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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헤어담당자 등 3명을 더 데리고 왔어요. A씨가 연예인이라 단체에서는 비즈니스석 비행기표를 제공했죠. A씨는 봉사 일정을 빼면 호텔 방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음식도 한국에서 가져온 걸 안에서 따로 먹었어요. 마지막 날엔 매니저가 내려와 '생선 초밥을 구해달라'고 하더군요." 이들이 마지막 날 묵었던 호텔에 일식당은 없었다.
당초 A씨는 봉사 일정 중에 빈곤 아동과 먹을 식사를 직접 만들 예정이었다. 그런데 요리 도중 손가락을 살짝 베는 바람에 A씨의 스타일리스트, 헤어·메이크업 담당자가 대신 나서 가져간 인스턴트 쌀밥을 데웠다. 아이들에게 준 식사는 즉석밥에 즉석 카레를 얹은 카레밥.
A씨는 화보용으로 어린이에게 음식을 먹이는 장면을 연출하려 했지만, 아이가 처음 맛보는 인스턴트 음식을 낯설어해서 결국 시늉만 하다 말았다. 관계자는 "사진작가 B씨가 나서서 아이나 주변 사람에게 '좋아! 다시!' '거기 비켜!'하며 자기 방식대로 무리한 연출을 요구해 불편했다"고 말했다.
A씨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곳에서도 흡연을 즐겼다. "결국 현장에 있던 한 사람이 '죄송한데 사람들이 안 보는 데 가셔서 피우셨으면 좋겠다'고 나섰습니다." 귀국 직후, A씨는 단체 관계자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현장을 본 또 다른 관계자는 "봉사활동을 패션화보 촬영으로 착각하는 것 같아 '욱'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연예인이란 특수성을 감안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과정이 어떻든 A씨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이 국제사회에 관심을 갖고 착취당하는 아동들에게 후원한다면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겠지요."
국제구호단체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연예인 해외 봉사'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4년 전쯤이다. NGO 단체들은 연예인의 영향력을 절감했다. 2006년 배우 차인표가 출연했던 M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3만5000원의 기적'은 방영 후 해당 구호단체에 한 달간 1만여명의 후원자가 몰렸다고 한다.
수수한 차림으로 봉사하는 연예인은 사진전, 잡지 화보, 다큐멘터리, 기사 등 다양한 형태로 주목받았다. 올해 설립 20년째인 NGO 단체는 "연예인·미디어 관심 덕에 20~30대 회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1~2년 동안 후원금액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이 단체에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이는 총 44만명. 이 중 최근 1년7개월 동안 가입한 회원이 20만명이다.
요즘에는 자발적 참여보다 각종 기업·NGO 단체가 홍보를 위해 연예인을 섭외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기업 후원금으로 연예인에게 일등석 또는 비즈니스석 비행기표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바쁜 연예인은 봉사 단체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덜컥 현장에 옵니다. 요즘도 봉사에 열심인 배우 C씨는 3년 전만 해도 인도네시아 어촌 마을에 뽀얗게 화장하고 치마에 하이힐 신고 왔어요." 연예인 해외봉사 현장에 10여 차례 동행했다는 외주사 프로듀서 이모씨의 말이다.
문제는 A씨처럼 부적절한 모습을 보였던 연예인도 모두 '천사'로 포장된다는 것. 한 NGO 단체 관계자는 "일부 기업화된 NGO는 유명 연예인을 섭외하려고 1000만원대가 훌쩍 넘는 거마비(車馬費)를 마련한다"며 "여자 연예인 중에 수행하는 사람이 3~4명 따라붙을 땐 단체에 큰 부담이 된다"고 했다.
지금은 봉사에 대한 '진심'이 널리 알려진 차인표씨 역시 지난해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자신의 행동을 고백한 바 있다. "자원봉사자는 원래 비행기표 값 등 부대비용을 본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당시 제 마음이 얼마나 부끄러운 상태였느냐 하면, 자금에 쪼들리는 NGO 단체인 '컴패션'에 비행기표를 보내달라고 할 정도였어요. 이코노미 티켓이 왔어요. … 배우에게 최소한 비즈니스석은 줘야지'라는 마음이 들었고 비즈니스석을 요청했습니다. … 저는 그걸 제 마일리지를 사용해서 일등석으로 업그레이드를 시켰죠. 불과 3년 전 일입니다. 나머지(사람들)는 이코노미석으로 갔습니다." (주간조선 2056호)
여배우 D씨는 지난해 중순 남아시아의 한 국가로 봉사활동을 떠났다가 구설에 휩싸였다. D씨는 귀국길 환승하러 들른 홍콩에서 면세점 쇼핑을 즐기다 출발 시각을 잊었고, D씨를 찾느라 항공기가 30분 늦게 이륙했다고 한다. 당시 D씨의 봉사 활동을 진행했던 관계자는 "D씨 같은 경우는 매니저의 착오로 늦게 된 케이스"라며 "진심으로 임하지 않았던 분들도 언젠가는 봉사의 의미를 깨달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NGO 단체는 "짜증을 내거나 까다로운 요구를 하는 연예인은 극소수"라고 못박았지만, "다녀온 연예인 절반 정도가 돌아와서 지속적인 봉사나 후원을 하지 않는 건 아쉽다"고 지적했다.
"NGO 관계자들과 이야기해보니 며칠씩 옷도 안 갈아입고 열심히 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오지에서 '피자 시켜달라'고 하는 분, '하기 싫다' '힘들다'고 불만을 늘어놓는 분, '더러운 물로 씻으면 피부병 생길 수 있다'며 수입 생수로 몸을 씻는 분도 있었지요."
단체의 능력이 못 미치는 경우도 있다. 외주사 프로듀서 이씨는 "연예인 E씨는 해외봉사를 한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나중에 '이게 어떻게 봉사냐'며 실망한 케이스"라고 했다. E씨는 현지에서 '하루 반'만 봉사하는 무리한 스케줄을 잡았고, 그마저도 상황이 꼬여 결연 아동과 '반나절'만 만났다 헤어졌다.
이 프로듀서는 "연예인보다도 아동이 받게 될 충격이 더 문제"라고 했다. "살면서 '텔레비전'이란 걸 본 적도 없는 아이에게 모르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갑자기 씻겨주고 옷 입혀주고 먹여주고 반나절 만에 우르르 돌아갑니다. 마을에선 한 명에게만 관심이 몰리니 싸움도 나고, 선물이나 돈을 훔치는 일도 벌어집니다. 아이가 현실을 부정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경우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