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의 모래🍀
-박은지-
1년 중 9개월은 너무 추운 이곳에도
여름이 찾아왔다
긴 옷을 벗는 일은 쑥스러웠지만
팔다리는 볕을 좋아했다
검게 변신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여름이면 짝꿍과 바다에 갔다
작은 마을의 경계에는 모래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하얗고 고운 모래사장
모래사장 저 멀리엔 표정을 알 수 없는 아이들이
팔다리를 볕에 내놓고 있었다
짝꿍은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까마득한 미래에서도 우리는 부서지고 있는 거냐고 묻지 못했다
바닷물에 몸을 적시고
알알이 부서진 미래를 모아 성을 쌓았다
검은 파도는 금세 성을 집어삼켰다
성을 다시 쌓고 마을을 만들면 검은 파도는
우리의 발까지 집어삼켰다
또다시 짝꿍은 그을린 팔다리로 조개껍데기를 주워 성벽을 장식했다
또다시 무너질 성을 생각했다
부서진 미래가 모두 바다로 쓸려나가버리면 어떡할까 초조했다
그러면 짝꿍은 자기 미래를 나눠주겠노라며
두 손 가득 모래를 들어 올렸다
함께 미래를 꿈꾸면 그 미래는 더 커질까 아니면 더 작아질까
알 수 없었지만
그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미래를 다 쓰면 너의 미래를 가져다 살게
다시 성을 쌓아 올렸다
아직 가보지 못한 먼 밭의 검은 흙에선 열매가 익어가고 있었다
<녹색평론> 2018년 9-10월호
첫댓글 짜꿍이라는 단어가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