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12월 국내에서 개봉돼 보라는 주위의 권고에도 바빠서 챙겨 보지 못한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Persian Lessons, 2020)이 넷플릭스에 올라와 봤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영화 가운데 이 작품만큼 감정 이입이 제대로 된 작품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항상 트럭에서 영문을 모른 채 내려진 유대인들이 어떻게 저렇게 순순히 총부리 앞에 서게 될까, 왜 채석장의 그들은 곡괭이를 나치 병사들에게 휘두르기만 하면 '적어도 한 놈은 보내고' 죽을 수 있는데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면서는 '나라면 어떻게'를 계속 되뇌이며 보게 됐다.
독일과 러시아, 벨라루스가 함께 만들었다. 영화 '피아니스트'를 연상케 한다는 약점은 있지만 키이우에서 태어난 우크라이나와 캐나다계 미국인 바딤 피얼먼 감독의 연출력이 상당하다. 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가 우연히 손에 들어온 페르시아어 책 때문에 거짓말을 밥먹듯 하게 되는 유대인 질을 설득력있게 그려냈고, 그를 동정하고 사랑하는 나치 대위 코흐 역을 설득력있게 그려낸 라르스 아이딩어의 연기 조화가 빼어나다.
독일의 전설적인 각본가 볼프강 콜하세가 실제 얘기를 바탕으로 쓴 단편 '언어의 발명'(Erfindung einer Sprache)을 원작으로 127분으로 스크린에 옮겼다. 단편이라 그런지, 아니면 우화 같은 설정 덕분인지 시공간에 대한 설명이 없다시피하다. 대략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기 전 1942년 초에서 연합군에 밀려 폴란드로 유대인들을 이송해야 하는 혼란스러움과 당혹감이 겹친 겨울까지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된다.
나치의 손아귀를 피해 달아나다 붙잡힌 질은 트럭 안에서 페르시아어 책 '페르시아 신화'를 손에 넣게 된다. 배를 곯은 한 남자가 샌드위치 반쪽을 주면 책을 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너무 불쌍해 샌드위치 반쪽을 건네고 읽을 수도 없어 아무 짝에도 쓸모 없을 책을 품 안에 넣는다.
그런데 트럭에서 내려진 뒤 독일군 총부리 앞에 서게 되자 그 책은 어마어마한 도움이 된다. 코흐 대위가 페르시아인을 찾아보라고 한 것을 기억해낸 병사가 살려주게 돼 질은 주방에서 일하다 밤에는 코흐에게 페르시아어 수업을 하게 된다. 아는 페르시아어 단어라고는 트럭 안의 남자가 가르쳐준 '바바'(아빠)뿐이어서 그는 단어를 새로 창조하고 이를 잊지 않기 위해 계속 암송한다.
하루는 헷갈려 빵이라 했던 단어 '라지'를 나무라고 풀었다가 코흐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코흐는 늘 자신을 유대인이라 믿는 막스(요나스 나이) 병장에게 채석장 일을 시키라며 심하게 다루라고 주문한다. 실제 페르시아어의 빵은 نان이라고 하고, 나무는 درخت라고 한다. 이란에서는 각각 난과 대래흐트라고 읽는다.
어찌어찌 질이 진심으로 자신을 도우려 했다고 믿게 된 코흐는 용서를 빌며 새로 들어오는 유대인들과 죽은 유대인, 이송된 유대인 명부를 작성하는 일을 맡긴다. 단어를 창작하는 데 한계에 봉착했던 질은 유대인 이름 등을 활용해 일정한 단어 창작 규칙을 만든다. 절박한 상황에 단어를 창조하며 궁색하게 목숨을 보전하게 된 그의 이 능력은 수용소가 해방된 뒤 유대인 역사에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된다.
관객들은 아돌프 히틀러의 커다란 거짓말로 만들어진 수용소, 이 거대한 거짓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페르시아어 단어를 거짓으로 만들어내는 질의 작은 거짓말 따위를 응징하겠다고 달려드는 막스 같은 쓰레기들이 우스워 보일 수 밖에 없다. 페르시아계 유대인이 수용소에 들어와 질의 거짓이 들통날 판에 그가 코흐에게 얻어온 통조림 등으로 연명해 온 말 못하는 동생이 살 수 있다는 이탈리아인 마르코 형제의 형이 그 페르시아계 유대인을 살해하고 총알을 맞는다. 말 못하는 동생과 단어를 지어내는 질의 유대를 조금 더 그려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긴 했다.
'두려워하는 일도 지긋지긋하다'며 질이 자신의 이름을 이송자 명단에 넣어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는 데 코흐가 달려와 구해주는 장면도 꽤 인상적이다.
나름 인간적이고, 늘 테헤란의 동생에게로 가 독일 식당을 열어 이 지긋지긋한 전쟁에서 달아나고 싶어했던 코흐가 테헤란 공항에서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페르시아어 실력을 총동원, 벨기에 여권으로 입국 심사를 통과하려 했으나 독일인임이 드러나 체포되는 장면도 상당히 우화적이었다.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10분의 기립박수를 이끌어 냈는데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에는 벨라루스 작품으로 출품됐다는 이유로 자격 미달 판정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난 숲을 묘사하는 방식이 좋았다. 숲은 스멀스멀한 폭력과 억압을 상징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장치다. 감독이 의도했는지 모르겠으나 첫 장면에서도 숲을 나와 달아나는 질의 모습이 그려지고 마지막에도 다시 나온다. 연합군 심문관이 '당신네 수용소를 거쳐간 유대인 숫자를 아느냐'고 묻는 것이 내레이션으로 나온다. 나중에 코흐가 질을 풀어주며 헤어지는 장면에도 저멀리 숲이 보인다.
이 영화가 좋았던 점은 거대한 나치의 거짓말에 속아 전쟁에 나온 나치나 독일군 병사들이 모두 제각각 이득 셈법을 하고(요리사 경력이 있는 코흐 대위는 장군들의 끼니 걱정을 더는 데만 관심있고 유대인들은 늘 멀건 수프뿐이었다), 하루하루의 즐거움을 찾는 데만 관심 있는 것처럼 그려지는 점도 좋았다. 갇힌 유대인이나 가둔 독일군을 똑같이 볼 수 없는 일이지만, 독일군을 그저 고단한 하루를 살아가다 유대인 목숨 뺏는 일, 사령관 성기 크기 농담등으로 낄낄거리는 군상으로 그린 점도 전쟁의 일상성과 평상성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최전선을 그린 영화가 아니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이브구에니 갈페린과 사차 갈페린이 키이우 오케스트라와 함께 만든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도 상당히 좋다. 아 참고로, 유튜브에 성인 인증만 하면 전편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