고향에 가면 나처럼 그곳에 들러 이스트냄새가 풍겨나는 그 찐빵을 먹는다. 팥빙수를 먹고 꼭 꿀빵을 먹는다. 지금은 아저씨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되신 찐빵집 주인은 항상 변함없이 그자리에서 묵묵히 팥을 고고 찐빵과 꿀빵을 만든다. 절대로 친절하지도 않다. 친절하지 않아 불평을 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오랜만에 낯익은 얼굴의 옛 단골들이 찾아가도 반기는 표정을 보이는 적도 없다. 하지만 그 변함없는 표정에서 나는 고향을 본다. 이스트 냄새나는 찐빵에서 내 단발머리 십대를 만나고, 함께하던 친구를 만난다.
찐빵은 수복빵집에서만 맛 볼수있는 특별함이 있다. 긴 시간 고아낸 팥으로 단팥죽을 만들어 찐빵위에다 뿌려서 내어 놓는다. 그 단팥죽에 찍어먹는 찐빵맛은 어디에도 없는 맛이라 꼭 그집에 가야 먹을 수 있다. 널리 알려진 찐빵 크기의 반의 반만한 찐빵은 그야말로 한입크기다. 작은 찐빵속에는 앙코가 가득 들어있다. 단팥죽에 찍어먹는 찐빵이라고 앙코가 덜 들어가거나 앙코없는 찐빵이 절대 아니다. 요즘처럼 택배가 보편화 되어있는 세상인데도 절대로 택배로 주문을 받지않는다. 그래서 더 귀하다.
진주 근처를 지날 때 꼭 찾게되는 수복빵집. 빵을 사 먹기는 쉽지않다. 아무리 많은 손님이 찾아와도 하루에 만드는 빵의양은 늘리지 않는다. 어느때는 오후 세시면 이미 빵이 떨어져 버리고, 어떤때는 그보다 일찍 빵이 동이 나 버리기 때문이다. 몇해 전, 수복빵집을 찾았다. 작은 도시인 진주, 시장을 약간 벗어난 이면도로의 찐빵집 근처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이 줄이 찐빵을 사기위해 늘어선 줄이라는 걸 상상도 하지 않았다.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하고보니 찐빵집 손님들이다. 아...이러면 빵사기 더 힘든데....
인터넷에 소문이 난 이후부터 근처를 여행하던 젊은이들이 이렇게 줄을 서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끔 진주에서 오는 회원들한테 수복빵집의 찐빵을 사오라고 부탁을 해 보지만 쉽지 않다. 아마 더 이른시간에 찐빵은 동이 날 것에 틀림없고 아무리 손님이 늘었다고 해도 그 할아버지는 기필코 자기가 만들 수 있는 양 만큼만 만들어 낼것이다. 옛날처럼. 이게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의 마라톤 영업비결이기도 할테다.
며칠전 진주에 전화를 해서 물었다. 아직도 그 할아버지가 찐빵을 만드시냐고. 그렇다는 대답을 들었다. 평생 찐빵,꿀빵 팥빙수로 아이들을 길러내시고, 공부를 시키신 할아버지부부. 지금쯤 아들이나 딸이 물러받지 않았을까 했는데 아직은 아니란다.
지금껏 할아버지가 만들어 내는 변함없는 맛의 찐빵, 끌빵 팥빙수. 그만큼 손님이 많으면 분명 안흥찐빵처럼 기업화 할 수도 있었을 텐데....하나부터 열까지 수작업을 고집하시는 할아버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으신 장인정신을 갖고 계신듯 하다. 내가 두 손녀의 할머니가 되었고, 우리보다 몇살 위이신 그 할아버지는 몇명의 손자 손녀를 두신 할아버지가 되셨다.
나는 걱정스럽다. 어느날 내가 진주근처를 갔을 때, 수복빵집을 찾았을 때, 찐빵 꿀빵 팥빙수 맛을 볼수 없을까봐. 분명 할아버지의 자녀들은 하루종일 직접 팥을고고 반죽에 이스트를 넣어 부풀려 찐빵을 만들고, 꿀빵을 만들고 하는 수작업을 이어받을 생각을 하지않을것 같다.
십대부터 빵을 만들던 장인의 손맛을 아무리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그 맛을 흉내조차 낼 수 없을지도 모를일이고....
수복빵집의 찐빵엔 우리세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고향이고, 그리움이고, 그기가면 만나게 되는 자신의 단발머리 소녀를, 단짝친구를, 그리고 함께 늙어가는 주인 할아버지의 친절하지 않은 표정없는 얼굴에서 더 친근한 고향을 만날것이다. 부모님이 떠나가신 고향이 휑 해져 있더라도, 아직은 그 어린시절 맛보던 그 맛이 그대로 있기에 나는 오늘도 고향 진주를 그리워 할수있다.
이름없는 만복당 총각오빠, 수복빵집 아저씨, 지금은 수복빵집 할아버지 부부께 감사드린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이스트냄새를 맡으며 옛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남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