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핀 메꽃
오늘이 팔월이 가는 마지막 날이다. 광복절 이전 짧은 방학을 끝내고 개학했으니 2학기가 시작된 지 보름이 더 지난다. 유래가 드문 폭염은 개학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되고 있다. 그나마 간간이 소나기가 내려 더위를 식혀주어 지낼만하다. 일 주 전 한 차례 태풍이 우리나라 서남해안으로 상륙해 내륙을 스쳐 지나갔지만 방송에서만 호들갑을 떨었지 정작 비바람 피해는 그리 없었다.
개학을 해도 뒤뜰에 내가 가꾸는 봉숭아 잎줄기가 시들고 있어 고무호스로 몇 차례 물을 더 주었다. 이후 소나기가 몇 차례 내린 덕분으로 물을 주지 않아도 되어 고마울 따름이다. 한여름을 건너오면서 내가 연일 물을 준 수고로 알록달록한 꽃을 피워 보답해주었다. 이제 그 봉숭아꽃도 거의 저무는 끝물이다. 그래도 아직 구월 중순까지는 완상할 봉숭아 꽃잎은 남아 있을 듯하다.
평소 내 출근은 학교까지 걸어서 가고 퇴근도 걸어서 집으로 향한다. 다만 그 동선이 같지 않을 뿐이다. 이침엔 반송소하천 따라 보도를 걸어 창원스포츠파크 동문을 지나 폴리텍대학 구내를 관통해 교육단지를 지난다. 저녁엔 교문을 나서 충혼탑 사거리에서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과 실내체육관 만남의 광장을 지난다. 원이대로 건너 반송시장 골목을 둘러 집으로 가면 원점회귀이다.
개학 이후 날씨가 무더워 걸어 다니기보다 시내버스로 다닐 날이 더 많다. 거기다가 날씨마저 비가 와 궂어 우산을 펼쳐 쓸 때도 걷지 않고 시내버스를 탔다. 앞으로 날씨가 선선해지면 예전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걸어 다닐 요량이다. 시내버스를 타면 십분 전후 학교에 닿으나 걸어가면 사오십 분 걸린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서 걸으면 사색도 하고 운동도 되고 이래저래 좋은 면이 있다.
어제 아침이었다. 시내버스를 타려고 집 앞에 도착할 시간을 가늠해 버스정류소로 향했는데 예정보다 조금 일찍 스쳐 지났다. 나는 다음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학교까지 걷기로 작정하고 미련두지 않았다. 반송소하천 곁을 따라 걸어 원이대로를 건너 폴리텍대학으로 향했다. 개학 이후 몇 차례 걷기는 걸어 주변 생태도 눈에 훤하다. 울타리 틈새는 강아지풀이 이삭을 내밀고 나왔다.
대상공원 들머리 운동기구엔 근처 주택 노인들이 아침 운동을 하였는데 날씨가 무더워서인지 보이질 않았다. 폴리텍대학 후문을 들어서면 보도를 따라 꾸며진 화단엔 맥문동이 심겨져 있다. 여름에 보라색으로 피어난 꽃은 거의 저물어가는 편이었다. 폴리텍대학 구내는 잔디 정원에 향나무를 비롯해 전정이 말끔하게 된 조경수들로만 채워져 있다. 그늘을 드리운 나무는 많지 않았다.
대학 구내 포장도로와 뜰의 경계면은 자연석 축대를 쌓아 영산홍이 심겨져 자랐다. 영산홍은 늦은 봄에서 초여름에 걸쳐 선홍색 꽃을 피웠다. 그 돌 틈새에 달개비가 자라나 파란 꽃을 피웠다. 닭의장풀이라고도 하는 달개비는 가뭄에 잎줄기가 시들다가도 적은 양의 비에도 금방 생기를 되찾아 잎줄기가 싱그러워진다. 마디마디 뻗어가는 잎줄기에서 파란 꽃잎을 달고 있어 기특했다.
달개비가 꽃을 피운 바위틈에는 또 다른 꽃이 피고 있었다. 엷은 분홍색 꽃이었다. 나팔꽃처럼 생겨도 나팔꽃은 아니었다. 나팔꽃은 넝쿨이 벽이나 나뭇가지를 휘감아 타고 오르면서 꽃을 피우는 성질이 있다. 그 꽃은 자연석 더미에 퍼져나가는 잎줄기로 나팔꽃 같은 넝쿨이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메꽃이었다. 메꽃은 초여름부터 피기 시작해 가을이 오면 저무는 들꽃이다.
달개비는 가뭄에도 강하나 메꽃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 메꽃이 올여름 유난했던 폭염과 가뭄에도 그 바위틈에서 말라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리하여 근래 내린 몇 차례 소나기를 맞고 잎줄기가 되살아 뒤늦게 꽃을 피웠다. 도심 대학 구내에서 철이 지나 화사하게 피어난 메꽃을 보니 반가웠다. 올여름 폭염과 가뭄이 아니었다면 진작 임무를 다하고 저물었을 꽃이 이제 피고 있었다. 18.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