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영글어 가는 가을, 9월은 벼과 식물들이 꽃을 많이 피우는 철이다. 후손을 퍼뜨리기 위해 따가운 햇볕을 여름 내 받으며 자라온 갈대, 억새, 솔새 등이 마지막 결실을 위해 성숙하여 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신천의 상류에는 달뿌리풀이 번성하여 이삭을 펼쳐내고 버들도 이제는 많이 자생한다. 산책로에는 여기 저기 그령과 수크령이 어울려 꽃을 피우고 있다. 금호강을 따라 둑이나 강변에도 지천으로 만나는 풀이다.
그령은 질기기로 유명한 풀이지만 꽃 이삭은 볼품이 없다. 이와 달리 수크령은 확실하게 자신의 모습을 이삭으로 보여 주기에 눈에 잘 띤다. 수크령이 있으니 반대로 ‘암크령’이라 부르는 풀도 있어야 하는데 그 풀이 ‘그령’이다. 여기서 부르는 그령과 수크령은 종류가 서로 다른 것인데 사람들은 우선 보기에 수크령의 이삭이 눈에 산뜻하게 들어오므로 더 좋아하는 편이며 학생들도 과학실에서 시험관을 씻는 솔 같아 보인다며 수크령에 관심을 더 많이 보인다.
올 해 월드컵이 열리며 지구촌은 둥근 공 하나에 어느 나라 없이 즐거움에 빠졌다. 우리나라는 4개국의 조 편성에서 16강에 오르기 위해 많은 노력과 국민적 성원에 힘입어 1차의 목표를 달성한 기쁨에 지난 2002년의 4강을 생각하며 온 나라가 잔치 분위기였다. 인상적인 것은 남북이 동시 월드컵 진출을 하였기에 관심은 더욱 높았다. 그 후 선수들이 귀국하고 환영의 자리에서 허정무 국가대표 감독이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했다. 허 감독이 국민들에게 전해준 결초보은의 의미는 그 만큼 지원이나 성원이 컸고 감독에 대한 믿음과 바람도 많았기에 축구인생에 입은 은혜가 사무쳐 잊지 않고 갚겠다는 뜻인데, 결초보은에 나오는 풀의 이름이나 뜻을 잘 알지 못하는 친구들이 모인 한 장소에서는 결초라고 부르는 풀이 어떤 풀이냐고 물어 오기에, 결초의 뜻을 이해시키고 이 풀은 우리 주변에서 매우 흔하게 보이는 그령이라는 풀임을 알려준 후 지난날 풀을 묶어 놀았던 일들을 설명하니 알겠다고 들 한다.
고사성어의 결초보은에 등장하는 그령이란 풀은 이삭이 성기게 달리고 좀 퍼져있다. 길가에 흔하게 자라며 줄기가 대단히 질긴 만큼 야무진 땅에도 강하게 뿌리를 내리기에 손으로 당겨서는 좀처럼 뽑기가 어렵다. 시골의 길가나 강둑에서 잘 자라는 1년생 여러해살이 풀이다. 그령 만큼 땅에 강하게 착근을 하는 풀도 드물어 보이며 밟혀도 죽지 않고 오히려 더 잘 자라는 모습을 보인다. 다른 풀들이 잘 살 수 없는 척박한 땅에서도 나 보란 듯이 여러 개가 뭉쳐나 큰 포기를 이루어 땅을 꽉 잡아 주므로 큰 비에도 지면의 유실을 막아 생태계를 안정시켜주는 피복식물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낸다.
그령은 벼과의 외떡잎식물로 일부 지역에서는 ‘길잔디’ 라고도 부르면서 새끼를 꼬아 쓰기도 하는데 질긴 성질 때문으로 섬유용으로도 개발하면 좋을 것으로 여겨진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생활한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그령을 묶어서 놀아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묶어둔 그령에 발이 걸렸다 하면 고무신은 벗겨지고 몸은 균형을 잃어 풀밭에 나뒹굴어 지는 모습을 보며 친구를 골려주고, 놀리기도 하였기에 집중력이 떨어진 아이들은 자주 걸려 넘어지므로 놀림을 받지 않기 위해 벌떡 일어나야 했다. 이러한 장난에 소가 걸려들면 역시 뒤뚱거리기에 재미 삼아 여러 개를 묶어 두기도 했다.
결초보은은 죽어 혼령이 되어서라도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뜻인데, 은혜를 입은 사람이 혼령이 되어 풀포기를 묶어 놓아 적이 걸려 넘어지게 하여 은인을 구해 주었다는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위과’의 고사가 전하기에 한자도 익히고 뜻도 공부 할 겸 유래를 소개하여 본다.
중국 춘추시대 진(晋)나라 사람 위무자(魏武子)에게 애첩이 있었다. 위무자가 병이 들어 누웠을 때 아들 과(顆)를 불렀다.
“내가 죽거든 나의 애첩을 반드시 다른 데 시집을 보내라.”
그런데 위무자가 병이 아주 위독해지자 말이 달라졌다.
“내가 죽을 때 애첩도 순사(殉死)시켜 함께 무덤에 묻어라.”
드디어 위무자가 죽자 과는 아버지의 애첩을 다른 데 시집을 보냈다.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가 그 이유를 묻자 위과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임종이 가까워지면 정신이 혼미해 집니다. 저는 아버님의 정신이 맑았을 때 하신 말씀을 따른 것뿐입니다.”
그 후 과(顆)는 진(秦)나라와의 전투에 참가하여 보씨(輔氏)라는 곳에 이르렀다. 그런데 과는 어느 노인이 보씨 전장터의 풀들을 일일이 묶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적장 두회가 달려오다가 그 묶인 풀들에 발이 걸려 넘어져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날 밤, 과는 꿈속에서 전장터에 풀을 묶던 그 노인을 만났다. 그 노인은 위무자의 애첩의 아버지였다. 과거 그녀를 순사(殉死)(임금이나 남편의 뒤를 따라 죽음) 시키지 않고 다른 데 시집보내준 은혜를 그렇게 풀을 묶음으로써 은혜를 갚은 것이었다.
그래서 결초보은(結草報恩)은 죽어 혼령이 되어서도 은혜를 갚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가 되었다.
은혜에 보답하고자 전장터에서 풀을 묶어 그 묶인 풀에 발이 걸려 넘어진 적장을 사로잡았다 하는 바로 그 풀이 '그령'이다. 흔하디흔한 풀이지만 특성을 살려 용도에 맞게 활용하니 많고 많은 풀 중에서 고사성어(故事成語)에 등장하여 자신의 존재와 이름을 널리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