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선족의 유래-9】
1909년 11월 2일 일본은 용정에 설치한 조선통감부 간도 파출소 대신 간도 일본 총영사관을 설치하고 연길.훈춘.배초구.두도구에 영사 분관을 설치하여 영사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 총영사관 경찰부는 간도 4개현 18곳에 경찰서를 설치하여 중국 동북 지역 침략을 위한 기지를 마련하였다.
또한 국자가.배초구.두도구.용정을 일본 통상지로 개방시켜 경제적으로 이권을 장악하고 길회철도(중국 길림에서 조선 회령까지)부설권을 획득하여 중국 동북 지역에서 이권을 장악했다.
이로써 일본은 간도에서 정치적으로 치외법권을 행사하여 조선인의 항일투쟁과 독립운동을 억압할 수 있게 되었다.
간도협약 체결 후 일본은 길회철도 부설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간도의 지방 무역시장을 통제하여 값싼 일제 면포.종이.사탕.담배.소금.석유 등을 가져다 판매함으로써 상품 수출 및 원료 시장을 독점하였다.
그리고 일본 독점 자본이 간도의 금융 시장을 통제하였다.
조선은행이 간도에 출장소를 설립한 뒤를 이어 동양척식회사의 간도 출장소,
간도상업금융주식회사,조선인거류민회 금융부 등 금융 기구들이 설립되어 금융 시장뿐만 아니라 고리대금업을 통해 토지와 토지소유권을 저당잡아 토지를 약탈하였다.
조선 정부는 일본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하여 조.청 국경과 간도가 청조에 양도되는 것을 보면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1909년 당시 8만 2,900여 명의 조선인이 거주하던 이 지역은 서쪽으로는 백두산을 기점으로 서북쪽 노령산맥과 노야령산맥을 거쳐,동쪽으로 태평령.석두령.황구령에 연결되는 훈춘 지방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지역이었다.
1962년 10월 3일 중화인민공화국 대표 주은래와 북한의 김일성은 '변계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에는 중.조 양국의 강역은 청대의 강역을 계승하고 백두산 천지의 2분의 1이 조금 넘는 부분이 조선에 속한다고 규정하였다.
중국 조선족 이주 역사는 강제 이민 시기(1629년~1677) ,월경 잠입 시기(1860~1881) ,이민 초간 시기(1882~1910), 자유 이민 시기(1911~1920),이민 제한 시기(1921~1931),강제 집단 이민 시기(1931~1945)의 6단계로 구분하지만 현재 중국 조선족의 99.9%는 1860년 이후 이주한 조선인의 후예이다.
그리고 많은 조선인이 자의로 이주하기 시작한 시기는 1905년부터이다.
청조는 1850~1864년에 중국 화남 지역을 마비시킨 태평천국의 난 이후 통치력이 약해져 그들의 발상지인 중국 동북 지역에 대한 봉금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청조는 가난한 유민들의 잠입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고,한편으로는 흑룡강 이북 영토와 연해주를 얻은 러시아와 대치하게 되어 변경의 위기가 날로 심화되었다.
청 조정은 변경의 방위를 강화하고 이에 지출되는 군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1860년부터 요서.요동. 및 길림 지구의 목장과 산악 지대를 개방하고 중국인의 이주를 장려하였다.
마침내 1875년 오늘날의 길림성 동남부 지역에,1882년에는 두만강 이북 지역에 대한 봉금을 해제했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인에 대한 봉금 해제였지, 조선인에 대한 봉금 해제가 아니었다.
다만 이미 이주하여 황무지를 개간한 조선인들의 거주는 묵인했다.
조선에서는 1861~1870년까지 수차례의 홍수와 가뭄,병충해 등의 자연 재해가 발생하여 농민의 생활이 도탄에 빠졌다.
이로 인하여 1862년에 경상도 진주에서 발생한 농민 봉기는 삼남 지방으로 확대되어 전국 37개 고을에서 수만 명의 농민이 봉기하였다.
1868년에는 함경도 은성과 경상도 칠원에서,1869년에는 전라도 광양에서,1870년에는 경상도 진주 등 조선 각지에서 민란이 잇달아 발생하였다.
민란에 가담한 계층은 수만 명의 농민과 유랑민뿐만 아니라 부농들,상공인층,지식층 등으로 다양하였다.
이러한 민란으로 사회가 불안하자 많은 조선인이 새로운 생활터전을 찾아 중국 동북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또한 정치.사회의 불안으로 점서와 예언서가 성행했다.
한 예로 당시 성행했던 '정감록'에는 "앞으로 큰 변란이 닥쳐 인종과 곡식이 전멸할 운명인데,곡량은 압록강 우안의 상풍,중풍,하풍에서만 보존되고 인종은 장백산과 태백산에서만 보존된다"라는 글귀가 있다.
또한 1864년 이후 평안남북도에서 널리 유포된 '위서'에 의하면,압록강 건너편의 봉금 지대에는 별세계가 있으며, 그곳에 사는 영웅호걸이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위서에 현혹되어 국가의 세역과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농민은 물론,진사.선달.풍헌.훈장 등의 향족까지 별천지를 찾아 집단으로 이주하였다.
조선인의 중국 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