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른 카페에서 연애담(?)을 요청받고 쓴 글임을 밝혀둡니다. 솔로 염장 지르기 용은 결코 아님을 알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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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앞은 돈 없는 자들의 천국이다. (물론 그 거리도 부르주아 골목과 프롤레타리아 골목으로 나뉘어지곤 한다.) 특히 "먹고 싶은 거 없어? 뭐 먹고 싶어?"라는 질문에 언제나 간단명료하고 처절한 한 마디 대답 "밥"으로 일관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평균 이천원 대의 밥값은 환상적이다. 그러나 그 날은 상황이 달랐다. 전날 밤 예상하지 못한 채 날밤을 샌 우리의 호주머니는 이천원조차 버거워했으며 두 사람의 밥값 사천원을 빼고 나면 차비만 남았던 것이다. 물론 차비만 있으면 살아남는 생계형 연인(?)이긴 하나 둘다 흡연자라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아아, 담배값이여, 야속한 담배 인삼공사여....
어쨌든 배는 채워야 했고, 우리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양 많기로 소문난 식당-거기는 국그릇에다가 밥을 담아준다. 더 달라고 하면 더 준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곳에서 삼백원을 더 내고 곱배기를 시키는 아해들이다. 보통 양이 곱배기인데, 곱배기를 먹는 아해들의 배는 어케 된 것일까??-에서 김치찌개와 순두부찌개를 시킨 뒤 가만히 서로의 손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농담 한 마디를 던졌다.
"바퀴 벌레 한 마리 잡아 올걸."
"왜?"
"음식에 바퀴 벌레 들어있으면 한판 뒤엎고 밥값 안 내게"
"훗."
그러다 밥이 왔고, 나는 정말로 우울했다. 늘 차비만 들고 다니고 연인을 원조 제공자로 만드는 나의 빈곤함이 싫었다. 게다가 전날밤엔 웬일로 돈이 생겨 기뻐했었는데, 하룻밤에 다 탕진해버리게 된 데다가, 앞으로 살아갈 차비도 막막했고, 나의 돈을 쓰게 해서 그가 느끼는 감정들이 바로 바로 느껴지는 바람에 더욱 신경이 곤두서버려 밥이 제대로...넘어가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밥은 맛있었다. ^^* 정신없이 먹어대었다. 고개를 처박고. 밥과 찌개가 뱃속을 채우고 그릇을 거의 다 비워댈 무렵 그가 갑자기 탁자를 내리쳤다.
"쾅!"
그의 눈이 웃고 있었다.
내리치는 기세와는 다르게,
"아. 줌. 마..."
소곤소곤 부르는 그의 목소리.
(아! 나는 그의 이런 면이 너무 좋다! 아줌마 곤란할까봐..)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불려온 아줌마를 향해 그는 가만히 젓가락을 들어 찌개의 한 가운데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어두운 잿빛의, 국물에 쩔은, 파리보다는 야위고 모기보다는 통통한 날벌레 한 마리가 날개 한 장의 힘만으로 동동 떠 있었다.
"아이고, 이걸 어쩌나."(아줌마도 속닥속닥. 사람이 많은 식당이고 텔레비전 소리와 먹는 소리가 더 컸음^^)
"아줌마 날개 한 쪽 이미 먹어버렸어요. 어쩔 겁니까."
"다른 걸 드릴까요?"
"이미 다 먹어버렸는걸요...배 불러요...ㅠ.ㅠ"
처음에 농담을 주고 받던 때와는 달리 우리는 차마 밥값을 안 내겠다는 말은 못하고 계속 애교성 칭얼거림을 고수했으나 아줌마 역시 밥값을 안 내도 된다는 말은 하지 않은 채 상업성 안쓰러움의 멘트만 유지하셨다. 우리는 생각한 것보다 낯이 두껍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궁시렁 거림에 지친 우리, 나는 사실 이 식당의 밥값이 싸다고 생각해왔고 이렇게 팔아도 남는 건 있다고 머리는 생각하지만 가슴은 장사하는 사람에 대한 애틋함이 있기 때문에 조용히 말했다.
"야, 안 되겠다. 그냥 나가자. 바퀴벌레였으면 좋았을 걸...흑."
애인은 그래도 아쉬운지 계속 궁시렁거렸다.
"커피라도 한 잔 주세요~"
(허나 그 식당은 커피를 취급하지 않는다. 보리차면 몰라도...)
그리고 조용히 계산을 하려고 오천원을 떨리는 손으로 내밀었는데,
우리가 들어올 때부터 웃고 계셨던
(카운터 옆자리라 바퀴 벌레 운운도 다 듣고 계셨으리라.)
카운터의 아저씨가 잔돈을 삼천원 내주셨다.
"엥?"
천원짜리 세개를 받고 아저씨의 얼굴을 쳐다보니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시며 고개만 끄덕끄덕 하시는 거다.
"감사합니다~^^*"
바깥으로 나와서 우리는 굳은 밥값 이천원으로 한 권에 이백원 하는 만화책을 몇 권 보았으며 담배도 사서 피우다.
그가 고백했다.
"야, 사실 그 벌레 날개 내가 뗐다."
"어? 그럼 안 들어 있었던 거가?"
"아니, 그건 아니고 꼭 갑자기 내려앉은 것 같이 보이더라. 그래서 내가 젓가락으로 날개 떼어내고 날개 한 쪽은 두부 밑에 숨기고 국물을 숫가락으로 막 끼얹어서 촉촉하게 만들었다."
"맞나~~"
"훗. 군대 있을 때 오만 거 다 먹어 봤는데 그것 쯤이야."
"자기~~ 너무 멋있다~~"
가난한 연애질의 에피소드 하나, 후후, 자꾸 웃게 만드는 기억.
그 뒤 한 번 더 그 식당에 갔을 때 아주머니는 우리를 기억하시고 고맙다고 하시다. 조용히 넘어가주어서. 그리고 주문을 하자 소리치셨다.
"김치덮밥 맛있게~~"
주방에서 소리를 받았다.
"특별히 맛있게~~~"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