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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
참고말씀: 창4:4; 22:1-3; 사42:8
읽을말씀: 출20:3-6; 창22:12
주제말씀: 출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첫째,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너는 나 외에는(히,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
하나님은 누구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 앞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나 외에는’(히, 알 파나이)을 직역하면 ‘나의 면전에’, ‘나와 대립시켜’, ‘나를 넘어서’, ‘네게 덧붙여서’라는 뜻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히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3절)
이는 곧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앞에’ 다른 것들을 두지 말고, ‘하나님과 대립시켜서’ 무엇인가를 두지 말며, ‘하나님을 넘어서’ 다른 것을 향하지 말며, ‘하나님께 덧붙여서’ 다른 것을 두지 말 것, 즉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어떤 것도 두지 말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말입니다.
‘특별히 언제’ 그리해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 즉 예배의 자리로 나아왔을 때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셔야 하는데,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창4:4) 그러려면 중간에 다른 것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왜 중간에 다른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까?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예배를 그것이 중간에서 가로채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는데, 중간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그가 대신 인사를 받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다른 신들입니다.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3절 하) 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킵니까? 우상입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4절 상)
여기서 ‘우상’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애굽이나 팔레스틴의 각종 신들만을 가리킵니까? 아닙니다. 그것들뿐만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위하고 섬기는 온갖 유(有),무형(無形)의 모든 존재들을 다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보다 더 위하고, 하나님보다 더 섬기고,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이 다 우상인 것입니다.
만일 이런 것을 우리에게 두면, 하나님은 어찌하십니까? 질투하십니다.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5절 중) 하나님이 질투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이를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그 죄를 끝까지 물으십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5절 하)
왜 이렇게까지 질투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당신이 받으실 영광과 찬송을 다른 자에게 나눌 생각이 전혀 없으시며, 다른 이들에게 결단코 빼앗기지 않으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른 무엇이 끼어 있습니까? 혹 하나님보다 더 위하고, 하나님보다 더 섬기고,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있으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아서는 것이 있습니까? 이제라도 내려놓기를 바라고 지금이라도 멀리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현대인의 우상을 내게 두지 말아야 합니다!
“너는 나 외에는(히,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
요즘 시대에는 어떤 것들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연예인이 우상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성친구가 우상이 되기도 하며, 어떤 사람에게는 스마트폰이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왜 연예인이 우상이 되기도 합니까? 우상은 영어로 ‘아이돌’(idol)인데, 요즘에는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젊은 연예인을 ‘아이돌’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연예인을 단순히 좋아한다고 해서 다 우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서 하나님보다 더 위하고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게 된다면 그때부터 연예인은 말 그대로 아이돌, 곧 우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왜 어떤 사람이나 이성 친구 등이 우상이 되기도 합니까? 물론 단순히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다 우상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우정이나 사랑을 넘어서 그 사람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고 예배의 자리에 소홀히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우리에게 우상이 된 것이 분명합니다.
왜 특히 더 스마트폰이 우상이 되기도 합니까? 스마트폰(smartphone)은 휴대전화에 컴퓨터 기능을 결합한 지능형 단말기로써, 현대 문명의 이기(利器) 중 하나이지만, 이 스마트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즉 우리의 예배시간을 결정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면,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우상임이 분명합니다.
스마트폰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 1955~2011)입니다. 그는 애플의 창업자로서, 1984년 매킨토시 컴퓨터 등 혁신적인 기술과 디자인의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해 보급했고, 2007년 아이폰을 통해 스마트폰 시대를 선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생전에 자기 자녀들에게 아이패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으며, 집에서 아이들이 스마트 기기 사용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했다고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Bill GatesWilliam Henry Gates III, 1955~)도 자녀가 14살이 될 때까지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았고, 식사 시간에는 절대 전자기기를 식탁에 올리지 못하게 했으며, 취침 전 화면 보는 시간도 엄격하게 통제했다고 합니다.
이 두 사람은 왜 그런 것입니까? 스마트 기기가 가진 ‘강력한 중독성’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즉 스마트 기기가 아이들의 뇌 발달과 정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에 엄격히 통제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혹 우리 경우도 스마트폰이 우상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즉 예배 시간조차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까? 스마트폰 하느라 찬양 시간에 찬양을 하지 않고, 설교 시간에 말씀을 듣지 않으며, 기도 시간에 기도하지 않고 있습니까?
만일 스마트폰이 매번 우리의 예배를 방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우상임이 분명합니다. 예배 시간에 정작 만나야 할 하나님은 못 만나고, 스마트폰만 만나고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떤 학생들은 예배당에 올 때부터 나갈 때마다 계속 스마트폰만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물어보겠습니다. ‘스마트폰이’ 나의 목자가 되어 줍니까? ‘스마트폰이’ 우리를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줍니까? ‘스마트폰이’ 내 영혼을 소생시켜 줍니까? ‘스마트폰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줍니까? ‘스마트폰이’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 줍니까? ‘스마트폰이’ 우리를 각종 위기로부터 구해줍니까? ‘스마트폰이’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줍니까? ‘스마트폰이’ 우리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인 ‘천국’으로 인도해 줍니까?
스마트폰은 분명 문명의 이기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선한 도구가 되기도 하고 사탄의 도구로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이제라도 스마트폰과 거리두기를 해야 합니다. 최소한 예배 시간만이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증명해야 합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의 테스트(test)가 나옵니다. 그 대상은 누구였습니까? 아브라함입니다. 시험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그의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1,2)
만일 하나님이 이 테스트(test)를 고스란히 우리에게 하신다면, 과연 무엇을 바치라고 하셨을까요? 아마도 우리의 스마트폰이 되지 않을까요! ‘네 사랑하는 스마트폰을 나에게 바치라’ 어째서입니까? 이는 우리의 손에서 한 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없고, 누구에게도 양보하거나 양도할 수 없으며, 우리가 가장 큰 애착심을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결단해야 합니다. 설령 그것이 내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고, 내 삶의 전부처럼 여겨질지라도 과감히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즉각적으로 순종했던 것처럼 우리도 즉시로 결단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주신 곳으로 가더니.”(창22:3)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을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 향한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으며, 그 어떤 것들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확인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지금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그것을 과감히 내려놓음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까? 또한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않음으로써, 하나님 앞에 다른 것을 두지 않기로 결심함으로써, 말씀을 따라가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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