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미 / 쓰촨(사천)대학교 MBA 과정 유학생
라스베거스의 CES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광경을 중국의 내륙 지방에서 직접 보게 됐을 때의 신기함과, 그 뒤를 따라 밀려드는 위기감에 대해, 우리나라 경쟁력 제고에 작음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짧은 견해를 공유코자 한다.
이미 40여개국을 여행했기 때문에 전세계 어디를 가도 큰 충격을 느끼지 않는 편인데, 유독 중국에서 크고 작은 문화적 쇼크를 받는 이유는, 중국에 대한 편견 때문인 것 같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의 대도시가 아닌 청두에서 발견한 중국의 앞선 시스템을 사천(四川)이라는 이름에 맞춰, 네 가지 키워드로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Young, Sharing, Cashless, Robot economy.
Young economy
해외진출을 원하는 기업과, 유학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학생이 먼저 만나게 되는 사람 중에는 부동산업자들이 있다. 중국의 부동산 체인에 들어가면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이 바로 종업원들의 연령이다. 한국의 부동산 중개는 주로 ‘복덕방’이라는 옛이름과 잘 어울리는 동네 할아버지나, ‘공인중개사’라는 이름에 걸맞는 중년들에 의해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중국 도시의 부동산 중개소에는 앳된 20대의 얼굴들이 가득하다. 부동산관련 법이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농업경제에서 서비스경제로 빠르게 이동중인 중국은 인재 이동률도 높고, 유동 연령대가 매우 낮기 때문에 그들을 상대하는 부동산업자들도 어린 것으로 보인다.
청두에 거주하는 20대의 중국인들과 외국인 창업자들의 모임(wework/2018.10.30)
자료원 : 직접 촬영
뿐만 아니라, Start-up 모임을 가도 30~40대가 아닌 20대의 중국인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청두시는 자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서 일정 기준을 갖춘 start-up 청년들에게 사무실을 무료로 제공하는 등, 젊은 창업가 육성을 위한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다. 청두시는 행정구역 중 정부가 중점 지원하고 있는 고신구('고신기술산업개발구'의 약칭)내 창업시범구인 징롱후이(菁蓉汇)가 있고, 이 단지 내에는 한중창업단지를 비롯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정부기관이 함께 입주해 있다. 이외에도 쓰촨성 내에는 다양한 정부지원 창업단지가 존재하며, 실제로 이 곳에서 시작한 중국 스타트업기업들 중 금새 성장하여 유명한 유니콘 기업이 되는 경우도 많다. 창업에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와 그 용기를 뒷받침해주는 정부와 기업의 각종 지원으로 창업에 성공하는 기업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여러 사업체의 대표로 자신을 소개하는 많은 20대 친구들을 만나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젊고 풍부한 경제인구 비율과 그들의 젋은 에너지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또 청두가 젊어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템포가 느린 건강체조인 광장무(길거리에서 단체로 추는 춤)뿐만 아니라 빠른 템포의 춤도 곧장 소화하는 노인들의 열정 때문이기도 하다. 이른 새벽뿐만 아니라, 저녁시간에도 광장이 보이는 곳에는 늘 춤을 추거나 태극권을 연습중인 중국인들을 볼 수 있다.
Robot economy
청두의 한 훠궈(쓰촨식 샤브샤브) 식당에서 음식을 서빙하는 최첨단 로봇 두 대를 보았을 때 ‘무인(無人)경제'의 서막이 열렸다는 위기감이 강렬하게 밀려왔다. 어딜 가나 무섭도록 사람이 넘치게 많고, 값싼 노동력이 풍부한 이 중국 땅에서,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의 자동화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청두 식당에 로봇이 나타난 것이 벌써 5년 전의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미래식당(未来餐厅)이라는 키워드로 이미 알려진 바 있다. 사천성은 중국 정부에서 전략적으로 항공, 자동차 등의 하이테크 산업을 육성중이고, 특히 청두시는 중국 중서부의 젊은 인재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하는 도시로 꼽혔기 때문에, 기대 임금도 다른 도시 대비 높아, 로보트를 보는 일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2018년 지역별 기대임금 추이
출처: 인터넷 채용 사이트 ‘BOSS초빙’
하지만 청두로 이주해온 인재들의 기대 월급은 10,589위안이고, 서빙을 보는 종업원의 임금은 3천위안 수준이기 때문에, 약3만위안(한화 500만원)의 로봇을 도입한 이유는 인건비보다는 마케팅 수단으로써 의미가 크다고 본다.
몇 년 전부터 해외 여행지에서 드론을 날리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99% 중국인들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부터, 그리고 최근 기술은 어떨지 모르지만 공개시기는 삼성보다도 앞선 로욜이라는 중국의 중소기업에서 만든 접히는 핸드폰(FlexPai)을 보았을 때에도, 로봇산업도 미국과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 더 빨리 앞설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밀려 왔다.
훠궈식당 하이디라오(海底捞)에서 음식을 서빙하는 로보트
출처 : 바이두(百度)
Cashless economy
6년전 “천송이 코트 사건”으로 막대한 수출의 기회를 놓치고 난 후 한국은 전자 결제, 보안 시스템의 빠른 개선을 위해 노력중이지만, 그사이 중국은 핀테크 방면에서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다. 위챗페이나 알리페이의 활용범위가 무서운 속도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깡촌 할아버지가 드럼통 위에 파는 7위안짜리 군고구마 한 개를 살 때도, 몇 천위안의 월세를 지불할 때도 단 2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지문이나 비밀번호 6자리만 입력하면 모든 상거래가 완료되는 것은 벌써 몇 년전부터 일상화 된 모습이다.
올해 1월부터 청두시는 지하철을 탈 때도, 표를 살 필요 없이 휴대폰 스캔만으로 탑승이 가능한 시스템을 론칭했다. NFC가 보편화되지 않았음에도 나름의 해결책을 찾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권신청수수료를 포함한 여러 가지 세금도 납부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주식시장같은 금융시장에서만 초단위 거래를 경험했던 나로서는 위챗페이, 알리페이가 만들고 있고 앞으로 만들어갈 중국의 핀테크 세상이 궁금하다.
청두시 1월부터 위챗, 알리페이로 지하철 탑승
출처 : 쓰촨온라인(四川在线)
Sharing economy
'가족 빼고 뭐든 다 공유한다'는 공유경제의 천국이 된 중국에서는 유니콘으로 주목받던 OFO의 자전거가 이미 쓰레기로 전락했다. 공유경제의 발전과 소비자의 반응을 지켜보며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카풀, 자전거 공유서비스에 대한 도입 논란 등을 지켜보며, 모든 것에 “빨리 빨리”를 외치던 한국이 유독 공유 산업에 늦었던 것은 적은 인구수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지 생각해 보며, 중국의 다른 인기 있는 공유서비스를 찾아 보았다. 가장 눈의 띄는 것이 휴대폰 보조배터리 공유서비스였다.
식당앞에 흔히 볼 수 있는 휴대폰 충전기 공유 서비스
출처 : 직접 촬영
이 대여기는 식당 앞, 편의점 앞, 어딜 가든지 놓여져 있다. 충전기나 파워뱅크를 깜빡 잊고 가지고 오지 않았을 때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1시간 대여 가격은 보통 1위안(한화 1~2백원) 수준이고 반납장소가 자유로워 빌린 곳이 아니더라도 대여기에 빈 공간만 있으면 어디든 반납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충전기를 들고 다니는데, 중국 사람들은 보조배터리나, 파워뱅크를 많이 들고 다닌다. 그만큼 이동중 휴대폰 사용시간이 훨씬 긴 것 같다. 데이터요금제가 저렴해서 많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대화하고, 드라마를 시청한다. 참고로 나는 집에서 쓰는 와이파이와 IPTV를 포함한 휴대폰 데이터 무제한 요금을 100위안(한화 약 16,000원)밖에 지불하지 않는다. 다른 학생들의 경우 고작 30원정도 (한화 5천원)만 내고도, 불편하지 않게 통화도 하고, 모바일 컨텐츠를 이용하고 있다. 한한령여파로 대대적인 한류문화 행사들은 별로 없지만, 여기 청두 사람들은 여전히 한국드라마를 많이 애청하고 있다.
[유니콘 기업에서 쓰레기로 몰락한 OFO 의 자전거]
출처 : 바이두(百度)
자전거 공유서비스는 이미 발전하다 못해 출혈 경쟁 수준이다. 보증금만 내면 일정 반경 안에서 1시간 1위안(160원), 프로모션 가격으로는 6위안(약 천원) 수준에서 한 달동안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도 운영이 가능한 것은 막대한 이용자수 때문이라고 한다. 선두주자였던 OFO는 과다 경쟁으로 몰락했지만, Mobike, Hellobike 등 다양한 공유자전거 선택지가 있어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막히는 길을 편하게 달릴 수 있다.
마무리하며 4개월간 눈으로 지켜본 이곳 쓰촨 사람들은 오래된 소문대로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 위에 방임형 정부의 지원과 시스템 속에서 청두시민들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유택시 서비스 didi의 통계를 보아도 청두 사람들이 가장 늦게 출근을 하고, 제일 늦게 집에 들어간다. 퇴근이 늦어서가 아니다. 5시 혹은 6시에 칼퇴를 하고, 퇴근후에도 오랫동안 여가생활을 줄긴다는 뜻이다. 쓰촨성 전자상거래 빅 데이터 센터에 따르면, 2018년 청두시의 연간 전자상거래 거래액은 18,69.61억 위안으로, 중국 서부지역에서 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소비생활을 누릴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쓰촨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시인도 많고, 문화를 즐길 줄 아는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유독 다른 지역보다 소득수준 대비 높은 소비 소비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2008년 대지진을 경험한 이후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현재를 즐기자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한다. 짧은 견해였지만 외지인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 곳 쓰촨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