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받지 못해 ‘고아암(Orphan cancer)’으로 불리는 희귀암. 발생률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6명 미만 발생 암을 뜻한다. 국가암통계에 등록된 61종 가운데 44종이 희귀암이다(2019년 기준). 환자 수는 적지만 종류는 위·폐암 등 흔한 암 보다 훨씬 많다. 희귀암은 그간 발생률이 낮다는 이유로 발병 원인 규명과 진단·치료법 개발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왔다. 질병 정보나 전문의를 찾기도 쉽지 않다. 희귀암 환자와 가족들은 여러 병원을 떠돌다 진단이 늦어지거나 비전문가에 의한 오진과 잘못된 치료를 경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국민일보는 국립암센터 희귀암연구사업단과 함께 국내 주요 희귀암과 환자들의 고충을 살펴보는 기획 기사를 격주로 연재한다.
국립암센터 김준혁(오른쪽) 희귀암연구사업단장이 허벅지 육종으로 항암치료 중인 50대 환자와 자리를 함께 했다. 국립암센터 제공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살에 생기는 종양’이라는 뜻
뼈와 뼈 주변 연부조직서 발생
청소년 등 젊은 나이에 많아
전이 부위 적극적 수술 치료땐
완치 가능하지만 항암치료 중요
직업군인인 이모(51)씨는 지난해 초 오른쪽 허벅지 안쪽에 불룩한 혹이 만져져 군병원을 찾았다. 3년전부터 해당 부위가 약간 붓고 통증이 느껴졌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특별히 부딪히거나 한 경험도 없어 오랜 군생활로 단련된 근육으로만 생각했다. 군병원 의료진도 처음엔 일시적인 ‘혈종(내부가 찢어져 피가 고임)’이라고 봤다. 하지만 얼마 안 돼 MRI영상에서 종괴(덩어리)가 10㎝까지 커진 걸로 나오자 민간병원 진료를 의뢰했다.
이씨가 국립암센터에서 ‘육종’을 최종 진단받기까지 넉 달이나 걸렸다. 진단 당시 이미 주변 림프절과 폐, 뇌로 암이 퍼져 4기에 해당됐다. 주치의는 “육종은 혈행성이라 피를 타고 마구 번질 수 있다. 오른쪽 다리에 생긴 암이 온 몸에 씨를 뿌린 것”이라고 했다. 항암치료 중인 이씨는 “부모님이 다 암으로 돌아가셔서 국가암검진은 빼먹지 않고 받고 있는데, 근육에 암이 생기는 줄은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배우 김영호씨도 투병
육종은 몇 년 전 배우 김영호씨의 투병기가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김씨 역시 다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예상치 못한 육종이 발견돼 허벅지 근육의 상당 부분을 절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육종은 ‘살에 생기는 종양’이라는 뜻이다. 단어 자체에 암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만 의학계에선 일반인 이해를 돕기 위해 ‘육종암’이라고도 불린다.
육종은 뼈와 뼈를 둘러싼 연부(결합)조직, 즉 근육·인대·힘줄·지방·혈관·신경 등에 발생한다. 국립암센터 희귀암연구사업단장인 김준혁 정형외과 전문의는 “육종은 결합조직이 존재하는 몸의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뼈와 이를 지지하는 근육 인대 힘줄 등의 분포가 많은 팔다리, 골반, 척추 부위에 많이 발생하고 후복막이나 흉벽, 자궁내 근육(평활근) 등에서도 드물지 않게 생긴다”고 설명했다.
육종은 100가지 이상의 세부 유형이 있는데, 크게는 ‘악성 골종양’과 ‘연부조직 육종’으로 나뉜다. 국내에서는 악성 골종양이 매년 500명, 연부조직 육종은 연간 1750명 정도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이가 들수록 발생률이 증가하는 일반 암과 달리 육종은 청소년이나 40~50대 등 비교적 젊은 나이에 많이 생기고 환자들의 유병 기간도 긴 편이다.
육종은 세부적으로 많은 종류가 있다 보니 발병 원인을 규명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지만 몇가지 밝혀진 위험 요인들이 있다. 우선 방사선 노출이다. 통계적으로 방사선 암 치료를 받은 1000명 중 약 2~3명에서 육종이 발생한다는 보고가 있다. 김 전문의는 “건강검진 시 찍는 X선 등은 크게 상관없고 방사선 암치료를 받을 때 주변 근골격계에 노출되는 방사선이 위험하다. 특히 자궁경부암 방사선 치료 시 골반뼈, 유방암 치료 시 흉곽뼈에 육종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헤르페스’ 같은 바이러스 감염이나 면역결핍도 원인이다. 또 벤젠이나 클로르페놀, 제초제 같은 화학물질에 장기간 노출됐을 때 연부조직 육종이 발생할 수 있다. 고엽제에 노출된 월남전 참전자들에서 연부조직 육종이 높은 빈도로 보고된 바 있다. 최근 외상과의 관련성에 관심이 높다. 김 전문의는 “많은 사람들이 ‘육종이 생긴 곳을 이전에 다친 적 있는데, 그래서 암이 생긴 것인가’라고 묻는데, 현재까지 외상과의 연관성은 밝혀진 게 없다”고 했다. 다만 “어딘가 부딪히거나 다쳐서 멍이 들거나 부어오를 수 있으나 그런 멍이나 혹은 몇 주나 몇 달 지나면 나아지고 소실되는 게 정상이다. 육종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커진다”고 덧붙였다.
10대 골육종, 성장통 오인 주의
허벅지에 혹처럼 불룩 솟은 연부조직 육종과 MRI영상에 보이는 암덩어리. 국립암센터 제공
대부분의 악성 골종양은 일반 진통소염제를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 통증을 겪게 된다. 자다가 깨거나 잠에 못 들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 다리뼈에 골종양이 있다면 앉거나 누워있을 때 보다 걸을 때 체중이 뼈에 실리면서 더 많은 통증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악성 골종양의 가장 흔한 유형인 ‘골육종’은 성장기 청소년(남자 15~17세, 여자 13~15세)에 자주 발생하는데, 부모들이 성장통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성장통이나 많이 뛰놀다 생기는 근골격계 통증, 운동하다가 부딪히거나 다쳐 생기는 통증은 휴식을 취하고 시간이 지나면 완화된다. 반면 골육종에 의한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악화되는 게 특징. 물리치료를 받아도 일시적일 뿐 좋아지지 않는다. 양쪽 다리의 무릎과 정강이가 다 아프면 성장통, 활동과 상관없이 한쪽 다리에 통증이 있으면 골육종을 의심할 수 있다.
살에 혹이 만져져 병원을 찾는 이들 대부분은 ‘아프지 않아서 괜찮은 줄 알았다’고 말한다. 실제 연부조직 육종은 상당히 커져도 통증이 없어 주의가 필요하다. 몸에 만져지는 다른 혹과도 구분해야 한다. 삐끗한 손·발목이나 출산 후 아이를 많이 안으면 간혹 손목에 물혹(건초염에 의한 결절종)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또 팔꿈치·무릎·복숭아뼈가 많이 마찰돼 부어오르는 ‘점액낭염(관절 주변 물주머니 염증)’ 등이나 항문 주변에 만져지는 작고 단단하며 누르면 아픈 ‘피하낭종(피부 찌꺼기 배출 샘이 막혀 생김)’과도 헷갈릴 수 있다.
연부조직 육종과 가장 중요한 감별점은 ‘크기의 변화’다. 커졌다 줄어드는 것이 아닌, 지속적으로 커지는 양상이면 반드시 암을 의심해야 한다. 김 전문의는 “어느 정도 크기 이상 되면 육종을 의심해야 한다는 의학적 원칙은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크기가 얼마든 간에 혹이 생기고 그 혹이 점점 커진다면 꼭 정형외과 혹은 육종 전문의한테 진료받아라”고 권고했다.
악성 골종양과 연부조직 육종 모두 기본 치료는 수술이다. 최근 팔·다리를 절단하지 않고 수술하는 방법(사지구제술)이 90% 이상 시행되고 있으며 종양과 함께 뼈를 절제 한 뒤 그 자리에 3D프린팅으로 만든 인공 골격을 채워 재건하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대부분의 암이 원격 전이가 진행되면 수술이 더 이상 치료 옵션이 되지 않는데 반해 육종은 특이하게 전이 부위에 적극적인 수술 치료를 할 경우 완치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다만 급격히 전이가 진행되면 항암치료가 유일한 해결책이다. 악성 골종양의 5년 생존율은 65~70%, 연부조직 육종은 60% 안팎이다.
김 전문의는 “육종은 발병 원인이나 위험 요인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다 보니 예방이나 조기 진단법도 마땅히 없다”면서 “뼈에 온종일 지속되는 통증이 있거나 한번 생긴 혹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커지면 통증이 없더라도 병원 와서 정밀진단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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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정보 고마워요
근육에 혹덩어리
내몸을 소중하게
관찰 잘 해야겠네요
네! 요즘 나름대로 최신정보를 제공하려고 뉴스를 자주 살핍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