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계명산(鷄鳴山, 774.9m) 산행 #1
2024. 6.6(목) 맑음
<산행코스 및 구간별 소요시간 : 4.69km, 약 3시간 54분 소요>
충주호 종댕이길 제1주차장/09:25/09:38-등산로 입구/09:40-대몽항쟁전승기념탑/09:45/09:49-돌무더기/10:12-능선/10:20-데크계단/10:22/10:29-
제1지점(구급함)/10:33-계명산휴양림 갈림길/제1전망대/10:47-제2지점 쉼터/11:09-707.9봉(정상 0.8km 이정표)/11:12-정상 0.5km 이정표/11:35-
헬기장-정상/11:57/12:07-정상0.5km 이정표/12:20-707.9봉(정상 0.8km 이정표)/12:43-제2지점 쉼터/12:45-제1전망대/12:59-
제1지점(구급함)/13:08-데크계단/13:10-대몽항쟁전승기념탑/13:35-충주호 종댕이길 제1주차장/13:40
충주시 용탄동에 위치한 계명산(鷄鳴山 774.9m)은 충주시의 동쪽과 충주호 사이에 초승달처럼 능선이 뻗어 있다.
가파른 경사이긴 하지만 비교적 짧은 거리로 정상에 올라 충주호와 어우러진 백두대간의 모습을 굽어보는 조망의 산이다.
남한강을 건너 지등산(535m)과 마즈막재를 가운데 두고 동북쪽에 계명산, 남쪽에는 남산(636m)이
충주시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그 운치를 더해주며 있다.
정상에서 조망은 북쪽으로 인등산과 천등산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월악산이 아스라히 보이고
계명산 정상에는 충주호를 앞마당 삼은 멋진 백패킹 장소로 헬기장이 있어 백패커들에겐 수주팔봉과 더불어 ‘충주 2대 백패킹 명소’로 불린다.
산 남동쪽 산기슭에 계명산 자연휴양림이 자리잡고 있다.
이산은 삼국시대에 오동산(悟桐山) 또는 심항산(心項山)으로도 불리어졌다.
이후 충주의 진산(鎭山)의 형세가 닭의 발가락 형상을 하고 있어 계족산(鷄足山) 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이름조차 '계족이라 충주에 부자가 나지 않는다’고 하여 산의 명칭을 바꾸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닭은 먹이를 먹을 때 모이를 흩뜨려 먹어 충주 고을의 재산이 밖으로 나가게 되어 충주에 부자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1958년 여명을 알리는 희망적인 이름의 뜻으로 계명산(鷄鳴山)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계명산의 옛 이름은 이산에 지네가 많았는데 충주가 백제의 영토였을때 마고성주(南山城)의 딸이
산기슭에서 지네에 물려 앓다가 회복을 못하고 죽게되자
지네를 퇴치하기 위해 고심하던 마고성주가 심항산 마루에서 치성을 드리던 중 꿈에 신령이 나타나
지네는 닭과 상극이니 산에 더 많은 닭들을 심항산에다 방목을 하니 지네가 근절되었다고 한다.
<산행지도>
2024.6.6(목) 오전 4시 동해(자택)를 출발하여 현충일을 맞이하여 국립이천호국원으로 향한다.
오전 7시 30분 국립이천호국원에 영면해 계시는 부모님을 참배하고 나서 충주 계명산(774.9m) 산행 들머리인 마즈막재로 이동한다.
마즈막재로 이동중 차내에서 마즈막재에서 정상에 이르는 경사가 가파른 계명산 능선을 바라본다.
09:25 계명산 산행들머리인 마즈막재 충주호 종댕이길 제1주차장
마즈막재를 충주 사람들은 ‘마지막재’라고도 부른다.
과거 남산 아래에는 사형집행장이 있어 인근 제천, 단양 등지의 죄수들이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남산으로 올 때
이 고개는 고향을 바라볼 수 있는 마지막 장소였다.
또한 이 고개를 넘으면 생이 끝나기에 이 고개는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컸다.
마즈막재 충주호 종댕이길 제1주차장내의 무공수훈자공적비(무곡수훈자회 충주시지회)
09:38 주차후 계명산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마즈막재-대몽항쟁전승기념탑-정상 등정후 마즈막재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계획한다.
09:40 마을버스 승강장, 정자와 체육시설이 있는 산행들머리
계명산 등산로 안내도
1구간(2.3km)은 마즈막재-돌무더기-정상 , 1시간 10분으로 표시하고 있으나 실제 2시간 10분이 소요되었다.
대몽(對蒙)항쟁전승기념탑 안내도
들머리에서 대몽항쟁전승기념탑으로 오르는 야자매트가 깔린 넓은 계단
09:45 대몽항쟁전승기념탑
이 기념탑은 고려 시대 충주산성에서 몽골군과 싸워 승전한 김윤후 장군과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해 2003년 건립했다.
기념탑은 산성의 성벽을 상징하는 화강암으로 조성했고, 상단부에는 승전 연도인 1253을 동판에 새겨 부착했다.
탑신은 5인의 군인상과 충주 백성의 대몽항쟁 모습을 묘사했으며
부조벽에는 70여 일간 충주 백성이 어떻게 결사 항쟁해 승리했는지를 기록해 호국정신을 함양하고 있다.
충주는 1231년 12월 몽고군의 충주성 침략부터 시작해 1258년(고종 45) 10월 박달현 전투까지 27년 동안 9차례 전투를 벌여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1253년 몽고군이 고구려 충주산성을 공격할 때 방호별감 김윤후 장군은 관노의 부적(簿籍)을 불에 태우며
“공을 세우는 자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벼슬을 주겠다”며 독려했고, 70여 일 동안 몽고군과 맞서 싸워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기념탑 꼭대기의 ‘1253’이란 숫자가 새겨진 이유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끊이지 않은 외세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나라를 지키며 민족의 자주성과 전통을 지켜온 민족이다.
13세기 몽고제국의 집요한 침략전쟁에 대하여 고려 사람들이 치열한 항전을 벌였을 때 이곳 충주는 가장 대표적인 싸움터였다.
1231년부터 약 30년 동안 역사 기록에 남겨진 것만 아홉 번의 커다란 싸움이 이곳 충주에서 충주 사람들에 의하여 처러졌다.
충주성, 충주산성, 금당협, 다인철소, 대원령, 월악산성, 박달재 등은 당시의 전투지역으로 기록에 남겨진 곳들이다.
이러한 치열한 항전이 가능했던 것은 충주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함께 이 지역 사람들의 투철한 자주 민족의식과 애향정신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8백년전 이 땅의 선조들이 치렀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고 나라와 향토를 사랑했던 위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충주 시민들의 뜻을 모아 이 탑을 세웠다.
09:49 대몽항쟁전승기념탑을 의미있게 둘러보고 나서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야생화 '엉겅퀴'
초입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인 경사길이다.
10:12 지도상의 너덜지대 돌무지에 쌓아 올린 돌탑군을 지난다.
10:20 대몽항쟁전승기념탑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30여분 동안 오른후 능선에 도착한다.
10:22 데크계단의 시작지점이다.
10:33 계명산 119 신고안내 제1지점에 설치되어 있는 119 구급함
이 지점부터 제1전망대(계명산자연휴양림 갈림길)까지 다시 오르막길이다.
10:47 계명산 자연휴양림 하산방향인 전망대
전망대의 정상 1.4km, 계명산 휴양림 1.4km, 마즈막재 0.9km 지점 이정표
마즈막재에서 1시간 소요
전망대에서 바라 보이는 충주호
계명산 119 신고안내 제2지점 가기 전 조망되는 충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