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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 이 시집
“문명의 신비를 품은 신성한 언어”,
‘경’의 시학
- 나해철 모어母語 시집 『엄니 옴마 어무니 말씀』(2025)
이규배
서구에서는 시를 논하는 시, 철학이나 사상을 논하는 시를 메타-시라고 한다. 서사 장르보다 서정, 또는 시 장르가 서구보다 일찍이 앞서 온 동아시아권에서는 이를 논시論詩라고 불러왔다.
나해철 시인의 모어母語 시집 『엄니 옴마 어무니 말씀』에 수록된 「동굴언어」는 논시이다.
우리말은 인류 초기 때부터 사용해 온 언어이다
석기시대의 언어이며
그만큼 영성스런 언어이다
한글은 말의 표기를 위해 후에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한글은 발음만을 위한 목적의 단순한 소리글자가 아니다
단음절부터가 삶의 깊은 뜻과 철학을 품은 뜻글자이기도 하다
(…중략…)
‘있다’라는 단어 하나에도 한국 민족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인내천人乃天 사상과 같은 존재론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말과 우리글 한글은 문명의 신비를 품은 신성한 언어이다
- 「동굴언어」 부분(90쪽, 91쪽)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슬기슬기사람)가 현대인의 조상이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5만 년 전 이후 호모사피엔스(슬기사람)가 자취를 감추고 나타난 사람이 바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라고 하는데, 외모나 뇌의 용적이 현대인과 같은 수준이라고 한다. 이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아래턱뼈가 평안남도 덕천 승리산 동굴에서 발견됐다. 이 사람을 ‘승리산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승리산 사람’은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으로서, 현재 한반도에 사는 우리와 여러 면에서, 특히 구강구조가 같은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공주 석장리, 단양 금굴, 상원 검은모루동굴 등의 유적은 70만 년 전부터 60만 년 전 사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또는 100만 년 전의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한반도에 사람과 원숭이의 중간단계에서부터 이보다 진화한 호모사피엔스가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는 가설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한다. 이뿐만 아니고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인 ‘승리산 사람’이 한반도에 거주했음이 고고학적 사실로 입증되니까, “우리말은 인류 초기 때부터 사용해 온 언어”이고 “석기시대의 언어”라는 나해철 시인의 시구는 틀린 말이 아니라 맞는 말이다.
동굴에서 살면서 해와 달, 별과 대화하는 것이 일과였던 시절
모든 말의 시작은 단음의 소리였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는 지금도 ‘우’, ‘어’, ‘워’, ‘웍’ 같은
한 마디 소리로 소통을 한다
석기를 만지며 동굴에서 살 때 처음에는
‘엄마’는 단음절로서
‘엄’이나 ‘옴’ 또는 그 중간 소리로 불렸다
‘아빠’는 ‘빠’였다
- 「동굴언어」 부분(88쪽)
언어의 소리와 의미는 어떠한 유연성도 없는 단지 자의적인 관계일 뿐이라는 소쉬르(페르디낭 드 소쉬르, 1857~1913)의 학설이 언어학의 정설이다. 우리말 ‘엄마’나 ‘아빠’의 의미와 유사한 음성으로서 ‘마마’나 ‘파파’ 등이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것은, 이빨이 없는 아기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엄마’를 ‘엄’이나 ‘마’로, 아빠를 ‘빠’로 발음하는 것은, 입술이 붙었다가 떨어져 나오면서 내는 가장 ‘원시적인 소리’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위의 시에서 “모든 말의 시작은 단음의 소리”였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모든 언어는 단음절에서 다음절로, 통사구조 없는 어휘의 나열에서 문장구조가 발달하는 복잡한 문법화의 과정을 거쳤다는 자연주의적, 진화론적 관점의 언어진화론을 이론적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나해철은 우리말을 “영성스런 언어”, “문명의 신비를 품은 신성한 언어”라고 한다. 그는, 시집 서두의 ‘시인의 ’, 「모어 그리고 시」에서 “인류 최초의 어머니가 소리 내신 말이 우리말이며 그대로 모어입니다.”(17쪽)라고 한다. 나아가 “엄니 옴니 어머니 말씀”을 “북두칠성국자에서 찰랑찰랑 흘러내리는” 신성의, 영성스런 언어라고 한다.
그는 “북히말라야 문명발생론”을 믿으며, 그 지역, 넓게는 “히말라야를 포함한 중앙아시아와 남부 시베리아 그리고 동북아의 북방 문명 루트의 고대 종교”를 샤머니즘으로 보고, 이를 넓은 의미의 “우리 신화 역사 속의 마고와 환인, 환웅, 단군이 활동하던 시간과 장소로 서로 일치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샤머니즘을 넓은 의미의 마고이즘 혹은 환국 단군이즘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14쪽)라고 ‘주장’한다. 그가 ‘시인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옛날 우리 민족의 주류는 대륙의 문명길을 따라서 해 뜨는 쪽으로 옮겨 왔습니다. 그리고 인도 유럽어의 어원일 뿐만 아니라, 동양 언어의 어원이 되는 언어를 발생시킨 지역이 히말라야 지역입니다. 우리 신화에도 지구의 가장 높은 곳 즉 히말라야에 마고신이 마고성을 쌓고서 만물을 창조하고 여러 색깔의 피부를 지닌 인간들과 함께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
『한글 고어사전 실담어 주석』을 읽게 되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방대한 산스크리트 영어 사전을 읽고 연구한 선각자가 일찍이 펴낸 책이었습니다. 참으로 반갑고 통쾌한 사실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우리말 단어와 일치된 산스크리트 단어들이 너무나 많았는데 특히 우리의 옛말과 사투리는 산스크리트어와 완전히 동일했습니다. 그리고 산스크리트어의 단음절들은 그대로 우리의 단음절이었고 이 단음절들이 합해져서 우리말의 복합 음절 단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시인의 말’ 부분(5~6쪽)
위와 같은 주장의 타당성을 말하는 것에 앞서서 나는, 아니 우리는 “그 지역의 히말라야 사람들이 최초로 발생시킨 언어가 산스크리트어이고 옥스퍼드 대학이 펴낸 산스크리트 영어 사전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말이 그 발음과 뜻에서 산스크리트어와 같습니다. 우리의 고어와 고어로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투리에서 그런 점은 더욱 확실해집니다.”(16쪽)라고 강조하는 나해철의 그 지극한 마음씨[, 지심]에 먼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엄마’를 방언으로 ‘엄니’라고 하는데 산스크리트어에서 ‘엄니, 옴니, 움니’로 발음되는 말은 ‘어머니’라는 뜻 외에 “자비를 구하는 사람, 자궁, 생명의 근원”(29쪽) 등을 뜻한다고 한다. 시집 『엄니 옴마 어무니 말씀』에는 한 편의 시마다 우리말과 발음이 유사한 산스크리티어를 비교하고 그 의미를 설명하는 주석이 달려 있다.
맨 처음 수록된 시 「오메」에는 ‘그림 1’에서처럼, ‘오메’, ‘그렇’, ‘가’, ‘아’, ‘니’, ‘엄니, 옴니, 움니’ 등 여섯 개의 주석이 달려 있다.
「오메」 전문을 읽어 보자.
오메
나뭇잎 떨어지는 것 보니께
마음이 그렇다야
나도 가야 할 텐디
아니 가고 있다야
못 가고 있다야
오메
엄니 그런 말씀 마세요
오래오래 사셔야지요
오메
저 뿔건 나뭇잎 떨어지는 것 보니께
그런 생각이 더 든다야
나뭇잎 되어
훨훨 은하수 건너면
칠성님을 만날 텐디야
- 「오메」 전문(28쪽)
「오메」는 문학사적으로는 김영랑의 「오매 단풍들겄네」의 연장선에 있다고 하겠으나, 나해철의 「오메」는 김영랑의 것과 달리, ‘죽음에 대한 종교적 영성靈性 ’의 ‘심경心境 ’을 ‘경敬 ’의 초월적이고 영성적 언어로, 그러나 따뜻하고 익숙한 일상적인 ‘엄니의 언어’로 들려준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높은 지점으로 올라선 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놀라서 내지르는 감탄사 ‘오메’가 산스크리트어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불가사의한,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경이적인”(29쪽) 등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고, 더욱이 ‘엄니’가 “자비를 구하는 사람, 어머니, 자궁, 생명의 근원”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니. 나해철 시인의 ‘주장’을 그저 예사롭게 넘어갈 수 없는 노릇. 표제 시 「엄니 옴마 어무니 말씀」 전문을 한 편 더 읽어 보자.
어머니!
어무니
엄니!라고 부를 때
생명의 근원이시고 생명을 일으키는 모태母胎로서
자비를 구하시는 분이라는 뜻이고요
엄마, 마마.
옴마!라고 부를 땐 신의 부인이시고 여신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닌 분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에미!라고 하실 때는
끝까지 보살피고 헌신한다는 속뜻이 있어요
어머니의 첫 발음인
엄 혹은 옴은
생명의 근원, 자궁, 싹, 생명력을 말합니다
어머니!
모든 것을 한 몸에 지니셨으니
나의 신이고 우리의 여신이십니다
엄니!
우리 사는 세상이 좀 더 평화로웠으면 좋겠어요
전쟁이 없고
가난이 없고
자연 파괴가 멈췄으면 해요
옴니의 자궁 속에서 다시 이 세상이 새로워졌으면 해요
어무니!
우리나라의 정치가 정말 아름다워졌으면 해요
이 땅의 정치가 정의롭게 되고
민족이 하나로 함께 살게 되었으면 해요
민족의 역사를 되살리고
웅혼한 민족정신이 다시 충만해졌으면 해요
- 「엄니 옴마 어무니 말씀」 전문(200~201쪽)
위 시의 ‘어무니, 엄니, 엄마, 마마, 에미, 엄, 옴’ 등 한국어와 이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어휘의 발음과 뜻이 거의 같다는 점은, 우리말 어원과 관련해서 성찰할 바가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 없고, 민족과 민족어의 시원에 대한 사유의 측면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 신화에서 환인의 아들 환웅이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와 신시를 연 환웅족의 기원지가 민족의 영산 백두산白頭山이고, 이 백두산을 우리말로 하면 ‘흰머리산’이며, 고대에는 ‘히머리산’ 또는 ‘히마리산’ 등으로 발음됐을 것이라고 ‘생각’해, ‘희말랴야산’과 발음이 유사하다는 점을 덧붙이자면, 히말라야 지역의 산스크리트어와 한국어에는 어떤 ‘깊은 상관성’이 있다는 ‘설’을 유추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산스크리트어에서 희말리야는 ‘눈’을 뜻하는 ‘hima’와 ‘거처’를 뜻하는 ‘ālaya’가 합성된 말로 ‘눈의 거처/눈이 사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다고 한다. ‘눈’이 흰색이니까, 눈이 쌓인 높은 ‘히마리산’이라고 풀 수 있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파괴와 창조의 신인 ‘시바신’이 거처하는 신성한 산이라고 믿는 ‘히말랴야산’의 상관성을 어떤 식으로든 연계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휘의 발음과 그 의미가 유사하고, 이보다 더 나아가 ‘주어+목적어+서술어’ 등 어순이 유사하다는 점 등을 들어서, 한국어와 산스크리트어는 계통이 같은 언어라고 할 수 있을까. 언어학적 상식에 따르면 이 물음에 바로 ‘아니다’라는 대답이 나온다. 산스크리트어와 한국어는 언어학, 문화학과 관련해 어휘적 차원에서 흥미로운 유사성이 상당 부분 보이지만, 구조적으로 매우 다른, 즉 언어계통이 완전히 다른 어족이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계통에 관한 고전적 분류는, 지금은 고색창연한 설이 되고 말았지만, 한국어가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언어라는 설이다. 핀란드어, 헝가리어 등 우랄어족과 튀르크어, 몽골어, 만주-퉁구스어, 일본어 등 알타이어족을 합쳐서 한국어를 우랄-알타이어족이라고 분류한 학설이 한국어 우랄-알타이어 학설. 그러나 이들 각국의 언어적 유사성은 ‘접촉’에 의한 것이거나 ‘우연’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현대 언어학에서는 대부분 인정하지 않는 낡아빠진, 좀 점잖게 말해서 고색창연한 학설일 뿐이다.
그다음 유력한 학설로 수용된 설이 한국어가 튀르크어, 만주-퉁구스어, 일본어 등과 함께 알타이어에 속한다는 알타이어족 설이다. 그러나 비교가 가능한 공통 어휘가 부족하고 어휘상 뚜렷한 상동성 또한 부족하다는 점에서 현대 언어학계에서는 알타이어족의 실체가 과연 있었던 것인가 하는 데 대해 대체로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한국어는 어떤 어족에 속한다고 봐야 할까?
한국어는 독립된 어족으로서, 계통적으로 그 어떤 다른 언어와도 직접적인 친연성을 찾기 어렵다는 한국어 독립 어족설이 현재 국제언어학계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학설이다. 물론 한국어를 알타이어족, 또는 일본어와의 연관성 등을 언어사적, 통사적 맥락에서 탐색해 내놓은 학술적 성과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 다만 한국어가 그 어떤 다른 언어와도 직접적인 친연성을 찾기 어렵다는 독립 어족이라는 학설과 관련해 대한민국의 고대 문명이 외국에서 들어온 것인가, 아니면 한반도와 만주에서 거주하던 우리 민족의 조상에 의해 창조된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한반도와 만주의 신석기문화를 대표하는 빗살무늬토기(새김무늬질그릇/빛살무늬토기)가 유럽이나 시베리아에서 기원한 것인가, 아니면 토착적 특징을 지닌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동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지난 6월 29일 타계한 한국 고대사 연구의 태두, 윤내현(1939~2025) 교수는 그의 한국 고대사에 관한 방대한 연구를 압축해 280쪽 분량의 단 한 권으로 정리한 『한국 고대사』(만권당, 2021)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한민족의 뿌리, 이른바 ‘원형한국인’은 한반도와 만주의 구석기시대인 “무리사회 말기의 사람들의 후손들이 주류를 이루었”(45쪽)다고 한다. 구석기시대 말기의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승리산 사람’이 유력한 근거이다.
승리산 사람은 아래턱뼈가 크며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반면에 그 너비는 매우 넓다. 이것은 입천장이 넓은 한국인의 특징이 그대로 아래턱뼈에 반영된 것이다. 유전자 분석에 의해서도 한반도와 만주 지역의 슬기슬기사람(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필자 주석)의 체질 요소가 현대 한국인들의 체질에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다. - 윤내현, 『한국 고대사』 부분(45쪽)
그는 한반도와 만주의 마을사회 초기 유적인 여러 채의 집자리 발견을 근거로 “서기전 8,000년에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 거주하던 ‘원형한국인’들은 이미 정착 단계에 들어가 마을을 이루고 살았음을 보여준다.”(46쪽)라고 한다. 그렇다면 빗살(/빛살)무늬토기, 즉 새김무늬질그릇은 유럽이나 시베리아, 즉 외래 문명으로부터 들어온 것인가. 대답은 ‘아니다’이다.
근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한반도-만주 지역의 새김무늬(빗살무늬, 필자 주석)는 시베리아의 빗살무늬와 동일하지 않고, 그것을 질그릇에 새기는 기술도 서로 다른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그릇의 형태도 한반도의 서남부에서는 뾰족밑질그릇이 출토되지만 한반도의 중동부와 청천강 이북의 한반도를 포함한 만주 지역에서는 밑이 편편한 납작밑질그릇만 출토된다. 따라서 그릇의 형태 면에서도 지리적으로 접해 있는 한반도 북부-만주 지역과 시베리아 사이에 공통성이 없다. 신석기문화의 개시 연대도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 이른 시기의 유적이 발굴됨으로써 한반도와 만주 지역이 시베리아보다 훨씬 빠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볼 때 한반도와 만주 지역의 새김무늬질그릇은 토착 특징을 지닌 것임을 알 수 있다.
- 윤내현, 『한국 고대사』 부분(39쪽)
한반도와 만주에 정착해 거주하던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의 원형한국인들은 독자적 언어를 사용하고, 독자적 문명시대를 열어왔던가. 이 글의 목적상 이러한 질문에 대해 상세히 답할 수도 없고, 내 역량으로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천박한 수준의 지식이나마 근거로 삼아 볼 때,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 한반도와 만주에 거주하던 원형한국인들은 독자적 언어를 사용하고, 독자적 문명시대를 열어나갔을 것이라는 설이 나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후기 구석기인 ‘승리산 사람’과 그 후손들이 마을사회를 이루고, 세계 최초로 벼농사를 지으며 문명을 연 신석기, 후기 신석기시대로 이어져 마을연맹체사회, 그리고 청동기시대인 국가사회 단계에 이르러 건국된 들어선 고조선…. 그 강역이 한반도에 국한된 것인지, 아니면 지금 중국의 난하 유역까지였던 것인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고인돌과 비파형 청동검 등 고조선 유적의 분포를 고려하고 중국 사서의 여러 기록을 근거로 볼 때, 고조선의 강역이 지금 중국의 난하 유역까지였다는 학설은 유사학자의 사이비 학설에 불과할 뿐이라고 일축함이 과연 ‘실증적으로’ 더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림 2’는 윤내현 박사가 그린 고조선 영토 지도이다. 그에 의하면 고조선은 “고조선의 국가구조는 많은 마을들이 그물처럼 조직된 것으로서 마을집적국가 또는 부락집적국가”(윤내현, 앞의 책, 93쪽)로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 “고조선은 맨 위에 신시, 그 아래에 도읍, 그 아래에 국읍, 그리고 맨 아래에 읍락이 있는 국가구조를 한 마을집적국가 또는 거수국제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95쪽)라고 하는데, 좀 길지만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자.
한국과 중국의 옛 문헌에는 고조선과 동시대에 고조선의 영토 안에 위치했던 작은 나라들의 명칭이 보인다. 이들은 고조선의 거수국(제후국, 주석 필자)이었을 거다. 그 이름을 들면 부여扶餘, 고죽孤竹, 고구려高句麗, 예濊, 맥貊, 추追, 기자국箕子國, 진번眞蕃, 낙랑樂浪, 임둔臨屯, 현도玄菟, 숙신肅愼, 청구靑丘, 양이良夷, 양주楊州, 발發, 유兪, 옥저沃沮, 진辰, 비류沸流, 행인荇人, 개마蓋馬, 구다句茶, 조나藻那, 주나朱那, 한[韓, 삼한三韓] 등이다. 문헌에 기록되지 않은 거수국이 많을 것이므로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거수국이 있었을 것이다. (앞의 책 95쪽)
위의 내용을 길게 인용한 것은 이 글의 전개에 있어서, 이 중에 숙신肅愼 부족이 여진족, 나아가 만주족의 조상인 퉁구스계 족속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들이 고조선의 제후국들 중 하나인 국읍 또는 읍락국의 족속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숙신 부족, 여진-만주족이 바로 금나라를 세웠고, 나아가 중국 명나라를 정복하고 청나라를 건국해 지금의 중국 영토 전체를 지배했던 한 족속이다.
나해철 시인이 시집 『엄니 옴마 어무니 말씀』에서 “샤머니즘을 넓은 의미의 마고이즘 혹은 환국 단군이즘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14쪽)라고 말한 샤먼은, 엘리아데(1907~1986)가 원시적 종교로 보편화해 서구에 보고한,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특히 두드러졌던 종교현상”[이윤기 번역, 엘리아데, 『샤마니즘』(까치, 2021 초판 11쇄, 24쪽)]으로, “샤만이라는 말은 퉁구스어 샤만에서부터 러시아어를 통하여 유래한 말”(앞의 책, 24쪽), 바로 그 ‘샤먼’이다. 숙신족으로부터 이어져 온 퉁구스계 여진-만주족이 건국한 중국 청나라 황실에서는 만주족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이 샤머니즘을 한자 살만교로 표기하고 국교로서 받들었다. 청나라 황실에서 먼저 만주어로, 이후 한문으로 번역해 청나라가 공식 간행한 『만주제신제천전례滿洲祭神祭天典禮』가 그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의 한 증거이고, 지금 중국전자철학도서관에 직접 접속해 스캔 원문과 디지털화한 한자원문으로 확인 가능한 대표적 기록이다.
고대 숙신족으로터 만주족으로 이어져 청나라의 국가종교로까지 받들어진 는 고조선의 선교仙敎, 또는 단군교와 밀접한 연결점이 있을 수밖에 없고, 또한 ‘’[만주어로 영적 지식으로 신령과 통하는 사람이라는 뜻]은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왕검의 ‘단군’, 또는 선인왕검의 ‘선인仙人’, 그리고 그 소읍국가의 제사장인 ‘천군天君’ 등과 밀접한 연결점이 있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 고조선 멸망 이후 고조선 유민 6부의 부족장이 박혁거세를 왕으로 받들어 세운 신라의 종교와 제도와 관련해서는 ‘원화原花’, ‘화랑花郞’, ‘국선國仙’과 풍류도風流道 또는 풍월도風月道[육당 최남선은 풍류도의 풍류를 단순히 소리를 베낀 말, ‘불’로 그 뜻은 천신天神이라고 한다.(정재승·이현주 역주, 최남선, 『불함문화론』, 우리역사연구재단, 104~107쪽 참조) 중국 상고음을 재구해 볼 때 의 성모는 ‘pl’이니, 풍류는 당시 ‘불’ 또는 ‘부르/부루’의 소리로 읽혔을 것이고, 또한 ‘불’이나 ‘부르’로 읽혔을 것이다.] 등과 만주족의 ‘’과 ‘’ 역시 밀접한 연관성이 있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1747년 청나라 황제 건륭제는 국교인 薩滿敎 제천의례를 만주어로 편찬하고 이를 한역해 1780년 『만주제신제천전례滿州祭神祭天典禮』로 출간하게 되는데, 에서 을 섬겼으며, 조상신 등을 섬겼다. ‘그림 3’의 청나라 황실의 제신제천의 신전인 당자堂子의 중앙에 황제가 제사를 지냈던 신간神竿, 그리고 ‘그림 4’의 청나라 만주족이 받든 신간의 풍습은 저 고조선으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솟대 신앙과 여러 면에서 닮아 보인다.
나해철의 이번 시집은 우리 고대 역사, 문화, 종교에 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던지고, 한국어의 영성스러움과 신성함을 산스크리트어 영역 사전 속 어휘의 발음과 뜻을 통해서 구명하는 동시에 시인의 어머님에게 깃들어 있는 신성과 영성을 실제 창작을 통해 우리 앞에 제시했다는 점만을 놓고 볼 때도, 확실히 문제적이다.
엄니
나 어려서 움츠러들어
무엇 앞에도 나투지 못할 때
엄니가 방물장사 나가시면 겁났어요
두려웠어요
꼬꼬마가 마냥 오그라들어 고뿔 걸린 듯 훌쩍거렸어요
하루내 혼자서 뒤란의 흙으로 엄마를 망그렀어요
아름다운 얼굴을 그리고는 또 허물었어요
- 「감사」 부분(30쪽)
위 시의 ‘엄니’, ‘나투지’, ‘망그렀어요’는 지역방언으로 남아 있는, 들뢰즈와 과타리의 용어로는, 소수자 언어이다. 표준어를 서울말 중심으로 받드는 지배적 언어관을 지닌 사람들은 이런 말을 ‘시골스럽다고’ 낮잡아 보겠지만, 나해철은 이 ‘엄니’라는 말을 신성한 말로 높여 놓았다. 마찬가지로 ‘나투지’의 ‘나투다’에는 ‘(불성佛性이) 화현하다, 나타나다, 드러내다, 현현하다’라는 산스크리트어의 뜻풀이를 덧붙여, 이를 영성의 언어로 높여 놓는다. 전라도 사투리 ‘망글다’ 역시 마찬가지다. 이 시집의 여러 지역의 사투리는 나해철의 말대로 신화시대의 “북두칠성국자에서 찰랑찰랑 흘러내리는” 신성의, 영성스런 언어로, “문명의 신비를 품은 신성한 언어”로 올라갔다.
이러한 면에서 나해철의 “인류 초기때부터 사용해 온 석기시대의 신성한 언어”로써 시 쓰기는, 모국어를 받들며 그 모국어의 시원이 남아 있는 지역 사투리, 그 사투리를 사용하는 소수자들의 삶과 마음을 받들어 모시는 공경恭敬의 시 쓰기가 아닐까 한다. 이러한 공경의 지극한 마음씨로 내면을 들여다보며 마음 밖 세계를 담는 그 지심至心의 끝에 이르러 초월하는 마음의 미학을 또 ‘경境’의 미학이라고 한다면, 나해철이 지향하는 시학은 을 우리말 소리로 합한 ‘경敬境’의 시학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그가 이전에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삼백사 분의 해원解寃과 그 실체 규명을 위해 304편의 연작시를 써서 묶은 추모시집 『영원한 죄 영원한 슬픔』 (문학과행동사, 2016)을 우리가 함께 읽을 때, 그 지극한 마음씨에 어찌 감읍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한 면에서 세속화되고 파편화돼 주변적으로 남은 현재 샤먼의 ‘탈혼망아’가 아닌, 신령이 깃들어 있는, 또는 신령스러운 곳, 곧 우리 마음을 이르는 영대靈臺[신령의 터]를 잃지 않고 잘 간직하고, 먼지가 끼면 맑게 닦아내 기운을 생동하게 바로 하는 수심정기‘守修’心正氣로써, 수운水雲의 말씀대로 내유신령 외유기화內有神靈 外有氣化의 영성으로써 시 쓰기가 그가 지향하는 시학인 거 같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선배 문사로서 그가 우리를 이끄는 거 같다. 반구천 암석에 기록된 석기시대의 그림-언어와 문명, 고인돌이나 일반 암석에 새겨진 여러 별자리들, 특히나 그 숱하게 새겨진 북두칠성, 하늘과 태양을 상징하는 추상적 문양과 왕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지나 석기시대 그림-언어와 함께 남겨진 신라화랑들의 기록들, 이 나라 산천과 만주 지역의 그 숱한 고대 유적들, 그리고 이러한 고대 유적들에 스며있는, 지금까지 이어져 온, 살아 있는 민족어와 지역 곳곳의 사투리에 남아 있는 모국어의 영성스러움에 대한 전면적 관심을 환기한, 나해철의 이번 시집과 그 작업에 고개 숙여 진심으로 공경하는 마음을 표한다.
첫 번째로 수록된 시 「오메」의 개념에 대한 보충을 좀 더 하고 끝내기로 한다.
‘경境’자의 에는 ‘끝’, ‘다하다’, ‘극에 이르다’라는 뜻이 있다. ‘경境’은 이 땅을 뜻하는 와 결합해, ‘가장자리’, ‘경계지점’ 등의 뜻을 품는 글자인데, 나라의 경계인 ‘’의 ‘경’이 그 뜻을 잘 드러낸다. 그러나 미학적 개념으로서 은 ‘극에 이르러, 다시 말해 궁극에 이르러, 이를 넘어서는 높은 정신으로 고양된 상태’라는 의미를 품는다. 물경物境, 정경情境, 의경意境의 3경이 경境이다. 어렵다고 생각지 말고 맑은 마음으로 새겨보면 밝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은 ‘경景 바깥에 있는 ’, ‘상象 바깥에 있는 (상외지상)’이라는 말은 어려울 수 있다.
예시가 필요하다.
‘졸졸졸 시냇물 흘러갑니다’가 그냥 일상적으로 뻔한 ‘’이라면, 서정춘이 「동행」에서 “물돌물 돌물돌/ 물이 흘러갑니다/ 함께가자/ 함께가자/ 어린 물이 얼르며/ 어린 돌을 데리고 흘러갑니다/ 모래무덤 끝으로/ 그리움으로”라고 하면 그게 바로 ‘경景 바깥에 있는 ’, ‘상象 바깥에 있는 (상외지상)’의 ‘경境’이다. 이것을 중국에서, 또 우리나라에서도 ‘의경意境’이라고 했다. ‘졸졸졸’에서 ‘물돌물 돌물돌’의 상외지상을 얻어냈으니, 얼마나 쉽게 오면서, 많은 말을 전하면서, 새로우면서도 친근한 ‘’의 모국어가 창조된 것인가.
이 ‘의경’은 러시아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가 말한 그 고색창연한 ‘낯설게하기’라는 개념과 통섭한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시인을, 아니 시인의 마음을 ‘언어’와 분리해 놓고, 언어만을 가지고 ‘기이한 낯선 시구나 표현’을 취하고자 한다는 의미라면, 천박한 발상의 개념이 아닐 수 없다.
‘새로움’, ‘기똥찬 시구’는 수사법을 공부하고 ‘대가리’로 말을 비튼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걸 전제하면서도 ‘밝고 맑은 해’를 모시고 있는 내 마음속의 궁극까지 외부세계를 담아 생각할 때, 불현듯 오는 것이고, 그것은 어렵지도 않으면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나 새롭고, 읽으면 읽을수록 의미가 새로 생겨나고, 이미 말은 끝났는데, 그 형상이 품은 의미는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또 새로이 생겨나는 ‘경’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나해철의 시 「오메」의 ‘오메’는 감탄사로도 읽히지만, 우리가 깜짝 놀랄 때 ‘엄마야’, ‘아이고 엄니’할 때 그 ‘엄마’나 ‘엄니’의 의미[나해철이 산스크리트어를 통해 부여한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그윽한 의미]가 더해지면서, 어렵지 않으면서, 이전과 다르게, 새로워지면서, 쉬클로프스키의 말대로라면 ‘낯설게’, 그러나 친해지고 깊어지면서, 정신과 의미를 고양하는 ‘의경’으로 우리 시에 오게 되었다.
전문을 다시 찬찬히 읽어 보자.
오메
나뭇잎 떨어지는 것 보니께
마음이 그렇다야
나도 가야 할 텐디
아니 가고 있다야
못 가고 있다야
오메
엄니 그런 말씀 마세요
오래오래 사셔야지요
오메
저 뿔건 나뭇잎 떨어지는 것 보니께
그런 생각이 더 든다야
나뭇잎 되어
훨훨 은하수 건너면
칠성님을 만날 텐디야
- 「오메」 전문(28쪽)
황홀이 기이한 걸까.
그렇지 않다.
이럴 때 황홀경恍惚境에 빠지는 거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