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대학생의 첫 여름, 나는 해수욕장 인명구조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그해 여름 태풍은 여자가 아니고 남자였다. 남자답게 태풍은 너무나 짧고 굵게 지나갔다.
그해 여름이 여자 아닌 남자 태풍이 지나간 것에 대해, 40 년도 넘게 지난 요즘에 와서야 묘한 기시감 같은 걸 생각하고 있다. 그해 여름은 반드시 남자가 지나갔을 것 같은.
그해 여름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일들과 이상한 죽음이 벌어졌다. 여름에는 구로공단 공순이 한명이 데모 하다 신민당사 2층에서 떨어져 죽었고, 개학을 하고 조금 후, 그 당시 대학생 들은 꼭가야 하는 병영집체 훈련을 가기 위해, 전날 마치 군대에 죽으러 가는 것 마냥 비장하게 떠들며 술 처먹고 꼬꾸라져 잠이 들었다가,
교련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가 안개 속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교문 앞에는 커다란 탱크와 함께 군인들이 총을 들고 서 있었다. 나는 병영훈련을 가는 우리를 잡으러 온 사람들이라 착각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빨리 집에 가 새끼들아!"
저녁이 되어서야 우리의 위대한 대통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심복에게 술 처먹다가 총에 맞았다는. 내가 겨우 생각해냈던 것은, 총으로 이긴 자는 총으로 망한다는 것 뿐. 학교는 바로 휴학을 했고, 나는 다음에 봄까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놀다가 지쳐 군대에 가고 말았다.
군대에서 사회정화를 시킨다고 끌려 온 수 많은 사람들을 목격했다. 내가 그 당시 보기에는 사회에 피해를 준 사람이기에는 너무나 착하게만 보였다.
더 이상한 죽음과 사건은 그 해 여름, 내가 일했던 해수욕장에서 였다.
"사람 살려! 사람이 죽었어요!"
망루에서 난 바다로 급히 뛰어 들었다. 죽은 것은 그였다. 전날, 밤새도록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본 양주를 같이 마셨던. 그리고 그의 아름다운 애인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어쩌면 그해 여름 바닷가에서의 멍청한 그의 죽음 보다 나는, 그의 애인이었던 아름다운 비키니 그녀의 몸매에 더 관심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가 장군의 아들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가 밤새도록 떠들어 댔던 이야기는 나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장군이었고 그는 미국에 유학을 다녀왔고, 그녀의 애인은 모델이라는 이야기. 밤새도록 그가 떠들었던 이야기는 허공으로 날리며 그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그녀. 그녀가 입었던 하얀 비키니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가 죽고 양복장이 수사관과 군인들이 백사장을 돌아다니며 설치다가, 드디어 같이 술을 마셨다는 죄명(?)으로 난 조사를 받아야 했다.
"왜 같이 술 마셨어?"
"먹으라 하니 먹었죠"
그녀는 내 옆에서 울고 있었다. 난 다만 그녀가 불쌍할 뿐이었다. 죽은 귀공자 그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혼란한 사춘기를 갖 지나고 반항심 많았던 나는 급기야는 수사관들에게 대들었다.
"이 새끼, 순전히 꼴통이네"
수사관들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건물을 나오고, 그녀와 난 작별인사를 했다. 태풍이 지난 여름 하늘의 태양은 너무나 뜨거웠다.
태양은 하얀 원피스를 입고 양산을 쓰고 가는 그녀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난 돌아서서 그녀를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그해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이 어렴풋하지만, 내가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그해 여름의 태풍의 이름은 남자였단 것이다. 그것만이 혼란스런 시절에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단 한 가지였고.
그해 여름의 일들과 그의 죽음과 하얀 비키니 그녀, 그리고 이후 벌어졌던 수 많은 죽음들,
남자였던 태풍과 함께 난 글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단편 소설 '그해 여름' 의 시작은 이렇다.
"미스터 어빙이 물러가고, 그해 여름의 태풍은 여자가 아니고 남자였다. 태양은 너무나 뜨거웠다."
그렇게 난, 단 한권의 소설책을 낸 삼류작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