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가 여행의 목적지를 결정하는 데 나침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영상을 보는 데만 그치지 않고 이야기 속 장소를 직접 찾아가 감동을 느끼고 싶은 이들이 늘어난 까닭이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주인공이 먹었던 음식을 먹으며 직접 주인공이 돼보고, ‘인생샷’을 찍으며 추억을 만든다. 새로운 추억을 선사할 영화·드라마 촬영지와 그 일대를 소개한다.
첫 목적지는 부산 기장이다.
부산은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도시이자 영화의 단골무대다. 그중에서도 기장으로 첫 발걸음을 뗀 것은 개봉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추억하는 영화 <친구>에서부터 최신 흥행작 <신과함께> 등이 촬영된 장소여서다. 부산의 유일한 군(郡) 지역으로, 우리가 흔히 아는 ‘제2의 도시’ 부산과는 다른 얼굴이라는 사실도 직접 찾아가고픈 생각이 들게 했다.
영화 ‘친구’ ‘보안관’의 무대인 대변항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마천루가 빼곡한 부산 중심에서 동북쪽을 향해 한시간 정도 차로 달리니 조용한 바닷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기장 앞바다를 끼고 앉은 항구, 대변항이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하고 물개하고 수영하면 누가 이길 것 같노?”
활처럼 휘어진 해안선을 바라보며 대변항을 걸으니 이곳에서 촬영한 영화 <친구>(2001년 개봉)의 명대사가 귓가에 맴돌았다. 대변항은 이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 곳이다. 네 친구가 해맑게 물장구를 쳤던 바다는 갈등과 배신이 얽힌 영화 속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평화롭기만 하다.
바다 가운데 방파제가 눈에 띄었다. 주인공 동수(장동건 분)가 방파제에서 ‘깡패생활’에 회의를 느끼며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담배냄새가 바닷바람을 타고 코끝을 찌르는 듯했다.
대변항은 영화 <보안관>(2017년 개봉)의 무대이기도 하다. 주인공 대호(이성민 분)가 형사직에서 잘리고 낙향했던 곳이다. 주인공이 냉커피를 마시며 서 있던 건어물가게가 어디인지 알고 싶어 가게들이 늘어선 대변초등학교 쪽으로 발걸음을 뗐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미역·다시마 등 대변항에서 나는 해산물이 깔린 가게 앞에 섰다. 고개만 돌리면 주인공이 냉커피를 손에 들고 서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영화의 무대를 찾아 기장까지 온 김에 한곳 더 들러야 할 장소가 떠올랐다. 바로 올해 첫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신과함께>의 배경이 된 기장소방서다. 주인공 김자홍(차태현 분)이 소방관이라서 영화 곳곳에 기장소방서가 등장한다.
대변항에서 북쪽으로 18㎞를 차로 달려 기장소방서 앞에 다다랐다. 주인공이 화재신고를 받고 긴급출동했던 소방서 주차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원귀를 쫓던 저승차사(하정우 분)가 소방서 건물을 내려다본 곳은 어디일까. 소방서에 문의하니 소방서 건너편 정관읍 도서관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도서관의 옥상에 올라가 소방서를 바라보며 영화 속 저승차사가 된 기분에 빠져보았다.
기장 명물인 멸치구이.
영화의 무대가 됐던 기장을 둘러보고 나니 배가 출출해졌다. 기장에 왔으니 메뉴는 단연 멸치다. 매년 4월 멸치축제가 열릴 정도로 기장은 멸치가 많이 잡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봄멸치가 유명하지만 겨울에 구이나 찜으로 먹어도 별미죠. 기장멸치는 계절과 상관없이 맛이 좋아요.”
기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하나같이 멸치 예찬론을 펼쳤다. 그들의 말을 되뇌며 다양한 멸치요리를 판매하는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숯불에 구워 고소한 맛을 자랑하는 멸치를 뼈째 한입 베어 물었다. ‘오도독’ 소리와 함께 입안에서 퍼지는 멸치의 고소함은 일상에서 쌓인 피로감을 날려주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기장의 또 다른 특산물인 미역으로 만든 뜨끈한 국은 한겨울 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여주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