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봉(雲峰) 선사의 안목(眼目)
[불법(佛法)의 근본진리인 선(禪)의 참뜻을 논하건대는,]
선(禪)을 선(禪)이라 이름할 것 같으면
목을 베고서 삶을 찾는 것과 같음이요,
또한 선을 선이라 하지 않더라도
뾰족함 위에 뾰족함을 더함이로다.
그러면 이러한 선(禪)의 진리를 어느 곳에서 찾을꼬?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흉금리(胸襟裏)에 깊이깊이 간직되어 있다. 깊이 간직되어 있는 이것을 밝힐 것 같으면, 한 팔을 내젓고 한 발을 내딛는 데 한량없는 참진리가 현출(現出)되는 법이다.
그러한 고로, 이 법을 뚜렷이 밝힌 이는 진리의 법에 법왕(法王)이 되어서 일만경계(一萬境界)를 임의자재(任意自在)하게 쓰고 수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한일합방 당시에, 운봉(雲峰) 선사께서 이 선(禪)의 진리를 깨달아 혜월(慧月) 선사께 인가(印可)받으시고 나서, 행각(行脚)을 나서셨다.
그 당시, 경기도 양주 망월사(望月寺)에서는 제방(諸方)에서 발심(發心)한 수좌(首座)들이 용성(龍城) 선사를 조실로 모시고 30년 결사(結社)를 맺어 용맹정진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운봉 선사께서 입승(立繩)을 한 철 보시는데, 하루는 용성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여 이러한 법문을 하셨다.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도 산승을 보지 못하고 역대(歷代)의 모든 조사(祖師)들도 산승을 보지 못하거늘,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어느 곳에서 산승을 보려는고?”
이 때 운봉 선사께서 일어나 답하시기를,
“유리독 속에 몸을 감췄습니다.[琉璃瓮裏藏身]”
하니, 용성 선사께서는 아무 말 없이 즉시 법상에서 내려오셨다.
아주 멋진 진리의 문답이다.
두 분 선사의 이 문답처(問答處)야말로 천불 만조사(千佛萬祖師)가 출세하여 점검하시더라 해도 흠잡을 곳이 없는 거량(擧揚)이다.
금일, 산승(山僧)이 이 두 분 선사의 문답에 한 몫 가세하여, 시회대중에게 진리의 인연을 맺고자 하니 잘 들어 가지소서.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도 나를 보지 못하고 역대(歷代)의 모든 조사도 나를 보지 못하거늘, 대중은 어느 곳에서 나를 보려는고?” 하는 물음에 운봉 선사께서 “유리옹리장신(琉璃瓮裏藏身)”이라고 답하시자, 용성 선사께서는 말 없이 하좌(下座)하셨는데, 산승이라면 이렇게 한 마디 하고 내려갔으리라.
眞獅子善能獅子吼(진사자선능사자후)
참사자가 사자다운 사자후를 하는구나.
이 한 마디가 있었다면 그 법석(法席)은 더욱 빛났을 것이다.
운봉 선사께서 그 후 덕숭산 수덕사에서 만공(滿空) 선사를 조실로 모시고 공부하실 때였다.
하루는 만공 선사께서 ‘양생고자화(孃生袴子話)’를 들어 법문하시기를,
옛날에 운거(雲居) 도인께서 출세(出世)하여 회상(會上)을 여시니, 각처에서 운수납자(雲水衲子)와 단월(檀越)들이 모여들어 법문을 듣고 지도를 받았다.
당시에 운거 도인께서 주(住)하시던 산내(山內)의 어느 암자에는, 수십 년 동안 혼자 정진해 오던 한 스님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암자승(庵子僧)은, 운거 도인께서 주산(住山)하여 여러 해 동안 법을 펴도, 한 번 내려와서 인사를 한다거나 법문을 듣는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운거 도인께서 그 암자승을 점검해보고자 시자에게 이르셨다.
“네가 암자에 올라가서 암자승이 참선하고 앉아 있거든, 동쪽에서 서쪽으로 갔다가 다시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거동을 한 번 해 보여라.”
시자가 암자에 올라가 운거 도인께서 시키신 대로 행해 보였는데, 암자승은 좌선(坐禪) 상태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자가 다가가서 인사를 하고는 물었다.
“산중 큰절에는 운거 도인께서 회상을 열어 여러 해 동안 대중을 위해 법(法)을 설하고 계시는데, 스님은 어찌하여 한 번도 내려오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암자승은,
“설령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셔서 온갖 법문을 설(說)하시더라도, 나는 귀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시자가 내려와서 운거 도인께 사실대로 말씀드리니, 그 때가 마침 여름철인지라, 운거 도인께서는 잘 지은 삼베옷을 한 벌 싸주시면서 암자승에게 갖다주라고 하셨다.
시자가 다시 그 암자에 가서,
“이것은 큰절 조실 스님께서 주시는 옷입니다.”
하며 옷을 전하자, 암자승은
“부모에게 받은 옷만 해도 일생 입고 남는데, 어찌 이것을 입을까 보냐?”
하면서 옷을 내밀어 버렸다.
시자가 돌아와 사실대로 아뢰니 운거 도인께서 다시 이르셨다.
“그러면 네가 걸음을 한 번 더 해라. 가서 ‘부모에게 나기 전에는 무슨 옷을 입었습니까?’ 하고 물어 보아라.”
시자가 다시 또 암자에 올라가서,
“부모에게 나기 전에는 무슨 옷을 입었습니까?”
하고 묻자, 암자승은 여기서 그만 말문이 막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운거 도인께서 그 사실을 전해 들으시고는,
“내 일찍이 그 놈을 의심했노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암자승이 앉은 상태에서 몸을 벗어 버려, 산중(山中) 대중들이 화장을 했는데, 이 때 오색광명의 사리(舍利)가 나왔다.
이 일로 인하여 온 산중이 떠들썩하자, 운거 도인께서
“앉아서 이 몸을 벗어 버리고 사리가 나와서 오색광명을 놓더라해도, 내가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옷을 묻던 당시에 한 마디 바른답을 하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만공 선사께서 이 법문을 설(說)하시고는 대중을 향해 물으셨다.
“일러라. 부모에게 나기 전에는 무슨 옷을 입었던고?”
이에 운봉 선사께서 일어나셔서,
“여름에는 안동포를 입고 겨울에는 진주 목화옷을 입습니다.”
라고 멋진 답을 하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이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옷의 물음에, 무엇이라 답하겠느냐?
거기에 산승은,
앞으로 세 걸음 나아갔다가 뒤로 다시 세 걸음 물러가 서리라.
운봉(雲峰) 선사를 알겠는가?
하늘세계와 인간세계의 스승이 되는 진리의 안목(眼目)을 분명히 갖추셨음이로다.