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기억합니다 / 최윤정
용서는 하지만 절대 잊지는 않는다. 용서를 해놓고 잊지는 않다니. 이 무슨 거지같은 말인가. 거지같아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사실 그대로의 마음이니까.
열한 살 때, 한 지붕 아래 살던 훈이네가 있었다. 훈이 엄마는 훈이의 계모였는데 훈이 아버지보다 서너 살이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훈이 엄마에 대한 기억은 대체로 좋지 않은 것들로만 이뤄져 있는데, 그녀는 꽃무늬 몸빼 바지를 즐겨 입었고, 매일같이 말술을 마셨고, 담배를 한 갑이나 피웠고, 술주정을 했다. 그 짓을 혼자 하기엔 아쉬웠는지 내 엄마를 꼬드겨 함께 술을 마셨고 담배를 가르쳤다. 엄마는 원래부터 술주정에 일가견이 있었던지 배우지 않아도 잘했고 어느샌가 훈이 엄마를 능가하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했다. 훈이네와 우리 집이 다른 점이 있었다면, 훈이 아버지는 그런 부인의 술국을 끓여주는 남자였고 내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루는 엄마와 훈이 엄마가 함께 오일장에 다녀왔다. 아니다. 훈이 엄마는 찬거리 따위를 사려고 시장을 찾아가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동네 구멍가게에 술을 사러 갔던가. 아니다. 훈이 엄마는 술이 떨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해서 늘 집안에도 소주를 짝으로 비치해두는 여자였다. 어쨌거나 엄마와 훈이 엄마가 함께 두어 시간 정도 집을 비운 일이 있었다. 그 사이 훈이 엄마의 지갑이 사라졌고 혼자 책을 읽으며 집을 지켰던 내가 의심을 받았다. 엄마까지 나를 의심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착했고 제법 똘똘한 아이였더래서 남의 집을 뒤져 지갑을 훔친다거나, 그런 짓으로 어린아이의 삶을 복잡하게 만들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엄마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훈이 엄마의 주정 섞인 채근을 견디지 못했다. 어쩌면 유일한 친구의 기분을 맞춰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다그쳤고 나를 때렸다. 훈이 엄마 보란 듯이 멜로디언이 두 동강 날 때까지 때렸다. 그래, 매질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며 흐뭇한 기분은 아니었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자신의 매질에 도취되었다. 그만하라며 달려온 훈이 엄마의 손길을 뿌리치며 나를 마루 아래로 밀치기까지 했으니까. 나는 그런 엄마가 신기해 아프지도 않았다. 맞으며 울었던 이유는 엄마에 대한 의리였달까. 지갑을 훔쳤냐는 취조에 끝까지 아니라고 달려들면서 울지도 않는다면 그건 너무 독한 아이고 나이에 맞지도 않았다. 열한 살 먹은 계집아이가 엄마에게 억울하게 맞을 때는 울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둘도 없이 서러운 얼굴을 하고서.
늘 찬장 아래 숨겨놓던 지갑이 갑자기 사라졌던 이유는 훈이 엄마가 어떤 연유에선지 지갑의 자리를 냉장고 위로 옮겨놓고 그 사실을 깜빡했기 때문이었다. 심장박동기의 그래프처럼 술 취함과 덜 취함의 상태가 물결로 춤을 추던 여자였기 때문에 그 곡선의 한 지점에서 지갑의 위치를 바꿨고 그 반대 지점에서 지갑을 찾지 못해 그 난리를 쳤던 것이다. 뒤늦게 냉장고 위에서 찾은 지갑을 손에 들고 우리 방으로 와 엄마를 말렸지만 이미 내 몸은 멍투성이였다. 그리곤 엄마가 나를 부둥켜안고 울었던가. 이 기억은 확실치 않다. 드라마를 너무 본 탓에 기억의 말미는 조금 각색을 거쳤을 수도 있다. 평소 순박하고 착한 엄마였기 때문에 죽도록 맞았지만 한 번쯤은 면죄부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훈이 엄마가 내게 사과를 했다. 어른이 아이에게 사과를 하다니. 내게는 조금 충격이었다. 맨 정신인가. 아니,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정신이 반쯤 취해있었다고 해도 어른이 조막만 한 아이에게 진심으로, 예의를 갖춰 사과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냥 해프닝으로 넘긴다해도 누가 토를 달 것인가. 나는 어렸고, 엄마는 훈이 엄마와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싶었을 테니까. 어쨌거나 한 지붕 아래 사는 여자였다. 다 커서 어디선가 들은 말이지만, 잘못을 시인하는 것도 용기라 했다. 어린 내가 그런 말 따윈 몰랐을 테지만, 아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여자가 내민 손을 잡고 악수를 했으며 용서에 걸맞은 눈빛을 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이십칠 년이 흘렀다. 이십칠 년 전에 용서해놓고, 이십칠 년이 지났는데도 그때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아, 독한 년. 멜로디언이 부서졌는데도 결백을 주장하는 내게 훈이 엄마가 했던 말이다. 늘 취해있었지만 사람 보는 눈은 있었던가 보다. 여태껏 엄마에게 딱 두 번 맞아봤다. 일곱 살 때 크기가 맞지 않는 건전지를 다른 것으로 바꿔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을 '쪽팔린다.'는 이유로 가지 않고 버티다가 한 번 맞았고 다른 한 번이 훈이 엄마의 지갑 사건이었다. 이제 더 이상 엄마에게 맞을 일은(아마도) 없을 테니, 독하지 않더라도 일생일대에 단 두 번 있었던 일이면 기억을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오랜 기억에 더는 진물이 나지 않고 상처는 흉터로 남았다. 아무리 유년의 일이지만 애잔함과는 거리가 멀고, 생각할수록 나와 엄마의 인생에 스크래치를 남긴 그 여자가 밉다. 분했던 일을 두 번 다시 묻지 않으며 기억을 되새기지도 않고 마음에서 지워주는 것이 용서라는 것이라면 나는 훈이 엄마를 용서해 본 적 없다. 잠시 잊고 살 수는 있으나 불현듯 과거의 일이 떠오르면 희미하게나마 그 순간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 역시나 나는 독한 년. 훈이 엄마가 나를 독한 년으로 만들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잊을 수 있었을까. 아니다.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엄마가 술과 담배를 배운 이후로 우리 집은 멜로디언을 시작으로 선풍기 모가지라던가 찬장, 방문 같은 것들이 수도 없이 두 동강나 내팽개쳐지기 시작했으니까. 훈이 엄마를 용서하기엔 그 뒤로도 너무 많은 것들이 우리집 마당을 뒹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