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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특별히 잼나지는 않지만
중간에 김남일은 잼있음 ㅋㅋ
카리스마 홍명보가 여의도에 가지 않는 까닭
‘카리스마’의 대명사로 불리는 홍명보(34·포항 스틸러스)는 얄미울 정도로 자기관리를 잘한다. 매사에 빈틈없이 정확하며 허튼소리 안 하고 목표를 향해선 무서울 정도의 집념을 나타내는 그야말로 진짜 프로다운 선수다.
그런 그가 일본에서 생활할 때 1년에 한 번씩은 사정없이 무너졌다고 한다. 바로 구단 납회식 후 갖는 연말 송년회 때였다. 그는 평소 일본 선수들 앞에서 말을 잘 하지 않았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통역을 이용했다. 그런 그가 송년회 자리에선 일본어를 구사하는 것은 물론, 유머까지 곁들이며 이런저런 농담을 풀어대는 모습에 일본 선수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원샷 문화’도 책임지고(?) 가르쳤다. 술을 마시려면 잔이 돌아야 제 맛이 난다는 설명을 곁들이며 원샷을 주도했는데 선수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 후 일본 선수들과 허물없는 사이가 됐다.
운동 선수들의 방송 출연이 지금같이 활발하지 않을 때, 그는 평소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TV에 출연해 축구팬들의 눈과 귀를 의심케 한 적이 있었다. 94년 미국 월드컵이 끝난 뒤 그는 정신없이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 내야 했다. 그중 하나가 방송 출연. 히트는 개그맨 이영자가 버스 안내양으로 나오는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와 이영자와 함께 춤추는 모습을 선보였던 일. 밤을 새우며 한국팀의 선전을 응원한 국민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한 서비스였지만 돌아온 반응이 의외로 냉담했다. 대표선수의 행동치고는 너무나 가벼워 보였다는 게 이유였다. 그 후 여의도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월드컵 4회 연속 출전이라는 화려한 타이틀로 누구보다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는 동생을 이기지 못하는 장남 성민이(5)와 형을 ‘밥’으로 보는 차남 정민이(3), 그리고 남편 이름 앞세우고 나서길 끔찍이 싫어하는 아내 조수미씨(29)를 책임지는 가장이기도 하다.
거미손 김병지 부부의 축구팀 만들기 작전?
98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이 서울 남산의 타워호텔에서 합숙하던 시기에 힘든 훈련을 마치고 저녁식사 후 가벼운 산책길에 나섰던 김병지(32·포항 스틸러스)는 뜻하지 않는 봉변을 겪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꽁지머리를 모자로 감추고 장충단공원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들이 나타나 수갑을 채우고 끌고 가는 게 아닌가. 너무나 놀란 그는 거듭 경위를 물었지만 경찰들은 묵묵부답. 차안으로 들어가서야 사정을 듣게 된 김병지는 기절초풍할 뻔했다. 공원에서 그를 본 한 시민이 경찰에 몽타주와 비슷해 보이는 신창원이 장충단공원에 있다고 신고했고, 즉시 출동한 경찰이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체포부터 했던 것이다.
톡톡 튀는 개성과 헤어스타일로 인해 패션쇼 모델과 광고에 출연하며 그라운드에서 드러내지 못했던 ‘끼’를 충분히 발휘한 그가 가장 욕심내는 CF가 있다고 한다. 바로 ‘세콤’ 등 보안시스템과 관련된 광고 모델. 철통보안, 철벽수비 등의 골키퍼 이미지와 보완시스템의 회사 이미지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CF를 찍을 경우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계산 때문.
아내 김수연씨와의 사이에 태백이(5)를 둔 그는 6월 중순경 둘째 아기를 볼 예정이다. 둘째는 성별에 관계없이 ‘산’이라고 이미 이름을 지어놓았다. 아이 욕심이 유난히 많은 이들 부부는 둘째 출산 후 셋째를 위해 또 노력(?)할 거라고. 아마도 자식들을 베스트11으로 구성, 축구팀을 만들려는 것 같다.
황선홍이 아내에게 보낸 눈물의 메시지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홍명보가 ‘실크로드’를 달려왔다면 황선홍(34·가시와 레이솔)은 ‘비포장 도로’의 전형을 보여준다. 스트라이커로서 최고의 선수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견뎌내기 힘든 슬럼프를 겪으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절절히 느껴왔다. 성장기도 축구인생만큼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잊을 수 없는 일생일대의 사건은 어머니의 가출. 여덟 살 때 집을 나간 후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 그가 청년이 되었을 때 우연히 만날 수 있었지만, 어머니에 대한 미련을 접은 지 이미 오래인지라 미움도 안타까움도 없이 다시 보내드릴 수 있었다고 한다.
택시운전을 했던 아버지는 혼자서 축구선수 아들을 뒷바라지하며 희생을 마다하지 않다가 6년 전 병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대신해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장인이었는데, 장인마저 사위의 변화무쌍한 인생살이에 마음 졸이고 가슴 아파하다가 지난 4월 운명을 달리했다. 지난 5월 초엔 유일한 핏줄로 남아 있던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는 등 시련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누구보다 가족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독일 2부리그 부퍼팔에서 활약할 당시 만났던 독일 유학생 정지원씨와 94년 결혼, 슬하에 1남1녀를 둔 그는 축구와 가족이라는 명제 앞에선 유독 강한 남자로 변신한다. 특히 빙부상과 조부상을 당한 뒤론 가족에 대한 소중함이 더욱 커졌다. 제주도에서 전지훈련을 하던 중 그는 생애 최초로 아내에게 이런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너를 끝까지 지켜줄게. 정말 사랑한다.’
튀는 이천수 “나도 예쁜 마누라 얻고파”
‘밀레니엄 스타’ 이천수(21·울산 현대)에 대한 이미지는 그를 취재한 기자마다 똑같은 대답을 내놓을 것 같다. 바로 ‘맹랑하다’는 것. 징그러울 정도로 말을 잘하고 어떤 자리에서도 기죽지 않으며 때론 가당치 않아 보이는 희망사항 등을 거침없이 쏟아낼 때는 그의 실제 나이와 경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가 히딩크 사단에 합류하기까지엔 7개월여의 기다림이 필요했다. 해외 진출을 노리고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넘나들며 ‘대박’을 노렸다가 ‘쪽박’을 차게 되자 기댈 곳은 대표팀밖에 없었다. 당시 몇몇 축구 전문가들이 국제무대 경험이 없는 선수가 어떻게 월드컵같이 큰 무대에서 제대로 공을 차겠냐며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칠 때 ‘안 뽑고는 못 견딜 것’이라며 큰소리쳤다.
올림픽대표팀에 처음 선발된 99년 9월, 타워호텔에서 합숙중인 대표선수들과 상견례를 할 때였다. “부평의 명물, 이천수라고 합니다. 저는 중앙에서 골 넣는 것을 좋아하고요, 중앙 돌파도 아주 뛰어나답니다. 혹시 저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라도 질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선수들은 자지러졌다. 고종수를 능가하는 ‘물건’을 만난 기분이었던 것.
아무리 하늘 같은 선배라도 하기 싫은 일은 자신 있게 ‘노’(NO)라고 말한다는 그에게 선배가 어렵지 않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활짝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안정환처럼 ‘엄청난’ 미인을 아내로 맞이할 수만 있다면 월드컵 끝나고 당장이라도 결혼식 올리겠다는 그가 과연 어떤 여성을 아내로 맞아들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차두리의 이상형은 어머니 오은미씨
3년 전 고려대 운동장에서 차두리(23·고려대)를 만난 적이 있었다. 인터뷰 전까지만 해도 왕년의 축구스타였던 아버지 차범근씨(MBC 축구 해설위원)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내성적이고 무뚝뚝한 청년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만난 그는 당시 대학 신입생다운 패기와 적극성, 자유스러움 등을 무기로 축구를 즐기고 있었다.
미팅하러 나갔다가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놀라는 여성을 보고 이해할 수 없었지만, 유명한 아버지를 둔 스트레스보다는 아버지의 유명세를 이용하며 긍정적인 면만 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대학 1학년 때 그는 누구의 아들이란 타이틀을 아예 떼어버렸다. 선배를 하늘로 모시고 청소도 도맡았다.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기만 하면 화장실 청소를 하러 다녔다. 다른 동기들이 ‘땡땡이’를 쳐도 고집스럽게 청소와 선배들 심부름을 도맡았다. 이유는 차범근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때문에 운동생활하며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지우기 위해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학교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는 술을 꽤 좋아한다. 신입생 때는 필름이 끊기도록 술에 취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표선수가 되고 나서는 자제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여성에 대한 관심도 만만치 않다. 좋은 여성만 있다면 일찍 결혼하고 싶다. 모델은 어머니 오은미씨 같은 스타일. 하지만 요즘에 남편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여성은 흔치 않을 것 같아 그리 기대하지는 않는다. 당장은 월드컵이 코앞에 닥친 상태라 수도승 같은 생활을 하며 세계적인 축제에 발을 내디딜 수 있기만 간절히 바랄 뿐이다.
‘순진남’ 송종국, 월드컵 때문에 여자친구와 결별
지난해 연말 각종 프로축구 시상식 때마다 신인왕 수상자로 바쁜 움직임을 보였던 송종국(23·부산 아이콘스)의 옆에는 그림자처럼 함께 다니는 두 사람이 있었다. 친형 종환씨와 두 살 연하의 여자친구였다.
그런데 한 시상식장에서 사회자가 애인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엉겁결에 “없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벌써부터 방송용 멘트에 길들여진 것 같아 내심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나중에 확인한 결과 여자친구가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걸 싫어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얼마 전 그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말았다. 계속되는 합숙생활로 데이트는 꿈도 꾸지 못했고 자주 볼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자 이런저런 오해가 쌓이면서 틈이 벌어졌던 것. 아픔을 머금고 이별의 길을 선택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사랑이란 카드가 월드컵이란 대세 앞에서 속절없이 주저앉고 만 것이다.
그는 원래부터 내성적인 성격이다. 무슨 놀이 자리나 파티 등에서 노래를 시키면 남 앞에서 노래부를 만한 배짱과 오기도 없는 ‘샌님’이다. 부끄러워 숨고 수줍어서 뒤로 물러서 있는 ‘남자답지 못한’ 행동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성격을 고치기란 어려운 법. 그런 그에게 월드컵대표팀에 발탁된 일은 행운이었다. 좋은 플레이를 펼쳐 각종 매스컴의 주요 인터뷰 대상자로 꼽히고 보니 마이크 앞이나 기자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익숙해진 것이다. 그렇게 입담은 늘었지만 지금도 노래부르라고 시키면 앞장서 나가지 못한다는 ‘순진남’이기도 하다.
최용수 속내 들으려면 심야 전화가 딱이야!
외모로만 봤을 때 최용수(30·제프 이치하라)는 아주 냉정해 보여 ‘인정머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그라운드에서 그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못해 무섭게 보일 정도다. 간간이 그에 대한 사적인 평가마저도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라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게 중론.
몇몇 기자들이 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뷰를 요청하면 거절하기 일쑤고 사진촬영 때는 도통 사진기자의 주문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이런 그가 진중하게 인터뷰에 임할 때가 있다. 바로 전화통화에서다. 그는 얼굴 맞대고 인터뷰하는 것에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프로 데뷔 초기나 J리그에서 활약하는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하지만 밤늦은 시각 전화로 인터뷰하면 평소 들을 수 없는 사연들이 술술 나온다. 낯을 가리고 쑥스러움이 많으며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 탓이다. 가끔 인터뷰하다 시종일관 단답형으로만 진행되면 과감히 인터뷰를 접고 저녁에 전화하자고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그만의 솔직함으로 전화 인터뷰에 응하곤 했다.
그의 어머니 윤호임씨는 월드컵보다도 아들의 결혼문제에 더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일본에서 혼자 생활하는 아들이 어머니에게는 ‘걱정거리’로 남아 있기 때문. 윤씨는 내조 잘하고 얼굴까지 예쁜 여성을 아내로 맞아들이는 선수들을 볼 때마다 부러움이 가득하다. 도대체 내 아들은 왜 저런 여자를 구하지 못할까 싶은 안타까움 때문이다.
안정환의 헤어스타일은 아내 작품
잘생긴 얼굴로 뭇 남성의 질투 어린 시선을 받고 있는 안정환(26·이탈리아 페루지아)이 미스코리아 출신의 아내 이혜원씨와 결혼하기까지엔 숱한 난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이씨 가족의 거센 반대. 축구선수를 사위로 맞아들일 수 없을 뿐 아니라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사람을 어떻게 믿고 딸을 맡길 수 있느냐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씨의 큰외삼촌이 목사로 재직중이고 이씨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권사와 장로로 활동할 만큼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는 점도 큰 걸림돌이었다. 불교를 믿는 남자 집안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 더욱이 안정환 어머니의 불분명한 행적으로 인한 온갖 구설수는 기름에 불을 붓는 격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바탕으로 어렵게 결혼 승낙을 받아냈다. 특히 이씨의 고집엔 부모마저 두 손 들 정도였다. 강경 일변도로 치닫던 이씨 부모도 그를 직접 만나본 뒤론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씨의 어머니 전봉숙씨는“무척 솔직한 사람 같아 보였다. 평소 들은 소문들에 대해 물어도 주저 없이 대답했고, 순간을 모면하려고 사탕발림 같은 말을 하지 않아 믿음이 갔다”며 당시의 느낌을 전했다.
그의 헤어스타일은 아내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이탈리아에서 주로 하고 다닌 장발은 아내가 직접 다듬어준 것이었고, 지금의 ‘아줌마 퍼머’는 귀국 후 커트하려고 미용실을 찾았다가 아내의 감언이설에 속아 머리를 맡긴 게 뽀글뽀글한 아줌마 스타일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요즘 이 헤어스타일이 대유행이라고 한다.
코치 뺨치는 식견의 유상철 부인
골키퍼만 빼놓고는 안 해본 포지션이 없을 만큼 대표팀의 전천후 플레이로 활약하는 유상철(31·가시와 레이솔)에게 동갑내기 부인 최희선씨는 든든한 지원군이요, 냉철한 비판가다. 오랜 연애 기간 덕분에 축구에 관해서라면 박사 소리 들을 정도로 해박할 뿐만 아니라, 남편의 플레이만 봐도 컨디션을 눈치챌 만큼 뛰어난 안목을 자랑한다. 경기 후 집에서 비디오를 같이 보며 남편이 놓쳤던 부분들을 짚어줄 때는 전문가 이상의 식견으로 핵심을 꼬집기도 한다. 일본에서 합숙이 시작되면 손수 도시락을 들고 숙소까지 배달하는 열혈 내조로 유상철을 감동시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 낳고 몸매가 예전 같지 않을까봐 노심초사하는 아내를 위해 일류 모델보다 멋진 몸매를 가졌다며 입바른 칭찬을 흘리고 혼자 육아를 도맡은 아내의 수고를 염려해 시간 날 때마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자상함이 눈에 띈다.
그는 특이하게도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했다. 체육과의 경쟁률이 치열해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영어를 배우겠다는 생각에 영문과를 희망했으나 친구가 중문과에 같이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그냥 따라갔던 것. 당연히(?) 수업은 거의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시험만큼은 빠뜨리지 않고 꼬박꼬박 치렀다. 그렇다고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이름과 학번만 쓰고 백지를 제출하기 일쑤였지만 참가하는 데 의미를 둔다는 일관된 생각을 밀고 나갔다. 대신 꼭 빠뜨리지 않고 쓰는 말이 있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이영표, 여자만 소개해 주면 뭐든 할 수 있어!
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한국 대표팀에는 때 아닌 ‘수혈 논쟁’이 일어났다. ‘늙은 피’를 빼고 ‘젊은 피’를 공급해야 한다는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것. 당시 ‘젊은 피’의 대표적인 얼굴로 차출된 선수가 이영표(25·안양 LG)였다. 그는 ‘벼락스타’라고 불릴 만큼 대표 경력이 전무했던 무명 선수.
그가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까지만 해도 학교 동기였던 신병호가 대표팀에서 큰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부상으로 빠지게 되자 그가 대신 들어가게 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만약 신병호가 부상하지 않고 계속 좋은 플레이를 펼쳤다면 과연 그에게 2002월드컵에서 뛸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을지 궁금하다.
대표팀에서 처음 생활할 때 가장 기분 좋았던 일은 평소 존경하던 선배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황선홍은 이상형으로 꿈꿨던 모델. 감히(?) 한 팀에서 뛸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는데 막상 현실로 닥치자 여간 신기하지 않았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여자친구를 소개받으려고 주위 사람들의 ‘무수한’ 도움을 받아야 했다. 다른 동료들이 여자친구와 전화하거나 틈을 내 잠시라도 데이트를 하고 돌아오면 그는 곧바로 ‘질투의 화신’으로 변한다. 그래서 소개팅 자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는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여자 보는 안목이 무척 소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소개해 주는 사람마다 너무 까다롭다는 지적을 한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성실과 노력으로 대변되는 그는 히딩크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이래 단 한 번도 대표팀 탈락의 쓴맛을 본 적이 없다. 다른 선수들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하지만 ‘소금’ 같은 자세로 월드컵 무대를 누빌 것이라고 한다.
‘아파치’ 김태영, 압박수비도 아파치처럼
외국팀과의 평가전이 끝난 뒤 상대팀 선수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한국 선수를 꼽아달라고 주문하면 많은 선수들이 수비수 김태영(32·전남 드래곤스)을 지목한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저돌적이고 악착같은 플레이로 펼치는 그의 압박수비에 시달림을 당한 터라 그가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상대 공격수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게 주특기일 만큼 수비에 관한 한 ‘최고’임을 자부한다.
좀처럼 웃지 않는다고 해서 ‘아파치’라 불리지만, 끈질기고 거친 스타일로 인해 ‘아파치’란 별명을 갖기도 했다. 그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축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험난한 과정을 걸어왔다. 형들이 모두 축구를 했는데 학교 진학이 어려워지자 부모님이 축구 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던 것. 축구에 대한 열정은 마침내 부모님을 항복시켰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맘놓고 축구공을 찰 수 있었다.
고등학교 진학 때는 주전 한 명에 후보 2명이 끼워서 가는 형식으로 금호고에 입학했는데, 그는 당시 주전이 아니라 덤으로 포함된 ‘깍두기’였다. 동아대 졸업 후 국민은행에서 생활할 때도 큰 빛을 발하지 못했다. 95년 전남 드래곤스에 입단하면서부터 그의 축구인생은 비로소 ‘쨍’하고 해뜰 날을 맞았고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대표팀에서 활약하게 됐다.
축구를 어렵게 시작했고 평탄치 않은 선수생활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오른 터라 그는 축구에 대한 소중함, 간절함, 자신감이 차고 넘친다.
어린 설기현은 별명이 왜 ‘영감’일까
설기현은 선수들 사이에서는 ‘설영감’, 히딩크 감독에게는 ‘쎄올’이라 불린다. 나이(23)답지 않게 속이 깊고 말수도 적다. 씩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영감이다. 청소년축구대표 시절부터 영감이라 불렸으니 이제는 ‘쉰 영감’이 됐다. 물론 공식 별명은 한국판 히바우드라 해서 ‘설바우드’지만 영감이 더 잘 어울린다.
설기현은 초등학교 3학년이던 지난 89년, 탄광사고로 아버지(설용식씨)를 잃은 후 말하기가 싫어졌다고 한다. 아버지는 3형제 중 둘째인 설기현을 유난히 사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를 잃었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리라. 설기현은 벨기에에서 귀국할 때마다 정선에 있는 아버지 묘소를 가장 먼저 찾는다.
설기현은 배우자도 일찍 정했다. 이성을 두루 만나보고 짝을 정하는 요즘 신세대와는 달리, 광운대 1학년이던 98년 학교 친구의 동생인 윤미씨를 만나 철부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그 철부지 사랑이 약혼으로 이어져 벨기에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 생활했고, 오는 8월이면 아기까지 태어난다. 설기현은 아내, 아기와 함께할 32평짜리 아파트를 보금자리로 마련해 두었다.
설기현은 이번 월드컵이 끝난 후 벨기에보다 더 넓은 무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로 진출할 계획이다. 히딩크 감독도 설기현이 네덜란드 특급 스트라이커 오베르마스와 흡사하다며 영국무대 진출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부추기고 있다.
사실 설기현과 오베르마스는 공통점이 많다. 두 선수 모두 파워풀한 공격력을 자랑하고, 득점 감각이 뛰어나다. 설기현이 히바우드, 오베르마스 등 외국 선수들과 자주 비교되는 것은 그만큼 플레이 스타일이 빅 리그(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등)에 어울린다는 얘기다. 어쨌든 이번 월드컵은 설기현에게는 빅 리그로 진출할 수 있는 시험무대인 셈이다.
히딩크 총애 한 몸에… ‘얼떨리우스’김남일
얼떨결에 월드컵 대표가 된 김남일(25)은 축구도 얼떨결에 시작했다. 큰형이 축구 하는 것을 보고 송월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화를 신은 것이다. 김남일은 부평고 1학년 때 축구선수로서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축구부에서 이탈한 것은 물론 아예 가출까지 한 것이다. 그 기간이 무려 8개월이나 되었다.
3형제 중 막내인 남일을 누구보다 아꼈던 아버지 김재기씨(51)는 유흥업소 웨이터로 손님을 맞이하는 남일을 보고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무조건 남일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눈물로 호소했다.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데 충격받은 남일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하고 곧바로 학교 축구부 합숙소를 찾았다.
김남일은 신세대지만 튀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히딩크 감독의 총애를 받아 ‘황태자’ 소리를 듣지만 오로지 열심히 훈련하고 경기에 임할 뿐이다. 김남일이 처음부터 히딩크 감독의 총애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8월15일 체코와의 경기에서 히딩크 사단의 일원으로 처음 A매치 경험을 할 때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실수를 많이 했다. 머뭇거리다 체코의 네드베드 선수에게 볼을 빼앗겨 골로 연결되었을 때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인천 무의도 고향에서 아들이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다고 돼지 3마리를 잡고 하루종일 잔치를 벌인 아버지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김남일은 그럴수록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를 더 이상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김남일은 경기마다 상대 스트라이커의 전담 마크맨으로 기용되었고, 그때마다 무실점으로 막아 까탈스러운 히딩크 감독의 주전 낙점을 받아 월드컵 무대에 서게 되었다.
경기후에 기자들이 어떡할꺼냐.. 카메라에 반칙장면이 잡혔다라고 하자
김남일 선수 曰 "치료비는 제 연봉에서 까라고 하세요" -_-;;
일이 커지려 하자 "제 잘못 아니에요" 라며 당당한 모습을 보이기도..;;
잘생긴 넘들도 스타일에 따라 분류가 가능한데 꽃미남파로는
이동국, 안정환, 이관우 정도를 들 수 있겠다. 호남형은
홍명보, 장대일, 김도균 정도다. 그리고 분명 미남형이지만
한성깔 할 것 같아 차마 언급하기 어려운 김남일 정도가 있다.
-딴지일보-
김남일은 지치지 않는 체력과 강인한 승부근성을 갖춰 한국
선수중에서는 대인마크의 1인자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 자칫 잘못하면 옐로카드까지 받을 수 있는 거친 플레이로
일관, 상대선수들을 심리적으로도 압도할 수 있어 적격이다.
-fifa공식페이지-
“한국 선수들은 김남일처럼 할 줄 알아야 한다.
유명한 선수를 상대하면서도 기죽지 않고 심판이 안 볼 때마다 걷어 차는 근성이 있다”
-히딩크-
올 초 북중미 골드컵에서 베스트11에 선정될 만큼
해외에서도 인정받았고,또 지난달 벌어진 스코틀랜드나
잉글랜드,프랑스 등과의 평가전을 통해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바 있다. 외국의 언론들이 “이탈리아나 잉글랜드
리그에 진출해도 손색이 없다”며 칭찬했던 김남일은
이번 폴란드전에서도 상대 플레이메이커 시비에르체프
스키와의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둬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이날 외신기자들은‘대단한 선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stoo-
상대 플레이의 축이 되는 미드필더 시비에르체프스키를 90분간
꽁꽁 묶은 김남일의 소금역할. 김남일의 수훈은 공포의
대상이었던 올리사데베의 위력을 50%로 반감시켰다
-신문선의 관전평. 김남일의 [족쇄수비] 수훈. 이라는 제목-
김남일이는 항상 공과 관계없이 자신이 맡은 선수와 싸우고
있으므로 경기중 어디에선가 김남일 아니면 상대선수가 상대
반칙으로 쓰러져 구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단도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부상당했다)
평소엔 얌전하고, 말도 없는데.. 경기장만 들어가면 호랑이가 되더라구요..
- 김남일 선수의 아버지 -
제주산 오뚝이… 2전3기 최진철
늦깎이 국가대표 최진철(31)은 벌써 학부형이다. 아들 완길(6)은 유치원에 다니는데 동네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아버지 자랑을 한다. “우리 아빤 월드컵 대표야. 그것도 주전 수비수란 말야”라며 어깨를 쭉 편다.
최진철의 아버지 최지수씨(54)도 아들이 자랑스럽다. 아들 3형제 모두 축구를 시켰는데 진철이 처음 월드컵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최진철은 2전3기로 월드컵 대표가 되었다. 지난 94년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 미국 전지훈련까지 갔으나 정작 본선에는 얼굴도 내밀지 못했다. 훈련에만 참가하고 본선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98 프랑스 월드컵 때는 지역 예선대표 멤버였지만 벤치만 지켰고, 프랑스 땅은 밟아보지도 못했다. 이 같은 쓰라린 경험이 최진철을 더욱 분발하게 했고, 지난해 9월부터 붙박이 국가대표가 되어 이제는 스타팅 멤버로 출전하게 되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대표선수 가운데 가장 큰 키(187cm)와 당당한 체격에서 나오는 몸싸움 능력, 헤딩력을 높이 샀다.
최진철은 지금 수비를 맡고 있지만 제주도에서 초·중·고교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팀의 주 공격수로 활약했다. 그러다가 숭실대학에 들어가면서 수비수로 변신했다. 숭실대를 졸업하고 프로축구 전북 모터스에서는 스트라이커로 변신해 2시즌 동안 무려 17골을 뽑아냈다. 그리고 이제 월드컵대표에서 다시 수비수로 변신한 것이다.
월드컵 축구대표팀이 지난 5월 초 제주도 전지훈련을 했을 때는 제주도 출신 중 유일하게 월드컵 대표선수라는 이유로 제주도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진철이 형님, 이번에 큰일 한번 내봅서”라는 플래카드가 훈련장에 나붙기도 했다.
‘괴물 체력’ 박지성 힘의 근원은?
체력을 강조하는 히딩크 감독의 스타일에 가장 어울리는 선수가 박지성(21)이다. 박지성은 도무지 지칠 줄 모른다. 그래서 ‘머슴축구’를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스타팅 멤버로 출전했음에도 후반 45분이 가까워지도록 처음 그라운드에 들어섰을 때처럼 펄펄 날아 “쟤 약 먹고 뛰는 거 아냐”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다.
박지성은 지난 2000년 4월 동대문축구장에서 열린 아시안컵 예선에서 처음 A매치 경험을 했다. 그때가 열아홉 살이었다. 지난해 1월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 때 수비형 미드필더로 상대 공격수를 철저히 막아 히딩크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이후 5월에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한국이 2승을 거둔 경기에 모두 어시스트를 기록해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효과적으로 뛴다는 소리도 들었다.
박지성은 175cm, 70kg의 비교적 작은 체구다. 사실 평균 180cm에 80kg이 넘는 폴란드와 포르투갈 선수를 상대하기에는 너무 버겁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이 갖고 있는 근성을 높이 산다.
박지성은 어릴 때 정육점을 하는 아버지가 힘들게 운동한다며 자신에게 쇠고기의 좋은 부위를 많이 먹여 체력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버지 박성종씨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뒷바라지를 충분히 못해준 게 한이다. 명지대를 휴학하고 일본 프로축구 교토 퍼풀상가 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지성은 자신을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한 허정무 감독을 가장 존경한다. 허정무씨는 당시 무명이던 박지성을 발탁할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자 “글쎄, 1년만 지켜보면 제가 왜 지성이를 국가대표에 뽑았는지 알 겁니다”고 일축했다. 이제 박지성은 월드컵대표팀의 오른쪽 날개로 폴란드 격파의 선봉에 서게 됐다.
꽃미남 이민성, 누나들 덕택에 축구 시작
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일본과의 경기. 1대 1 상황에서 후반 41분. 볼을 치고 나가는 순간 일본의 골문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는 약 25m. 아무도 앞을 가로막지 않았다. 골문이 한층 넓게 보였다. 마음먹고 왼발로 강슛을 날렸다. 발등에 착 달라붙는 느낌. 골인임을 직감했다. 볼은 미사일처럼 날아가 그라운드에 한 번 튄 뒤 그대로 일본 골네트에 빨려 들어갔다. 이 한 골로 일본 열도는 침묵했고, 한반도는 열광했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말이 그때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월드컵축구대표팀의 이민성. 그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짜릿해진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날의 역전 결승골은 잊지 못할 것이다.
182cm, 75㎏의 체격. 단정한 고수머리에 탤런트 뺨치는 준수한 용모. 겉모습만으로는 도무지 축구선수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가 거친 승부의 세계에 뛰어든 것은 순전히 누나들 때문이다. 딸부잣집(1남3녀) 막내로 태어난 이민성은 어려서부터 귀염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누나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성격이 너무 여려 샌님 같았다. 아버지(이지형씨)는 그런 그에게 운동을 하면 좀 남자다워질까 해서 축구를 시켰다. 시흥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이민성은 2002 한·일 월드컵이라는 대사를 앞두고 지금도 ‘부상’ 때문에 시련을 겪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이번 시련도 충분히 극복해 나갈 것이다.
윤정환은 정말 체력이 약할까
꾀돌이 윤정환(29)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히딩크 감독이 체력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항상 ‘다 좋은데 후반에 체력이 떨어지고 수비 가담 비율이 적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윤정환은 체력이 약하지 않다. 20m 거리를 왕복하는 셔틀런 테스트에서도 유럽 선수의 평균 수치인 120회를 훨씬 넘어 130회에 이른다.
윤정환의 아내 이효영씨도 남편 윤정환이 체력이 약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혹시 자신이 뒷바라지를 잘 못해 그런 소리를 듣는 게 아닌가 해서다. 그래서 윤정환 선수가 집에 올 때마다 개고기 수육을 준비해 먹이거나, 보약을 장기 복용하도록 하고 있다.
윤정환은 자신이 수비 가담이 적었던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월드컵대표팀에서는 수비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렇다고 공격형 미드필더가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내려갈 필요는 없는 게 아닌가. 윤정환은 지난 96년 러시아의 비쇼베츠 감독이 이끄는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주장을 맡았다. 그때부터 몸싸움을 싫어하고 수비에도 소극적이라는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날카로운 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고, 기회가 생기면 자신이 직접 중거리 슈팅을 성공시키는 윤정환의 고급 축구를 이해하는 감독 밑에서는 ‘최고 선수’라는 소리를 들으며 총애를 받았다. 프로축구 부천 SK 팀을 맡았던 니폼니시 감독은 “윤정환은 장점을 살려주어야 하는 선수다. 그의 단점은 다른 선수로 메워주어야 한다. 단점을 보완하라고 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며 윤정환을 중심으로 한 플레이를 하도록 했다.
이제 히딩크 감독으로부터도 ‘한 방 날릴 만한 선수’로 인정받은 윤정환은 월드컵을 앞두고 ‘카리스마를 키우라’는 주문을 받고 있다. 팀의 공격과 수비를 조율하는 플레이메이커는 보스 기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폭급 얼굴의 ‘아름다운 조연’ 최은성
사실 최은성(30)은 월드컵 무대에 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김병지 이운재 골키퍼가 건재한 데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주전 골키퍼인 김용대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최은성을 보면 험한 인상에 얼굴을 찌푸리게 된다. 마치 조폭처럼 짧게 깎은 머리, 험상궂은 얼굴, 그리고 운동을 해서 보통 사람보다 휠씬 큰 체격. 사실 국내 감독이었다면 최은성의 월드컵 출전은 1%의 가능성도 없었다.
히딩크 감독은 오로지 실력과 팀 공헌도로 선수들을 선발했다. 특히 최은성은 성실성 면에서도 히딩크를 감동시킬 정도였다. 최은성은 그동안 후보였지만 월드컵 멤버에 끼일 때마다 ‘마당쇠’ 역할을 도맡아 했다. 공격수가 부족하면 그쪽 팀 공격수로, 수비가 모자라면 수비로도 뛰며 훈련을 도왔다.
김현태 골키퍼 코치는 “사실 국제경기 경험이 없어서 그렇지 은성이도 병지나 운재 못지않은 순발력을 갖고 있다”며 입이 닳도록 칭찬했다. 결국 최은성은 실력으로 김용대를 밀어내고 ‘골키퍼 엔트리 3명’에 들어갔다. 그야말로 ‘엔트리의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비록 지금의 위치는 김병지 이운재의 불행(?)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조연’에 그치고 있지만 월드컵 무대에 선 것만 해도 행복하다. 최은성은 “병지 형이나 운재가 월드컵 무대에서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30세에 월드컵 대표로 뽑힌 것만 해도 영광이다”며 겸손해하고 있지만 남몰래 실력을 가다듬고 있다. 지금 당장 월드컵대표팀의 골문을 지키더라도 ‘역시 넘버 스리가 아니었군’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최태욱은 대표팀의 수도사
축구팬들이 최태욱(22)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준마처럼 그라운드를 질주하다 골을 넣은 뒤 수도승처럼 무릎 꿇고 감사 기도를 하는 장면이다. 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팀을 상대로 한국 월드컵 출전사상 첫 골을 넣은 박창선 선수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지만 왠지 거룩해 보여 보기 좋다.
실제로 최태욱의 인생은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다. 최태욱의 신상명세를 보면 별명은 ‘주의 종’,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성경이라고 쓰여 있다. 월드컵대표가 된 후에는 이동하는 대표팀 버스에서도 기도를 한다. 최태욱의 기도에는 이 자리에 오도록 도와준 하나님께 감사하고, 앞으로 노력한 만큼 결실을 보게 해달라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최태욱의 신앙심은 월드컵대표의 최성용 이천수를 기독교에 귀의하도록 했다. 훈련을 끝내고 방에 돌아오면 최태욱은 찬송가를 틀어놓고 성경책을 읽는다. 최태욱은 일상생활에서도 멋이라곤 모른다. ‘최고 미남’이라 불릴 정도로 준수한 외모지만 옷차림은 수수하다.
최태욱은 지난 2000년 부평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로축구 안양 LG에 입단했다. 함께 졸업한 이천수와 함께 고려대나 다른 대학에 갈 수도 있었지만 이왕 축구에 인생을 걸려면 일찌감치 프로물을 먹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킥의 달인’ 현영민은 야구선수로도 제격?
히딩크 감독이 ‘영미니’로 부르는 ‘긴팔원숭이’ 현영민(23).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의 월드컵 엔트리 합류를 점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철저하게 무명이었기 때문이다. 서울 광희초등학교, 경희중학교, 경희고등학교를 비롯해 울산 현대에 입단하기까지 단 한 번도 그 또래의 대표선수를 지낸 적이 없다. 대표팀 경력도 1년이 채 안 됐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현영민의 가능성을 봤다. 그가 추구하는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전형적인 멀티플레이어인 데다 체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현영민의 플레이는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수비력, 체력, 몸싸움, 슈팅력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가 없다. 그리고 감아차기, 깎아차기, 꺾어차기 등 차는 기술도 투수들의 변화구처럼 다양하게 구사한다. 게다가 롱 스로인 실력은 과거 70년대 황재만 선수를 연상시킬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갖고 있다.
현영민이 이같이 롱 스로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야구를 했기 때문이다. 당시 투구 속도가 시속 130km를 넘었다. 그래서 ‘프로야구를 해도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현영민은 축구를 하면서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때 출전한 금석배 대회 8강전은 선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경희고는 그 대회 우승후보였는데 자신이 승부차기에서 실수하는 바람에 탈락하고 만 것이다. 그때부터 현영민은 모든 훈련을 끝내고 킥 연습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현영민의 킥은 월드컵대표팀 내에서도 가장 다양하고 정확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날으는 삼겹살’ 이운재, 부부 금실도 최고
김병지가 튀는 골키퍼라면 ‘날아다니는 삼겹살’ 이운재(30)는 안정감 있는 골키퍼다. 이운재의 페널티킥 막는 실력은 이미 국제 축구대회에서 인정받았다. 이운재는 지난 1월 말에 개최된 북·중미 골드컵 축구대회 멕시코와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2개의 페널티킥을 잇따라 막아내 한국팀을 4강까지 끌어올렸다.
이운재는 페널티킥을 잘 막는 요령을 “평소 상대 선수의 킥 버릇을 알아두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킥을 차는 선수의 발을 보면 대개 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밝힌다. 이운재는 소속팀(수원 삼성)에서도 승부차기 승률을 80% 이상 끌어올렸다. 수원 삼성은 후반 30여분이 지나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아예 무승부 작전을 편다.
이운재는 아시아에서도 정상권 골키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4월 아시안컵 준결승전 우즈베키스탄의 나사프 카르시아전과 안양 LG와의 결승전에서 잇따라 무실점 방어를 해서 소속팀 수원 삼성을 아시아 정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이번 월드컵에서 만약 이운재가 주전 골키퍼가 되지 못하더라도 한국팀이 16강 이상에 올라 승부차기 상황이 되면 이운재를 기용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운재는 약간 뚱뚱한 편이다. 182cm로 골키퍼로는 그리 크지 않은 키지만 체중이 85kg이나 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드컵대표팀에서도 ‘날으는 삼겹살’로 불리는데 이운재도 그것에 불만이 없다. 부인 김현주씨와의 금실은 월드컵대표팀 내 김병지 홍명보 황선홍 유상철 윤정환 등 유부남 클럽에서도 알아줄 정도다.
‘잡초 축구인생’이을룡, 시련은 그만
축구에 관한 한 자칭 잡초인생 이을룡(27)은 오는 8월이면 아기 아빠가 된다. 그러나 아빠가 되기에 앞서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게 급선무다. 자신은 비록 잡초처럼 살아왔지만 2세에게는 ‘월드컵에서 좋은 플레이를 한 아빠’를 둔 자랑스런 인생을 살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월드컵 엔트리 23’에 들었다고 해서 다 된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경기에 출전하는 ‘베스트 14’에 들어야 한다. 이을룡은 우선 6월4일 벌어지는 폴란드전에서는 ‘선발 베스트 11’이 아니면 교체멤버 3명 안에는 들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을룡은 흔히 말하는 청소년대표, 올림픽대표와는 거리가 먼 아웃사이더 축구인생을 살아왔다. 강원도 황지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해 강릉중학교, 강릉상고를 거쳐 곧바로 프로에 들어온 게 아니라 아마추어 철도청에 입단했다. 사실 아마추어에서 프로팀으로 입단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그러나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제나 튀어나오는 법, 프로축구 부천 SK팀에서 그를 불렀다.
프로무대에서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어 빛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 아래서는 왼쪽 측면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등으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해 내는 멀티플레이어로 인정받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왼발과 오른발을 모두 잘 쓰는 이을룡의 가능성을 보고 중요한 경기에 꾸준히 기용했다. 이을룡 때문에 김도근 선수가 희생되기도 했다.
“나는야 찰거머리” 수비도사 최성용
지난 4월27일 월드컵 대표선수들은 중국과의 평가전을 0대 0 무승부로 끝낸 후 전원 산삼을 먹었다. 선수들이 단체로 먹은 산삼은 30~50년 묵은 장뇌삼으로 한 뿌리의 가격이 평균 200만~300만원이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코치들도 먹었고, 특별히 간택된 임원들 일부도 맛을 봤다. 그러나 최성용(27)은 삼이 목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았다. 올해 들어 잇따라 가진 평가전에서 거의 뛰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틀러 최성용’의 월드컵대표팀에서의 위치는 애매하다. 자신의 주 포지션인 윙백에는 이을룡 송종국 등이 있고, 공격형 미드필더에는 안정환이 차고 들어왔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려가자니 이미 김남일이 자리잡았다. 어느 포지션에서도 활약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지만, 그렇다고 어느 포지션에 가도 주전자리를 확보하지 못하는 처지다. 물론 지칠 줄 모르는 체력, 빠른 스피드, 강한 대인마크 능력이 돋보이지만 키가 작아 공중전에 약한 것이 약점이다.
사실 최성용은 상대팀의 스트라이커를 막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지난 98년 4월1일 잠실에서 열렸던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는 일본 축구의 핵인 나카타를 꼼짝 못하게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폴란드의 올리사데베, 미국의 도노반이나 비즐리, 그리고 포르투갈의 피구 등을 잡는 데도 최성용이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최성용은 일본 프로축구 빗셀 고베를 거쳐 지난 2001년 오스트리아 프로리그 라스크린츠팀에서 활약했다. 최성용은 오스트리아 프로리그에 진출해 불과 2경기 만에 데뷔골을 넣는 등 비교적 빨리 적응했다. 최성용은 지난해부터 다시 국내 프로축구로 복귀해 수원 삼성팀에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