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GFe72HjN_8
* 찬송 261장
<민수기 33:50-56> 50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강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51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52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 53 그 땅을 점령하여 거기 거주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소유로 너희에게 주었음이라. 54 너희의 종족을 따라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눌 것이니 수가 많으면 많은 기업을 주고 적으면 적은 기업을 주되 각기 제비 뽑은 대로 그 소유가 될 것인즉 너희 조상의 지파를 따라 기업을 받을 것이니라. 55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56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52절의 말씀처럼 그 땅의 원주민들을 다 몰아내고, 그들이 섬기던 모든 우상들과 산당들을 다 파괴시키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침략 전쟁이 아닙니다. 침략 전쟁은 악한 의도로 상대를 죽이고 재산을 빼앗는 육적인 것이고 죄악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가나안 정복 전쟁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죄악된 우상들, 그리고 하나님을 섬겨야 할 믿음을 우상들에게 향하고 있는 죄악된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서의 전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전쟁을 명령하시면서 그 땅을 빼앗아 너희가 차지해 버리라는 것을 먼저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우상을 깨뜨리고 산당을 헐라는 명령을 먼저 하신 것이지요. 즉 소유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행하는 것이 먼저라는 겁니다.
앞부분 33장에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사람들이 요단 동편 땅에서 먼저 정착하게 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을 때에 모세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었지만 그들의 소유권은 가나안 정복 전쟁이 마쳐지기까지 그들이 끝까지 자신들의 책임을 다한 후에야 인정해 주라고 모세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후계자 여호수아와 모든 지휘관들에게 신신당부 했었지요. 그러니까 소유가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이고, 사람의 됨됨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이루는 것이 먼저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특히 55절에서는 왜 이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우상들을 파괴시켜야 하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너희의 재산이 되고 노예로 삼을 수 있는 이득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세상적인 이득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방해하는 것을 그대로 놔두게 된다면 결국 그것들이 가시와 찌르는 것이 되고, 그로 인해 결국 멸망의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이들은 하나님의 염려처럼 다 몰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안에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겼던 바알과 아세라라는 우상을 없애지 못했지요. 이 바알을 섬기는 타락하고 인간의 욕심에 근거한 신앙은 이스라엘이 늘 걸려 넘어지는 걸림돌이 되고 말았고, 결국은 바알을 숭배하는 욕망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더 앞서게 되면서 이스라엘은 서서히 멸망을 향해 나아갔던 겁니다. 북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망하고, 남 유다는 주전 587년에 바벨론에게 망했지요. 그 망해 버린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남겨놓았던 바알신을 숭배하는 타락한 욕망이었던 겁니다.
돈을 잘 벌든, 많은 지식을 가져 박사가 되든, 권력을 가져서 왕이나 대통령이 되든 먼저는 사람이 사람다워져야 하지요. 그렇지 못한 자에게 돈이 주어지고 지식과 권력이 주어진다면 그 악한 영향력은 그 나라에 치명적인 것이 되고 맙니다. 세상은 능력자를 키우려 하지만 기독교는 참된 사람을 키우려고 해야 합니다. 교회는 돈 잘 벌고 세상에서 성공하는 축복을 빌어주는 곳이 아니라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사람답게 아름답고 정직하게 살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과 섭리와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야 하는 곳이지요. 예수님께서도 승천하시기 전에 마태복음 마지막 부분에서 부탁하신 지상명령은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교회는 인간의 욕망을 돕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러한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의 구조는 51절에서 52절, 그리고 55절과 56절은 가나안의 원주민과 우상을 몰아내라는 명령이고, 그 사이에 있는 53절과 54절은 그 땅을 소유하고 공평하게 분배하라는 명령이지요. 즉 소유가 하나님의 뜻을 감싸고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소유를 감싸고 있는 거죠.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은 세상에서의 성공과 번영과 부유함과 육신의 건강을 먼저 추구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참된 생명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로 창조되었고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명의 호흡으로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르고,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를 따라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언제나 먼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신앙생활의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나라와 의, 하나님의 뜻에 두어야 함을 분명히 해두셨지요. 우리가 아직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참 생명과 진리이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첫댓글 입으로는, 머리로는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 신앙생활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참 생명과 진리이신 하나님께 있다는 것 깊이 깨달으면서도
믿음이 연약하여 그렇게 하지 못함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르고,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를 따라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언제나 먼저 되기를 위하여 늘 기도하게 하옵소서
오늘 본문의 구조는 51절에서 52절, 그리고 55절과 56절은 가나안의 원주민과 우상을 몰아내라는 명령이고, 그 사이에 있는 53절과 54절은 그 땅을 소유하고 공평하게 분배하라는 명령이지요. 즉 소유가 하나님의 뜻을 감싸고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소유를 감싸고 있는 거죠.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은 세상에서의 성공과 번영과 부유함과 육신의 건강을 먼저 추구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참된 생명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로 창조되었고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명의 호흡으로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르고,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를 따라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언제나 먼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신앙생활의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나라와 의, 하나님의 뜻에 두어야 함을 분명히 해두셨지요. 우리가 아직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참 생명과 진리이신 하나님께 있습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