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한 번 쳐 주지 않았어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을 받고 있던 윤석열 대통령이 한마디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국회에 갔는데 야당 의원들이 로비에서부터 외면을 하더라구요. 어떤 의원은 나보고 대통령을 빨리 그만두라고 하더라구요. 대통령이 갔으면 그래도 박수 한 번 쳐주는 게 예의 아니겠습니까”
평생을 갑의 위치인 검사로 살아온 그가 느끼는 섭섭한 마음이 이해가 갔다. 더구나 대통령이면 슈퍼 갑이 아닌가.
한 대담프로에서 원로 언론인 조갑제씨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아서 그래요.”
사회의 어른으로서 한마디였다. 욕먹고 얻어맞고 모멸당한 경험이 없다는 뜻이었다. 인간은 고난을 통해 둥글고 부드러워진다. 대통령에게는 그런 게 부족한 것 같았다.
한 방송에서 정계의 원로인 유인태씨가 이런 말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를 가면 의원들이 아예 대통령취급을 하지 않았어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무시하고 경멸했어요. 내가 그때 정무 수석비서관이었었죠.”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소추 된 이면에는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원들의 비틀린 정서나 손상된 정신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가 대통령이라면 존중이 따라야 하지 않을까.
삼십대 초반 내가 처음 변호사를 시작했을 때였다. 법원에 가면 함량미달인 판사들이 더러 있었다. 개정 시간이 되도 일부러 방청객을 기다리게 하는 걸 법관의 권위로 알았다. 그런 판사들은 방청객이 모두 일어나 그에게 절을 하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았다.
재판받으러 온 노인들에게 막말하고 어른노릇을 하기도 했다. 인격이 설익었던 나는 법정에서 판사와 노골적으로 싸운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때 나의 스승 변호사로 모시는 분에게 물었다.
“왜 법정에서 저질 판사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고 해야 합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그래야 하는 건가요?”
묵묵히 듣고 있던 스승 변호사가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법정에서 허리를 굽히는 것은 앞에 보이는 판사라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에 절을 하는 게 아닐까. 대한민국 사법부의 권위를 인정해야 우리가 일을 할 수 있지. 자기에게 굽실거린다고 생각하는 판사가 있다면 그의 오만이고 무지이지.”
그 말 한마디에 내 속에서 들끓던 화가 가라앉았었다. 그 후 세월이 흐르고 민주화의 물결이 정체된 법원안으로도 흘러들었다. 판사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개정 시간 전에 판사들이 법정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자리에 앉기 전에 방청객들을 보면서 허리를 숙였다. 국민에 대한 예의를 표명하는 것이었다. 법정 앞 복도 벽의 탁자 위에는 종이와 펜이 비치되어 있었다. 막말을하거나 모멸감을 주는 판사는 써서 알려달라는 안내문이 나와 있었다. 세상이 변한 걸 실감했다.
우리가 젊었던 시절 대통령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국가원수 모독이라고 해서 처벌 대상이었다. 대통령은 지존이었다. 세월이 바뀌면서 대통령은 저녁 술집의 안주같이 씹히는 대상으로 변했다. 헤겔은 민주주의란 왕이 없어지고 두들겨 맞는 과정이라고 했던가. 대통령의 이름을 동네 아이같이 부르고 욕을 하기도 했다.
오래전 금강산을 갔을 때였다. 북한의 여성 안내원과 둘이서 한적한 산길을 걷고 있었다. 옆에서 맑은 시냇물이 투명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여성 안내원이 내게 이런 주의를 주었다.
“길을 가다가 수령 동지가 현지 지도 나오셨던 걸 기념하는 비석 위에 절대 앉지 마세요. 그런 불경죄를 저지르면 우리는 큰일 납니다.”
더러 길가에 앉아서 쉬기 좋은 돌비석 같은 게 서 있었다. 그걸 말하는 것 같았다. 여성 안내원의 얼굴에 어떤 호기심의 표정이 떠오르면서 내게 물었다.
“남조선에서 대통령은 나라의 어른 아닙니까? 그런데 왜들 그렇게 욕을 합니까? 아버지 같은 분에게 그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것 같았다. 잠시 생각하다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옛날부터 왕도 뒤에서는 욕한다는 말이 있어요. 대통령을 마음대로 욕하는 세상이 좋은 걸까. 아니면 불만이 있어도 입을 닫고 있어야 하는 세상이 좋은 걸까?”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순간 혼란스런 표정이었다. 잠시 생각하고 주위를 살피더니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막 욕하는 세상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그렇게 대한민국을 변호했다. 그렇지만 부끄러웠다.
대통령이 진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걸 보고 즐기는 잔인성이 국민 사이에 퍼져있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통합이다. 미움을 줄이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공손한 태도에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게 사람들을 대하는 올바른 방법일 뿐 아니라 가장 쉬운 방법일 것 같다.
[출처] 박수 한 번 쳐 주지 않았어요|작성자 소소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