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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除夜)의 종소리와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북경의 종고루(鍾鼓樓)
올 한해도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훌쩍 지나가 버리고, 이제 한 달 후면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지나온 한해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한해를 맞이할 즈음, 여러분은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나시나요?
지나온 한해에 대한 후회, 아쉬움, 허전함? 아니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 설레임, 두려움? 한해를 보내고 맞이하면서 누구나 느끼게 되는 이러한 세월의 감정들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이 바로 “제야(除夜)의 종소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나온 한해의 안 좋았던 기억들을 한 방에 날려버리고, 다가올 새해의 행운을 불러 모은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제야(除夜)의 종소리가 머지않아 또 울려 퍼지겠네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그 종소리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가족, 연인 또는 친구들과 함께 보신각(普信閣) 주위로 모여 송구영신(送舊迎新)하면서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겠지요.
이렇게 은은한 “제야(除夜)의 종소리”를 북경에서도 들을 수가 있답니다.
북경에서는 고종(古鍾) 박물관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대종사(大鍾寺)와 과거 원명청(元明淸) 시기에 시간을 알려주던 종고루(鍾鼓樓)에서 울려 퍼지는 제야(除夜)의 종소리가 가장 유명하답니다. 사실 이 두 곳 뿐만 아니라, 종(鍾)이 설치된 대부분의 사찰에서도 저마다 색다른 종소리로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특히, 종고루(鍾鼓樓)에서는 “제야의 종소리” 뿐만 아니라 “제야의 북소리”도 함께 들을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더욱 즐겨 찾는다고 하네요.
종고루(鍾鼓樓)는 북경시내의 천안문(天安門)을 중심으로 길게 남북으로 뻗어있는 중축선(中軸線)의 최북단에 위치한 곳으로, 고루(鼓樓)와 종루(鍾樓)가 100여 미터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나란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1272년 원대(元代)에 지어진 건축물로, 명대(明代)와 청대(淸代)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의 보수와 증축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 그럼, 머지않아 “제야의 종소리”와 “제야의 북소리”가 울려 퍼질 북경의 종고루(鍾鼓樓)로 미리 들어가 보실까요?
“구로우(鼓樓 - 고루)” 건축물 앞 삼거리에 세워져 있는 교통 표지판.
바로 앞으로 보이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띠안먼(地安門)”이 나타납니다.
“쫑구로우(鍾鼓樓 - 종고루)” 부근의 “링땅후통(鈴鐺胡同 - 방울골목)”이라 불리는 동네의 안내 표지판. 이 외에도 근처에는 “루오구(鑼鼓 - 징과 북)”이라는 타악기의 이름이 붙어있는 동네도 있어, “쫑구로우(鍾鼓樓 - 종고루)”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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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먼저 “고종(古鍾) 박물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대종사(大鍾寺)의 “영락대철종(永樂大鐵鍾 - 명대 영락황제 시기에 생산된 철로 만든 커다란 종)”과 쌍벽을 이루는 “영락대동종(永樂大銅鍾 - 역시 명대 영락황제 시기에 생산된 동으로 만든 커다란 종)”을 보관하고 있는 종루(鍾樓)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구로우(鼓樓 - 고루)”에 올라 북쪽으로 바라보니, “쫑로우(鍾樓 - 종루)”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네요. “쫑로우(鍾樓 - 종루)”는 높이가 47.9 미터로, 바로 앞에 보이는 46.7 미터 높이의 “구로우(鼓樓 - 고루)”보다 1.2 미터 높다고 하네요.
종소리가 사방으로 멀리까지 전달되려면 아무래도 높은 곳에 보관되어 있어야 하나 봅니다.
원래, “쫑로우(鍾樓 - 종루)”는 원대(元代) 만녕사(萬寧寺)라는 사찰의 중심각(中心閣)이었으나 훗날 전쟁 중에 화재로 훼손되고, 명대에 이르러 고루(鼓樓)와 함께 새로 증축되어 “쫑로우(鍾樓 - 종루)”라 불리게 되었답니다.
원래, “쫑로우(鍾樓 - 종루)”에는 현재 대종사(大鍾寺)에 보관되어 있는 “영락대철종(永樂大鐵鍾)”이 걸려있었지만, 훗날 음질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현재의 “영락대동종(永樂大銅鍾)”으로 교체되었답니다.
“영락대동종(永樂大銅鍾)”은 높이 7.02미터, 직경 3.4미터, 무게가 자그마치 63톤에 달하는 중국 최대의 동종(銅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 고종(古鍾)의 최고인 “고종지왕(古鍾之王 - 고종의 왕)”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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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북경의 종루(鍾樓)에 걸려 있는 동종(銅鍾)에 얽힌 슬픈 전설과 민간신앙은 한국의 “에밀레종” 전설과 매우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어, 과거에도 한국과 중국 간에 빈번한 문화적인 교류가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슬픈 전설을 담고 있는지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옛날, 명나라의 영락(永樂) 황제는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줄 커다란 동종(銅鍾)을 만들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장인(匠人)인들이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려도 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자, 황제는 매우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80일 동안 동종(銅鍾)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모두 처형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리고 종을 완성해내야 하는 기한이 점점 다가오자, 어느 늙은 장인(匠人)은 마음이 더욱 급해졌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그 늙은 장인의 딸은 동종(銅鍾)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가 “혹시 정성(精誠)과 영험(靈驗)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종을 완성해내기로 약속한 그 날, 동(銅)을 끓이고 있는 화로 속에 스스로 몸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동(銅)을 녹인 물이 펄펄 끓기 시작했답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늙은 장인은 슬픈 마음을 억누르고 비통한 표정으로 “어서 동종(銅鍾)을 만들라”며 외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맑고 은은한 소리가 몇 십리 밖으로 길게 울려 퍼지는 동종(銅鍾)이 만들어지게 되었답니다. 훗날, 민간에서는 그 늙은 장인의 딸을 “鑄鍾娘娘(종을 만든 여신)”으로 섬기며, 사당을 짓고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 주었다고 합니다.
종을 만드는 장인(匠人)이 “자신의 자식을 희생해서 소리가 아름다운 종을 만들어 냈다”는 한국의 슬픈 “에밀레종” 전설 모티브와 정말 비슷하지 않나요?
지금은 주변에 높게 지어진 현대식 건축물과 공기 오염 등의 영향으로 인해 웅장하고 아름다운 종소리가 그리 멀리까지 전달되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북경 근교의 40 리 바깥까지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합니다.
“구로우(鼓樓 - 고루)”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표입니다.
일반가격은 20위안(약 2,600원), 학생 할인된 가격은 10위안(약 1,300원)이네요.
이와는 별도로 “쫑로우(鍾樓 - 종루)”로 들어가는 데에는 15위안(약 1,950원)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쫑로우(鍾樓 - 종루)”에 올라 남쪽으로 바라보니, 이번에는 “구로우(鼓樓 - 고루)”의 전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쫑로우(鍾樓 - 종루)”보다 낮은 건축물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종루(鍾樓)와 짝을 이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고루(鼓樓)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고루(鼓樓)는 “月, 火, 水, 木, 金, 土, 日” 칠정(七政)을 모두 담고 있다는 의미로 원대(元代)에는 “제정루(齊政樓)”로 불리다, 훗날 불에 타 훼손되어 수차례의 보수를 거듭한 후 지금의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이 북은 “1년”을 상징하던 원래의 제일 큰 “껑구(更鼓 - 更, 즉 시간을 알리는 북)” 실물이랍니다. 훗날, 1900년에 연합군이 북경을 침입했을 당시 일본군에 의해서 칼로 찢어진 흔적이 역력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치욕스러운 역사를 담고 있는 건물”이라는 의미로 고루(鼓樓)를 명치루(明恥樓)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고루(鼓樓)에는 모두 25개의 “껑구(更鼓 - 更, 즉 시간을 알리는 북)”이 설치되어 있답니다.
그 중에서 큰 북 1개는 “1년”을, 24개의 작은 북은 “24절기”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거의 훼손되어 큰 북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모조품으로 전시되어 있답니다.
현재는 관광객들을 위해 “과거에 북을 쳐서 시간을 알리던 모습”을 재현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11시 30분, 오후 3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약 5분 정도의 공연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과거에 사용되던 “껑구(更鼓 - 更, 즉 시간을 알리는 북)”을 복제하여 소가죽으로 똑같이 만든 북이랍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이 북을 두드렸으면, 북에 그려진 문양들이 거의 닳아 없어 졌네요.
한편, 기록에 의하면 송대(宋代)에 만들어진 “로우후(漏壺 - 물시계)”가 보관되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고 여러 가지 역사자료에 근거해 원래의 물시계를 새로 재현해 놓은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물시계 옆에는 동(銅)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나오션(鐃神 - 악기의 일종인 ‘바라’를 치는 사람을 이렇게 신으로 추앙하고 있네요)”이라 불리는 기계 인간이 바라를 치며 시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설명에 의하면, 매 15분 사이에 정확하게 8번의 심벌즈를 친다고 합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근엄한 표정의 기계인간이 움직일 때마다 정말 귀엽기까지 하네요.
“구로우(鼓樓 - 고루)”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저 멀리 경산공원(景山公園) 제일 높은 산봉우리에 우뚝 솟아있는 만춘정(萬春亭)이 아늑하게 눈에 들어오네요.
지금 직선으로 길게 보이는 길이 바로 북경의 가장 중심이 되는 중축선(中軸線)이랍니다. 이 길을 쭉 따라 내려가다 보면, 차례로 지안문(地安門), 경산공원(景山公園), 자금성(紫禁城), 천안문(天安門), 전문(前門), 영정문(永定門) 등이 차례로 나타나게 되지요.
“구로우(鼓樓 - 고루)”에서 서쪽으로 내려다본 전경입니다.
“구로우(鼓樓 - 고루)”에서 동쪽으로 바라본 전경입니다. 이 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주변에 국자감(國子監)과 옹화궁(雍和宮)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저 멀리 보이는 빌딩숲 사이로 한 무리의 새들이 늦가을의 활공을 펼치고 있습니다.
“쫑구로우(鍾鼓樓 - 종고루)” 역시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후통요우란(胡同遊覽 - 골목 유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인력거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네요.
물론 공짜가 아니라,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능력에 따라 많게는 100위안 전후에서 적게는 십 몇 위안까지 흥정이 가능하답니다. 최근에는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바가지 요금이 만만치가 않네요.
이 사진은 올해 2월 음력 설날에 이화원(頤和園) 소주가(蘇州街) 입구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행복을 기원하는 “핑안구(平安鼓 - 평안을 기원하면서 치는 북)”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북을 치며 복을 빌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네요. 이러한 활동 역시 “제야의 타종 의식”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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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옛날 북경의 종루(鍾樓)와 고루(鼓樓)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시간을 알렸을까요?
예로부터 “晨鍾暮鼓(아침에는 종을 치고, 저녁에는 북을 친다)”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듯이,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임을 알리기 위해 종루(鍾樓)에서는 동이 틀 무렵인 새벽에 “땡땡” 종을 쳤고, 반대로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임을 알리기 위해 고루(鼓樓)에서는 해 질 저녁 무렵에 북을 “둥둥” 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훗날 1924년에 서양식 시계가 중국에 보급되면서, 종고루(鍾鼓樓)는 그 역할을 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다, 1990년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며 시간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자는 의미를 담고 “제야(除夜)의 종소리”와 “제야(除夜)의 북소리”로 66년 만에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그리고 새천년(2000년)부터는 양력에서 말하는 신년(新年)은 물론, 음력 설날 제야(除夜)에도 “擊鼓鳴鍾迎新年活動(북을 치고 종을 울려 새해를 맞이하는 활동)”이라는 행사를 통해, “제야의 종”을 33번 치는 한국과 달리 새해를 맞이하여 제야(除夜)의 “종과 북”을 108번 치게 되었답니다.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제야(除夜)의 23시에 고루(鼓樓)에서 먼저 108번의 북을 치고, 정각 24시가 되면 북소리를 멈춘 후 이어서 바로 종루(鍾樓)에서 새해를 알리는 종을 108번 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왜 108번을 치는 걸까요?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煩惱)를 상징하는 것인지... 아니면 예전부터 매일 108번의 북을 쳐서 시간을 알리던 풍습을 따른 것인지... 아무튼, 어떨 때에는 상황에 따라 타종 횟수를 달리 하기도 합니다. 마치 2000년에 (2000번을 치기는 너무 많은 것 같네요) 200번의 타종으로 새천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제야(除夜)의 종”을 칠 수 있는 타종권(打鍾權 - 종을 칠 수 있는 권리)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매를 통해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제일 먼저 종을 칠 수 있는 가장 비싼 타종권(打鍾權)이 17,880위안(약 232만원)의 가격으로 판매되었고, 가장 저렴한 타종권(打鍾權)은 1,780위안(약 23만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08번의 종을 울리고 난 후, 관련 기관에서는 도합 20만 위안(약 26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하네요.
하지만 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순수한 마음으로 “제야의 종”을 치며 새해의 행복을 기원하던 오랜 풍습이 더 이상 상업적으로 물들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의 비판을 받고, 최근에는 무상으로 시민들에게 개방이 되었답니다.
굳이 타종식 행사에 참석하지 않아도, 누구나 자유롭게 “마음의 종소리”를 울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빠른 템포로 힘차게, 때로는 한 박자 늦춰서 은은하게... 박자와 템포는 달라도 제야(除夜)의 종소리에 누구나 희망을 담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희망을 담은 종소리가 새해에는 더욱 멀리까지 오래도록 울려 퍼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글을 마칩니다.
여러분은 제야(除夜)에 어떤 종소리를 울리고 싶으세요?
첫댓글 잘보았읍니다^^
오늘 날의 자신감. 미래의 희망. 외로움에서 느껴지는 즐거움. 고달픔에서 변해가는 행복.....
내마음의소리는 어떤 소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