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크레센도
남현이
스스로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이 있다. 거대한 우주와 광활한 자연 아래 인간이란 미미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사람이, 살아온 날들이 보잘것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나의 목소리, 행동이 아주 작은 영향력이나 무게감을 갖지 못한 채 하릴없이 허공을 맴돌 때 느껴지는 처참한 가벼움. 그렇게 급격하게 줄어든 나를 인정해야만 했던 한 해를 겨우 보낸 뒤 온몸과 마음에는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햇살은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비켜 가고, 바람 한 점도 머물지 않는 내가 되었다.
여덟 살이 된 아들이 피아노를 시작했다. 아들과 함께 찾아간 피아노 학원은 내가 어릴 때 보았던 풍경과 똑같았다. 학원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쉴 틈 없이 연주되는 각양각색의 피아노 소리, 종종걸음으로 작은 학원 안을 바쁘게 누비는 아이들, “선생님 다 했어요.”를 외치는 앳된 목소리들을 들으며 익숙한 전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피아노를 향한 묵직한 그리움과 진한 향수가 느껴졌다. 피아노 앞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자라온 이전의 내가 떠올랐다. 순수한 마음으로 음악을 사랑했던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현재의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였을까.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누가 나를 잡아서 이끄는 것처럼 홀린 듯이 다시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용기를 내어 아이와 함께 레슨을 등록하고 다시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이 되었다.
오랫동안 손을 놓았던 악기를 다시 연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아닌 어른의 눈과 손으로 무언가를 배우는 건 몇 배의 노력을 요했다. 시간이 멈춘 듯 악보를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건반 위의 손가락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지러운 악보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멈추고 버벅거리기를 반복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선생님은 악보를 보는 눈도 굳어버린 손가락도 다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계이름을 보기에도 벅찬데 악상 기호들은 왜 그리 많은지, 도대체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하고 어떤 손에 힘을 주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레슨을 하는 날이면 잔뜩 주눅이 들기도 하고 괜히 시작했나 후회하기도 하면서 피아노 앞에서 헤매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가족들은 입시를 치를 것도 아니고, 대회에 나갈 것도 아닌데 뭐 그리 신경을 쓰냐고 했지만, 나는 다시 예전처럼 연주하고 싶었다. 나의 뻣뻣한 손가락이 마법이 풀린 듯 부드러운 소리를 내길 원했다. 다시 ‘나’라는 존재를 새로운 선율에 담고 싶었다.
좀처럼 늘지 않는 실력이 무엇 때문일까를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는 날이 되었다. 연습은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기에 걱정이 앞섰다.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를 펼치고, 잔뜩 긴장을 한 채 피아노 건반을 세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내가 연주해야 하는 곡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고, 어떻게 손으로 노래해야 하는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연습한 것을 잘 보여주는 것에만 치중한 둔탁한 손놀림만이 계속되었다. 나의 이기적인 연주를 말없이 지켜보던 선생님은 잠시 멈춰보라고 했다. 그리고 악보에 그려져 있는 악상 기호 하나를 손으로 짚어주었다. “지금 이걸 놓치고 있어요.” 선생님의 똑 부러지는 목소리와 함께 굳어있던 내 마음을 툭, 하고 건드리는 악상 기호가 보란 듯이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데크레센도*. 점점 여리게, 점점 작게. 미미하게 연주하며 곧 침묵할 듯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피아노의 속삭임.
스무 해가 넘도록 진심으로 원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오랫동안 일한 만큼 경력과 인맥도 쌓였다고 생각했고 내가 버티고 견뎌온 날들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인정받고 있다고 느꼈고, 칭찬이 들릴 때마다 우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했던 이와 미세한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균열은 상처가 되었고 시끄럽고 불쾌한 소리를 내며 나를 장악했다. 그리고, 차마 들을 수 없는 불협화음이 일상을 가득 에워쌌다. 얄팍해진 마음을 쉼 없이 울리던 소음이 절정에 달했던 순간, 지난 시간들이 무색하게 느껴졌고 비참하게 무너졌다. 일을 통해서 느꼈던 자존감은 바닥을 향했고,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은 심연에 다다랐다. 내가 잘못 살아온 걸까. 자책은 끝이 없었고, 곁에 있던 사람들과 상황에 대한 서슬 퍼런 분노는 겉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 나는 다시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일을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할 수 있을까. 아니, 다시 일할 수 있을까. 확신도 자신도 없던 어느 날, 쇼팽의 피아노 곡에서 만난 ‘데크레센도’는 나에게 여리고 작지만 담담하고 확신 있게 이야기해 주었다.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해 더 큰 소리를 내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힘을 뺀 것 뿐이라고. 누구도 무엇도 나를 함부로 무너뜨릴 수 없다고. 그리고, 한없이 작아졌던 사람만이 그런 이들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거라고 나지막이 이야기해 주었다.
별 진전이 없었던 레슨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미지근한 바람이 가슴팍에 들어왔다. 무엇 하나 머물 수 없던 마음에 미지근한 온기가 돌았다. 그래, 지금 나의 소리는 작고 미미하지만, 언젠가는 숭고한 멜로디가 되어 온 세상을 수놓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작고 여린 소리를 내야 하는 때가 오고, 때론 이해할 수 없는 긴 쉼표를 맞이한다고 해도 이제는 담담하게 받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점점 커지고, 점점 작아지고 큰 소리를 내고 나지막이 속삭이기를 반복하며, 내가 믿는 신이 정성스레 그린 악보의 흐름대로 살아가는 것. 지금의 초라함은 그것을 깨닫기 위한 여정이었다. 언젠가 다시 한번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마주한다고 해도 차가운 마음으로 살지 않으려고 한다. 작고 나약해진다고 해도, 그 모습 그대로를 담아낸 나의 연주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데크레센도decresc. : 점점 여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