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나 가족에게 당신을 몇 단어만으로 요약해달라고 부탁해 보세요. 그들이 말한
내용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드나요? 그들이 당신을 족집게처럼 묘사해서 기분이
좋은가요? 아니면 어쩐지... 축소된 기분인가요? 어떻게 이렇게 가까운 사람마저 헛다리를
짚고 당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지 의아하지는 않나요?
이 마지막 생각은 자주 인용되는 장 폴 사르트르의 격언 "타인은 지옥이다"에서 잘
드러납니다.
각각의 인간은 놀라울 만큼 복잡한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환상,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비밀, 깊이 묻어둔 두려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 복잡성이 있죠.
높은 탑 안의 죄수처럼 우리는 자기 마음에 홀로 갇혀 있으며 동시에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자기 삶의 주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죠.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관찰하고 듣고
판단합니다. 당신이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거기 있던 사람은 모두 당신에게서 드러나는
정보를 토대로 판단을 내립니다. 그들에게 당신은 객체인 셈이죠. 그들은 순식간에 당신을
축소합니다. 당신에게 딱지를 붙여 치워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들에게 당신은 '웃긴 사람'이나
'책벌레', '간섭쟁이', '따분한 사람', '뚱보', '낯가림쟁이'가 됩니다. 타인의 판단이 가하는
무게가 피부로 느껴지고, 당신은 기분이 상합니다.
당신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가까운 사람들조차 당신 인격의 복잡성 전체를 속속들이
이해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당신은 단순화 되어 상자에 가지런히 정리될 뿐이죠. 소중하고
내밀한 자아를 알아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의 부당함에 분노하며
이렇게 외치고 싶어집니다. "난 고작 그 정도가 아니라고!"
더 큰 문제는 우리가 남들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타인에게
객체화된 우리는 그로 인해 수치심이나 모욕을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대로 갚아주려 합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타인과 그들의 복잡성을 축소하죠.
다른 이들의 현실과 다양성, 중요성을 깎아냅니다. 분개한 주체인 우리는 타인의 비판으로
상한 마음을 다스리려고 타인을 객체화합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의 입을 막아 자신의
자존심을 달래는 거죠. 이렇게 해서 우리는 자신을 다시 영웅의 자리에 세웁니다.
따라서 "타인은 지옥"인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인간다움을 빼앗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시선 탓에 우리는 자신이 초라하고 하찮을 뿐 아니라 얄팍하고 시시하며 따분하다고
느낍니다. "난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꾹 눌러 삼킵니다.
그러지 않으면 막돼먹은 사람으로 비치게 될 뿐이니까요.
- 조니 톰슨 저, 최다인 역, ‘필로소피 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