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요약)
이정우의 「야뢰 이돈화의 ‘신인철학(新人哲學·1930)’, 동학에서 태어난 ‘우리의 에티카’」
1. 개요
이돈화(야뢰, 1884~1950)는 동학사상 계승자이자 사상지 『개벽』, 『신인간』 창간자.
『신인철학』(1930)은 현대 한국 철학 최초의 본격 철학서.
스피노자의 『에티카』 형식을 따르지만 목적론 중심, 내용은 상반.
2. 『신인철학』의 구성과 사유 방식
1부: 우주론 → 스피노자의 『에티카』 1부 대응. ‘한울’ 개념 중심의 형이상학 전개.
2부: 인생론 →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
3부: 사회편 → 실천철학 전개.
4부: 개벽사상 → 동학 고유 개념 해석.
3. 한울형이상학 vs 스피노자의 형이상학
스피노자: 반목적론적, 결정론 기반, 표현의 형이상학.
야뢰: 목적론적, 한울 중심, 동학+베르그송+헤겔 영향.
결과적으로 야뢰 철학은 정신형이상학의 한국적 원형.
4. 한울 개념 해명
한울 = 큰 우리(大我), 우주 전체, 개별자는 작은 우리(小我).
한울과 개별자는 통하는 관계이며, 범신론(萬有神論)에 기반.
5. 한울의 두 층위: 양적 한울 vs 질적 한울
양적 한울 = 한울 본체론: 우주 전체, 자존적·무한·유일·필연·창조적 존재.
질적 한울 = 한울 실재론: 지기(至氣)를 근거로 유심론/유물론 통합.
6. 한울 본체론
한울의 특성:
1. 자존성: 타자 없음, 절대 자존.
2. 무한성: 시간 초월.
3. 유일성: 전체로서 하나뿐.
4. 필연성: 자기 원인으로 존재.
5. 창조성: 무위이화(자율적 창조).
진화 개념 도입:
베르그송의 생명의 충동(élan vital) 수용.
동학의 체용 개념과 진화론 결합.
부분보다 전체(한울) 선행: 존재는 장(場) 속에서만 가능.
*어떤 장(場)도 미리 존재하지 않는 허공에서 갑자기 개별자가 나타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7. 한울 실재론: 지기 일원론
비판: 유물론(마르크스주의), 유심론(전통철학) 양극단.
통합 원리: 물질과 정신은 한울(지기)의 두 현상.
지기(至氣):
정기(精氣): 물질적 측면, 에너지.
신기(神氣): 정신적 측면, 의식.
한울은 생성적으로 유속하며, 생명의 본원적 충동으로 작동.
8. 인식 방법: 직각(直覺)
감각과 이성 넘어서는 직관적 인식.
수운의 “만사지(萬事知)의 지”와 연결.
한울/지기의 내면적 파악과 감응 강조.
9. 결론: 신인철학의 의의
9-1. 철학적 의의
정신형이상학의 원점:
20세기 동북아 철학(한국·일본·중국)의 목적론적 사유 경향 선구.
헤겔 철학의 동북아 변형, ‘정신형이상학’의 기틀.
동학의 철학적 재해석:
수운 최제우의 ‘무위이화’를 범신론적·목적론적 체계로 해명.
한울: 큰 우리, 무궁한 조화, 자율적 창조의 실재.
9-2. 결론
『신인철학』은 수운의 무위이화를 철학적으로 해명.
한울은 우주 전체이자 생명의 근원.
인간은 그 일부인 작은 한울.
이는 스피노자적 신-자연이자, 베르그송적 생명으로서의 전체.
야뢰는 동학+근대 철학(스피노자·베르그송·헤겔)의 종합을 시도.
------------------------------------------------
야뢰의 ‘신인철학’, 동학에서 태어난 ‘우리의 에티카’ https://share.google/X9bdTXTL6g4Kmw9bn
야뢰의 ‘신인철학’, 동학에서 태어난 ‘우리의 에티카’ [.txt]
한국 철학의 한 세기 (2) 이돈화의 한울형이상학
현대 한국 철학 최초의 본격 철학서 ‘신인철학’
스피노자 ‘에티카’ 연상시키지만 내용은 상반돼
‘한울’이라는 실재를 중심에 둔 목적론적 사유
‘무위이화’를 철학 언어로 풀어낸 범신론적 체계
최제우의 뜻을 이어받아 동학의 세계를 열어가고자 한 야뢰 이돈화.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이돈화(1884~1950)는 3·1 운동의 기(氣)를 온축해 1920년에 종합 사상지 ‘개벽’을 창간해 당대의 사상과 문화를 선도해 나갔다. 1926년 ‘개벽’이 강제 폐간당하자 그해에 ‘신인간’을 창간해 ‘개벽’의 활동을 이어갔다. 이돈화는 이런 활동들을 통해 쌓은 사유의 저력을 한권의 철학서에 응결해 발간하기에 이른다. ‘신인철학’(新人哲學·1930)이 그것이다. 이 저작은 현대 한국 철학 최초의 본격적인 철학서로 간주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저작에서 한국인이 한글로써 현대의 맥락에서 이룩한 최초의 철학 체계를 접할 수 있다.
‘신인철학’은 전체적으로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본받아 저술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에티카’로 불릴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1부 우주론은 ‘에티카’ 1부에 대응하며, 스피노자가 1권에서 신을 논한 것과 마찬가지로 야뢰 역시 동학에서의 형이상학적 실재인 한울에 대해 논하고 있다. 야뢰는 스피노자와 베르그송의 논리에 의존해 한울 개념을 해명한다. 2부 인생론은 ‘에티카’ 2, 3부에 해당하며 인간을 다룬다. 스피노자가 3부 전체를 할애한 감정론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스피노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간존재론이 펼쳐진다. 3부 사회편은 ‘에티카’의 4, 5부에 해당하며, 야뢰의 실천철학이 전개된다. 4부 개벽사상은 일종의 부록으로서 동학 고유의 개념인 개벽을 여러 각도에서 해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신인철학’은 여러모로 ‘에티카’를 연상시키지만, 사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오히려 정확히 상반된다. 스피노자는 ‘에티카’ 1부의 부록에서 서양 고중세를 줄곧 관류해 온 목적론적 세계관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리고 서구 근세 철학 특유의 강고한 결정론에 입각해 표현의 형이상학을 펼쳤다. 반면 야뢰의 한울의 형이상학(이하 ‘한울형이상학’)은 철저히 목적론적 구도에서 전개된다. 스피노자 형이상학과 더불어 야뢰의 또 하나의 핵심 준거점은 베르그송의 진화론이거니와, 여기에서 시간이라는 원리가 등장하고 그것이 특정한 방향성의 근거로서 파악될 때 목적론이 성립한다. 그리고 야뢰에게서 이 방향성은 물론 한울을 향하는 방향성이다. 야뢰는 베르그송을 인용하지만 사실 그의 베르그송은 헤겔화된 베르그송이다. 보다 넓은 시각에서 볼 때, 20세기 동북아 철학(야뢰 이래의 한국 철학, 니시다 기타로 이래의 일본 철학, 슝스리 이래의 중국 철학)을 관류하는 굵직한 하나의 경향이 바로 ‘정신’을 중심으로 한 목적론적 사유이다. 우리는 헤겔 철학의 동북아적 변형태인 이 사유를 ‘정신형이상학’이라 부를 수 있다. 야뢰의 신인철학은 전형적인 정신형이상학이고, 이후로도 이어질 이런 사유 경향의 원점을 형성한다.
한울형이상학의 첫번째 원리는 물론 한울이며, 논의는 한울 개념의 해명에서 출발한다. 이는 곧 “무궁한 그 이치를 무궁히 살펴내면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 아닌가”라 했던 수운의 노래를 철학적으로 해명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한울이란 다름 아니라 “무궁한 울”인 것이다.
우선 해명되어야 할 것은 한울의 개념이다. 야뢰는 한울 개념에서 ‘한’을 ‘크다’라는 뜻으로, ‘울’을 ‘우리’로 풀이한다. 그래서 한울은 큰 우리(‘大我’)이다. 한울은 큰 우리로서의 우주 전체를 뜻한다. 그래서 한울은 ‘하나님’이라는 서양의 인격신과 대비된다. 한울에 비해 개개인은 작은 우리(‘小我’)이다.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 아닌가”라 했으니, 대아와 소아는 근본에서 통한다. 그래서 야뢰는 “소아는 대아에 융합(해 그것과) 일치될 수 있다”고 말한다. 동학의 이런 형이상학을 야뢰는 ‘범신론’, ‘만유신론’(萬有神論)으로 특징짓는다. 요컨대 한울은 큰 우리로서의 세계 전체이며, 각각의 우리는 이 큰 우리와 근원에서 통하는 작은 우리이다. 야뢰는 이렇게 동학의 형이상학, 한울형이상학을 범신론적으로 개념화했다.
야뢰는 이제 이 한울 개념을 ‘양적 한울’과 ‘질적 한울’로 나누어 풀이해 나간다. 야뢰가 사용하는 ‘양적’, ‘질적’이라는 용어는 다소 아리송한 면이 있으며, 구분의 근거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양적 한울에 대한 설명에서는 우주 본체로서의 한울이 그리고 질적 한울에 대한 설명에서는 지기 일원 실재론이 논의되고 있으므로, 각각을 ‘한울 본체론’과 ‘한울 실재론’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울 본체론은 스피노자와 베르그송을 활용해 우주 본체로서의 한울을 설명하고 있으며, 한울 실재론은 유물론과 유심론에 대한 비판 위에서 일원적 실재인 지기(至氣)로서의 한울이 설명되고 있다.
한울 본체론에서 야뢰는 우선 스피노자의 논리에 입각해 한울의 근본 속성을 해명한다. (여기에서 속성은 스피노자의 ‘속성’이 아니라 ‘특성’에 해당한다. 야뢰에게는 스피노자적 ‘속성’ 개념은 없다.) 첫째, 한울은 ‘자존적’(自存的)이다. 한울은 그 바깥에 타자를 허하지 않는 실재이다. 한울은 절대 자존적인 전체이다. 이 점은 기독교적 신과 한울의 근본 차이이다. 둘째, 한울은 ‘무한’하다. “무궁한 이 울”이라 했으니, 한울은 전체이기에 무한하다. 무궁은 시간적으로 끝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다는 뜻이다. 셋째, 자존적이고 무한하기에 한울은 당연히 ‘유일’하다. 넷째, 한울은 ‘필연적’이다. 한울은 스스로가 스스로의 존재근거이다. 그것은 다른 원인을 가지지 않는 자기원인으로서, 필연적으로 존재한다(존재함을 자신의 본성으로 내포한다). 한울이 이런 존재이기에, 수운은 그것을 일컬어 “무궁무궁만사지”(無窮無窮萬事知), “무궁조화”(無窮造化), “무궁대도대덕”(無窮大道大德)이라 했던 것이다. 다섯째, 한울은 창조적이다. 무궁조화에서의 ‘조화’는 곧 수운이 ‘무위이화’(無爲而化)라 했던 것이요, 야뢰는 이를 ‘자율적 창조’로 해석한다.(여기에서 ‘자율적’은 곧 ‘내재적’을 뜻하며, 기독교적 뉘앙스에서의 창조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한울은 무위로써 자율적으로 무궁히 창조한다.
한울의 자율적 창조는 그 ‘진화’(進化)와 관련된다. 야뢰는 한울이 스피노자적인 내재적 본체일 뿐 아니라 베르그송적인 진화하는 본체임을 역설한다. 야뢰는 진화론을 부인하느니 차라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부인해야 한다고까지 하면서 열렬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동학의 관점에서 볼 때 진화론은 “우주적 일대 진리”라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그는 불교와 성리학을 통해 이어져 온 ‘체용’(體用)의 논리를 동학과 진화론에 적용한다. 진화론과 동학은 하나의 진리를 이루며, 진화론이 그 작용이라면 동학은 그 본체라고 본 것이다.
과학적 진화론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데이터에 따라 진화의 과정을 설명한다. 야뢰는 한울 본체론에서의 진화론은 방향을 반대로 해서 한울이라는 전체로부터 부분들을 이해함을 역설한다. 사회(넓은 의미)는 개별자에 앞선다. 개별자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장(場)도 미리 존재하지 않는 허공에서 갑자기 개별자가 나타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개별자도 그것에 앞서 있는 사회/장을 전제한다. 아메바라는 것이 존재하려면/생겨나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장이 우선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울은 바로 궁극의 전체라고 할 수 있다. “우주는 외형으로 볼 때에는 천차만별의 각이(各異)한 특징을 가졌다 할 수 있으나, 내용으로 볼 때에는 전 우주의 방전(磅磚)한 일원적 세력(‘至氣’)이 있어 천지 미생(未生) 이전의 무하유(無何有)의 향(鄕)으로부터 흘러내려 백천억 무량수(無量數)의 겁회(劫灰)를 지나 금일의 어마어마한 조직이 있는 우주를 보게 되었다 할 수 있다.” 야뢰는 한울 본체론에 있어 ‘수운주의 진화설’을 이렇게 묘사한다. 만물은 이 한울의 표현이라는 본체적 진리하에서 그 구체적인 진화를 겪어나가는 것이다.
한울 본체론이 주로 기독교적 초월신을 겨냥해 ‘무위이화’를 강조하는 형이상학이라면, 한울 실재론은 유물론과 유심론을 공히 치우친 형이상학으로서 비판하고 보다 근본적인 원리로써 양자를 통일하려는 형이상학이다. 야뢰가 염두에 두고 있는 유물론은 주로 마르크스주의에서 천명하는 형태의 유물론이며, 유심론의 경우 특칭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통 철학들(유불도)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전통 철학은 현대를 담지하는 데에 한계가 있고, 마르크스주의는 당대의 핵심 사상이지만 유물(唯物)에 치우친 사상이라고 생각했다.
유물, 유심을 넘어 한울 실재론을 제시하는 맥락에서도 야뢰는 스피노자의 구도를 활용해 물리 현상과 정신 현상은 근본 실재의 나타남(현상, 現象)임을 강조한다. 한울형이상학은 곧 물(物)과 심(心)의 두 측면으로 나타나는 궁극 실재를 드러내는 형이상학인 ‘지기 일원론’이다. ‘지’(至)는 지극함을 뜻하며, ‘기’(氣)는 정기와 신기로 표현되는 궁극 실재를 뜻한다. 정기(精氣)는 지기의 ‘물’의 측면으로서 우주의 근본 에너지로 이해될 수 있고, 신기(神氣)는 지기의 ‘심’의 측면으로서 정신적 활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기는 ‘물’로서는 근본 에너지로서 그리고 ‘심’으로서는 정신적 활동으로서 표현되는 궁극 실재이며, 이 실재가 다름 아닌 한울이다.
아울러 여기에서도 또한 한울을 구조론으로만이 아니라 (베르그송적 뉘앙스에서) 생성론적으로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울이란 “부단히 창조하여 유속(流續)하는 지기의 생명력이 일체의 의식현상과 생명현상의 근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 생명의 원류에는 다만 유일무이한 본원적 충동력 즉 생명의 충동력(élan vital)이 있을 뿐이다.” 한울/지기의 이 생명력은 ‘물’의 차원에서 즉 감각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심’의 차원에서 즉 지능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감각과 지능을 넘어서는 ‘직각’(直覺, 베르그송의 ‘직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한울, 지기)을 외측으로부터 더듬지 아니하고 직접 내면으로부터 파악하고 감응하고 융화하는” 인식이다. 야뢰는 이 직각을 수운이 말한 “만사지(萬事知)의 지(知)”와 동일시한다.
야뢰가 전개한 한울형이상학은 결국 수운이 말한 ‘무위이화’를 철학적으로 해명하고자 한 사유체계였다. 한울은 만물의 근원인 위대한 우주 전체, 모든 부분들이 그것의 품에서 생성해 가는 전체이다. 그리고 한울은 큰 우리이고 우리는 작은 한울이다. 한울은 스피노자적 뉘앙스에서의 신-자연이다. 또, 한울은 베르그송적 뉘앙스에서의 생명이기도 하다. 한울은 무궁한 조화이고 자율적인(내재적인) 창조이다. ‘물’도 아니고 ‘심’도 아닌, 이 양자로써 스스로를 현시하는 ‘지기’로서의 한울은 창조적으로 진화해 간다. 야뢰는 이러한 한울형이상학으로써 수운의 ‘무위이화’를 해명한 것이다.
철학자 이정우 l 서울대학교에서 미셸 푸코로 학위를 받았다. 대안공간 철학아카데미에서 시민 강좌를 열었고, 지금은 소운서원에서 후학 양성과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세계철학사’ 4부작(2011~2024)을 펴냈고, 현재는 ‘소운 철학 대계’를 집필하고 있다.
철학자 이정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