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내는 연습
오미향
“헬로우, 마담. 아 유 오케이?”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나무 그늘에 앉아 있을 때였다. 딸은 대온실을 자세히 보겠다고 해서 나만 먼저 나와 쉬고 있었다. 더위 먹은 내 모습이 지쳐 보였는지 핏기가 없어 창백했던지 낯선 사람이 혼자 왔냐며,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물었다. 나는 찡그렸던 한쪽 눈을 뜨고 바라봤다. 나와 비슷해 보이는 연배의 아줌마가 서 있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은 얼굴색이 다르고 방문 목적은 달라도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하곤 했다. 꽃과 나무가 예쁘고 조경이 대단하지 않냐며 동의를 구했다.
“탱큐. 탱큐우. 아 임 오케이.” 순간적으로 할 말도 없고 달리 대답하기에는 영어가 안 돼서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고맙다고 했다. 그녀는 좋은 여행 되라는 인사를 건네며 내 두 손에 놓인 화려한 모자를 가리켰다. 너의 모자 또한 원더풀이라며 엄지척했다. 이 순간에도 나는 모자를 꽉 쥐고 있었다. 슬그머니 모자를 뒤로 감췄다.
눈만 뜨면 더해지는 나이에 괜히 움츠러들고 자존감 낮아지는 일이 가득한 일상에서 잠시 근심 걱정이 가득한 바구니는 슬쩍 밖으로 밀어 버리기로 했다. 피곤의 겉껍질이라도 떼어내듯, 한 꺼풀 벗겨내면 삶에 양념처럼 핑크빛이 돌 것처럼, 여행 가방을 채웠다. 이거 다 필요하나요, 라며 짐가방을 만지작거리던 딸이 신경질적으로 물어 보기 전까지는.
머라이언이 내뿜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칵테일 한잔해야 해서, 바람 부는 날은 챙이 넓은 모자를 살포시 쥐는 모습이 낭만적이라서…… 내 목소리는 기어들어 갔다. 평소 모자를 즐겨 쓰는 내 성향을 아는 딸은 그런데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4박 5일 가방치고는 이민 가방 같다면서. 설마 모자 몇 개 더 넣었다고 무게가 오버 되겠니? 오 마이 갓이라며 할리우드 액션을 취하는 딸은 여행이니까 이해해 보겠다고 했다.
간편한 티셔츠에 청바지 하나면 되는 딸에 비해 나는 보름달처럼 차오른 얼굴을 작게 하고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모자로 시선을 분산해야 했다. 소설 ‘프랑스 대통령의 모자’는 대통령이 식당에 놓고 간 모자가 행운의 부적이라도 된 듯 사람들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자 하나가 자신감을 줄 것처럼, 숨겨놨던 나의 역량을 발휘하는 마법을 은근히 기대하며 모자를 하나 더 추가했다. TPO에 맞게 준비한 옷가지들로 가방은 고래 등처럼 불어버렸다.
살인적인 더위 앞에 가지고 간 모자 일곱 개는 외출하지 못했다. 바람이 통하는 재질의 모자라도 머리에 얹으면 체온이 1도 올랐다. 모자 부피가 얼마 하겠냐는 말보다 그렇게 챙겨 넣은 모자의 쓰임새가 무용해졌음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낭패감이 들었다. 써보지도 못하면서 쓸 것 같아서 준비하고 있었던 것은 비단 모자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필요한 건 시원한 물 한잔과 살갑게 다가와 준 현지인에게 화답하는 여유였는데. 그녀가 예쁘다고 말했던 모자가 나의 전부로 보였을까 봐 창피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눈이 마주쳤을 때 보타닉 가든의 식물들이 내뿜는 향기와 모습에 취한 내 느낌을 작은 미소로 답했어야 했는데. 그들은 나의 진심 어린 인사와 작은 손놀림, 배려 있는 모습을 보며 코리아와 동양, 중년여성을 보게 될 터인데. 겉멋만 잔뜩 든 모습이라니.
자신이 없어서, 자꾸 채우려고만 했다. 로션 하나로 투명해질 피부가 아니기에 여러 겹 바르다 보니 덧칠한 흔적이 짙은 음영을 만들어냈다. 조끼나 카디건을 걸쳐도 옆구리살은 정직했다.
살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옷가지가 아니라 사물을 읽고 느끼고 이해하는 마음이었다. 천칭 저울이 기울도록 집안일과 시댁 행사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지 말았어야 했다. 빈약한 사유와 형편없는 일상의 조각들 차지가 돼버린 반대편 무게를 관조와 독서로 중심을 잡았어야 했다.
이게 얼마나 나간다고. 이 정도는, 이래서 필요하고 저래서 잘 사용할 것 같아서. 아니면 이 분위기에는 ‘딱, 이거야’, 라는 이유를 만들어가며 욱여넣은 짐들이 울상이었다. 한 번도 빛을 못 본 채 먼 거리를 비행해 온 물건들. 물기가 뚝뚝 떨어져 보관이 쉽지 않은 거품제 등은 뭐 하러 갖고 왔는지. 딸처럼 간단히 빨아서 입고 같은 옷 다시 입는 최소한의 미니멀리즘에 여행의 여운이나 감동을 깊게 넣어야 했는데. 움켜잡아야 안정감이 찾아오고 소유가 되는 일상에 길들었었다. 이제 나도 철 지난 모자처럼 조금씩 유용함이 없어져 가는 걸까.
“이거 다 버리려고요?” 그림엽서를 만지작대던 딸이 물었다.
잔뜩 가져오기만 했지, 쓸모가 없잖아. 그리고 다 오래된 것들이야. 이제 이 아이도 놓아줘야지 언제까지 추억만 먹고 살 수 없잖아. 대신에 이곳의 경관과 도시의 야경,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채워 넣으려고.
“잘했어요. 엄마 글솜씨 좋잖아요. 책도 많이 읽고. 엄마는 책 볼 때가 제일 아름다워요.” 남은 일정은 다른 색깔이 될 것 같다는 딸의 칭찬이 아니더라도 이번 여행이 계기가 되었다. 단지 몇 개의 물건들을 버렸을 뿐인데 몸과 마음의 다이어트를 끝낸 기분이었다. 센토사섬의 파도 소리를 마음에 담고 오차드 거리를 이방인이 되어 걸어본다. 이국의 낯설고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덜어내는 마음과 채워갈 감성들이 있어 뜨거운 한낮의 열기를 버틸 수 있었다.
기류 변화로 기체가 몹시 흔들리니 안전띠를 단단히 매라는 기내 방송이 들렸다. 사람들은 불편한 잠을 자기도 하고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그동안 부지런히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정리하기에 바빴을 시간이다. 내가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곳의 배경과 자연은 지워졌다. 아직도 내가 인위적으로 예쁠 때만을 기억하고 영원히 남기려는 손놀림이 갑자기 우스워졌다. 이 여행에서 내가 얻고자 한 건 무엇일까. 책장을 넘길 때 유려한 문체보다 작가의 진솔한 경험과 말하고픈 의도가 공감 있게 전달이 돼야 좋은 글인 것처럼 내가 도드라져 보이는 전경보다는 나를 뒷받침해 주는 후경의 역할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모자를 쓰지 않아도 당당해지는 나를 떠올리며 다음 여행을 기약해 본다. 다 버리고 꼭 필요한 일상의 물품만을 넣고 여행지에서 맡을 수 있는 공기, 에피소드, 스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채워보려 한다. 덜어내는 연습 위에 하나씩 채워가는 그 무엇을 기대하며. 혹은 당분간은 비워가는 일만을 계속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분홍색 레이스로 테를 두른 모자가 나풀대며 하늘로 떠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